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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윤기석 (경기노회,수원교회,목사) 2010-08-09 (월) 16:15 13년전 7001  

(본문 : 시편 42:1-5)

 

오늘 우리의 본문말씀은 낙망과 불안에 빠져있는 한 성도가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리라는 신앙고백입니다.  본문 5절에 보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지금 이 성도는 한없는 낙망과 불안 속에 잠겨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서 이 낙망과 불안을 이기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겠다는 것입니다.

본문말씀에 따르면, 이 성도는 평소에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던 분인 것 같습니다.  4절에 보면, 그는 성일을 잘 지켰고, 특히 음악에 재능이 있어서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인도하면서 기쁨으로 찬송을 부르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갑자기 큰 불행이 닥쳤습니다. 그 불행이 어떤 것인지 본문에는  분명히 나타나있지 않지만, 그러나 그 불행의 결과로 인해서 그는 더 이상 성전에 나가서 찬양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추측컨대, 그가 무슨 중병을 앓고 있어서 성전에 나가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 교우들 중에도 노환이나 중병으로 거동이 불편하여, 성전에 나오지 못하므로 애를 태우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 이 성도는 악한 사람들의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혀있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적국에 포로로 잡혀간 것 같기도 합니다. 북한 공산당에게 붙잡혀간 성도들도 같은 경험을 했을 것 같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닥친 불행의 결과로 말미암아 성전에 나가서 찬송할 수 없는 비참한 형편에 놓였습니다.

이와 같은 형편에서 이 성도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그는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다”고 했습니다. 몇 달 동안 비가 오지 않는 곳에서, 시냇물은 다 말라 버리고, 물 한 방울 구할 수 없는 사슴이, 얼마나 갈급하게 물을 찾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성도는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심정으로,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사정은 쉽게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조롱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했다고 합니다. “이놈아, 네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살아 있다면 너를 그렇게 불행하게 만들겠느냐? 하나님이 살아 있다면 너를 그렇게 두겠느냐? 하나님이 있기는 어디 있어” 하면서 빈정거렸습니다.

그래서 이 성도는 그런 조롱을 들을 때 마다 마음이 상하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없이 울었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성도는 자기가 처한 불행보다도 자기의 신앙을 비웃고 빈정대는 사람들 때문에 더 마음이 아파 주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성도의 마음에도 한없는 낙망과 불안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을 찾아도 대답도 없고, 기도해도 응답도 없으니, 이제는 그 마음이 낙심이 되고 불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마음 한 구석에서 신앙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환난 날에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바라보아라!

그의 신앙을 통하여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 소리는 그의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지금까지 낙망과 불안에 빠져있던 그의 마음은 희망과 용기를 얻고, 상처와 눈물의 나날은 위로와 찬송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내게 돌리시고 나를 도우실 것이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을 찬송하리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성도는 비록 역경과 고난 중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역경과 고난 중에서도 그를 도우시는 분임을 확신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위대한 신앙입니까?

 

역경과 고난, 실망과 낙담 중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신앙입니다.

가난과 질병. 실패와 조롱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성숙한 신앙입니다.

욥의 신앙이 훌륭하다고 하는 것은 그가 자식을 잃고 재산을 잃어도, 그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했다는데 있습니다. 욥은 그 극한 시련과 고통 중에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이게 무슨 뜻이니까?  이 말은 자녀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데려가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재물을 주신분도 하나님이시오, 회수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건강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가져가신 분도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이름만이 찬송을 받으실 뿐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인간에게 있어 무서운 것 하나는 실망하고 낙망하는 것입니다. 어떤 철학자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만, 실망하고 낙망하는 것은 우리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환자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병이 아니라 낙망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중한 병일지라도 낙망하지 않고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그 병을 이길 확률이 높습니다. 군인들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것도 적군이 아니라, 사기와 전의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사업하는 자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도 부도와 실패가 아니라, 낙망하고 불안하고 좌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낙망하고 불안해하는 것이 무서운 것인 줄 알면서도, 우리 인간은 어려운 일에 직면하면 쉽게 낙망하고 불안해합니다. 내가 낙망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 중요한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무능한 자신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능력은 생각지 않고 자신의 수완만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성도가 낙망한 것도, 그가 자신의 비참한 형편만 생각하고,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4: 22절 이하에 보면, 베드로가 물속에 빠져버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밤에 물 위로 걸어가시는 것을 보고, 베드로는 예수님께 부탁하기를 , 나도 물 위를 걷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어오라고

하셨기 때문에, 베드로는 물위로 몇 발짝 걸어서 갔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조금 가다가 바람과 풍랑을 보고 무서워서 그만 바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왜 베드로가 물속에 빠졌겠습니까? 그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바람과 물결만 보고 겁에 질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시련과 고난 중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실패와 불행 중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 중요한 비결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는 성도가 낙망에 빠졌다가 다시 새로운 소망을 얻게 된 비결은 그가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비극과 고통 중에서도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아 왜 네가 낙심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는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도 한 때 낙망하여 개혁운동을 중단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절대 권력을 가진 교황과 그 추종세력들을 상대하여 교회를 개혁한다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고 힘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발견한 루터의 아내가 갑자기 상복을 입고 나타났다고 합니다. 누가 죽었기에 상복을 입었느냐고 묻는 루터의 질문에 , 그의 부인이 대답하기를 “하나님이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루터는 깜짝 놀라 부인을 책망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지 마시오. 어떻게 하나님이 돌아가실 수가 있소.” 그 때 루터의 아내는 참으로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요, 하나님은 돌아가실 수가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으셨다면, 그 하나님을 믿는 당신이 왜 그렇게 낙망하고 있소?” 루터는 그의 부인의 말에 큰 힘과 용기를 얻고 종교개혁 운동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루터가 낙망한 자리에서 일어나 그 힘든 개혁을 성공시킨 것은 그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우리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본문말씀에 보면,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고 한 다음에 즉시 이어서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땅위에 있는 만물들을 우리가 활용하여 살게 하심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오실 때 가지고 온 것이 무엇입니까? 햇빛이나 공기나 물이나 혹은 흙 한줌이라도 가지고 온 것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빈 손들고 적신으로 왔습니다. 여러분은 아무 밑천도 들이지 않고,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에서 공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21편에서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러분, 어디 그 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려고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하늘나라를 영원한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무서운 것이 무엇입니까? 뭐니뭐니 해도 우리에게 가장 무섭고 가장 비참한 것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비참하고 무서운 죽음에서도 우리를 도우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이 말씀 그대로우리가 세상을 떠날지라도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하여, 거기서 영원히 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말합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요계14:13)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빌 1:21)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죽음도 유익하게 도우십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순경과 번영에서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역경 중에서도 우리를 도우십니다. 요셉의 생애를 보세요. 그의 생애는 참으로 파란만장의 기구한 삶이었습니다. 그는 형들의 미움을 받아 구덩이에 들어가기도 했고, 외국에 팔려가서 종으로 살기도 했고, 모함을 받아 감옥에서 살기도 했습니다. 그런 후에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어 형제들을 만났는데,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 말은 단순히 두려워 떨고 있는 형제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말은 시련과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그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십시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갈급한 심정으로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십시다. 무능하고 제한된 자신의 힘과 수완만 생각하지 말고,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자신의 연약하고 병든 몸만 생각지 말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사40:31)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우리 모두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새 힘을 얻어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승리하는 삶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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