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자기부정의 삶

윤기석 (경기노회,수원교회,목사) 2010-08-09 (월) 16:52 13년전 9169  

(본문 : 마태복음 16 : 21-28)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말씀에는,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알리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 21절에 보면,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3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하시고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모든 죄악을 담당하시고, 인간을 대신하여,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의 예고는 제자들에게 청천벽력같이 충격적으로 들렸습니다. 그리하여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이런 끔찍한 고난이 예수님께 오지 않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 하는도다.” 그리고는 무리와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쫒을 것이니라.”

오늘 우리는 이 말씀에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먼저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우리도 먼저 우리자신을 부인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부인한다는 말의 뜻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인과 비슷한 말로는 부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정한다는 것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부인이나 부정이 같은 뜻을 가진 말로서, 그렇지 않다고, 사실이 아니라고, 인정치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본문에서 자기를 부인하라, 혹은 자기를 부정하라는 말은 상당히 포괄적인 의미를 가졌습니다. 즉 자기를 비우라, 자기를 죽이라, 자기를 무시하라, 자기 욕심을 버리라, 자기를 희생하라, 자기주장을 버리라, 자기 권리를 포기하라, 자기 것을 잃어라, 등등의 의미가 다 포함 된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얻는 것이 많습니다. 기쁨과 평화를 얻고,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고, 하늘나라를 얻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을 믿으면 잃는 것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자기를 잃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포기합니다. 자기주장을 잃고, 자기 욕심을 잃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분명히 좋은 것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잃지 않고는 그 좋은 것들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릇에 좋은 물건을 담기 위해서는 먼저 전에 담겨있던 것들을 쏟아내고 그릇을 비워야 합니다. 물이 가득 담겨 있는 그릇에 아무리 좋은 기름을 부어도 좋은 기름은 담겨지지 않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먼저 담겨 있던 것들을 쏟아내고 그릇을 비우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내 속에서 주인노릇 하던 나를 쫒아내고, 나 중심의 모든 생각과 욕망을 쏟아내고, 내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자기주관, 자기편견, 자기선입관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좁은 지식, 제한된 경험도 무시하는 것입니다. 내 힘과 내 능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다 꺽어버리는 것입니다. 내 악한 성질과 격정도 죽이고, 내 이익과 욕심만을 위하는 생의 자세를 배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첫 단계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비우고, 그 빈자리에 예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주인이 되어 내 고집과 내 욕심대로만 살았으나,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는 내가 주인 되었던 그 자리에 예수님을 내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뜻에 복종하고 사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증언과 같이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이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한 선비가 서울에 과거를 보러 갔다가 처음 보는 거울을 하나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거울을 농속에 감추어두고 혼자서만 자기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눈치를 챈 아내가 남편이 없는 사이에 그 거울을 꺼내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웬 젊은 여자가 거울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남편이 서울 갔다가 젊은 첩을 얻어다가 농속에 감추어 두었다고 말하면서, 그 거울을 시모님께 드렸습니다. 그 거울을 보신 시어머니 역시 깜짝 놀라면서 그 속에는 젊은 여인이 아니라 늙은 할머니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옆에 있던 시아버지는 여자들이 별 수다를 다 떤다고 하면서 거울을 빼앗아 보고는, 그도 역시 깜짝 놀라 무릎을 꿇고 절을 했습니다. 그는 거울 속에 있는 분이 돌아가신 자기 선친으로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물론 지어낸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이 이야기 속에서 하나의 교훈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무지와 좁은 지식과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냐 하는 교훈입니다. 같은 거울을 보면서도 거기 나타난 상을 보고, 한사람은 젊은 첩이라고, 다른 사람은 할머니라고, 또 한사람은 선친이라고 한 것은 그들의 무지와 좁은 지식과 편견과 선입관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는 있는 그대로의 예수님을 보지 않고, 자기 무지와 편견에 따라 자기 나름대로의 왜곡된 예수님을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데 있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는 자기의 무엇을 부정하고, 어떤 부분을 부인해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가 부정해야 할 것은 자기의 지식과 경험에 토대한 온갖 선입관과 자기주장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여러분이 성서를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 때로는 그 내용들이 여러분의 지식과 경험에 반대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말씀과 교훈 앞에서 여러분의 생각과 지식과 경험을 부정하고 백지로 돌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내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 내 지식과 경험으로는 수긍할 수가 없는데”하면, 그런 사람은 예수님을 제대로 믿을 수도 따를 수도 없습니다.

한번은 예수님의 제자 시몬 베드로가 밤새도록 바다에서 그물질을 했으나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명하시기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참으로 자기를 부정하는 믿음의 행동을 했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순종했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베드로의 믿음이 훌륭하다고 하는 것은 그가 예수님의 명령 앞에서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토대한 모든 선입관과 자기주장을 완전히 부정하고 백지로 돌렸다는데 있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그의 본직이 어부였기 때문에, 바다에 대한 지식, 고기를 잡은 경험은 예수님보다 월등하게 뛰어났습니다. 더욱이 지난밤에는 깊은 곳 낮은 곳 없이 다니며 밤새도록 수고했으나 허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상식을 예수님 앞에서 완전히 부정했습니다. 여기는 이제 고기가 없을 것이라는 선입관과 편견을 완전히 버렸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과 교훈 앞에서 여러분의 단편적인 지식과 상식과 경험을 부정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평가할 수 있습니까? 인간의 잣대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리고, 뼘으로 하늘을 재고, 티끌을 되에 담아보려는 것같이 어리석은 짓입니다. (사40:12)자기를 부정하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순진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가 부정해야 할 것은 자신의 지혜와 힘과 능력을 믿는 자기신뢰와 교만입니다.

내 힘과 내 능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을 부정해야 합니다. 자기노력으로 의롭게 되고, 자기수양으로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마음을 부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 지식과 내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8장에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크게 염려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풍족하게 살 때에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입니다. 즉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염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조심할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이 재물을 얻었다”내 재주와 실력이 좋아서 성공했다, 내 노력과 수완으로 사업을 일으켰다, 이런 교만을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교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을 별로 필요로 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내 능과 내 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람이 대체 누구입니까? 병 앞에 쓰러지지 않는 사람이 누구며, 죽음을 이길 장사가 어디 있습니까? 마귀의 유혹에, 물욕과 색욕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자 누구입니까? 징기스칸 같은 정복자는 어디 갔으며, 불가능이 없다던 나폴레옹은 어디로 갔습니까? 사람은 그 생명이 유한하고 능력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고,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장담하고 맹세했습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 그러나 예수님이 붙잡혀 재판을 받게 되자, 베드로는 한 여종 앞에서도 세 번씩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이렇게 약하고 변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예수님을 믿고 그를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믿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신뢰와 자기 의를 버려야 합니다. 그 대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그 때 우리는 사도바울같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 옛날 모세는 한 때 자신의 힘과 수완으로 자신의 동족을 구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능을 고백하고, 자신을 잃어버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능력을 주셔서 출애굽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자신의 힘과 능력을 부인하고, 자기신뢰와 자기 의를 부정하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부인해야 할 것은 자신의 잘못된 인간성과 세상적인 욕망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그릇된 성질을 죽이고 육신의 욕망을 죽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갈라디아서 5:24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되, 먼저 좋지 못한 성질을 죽여야 합니다. 빨리 노하고 화내는 성질을 죽이고, 쉽게 토라지고 시비하는 성질도 죽여야 합니다. 간사하고 이간질 하는 성질도 죽이고, 변덕스럽고 요사스런 성질도 죽여야 합니다. 남을 중상하고 모략하는 성질도 죽이고, 권모술수로 남을 해치는 성질도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르는 자는 세상적인 온갖 욕망도 죽여야 합니다. 물욕도 죽이고 정욕도 죽여야 합니다. 명예욕과 권력욕도 죽이고 자기를 자랑하고 과시하는 욕심도 죽여야 합니다.

물론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서 욕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욕심을 앞세우면, 예수님을 부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당하게 벌어서 부자 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부자가 되려는 욕심 때문에 양심을 속이고 세금을 속이고 임금을 착취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수난절에 들어서서 자기를 반성하고 회개하며, 자기부정과 참회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입술로만 주님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철저한 자기부정의 삶을 실천함으로서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자기부정 없이는 주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부정을 하는 자라야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고, 주님의 남은 고난에 동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부정하고, 우리의 선입주견과 편견과 자기주장을 부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힘과 능력을 부정하고, 자기 신뢰와 자기 의를 부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잘못된 인간성을 부정하고 세상적인 욕망을 부정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비고 빈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께서 임재하시고, 이제는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사시며, 예수님의 선하신 뜻에 우리 모두가 순종하여,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츲ҺڻȰ ⵵ 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ȸͽ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