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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봇의 포도원과 아합왕

윤기석 (경기노회,수원교회,목사) 2010-08-09 (월) 16:13 13년전 13870  

(본문: 열왕기상 21: 1-10)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말씀에는 이스라엘 왕 아합이 나봇 이라는 한 시민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하여 죄를 조작하고 죽이려는 흉계에 관한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합왕은 주전 876년에서 854년 사이에 북 왕국 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아합왕은 시돈왕의 딸 이세벨을 왕비로 맞아들이면서 , 동시에 이세벨이 섬기던 바알 신을 수입하여 섬기고, 아세라 목상을 세우는 등 우상숭배에 힘써서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법을 지키고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은 없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선량한 시민을 죽이고 선조 때부터 물려받은 밭을 빼앗았던 악명 높은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합왕의 궁전 곁에는 나봇이라는 한 사람의 포도원이 있었는데, 아합왕은 이 포도원을 보고 욕심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아합왕은 나봇을 불러 말했습니다. “네 포도원이 내 궁궐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나물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합의하면 그 값을 돈으로 주리라.”

그러나 나봇은 일언지하에 이를 거절했습니다. 나봇이 왕의 요청을 거절한 이유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법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의하면,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땅은 남에게 팔지 말도록 되어있었습니다.  레위기 25장에 보면, 혹시 경제사정이 어려워 토지를 팔았다고 할지라도, 그의 근족 중에서 땅 값을 대신 물어주거나 혹은 자신이 후에 돈을 벌어 갚으면 그 판 땅을 다시 찾아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안 되는 경우에는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에 무상으로 다시 토지를 찾아오게 했습니다.  이와 같은 율법 때문에 나봇은 아합왕의 요구를 거절하고, 포도원을 팔거나 바꿀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합왕 이었습니다. 나봇이라는 일개 시민으로부터 거절을 당한 아합왕은 왕으로서의 위엄과 자존심을 상하여 분한 마음을 갖게 되었고, 또 탐심을 만족시키지 못한 결과로 마음에 근심이 생겼습니다. 아합왕은 마음이 답답하여 침상에 누워 식사도 못했습니다.

왕의 이런 모습을 지켜 본 왕비 이세벨은 자초지종을 다 들은 후에 왕에게 말했습니다. “왕이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면서 그게 무슨 걱정입니까? 내가 그 포도원을 왕에게 드릴 터이니 일어나 식사를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그 후 이세벨은 간악한 흉계를 꾸몄습니다.

이세벨은 아합왕의 이름으로 편지를 쓰고 거기에 어인을 쳐서 나봇의 이웃에 사는 장로와 귀인들에게 보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나봇을 많은 백성들 앞에 세우고 비류(성격이 야비한 사람) 두 사람을 거짓 증인으로 내세워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노라고 거짓증거하게해서 백성들이 나봇을 끌어내어 돌로 쳐 죽이도록 하라.”

이 계책은 그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왕의 도장이 찍힌 편지를 받은 장로와 귀인들은 죄인을 조작하는 하수인이 되어 죄 없는 나봇을 죽였습니다. 나봇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기 위하여 포도원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온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선지자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준엄한 형벌을 선언했습니다. 엘리야는 왕을 향해서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는 곳에서 개들이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고 선언했습니다.

아합왕에게 대한 엘리야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3년 후에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큰 전쟁이 있었는데, 아합왕은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믿고 싸우다가 적의 화살에 맞아 병거위에서 피를 쏟고 죽었습니다. 아합왕의 피 묻은 병거는 사마리아 못에 씻었는데, 개들이 와서 그 피를 핥았습니다.이상과 같은 내용이 오늘 우리의 본문과 관계된 나봇의 포도원과 아합왕의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말씀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의 말씀을 새롭게 듣고자 합니다.  특히 두 전직 대통령과 한때 우리의 역사를 좌지우지 했던 고관들과 그들에게 아부하고 뇌물을 바쳤던 재벌들이 중형을 선고받은 이 시점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탐욕이 불행을 가져온다는 사  실입니다.

 

아합왕은 당시에도 많은 것을 가진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시민이 가진 포도원을 탐내었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나물 밭을 삼기 위해서 남의 조상적 부터 내려오는 기업을 탐낸 것입니다. 물론 그는 그냥 빼앗지 않고 돈을 주거나 다른 땅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조상의 유산을 남에게 양도하지 말라는 율법을 알고 있는 왕으로서, 법을 무시한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은 권력의 힘으로 사유재산을 침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실 아합왕조가 망하는 중요한 원인 하나는 아합왕의 탐심으로 시민의 사유재산을 침범했던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는 말씀과 같이 아합왕의 욕심은 범법과 살인을 불러왔고, 결국에는 자신도 벌을 받아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부르기도 부끄러운 우리의 두 전직 대통령, 대통령이 되려는 탐욕 때문에 불법으로 권력을 찬탈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저들은 물질에 대한 탐욕 때문에 수천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재산을 수탈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얼마나 부끄럽고 비참합니까?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예수님의 말씀대로 삼가 탐심을 물리치기 바랍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남을 억울하게 하지 말고, 자신의 탐심을 채우기 위하여 법과 윤리를 짓밟지 마시기 바랍니다. 탐욕은 죄의 뿌리요, 불행의 화근입니다. 탐욕은 우상숭배요 하나님을 대적 합니다. 탐욕이 가롯 유다로 하여금 스승 예수를 은30에 팔게 했고, 탐욕이 아나니아와 삽비라로 하여금 헌금 액수를 속이게 했습니다. 옛날에 어떤 선교사는 탐내지 말라는 말을 발음을 잘 못하여 땀내지 말라고 해서 교인들을 웃겼다고 합니다. 여러분 부디 땀내지 말고 상식과 신앙양심을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우리는 이권보다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3절에 보면, 나봇은 포도원을 팔라는 왕의 요구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내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이 말씀은 선조의 유산을 타인에게 양도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라는 뜻입니다. 나봇은 이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왕의 요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더욱 소중히 여겼습니다.

사실 나봇에게는 아합왕의 요구를 따라 포도원을 양도하는 것이 그의 입신양명과 부귀영화를  위해서 훨씬 좋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벼슬길도 열릴 수 있고 또 많은 땅이나 많은 돈도 대신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유혹을 물리치고 왕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조상적 부터 내려오는 땅을 영구히 보존하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의 분명한 신념은 선조의 유산을 왕에게 주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거역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왕의 요구를 들어주고 왕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본인에게 반대급부로 돌아오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나봇이라고 해서 왕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왕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법을 거역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봇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기 위하여 왕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나봇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위하여 하나님께 죄를 짓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봇은 신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나라의 재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어떻게 수백억을 통치자금 헌납이라는 명목으로 뇌물로 바칩니까? 그들이 이권의 기대 없이 그런 부정한 거래를 했겠습니까? 참으로 한심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느 편입니까?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법을 거역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대통령의 요구라도 거절 할 수 있는 편입니까? 여러분은 입신양명과 부귀영화를 위하여 신앙양심도 버릴 수 있는 편입니까? 아니면 신앙양심을 지키기 위하여 개인의 영달과 이권도 초개같이 버릴 수 있는 편입니까? 우리 모두 나봇과 같이 하나님을 선택하고 신앙양심을 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우리는 결코 죄의 조작에 참  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순리적으로 나봇을 설득시킬 수 없었던 왕비 이세벨은 간악한 계책을 꾸며 나봇을 죽이기로 했습니다. 그 간악한 계책이란 바로 나봇을 큰 죄인으로 조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한 죄를 범한 사람으로 조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간악한 흉계를 실행하는 하수인들이 누구냐 하면 바로 나봇의 이웃에 사는 장로들과 귀인들 이었습니다.  요새 말로 하면 교회 지도자들과 동네 유지들이 나봇을 죽이는 하수인 노릇을 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어인이 찍힌 이세벨의 편지 한 장을 받고 죄인을 조작하는 일에 가담을 했습니다. 결국 나봇을 죄인으로 조작한 원흉은 이세벨이요, 그 조작한 흉계를 그대로 실행한 하수인은 장로들과 귀인들이었습니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단지 권력자의 편지 한 장을 받고 죄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조작하여 죽였습니다. 나봇이 죄인이 아니라는 것은 장로와 귀인들과 비류들이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저들은 아합왕이 악한 왕이요, 왕이 흉계를 꾸며서 나봇을 죽이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 없는 나봇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죽였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무섭고 잔인한 일입니까? 권력이 타락하고 종교가 타락하면, 둘이 합작하여 엄청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타락하면 권력의 하수인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중형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종교인들이 참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두 전직 대통령이 불교인이요, 그중에는 장로들도 있습니다. 이들이 선량한 시민을 폭도로 조작하여 총살하고, 좌경용공으로 몰아고문하고 투옥 시켰습니다.

더욱 비참한 사실은 이들 살인자들의 출현과 발호를 환영하고 축복한 교회 지도자들의 굴종과 아부였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이권과 발판을 넓히기 위하여 범죄 집단들과도 손을 잡고 협력했으니, 이들 또한 범죄의 하수인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추종하던 세력들이 역사의 죄인으로 단죄를 받는 지금에도 공적인 회개나 사과 없이 거룩한 곳에 그대로 서 있으니 실로 가증 할 뿐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을 살려서 죄인을 조작한 이세벨같이, 또는 그 조작에 참여하여 하수인이 된 장로와 귀인과 비류와 같이 되지 않도록 삼가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죄인에게는 하나님의 심 판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악한 왕 아합과 이세벨은 그들의 죄 값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사람을 죽이고 남의 땅을 빼앗았던 아합은 하나님의 벌을 받아 비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세벨 역시 같은 벌을 받았습니다. 개들이 그들의 살을 먹고 피를 핥았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아합과 이세벨의 악행을 그대로 갚아, 그들의 가족과 왕조가 멸망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공의의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을 그대로 두시지 않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심판하십니다. 그의 생에 중에 심판하시기도 하고, 아니면 최후심판 때에 심판하시기도 합니다. 밭에서 억울하게 죽은 아벨의 호소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억울한 자들의 호소를 들으시고 심판하십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건들이 우리에게 좋은 거울이 되고 좋은 교훈이 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다시금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오늘도 우리는 물욕과 정욕과 명예욕에 눈이 어두워, 상식과 법과 양심을 무시하고 범죄하며 살아가지 않습니까? 오늘도 우리는 자신의 탐욕과 야망을 이루기 위하여 죄를 조작하여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기도 하고, 또 조작된 죄악에 하수인으로 참여하지 않습니까?

근자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건들은 재판을 받은 몇몇 사람들만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 우리 국민 모두가 직접 간접으로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자신이, 그리고 우리 국민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봇과 같이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양심과 법을 따라 살도록 새롭게 각오하고 다짐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깊이 반성하고 회개하여, 새롭게 다짐하고 출발하는 축복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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