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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향기

윤응진 (충북노회,한신대학교,목사) 2010-07-31 (토) 11:52 13년전 7104  

2010.7.4.

그리스도의 향기

                                                고린도후서 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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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벌써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갔습니다. 지나간 겨울은 참 춥고 길었습니다. 그 긴 겨울이 오랫동안 우리의 몸을 움츠리게 했는데, 이제는 한여름의 더위를 피하려 애써야 하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긴 겨울과 성급한 여름 사이에서, 올봄은 참으로 짧았습니다. 그래서 봄꽃들은 서둘러 피어나자마자 지고 말았습니다. 서둘러 피는 봄꽃들, 요란스럽게 화단을 장식하는 꽃들은 대개 향기가 없습니다. 그 봄꽃들이 자취를 감추고 나면, 비로소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으며 피어나는 꽃이 있습니다. 바로 라일락 꽃입니다.

라일락 꽃은 결코 화려하지도 야단스럽지도 않게 조용히 피어납니다. 그러나 그 향기는 온 세상의 악취를 모두 정화시키는 강력한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올해, 새삼스레 라일락 꽃 향기를 맡으며 감격했습니다. 대체 어떻게 그 긴 겨울 언 땅에서 라일락은 이처럼 신비스러운 향기를 준비하였을까요? 어떻게 라일락만이 이 향기를 흙 속에서 찾아냈을까요?

라일락이 만들어 낸 향기는 춥고 긴 겨울을 견디어낸 인내와 지혜의 보람된 결실과 같습니다. 그것은 라일락 자신의 기쁨과 보람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원천이 됩니다.

 

2. 그리스도의 향기

오늘 우리가 경청한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이처럼 ‘향기’를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15절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바울의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잠시 시간여행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재현할 필요가 있습니다.

 12~13절의 말씀을 보면, 바울은 매우 불안해서 안절부절 못하는 자신의 심리상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의 터어키 지역에 있던 에베소에서 머물다가 ‘드로아’로 갔다고 했습니다. 드로아는 에베소에서 그리스로 넘어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선교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유리한 상황을 얻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서둘러서 마케도니아로 갔다고 했습니다. 왜 바울이 터어키 지역에서 그리스 지역으로 서둘러 떠나야 했을까요? 그는 그 까닭을 13절에서,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여,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그리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도를 만나지 못해서 매우 불안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디도를 만나기 위해, 드로아에서 얻은 선교의 기회조차 포기하였기 때문입니다.

대체 디도는 어디로 갔던 것일까요? 그리고 바울은 과연 디도와 해후하였을까요? 우리가 오늘 경청한 말씀에서는 그 대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된 내용은 고린도후서 7장 5절 이후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바울의 여러 편지들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발생하였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아마도 서기 50년 3월경~51년 9월경까지 18개월간 고린도에 머물면서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때에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난후에 바울은 에베소로 옮겨 가서 선교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떠난 고린도교회에는 여러 가지 신앙문제와 윤리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바울은 당장 고린도교회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54년경에 에베소에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편지를 썼고, 그것을 인편에 보내어 그들을 가르치고 권면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고린도전서의 내용입니다.

고린도전서는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일부는 해결하였으나(부활문제, 우상에게 바친 음식 섭취, 영지주의 문제 등),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하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발부하였다는 추천서를 지닌 자들이 고린도교회에 나타나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자처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의 사도 자격 자체를 문제 삼았고, 아예 바울의 가르침을 무효화하려 하였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이루어 놓은 선교사업의 결실이 사라질 위기가 닥쳤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고 고린도교인들이 바른 신앙의 삶을 살도록 가르치기 위하여, 또 다시 편지를 써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신임하던 동역자인 디도를 고린도 교회로 파송하였습니다. 디도는 바울의 편지를 고린도교인들에게 전달함으로써 바울의 입장과 가르침을 전해야 했습니다.

디도는 고린도교회에서 “거짓 사도”들을 상대해야 했고, 또한 모든 일이 잘 해결되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헌금도 모금해야 하는 사명을 띠고 파송되었던 것입니다. 디도가 좋은 소식을 갖고 올지, 그리고 도처에서 날뛰는 노상강도들을 피해서 헌금을 무사히 가져올 수 있을지 염려가 되어, 바울은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입니다.

 

7장 5절 이하에 의하면, 바울은 마케도니아에서도 여러 가지 환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들고 돌아온 디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디도가 가져온 소식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바울의 편지를 읽고 회개하여, 바른 신앙인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이 바울에게 안도감과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경청한 14절 말씀에서 이렇게 찬양합니다: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언제나 우리를 참가시키시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어디에서나 우리를 통하여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초대교회의 선교가 위기에 처했던 순간에, 바울은 또 한 번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수많은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마음 졸이며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을 전개하시는 모습을 바라보고 감격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바로 그 “그리스도의 개선행렬”에 참가하고 있음을 감사합니다. 바울은 바로 자신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가 온 세상으로 퍼지게 하시는 하나님께 찬양합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향기”를 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게 된다’는 것은 곧 ‘생명의 길에 동참하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단순히 머리에 저장되는 지식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켜 새롭게 하는 ‘생명의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고난과 수고를 통해서, 죽음의 악취를 몰아내는 이 향기가 널리 퍼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가 퍼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이 확대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바울은 심지어 이렇게 주장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에 감동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향기는 일차적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그것은 또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생명의 향기가 됩니다.

구약성서에서 “향기”라는 어휘는 희생제사를 묘사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8:21에는, 노아가 홍수 후에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리자, 하나님께서 그 ‘향기’를 맡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향기를 맡으시고서, 마음속으로 다짐하셨다.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창 8:21]

 

그리고 신약성서에서 이 “향기”라는 말은 희생제사를 암시하는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에베소서 5:2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자기 몸을 내어주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사랑으로 살아가십시오.”[엡 5:2]

 

바울이 고난을 무릅쓰고 실행하는 선교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이미 그리스도가 보여준 ‘희생의 향기’가 피어올랐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까지 이르렀으며, 동시에 사람들에게도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향기”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말씀을 팔아서 먹고사는 장사꾼”(17)들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보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구원받은 상태에만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이웃에게 향기 나는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서도, 우리의 일상생활을 예배드리는 자세로 살 것을 요구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물”로서 ‘향기’를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갖 박해와 열악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그렇게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보여준 신앙인들에 의하여 초대교회가 성장했으며, 그들을 통한 “그리스도의 개선행렬”은 마침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그리스도의 개선행렬”에 참여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이웃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라고 요청합니다.

 

3. 맹의순이 보여준 ‘그리스도의 향기’

얼마 전에,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0주년이 지났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 고통을 받은 사람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귀한 삶을 다 마치기도 전에 죽음을 강요당한 사람들을 기억하며, 우리는 오래된 슬픔을 더욱 절절히 느껴야만 합니다. 그 아픈 기억을 되살림으로써, 이 땅 위에 다시는 전쟁의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맹의순(盟義淳)이라는 신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신대학교 전신인 조선신학교 학생이었습니다. 맹의순은 바로 그 불행한 역사의 한복판에서 희생당하였으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보여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큰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맹의순은 일제시대에 평양 갑부이면서 장대현 교회 기둥이던 맹관호 장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일제 말기와 월남 과정에서 가족들을 잃고 가세가 기울게 되어 결국 아버지와 단 둘이만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신학교 3학년이던 여름에 전쟁이 발발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가르치던 학생과 함께 대구 방면으로 피난길에 올랐는데, 수차례 인민군에 의해 체포되어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습니다. 국군패잔병으로 오인되어 고문 받다가 풀려나고, 또 “미제국주의의 첩자”로 간주되어 체포되고, 다시 붙잡혀 강제 노역을 치르다가 탈출하곤 했던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국군진영에 이르렀으나, 그는 이제 미군에 의해 “인민군 간첩”으로 분류되어 부산의 거제리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신학생 신분을 밝혔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하여 절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깊은 회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절망은 하나님께 대한 월권”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절망은 인간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비인간적인 상황 한복판에서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그는 포로수용소 안에 ‘광야교회’를 세워 선교사역을 담당했습니다. 특히 중국인 포로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심지어 ‘선교적 사명감’까지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는, 선교사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중국에 갇혀 있던 사람들을 수용소에서 만나게 된 것은, 그들에게 복음의 씨를 뿌리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중국인 포로들의 병실을 찾아다니며 정성껏 간호하고 전도하였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그에게 적대감을 보였으나, 점차 그의 진심과 정성에 감동하여 오히려 그의 위로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밤마다 하루에 여섯 시간씩, 큰 대야에 물을 채워서 그 환자들을 찾아가 몸을 씻어주며 위로와 구원의 소망을 전했습니다.

그는 1952년 8월 12일에 수용소에서 석방되게 되었습니다. 맹의순은 석방이 된 후에도 자유의 몸으로 포로들을 돌보겠다는 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석방을 하루 앞둔 8월 11일 새벽, 중공군 병동에서 맹의순은 과로로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전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는 26년 8개월의 삶을 그렇게 마쳤습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도 예배가 드려지기 직전에, ‘거제리 포로 수용소 중공군 병동의 환자들 일동’이 보낸 장문의 추도사가 전달되었습니다. “아 평화의 왕자! 맹의순 선생 영전에....”로 시작되는 추도사에는 그에 대한 감사와 그를 잃은 것에 대한 애절한 슬픔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그 추도사의 후반부에서 중국인 포로들은 다음과 같이 신앙을 고백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도 예수님도 몰랐었지만 맹의순 선생님을 통해서 주님을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맹 선생님의 말씀대로 우리도 고국에 가면 다시는 이런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안 하게 하는 예수님의 평화를 펼쳐 나갈 것입니다.”

맹의순의 사랑과 봉사에서 피어난 ‘그리스도의 향기’로 이미 중국에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맹의순은 작가 정연희씨가 집필한 소설, [내 잔이 넘치나이다](홍성사, 1983)를 통해서 우리들의 기억 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맹의순의 이야기는 지난 해 3월에 오페라(이장호 연출)로 공연되기도 했습니다.

그가 겪은 고난은 한국현대사의 구조적 모순에 의해 야기된 것이었습니다. 극단적인 고난의 현실 한복판에서도, 그는 적대자들에게 사랑과 봉사를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었습니다. 중국인 전쟁포로들 가운데 병들어 고통을 겪던 사람들은 맹의순의 삶에서 살아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헌신과 희생을 통해, 그들은 증오와 살육의 현장에서 사랑과 평화의 실마리를 찾았던 것입니다.

 

4. 맺는 말

오늘날 우리는, 기독교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현실에서, 오히려 일반사회의 따가운 눈길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개선행렬”은 중단되었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서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비판에는 기대가 담겨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비판들은 바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보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열악한 상황에서 사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됨으로써 “그리스도의 개선행렬”을 이어갔던 것처럼,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그런 삶을 실천하도록 요구받고 있는 것입니다.

라일락의 뿌리에 연결된 줄기들에서 피어나는 꽃들마다 라일락 향기를 발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에 뿌리를 내린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산해야만 합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을 통해 발산되는 ‘그리스도의 향기’로 세상이 정화되고 새롭게 변화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의 개선행렬’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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