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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下): 자일, "동그라미 그리려다..."

신솔문 (전북동노회,임실전원교회,목사) 2010-07-30 (금) 23:43 13년전 4101  


                                                                                                      사택에서 본 모악산 

가까운 분이 지인들과 함께 꽤 험한 산에 올랐습니다. 고생 끝에 몇 걸음만 떼면 산 정상을 밟는 감격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그쯤에서 머무르다가 일행을 기다린 후에 하산했다고 합니다. 힘이 부쳐서가 아니라 ‘정복’하기 위해 산에 오르는 것에 대한 드러내지 않게 데모한 것이지요.

 

저도 정복형에 가깝습니다. ‘산 너머’를 봐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심지어 우리 부류 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중간까지 오르려면 왜 산에 오른다냐?”. 산을 진정 좋아하는 분들에게 이런 질문은 난처함을 줍니다. 하도 천박해서 어디서부터 기초를 잡아주어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지요.

 

교인한테 빌려본 <끈>이라는 책이 떠오르는군요. “자일파티”는 등산용 로프로 묶인 동료를 뜻합니다. 하나가 실족해도 자일로 연결되어 있는 동료가 안전장치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운명을 같이 할 수도 있지요. 때로는 부상자 스스로가 다른 동료라도 살리기 위해 자기의 로프를 자르는 일도 있고요.


<끈>이라는 책은 국내외에서 ‘센 놈’으로 통하는 박정헌님이 2005년 히말라야 촐라체를 하산하는 도중에 겪은 조난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그는 9일 만에 중상을 입은 자일 파티와 함께 생환합니다. 이런 거벽(巨壁) 등반가에게 정상 정복은 그야말로 등반의 지상 목표일 겁니다. 그런데 <끈>을 보면 이 등반가는 이런 방식의 등반, 정확히는 이런 방식의 삶을 새롭게 보는 경험을 합니다. 말 그대로, 기어 내려오다가 그들이 처음 만난 사람은 히말라야에 기슭에 사는 노부부였습니다.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리며 누워있는데 추위에 떠는 할머니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어렴풋이 보면서, 행복이 거창한 정상 정복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소박한 진리를 절감하지요.

 

인생은 종종 등산에 비유됩니다. 삶에는 의미와 목표가 있다는 점에서 신자들은 구원의 등산로를 가며 정상을 향해 차근차근 전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정상 지향성은 자칫 주님께서 우리의 일상에 주시는, 만나 같은 은총을 소홀하게 하기도 합니다. 정상을 향해 가더라도 숲길에서 만나는 시원한 계곡과 고즈넉한 오솔길과 다람쥐의 재롱에 기뻐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런 것들이 소소하고 하루를 못 가는 “만나”지만 하나님이 주신 일용할 양식인 것입니다. 주위를 보십시오. 가정과 교회에 주님께서 주신 만나가 내려와 있습니다.

 

히말라야 등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으면 그 가까운 분은 대놓고 등반가들에게 험한 말을 하셨습니다. 혹시 제가 그런 데 간다고 나설까봐 미리 선수 쳤던 것이죠.

 

                                                                         [07. 5. 6]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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