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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

윤기석 (경기노회,수원교회,목사) 2010-08-09 (월) 16:59 13년전 7057  

(본문 : 호세아 11: 1 - 7 )

 

오늘 우리는 예언자 호세아의 결혼생활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결혼을 할 때 혹시 속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고 생각한 뒤에 가부를 결정합니다. 배우자가 될 자의 건강과 성격과 용모와 학벌과 경제력 같은 것을 보고 들은 다음에 결혼승낙을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a b c d e f 순으로 결혼조건을 생각한다고 합니다. a=age(나이), b=beauty(미모), c=character(성격), d=degree(학벌), e=economy(경제력), f=family(가정), 이런 것들은 결혼 조건으로 중요시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아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지금 약80세 된 어느 권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자기는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시집을 오면서 남편이 자동차 운전사라고 하기에 왔더니, 와서 보니 지겟다리 운전을 하고 있더랍니다.

결혼은 한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는 대사이기 때문에, 결혼조건을 따져보는 것은 당연합니다. 서양속담에 “결혼 전에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보고, 결혼 후에는 한쪽 눈은 감으라”는 말이 있듯이,결혼은 잘 생각해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결혼조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또 가장 어려운 것은 배우자의 성격과 품행입니다. 요즘사람들은 성격이나 품행에는 별로 관심하지 않고 용모나 경제력이나 학벌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성격과 품행입니다.

남녀 구별 없이 다 상대방의 정절을 높이 평가합니다만, 특히 남자들이 바라는 것은 아내 된 자의 정숙한 모습과 정절입니다. 자기 아내가 혹시 과거에 부정한 행위를 했다는 것이 후에 들어난다면 좀처럼 눈감아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기는 비록 과거에 지저분하게 살았다고 할지라도 자기 아내가 다른 사람과 교제한 것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본문을 기록한 호세아의 결혼은 전혀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호세아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 약 750년경에 활동한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예언자라는 신분에 걸맞지 않는 결혼을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고멜이라고 하는 음란한 여인과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1:2 에 보면 , 그의 아내가 될 고멜은 결혼 전에 벌써 음란한 여인으로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음란한 여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한 때 유행가 가사에 “과거를 묻지 마세요”  라는 대목이 있었듯이, 호세아는 고멜의 과거를 묻지 않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 후 그들은 서로 사랑하여 삼남매의 자녀도 낳았습니다. 호세아는 가정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아내의 과거를 물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아니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배은망덕이 어디 있습니까? 남편의 사랑을 받은 고멜은 일편단심 남편만을 사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남편과 삼남매의 자녀까지 버리고 정부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다른 남자를 따라 집을 나갔던 것입니다.

그 결과 호세아의 실망과 괴로움은 형언 할 수 없이 컸습니다. 그러나 호세아의 마음은 부정한 아내지만 집을 나간 아내를 잊을 수 없었고, 그녀에 대한 사랑은 변치 아니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가서 음부 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3:1)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호세아는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을 주고 고멜을 사서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여러분 남편과 자식들을 버려두고 다른 남자를 따라 집을 나간 여인을 다시 돈과 곡식을 주고 사온 호세아의 사랑, 이 얼마나 신실하고 변함이 없는 사랑입니까? 우리들 같으면 불결하고 더럽다고 집안에 얼씬도 못하게 할 것이요, 괘씸하고 미워서 때려죽이려고 할 것이요, 남부끄럽고 창피하다고 문을 걸어 잠글 것입니다. 그러나 고멜에 대한 호세아의 신실하고 변함없는 사랑은 복수심을 극복하게 했고, 모든 모욕과 수치심도 극복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이 호세아의 사랑을 보면서, 우리의 부부사랑도 이래야 되리라고 봅니다. 일단 결혼한 후에는 과거를 묻지 않는 사랑, 배우자의 약점과 단점까지라도 이해하고 포용하는 사랑, 모든 허물과 과오를 용서하고 덮어주는 사랑을 가져야 우리는 좋은 가정을 만들 것입니다.

호세아는 비록 가정생활에 있어서 쓰라린 경험을 했습니다만, 그러나 그의 가정생활을 통하여 보여준 그의 관용과 사랑의 불변은 참으로 훌륭하고 찬사를 받아 마땅합니다.

특히 호세아는 그의 비극적 결혼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을 반역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관계를 깨달았습니다. 고멜이 남편을 버리고 음녀가 된 것 같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신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실로 이스라엘 백성은 고멜과 같이 음란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잊지 못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호세아를 사랑의 예언자라고 합니다만, 그가 사랑의 예언자가 된 것은 고멜을 그렇게도 사랑했기 때문이요, 또 그 사랑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외쳤기 때문입니다. 호세아는 자기 자신이 아내를 사랑한 것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호세아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외치고,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호소했습니다.

 

여러분 ! 오늘 우리가 본문 말씀을 통하여 분명히 들어야 할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은 신실 하고 변함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신실하다는 말은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이 꼭 같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간의 사랑은 조석으로 변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불변합니다. 우리 인간은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간 고멜과 같이 때때로 하나님을 버리고 배신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불러주시고 그리스도의 피를 값으로 지불하시고 우리를 사셔서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말씀은 하나님의 그 신실하신 사랑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셨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은 자격 없는 우리를 불러주신 데서 나타났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사랑했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아직 완전한 민족이나 국가로 이루어지기 전부터 사랑하셨다는 뜻입니다. 신명기 9:7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의 수효가 많아서 택하신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시고 불러주신 것은 여러분이 남보다 훌륭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어린아이와 같이 미숙하고 부족한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선택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은 우리를 교육하심에서 나타났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여기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걸음을 가르쳤다는 것은 그들을 교육하고 훈련시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셔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가르치셨고, 또 성전을 주셔서 예배하는 법도 가르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사랑을 베푸십니다. 우리에게도 성경을 주시고, 교회를 주셔서 사람이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은 용서와 친절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본문 4절에 보면,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다고 했습니다. 여기 사람의 줄은 잘못을 용서하고 친절하게 타이르는, 사람만이 갖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몇 번이고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친절하게 타이르시는 사랑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는 줄로 이끌어 주십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고 잘못된 길을 갈지라도 항상 우리를 용서하시고 말씀으로 타이르시고 붙들어주십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은 우리의 멍에를 벗기시고 먹을 것을 주심에서 나타나셨습니다.

본문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멍에를 벗기시고 먹을 것을 두셨다고 했습니다. 이는 애굽의 종노릇에서 해방시키시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와 생수를 주셨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일본의 압제와 군사 독재의 멍에를 벗겨주시고, 풍족한 양식을 주셨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사랑은 줄로 측량할 수 없고 입으로 다 형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자격 없는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를 마귀의 사슬에서 풀어 주셨습니다.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죄 값으로 사주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이 사랑에 어떻게 보답합니까? 얼마나 감사하고 헌신하고 충성하십니까? 오히려 우리는 고멜과 같이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기고 다른 신들을 섬겼던 것처럼, 권력 신과 돈 신과 정욕의 신을 따르지는 않습니까?

실로 우리는 호세아의 아내 고멜보다 나은 점도 없고,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보다 나은 점도 없습니다. 우리도 다 간음한 고멜이요, 간음한 이스라엘입니다.

 

여러분, 다시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시고 변함이 없으신 사랑을 기억하십시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우리의 참 남편 되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십시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은 지금도 우리를 부르시고 기다리십니다. 호세아가 정부에게 몸을 맡긴 그의 아내 고멜을 돈과 보리를 주고 산 것 같이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의 다른 한 면도 생각하십시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타이르시고 용서하시는 일면도 있지만, 또 다른 한 면으로는 우리를 때리시고 징계하시는 일면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절하고 부드럽게 타이르시고 용서하시는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징계의 사랑을 내리셨습니다. 본문 5절 이하에 기록된 대로, 북방에 있는 앗수르를 들어 간음하는 이스라엘, 배신하는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습니다. 앗수르의 칼이 이스라엘 백성을 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이 또한 사랑의 다른 일면입니다. 징계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매도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사랑의 일면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2:6에는 “주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신다”고 했습니다. 자녀를 징계하고 벌주는 부모는 속으로 아픈 마음과 눈물을 흘리는 심정으로 하는 것입니다. 결코 자녀를 미워하거나 버리기 위함은 아닙니다. 정신 차리고 좋은 사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징계도 우리가 정신 차리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의 사랑은 신실하고 변함이 없습니다. 그 사랑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와 길이를 다 측량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음녀와 같은 우리도 사랑하십니다. 몇 번이고 배신하고 멀리 떠나는 우리도 다시 불러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사시고 오래도록 참아주십니다. 때로는 채찍으로 징계하십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신실하시고 변함없는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십시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우리의 이웃에게 전하십시다. 호세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호소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십시다. 더 나아가 호세아가 자기 아내의 허물을 덮어주고 신실한 사랑을 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여러분의 배우자를 사랑하고 배우자의 약점과 단점까지 이해하고 포용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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