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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셉션(Inception) 단상(1)

신솔문 (전북동노회,임실전원교회,목사) 2010-08-10 (화) 18:17 13년전 5941  
 

1.

<인셉션>(Inception)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축구하러 가는 차 속에서 어떤 목사님이 그러시더군요. 플라톤의 이원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영화라고요. 확 구미가 당겼습니다. 아내 쪽에서도 ‘입소문’이 들려왔고요. 휴가 받으면 꼭 보려고 했는데 마침 초대해주신 분이 계셔 이 영화를 이르게 보았습니다.


가급적 백지 상태에서 감상해보려고 더 이상의 정보 없이 영화관에 갔습니다.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자마자 떠오른 것은 엉뚱하게도 명제논리학의 조건증명법이었습니다.


손 안에 있는 전제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명제가 참인 가정의 ‘세계’로 들어간 후(1차 ‘꿈’) 여기에서 또 가정을 합니다(2차 ‘꿈’). 여기에서 또 가정을 하면 ‘3차 꿈의 영역’으로 들어가지요. 보통 이런 모양새를 가진 증명을 조건증명법이라고 합니다. 집에 와서 책을 보니 조건증명법을 “현실-꿈-꿈-꿈”으로 비유하여 연필로 메모해놓았더군요(『논리와 비판적 사고-쇄신판』).



 

왼쪽 ‘ㄷ’ 선(線)들의 모양새를 보고 그런 비유를 했었는데요, 조건증명법에서 나타나는 선들이 꼭 저렇게 양파 껍질 같은 모양새를 띠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p"에서 "q⊃p"를 도출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과 수출입규칙[Exp.] 그리고 연언문 교환법칙을 고려하면 제 추정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전문지식을 가진 분이 이 글을 보실 수도 있다는 것을 상정하다보니 이런 현학적인 언급까지 하게 되는군요.)


“현실-꿈”은 물론 비유일 뿐입니다. 영화에서는 1차 꿈과 2차 꿈, 3차 꿈 사이에 위계질서가 있지요. 1차 꿈속에서 주인공은 자면서 또 꿈을 꾸는데 이 2차 꿈은 1차 꿈의 환경에 영향을 받고 이 관계는 일방적입니다. 반면에 조건증명에서는 각각의 가정(‘꿈’)이 서로 독립적입니다. 몇 차(次) 가정이라는 서수 개념보다는 “가정 1”, “가정 2” 같은 기수 개념이 적합합니다.


어쨌거나 영화 인셉션의 착상(“현실-꿈-꿈-꿈”)을 저도 했었다는 것이 신통합니다. 사실 그리 독창적인 생각은 아닙니다. 잘 알려진 장자의 “나비의 꿈”은 “현실(나)-꿈(나비)”의 관계인데요, 이 관계를 조금 더 확장시키면 “현실-꿈-꿈-꿈”이라는 착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인셉션 영화감독의 진정한 독창성은 이것을 “정신분석학”의 <꿈의 분석>과 연결시켰다는 점이지요. 정신분석학에서는 꿈으로 무의식 차원의 심성을 드러내는데요, 그러나 워낙 깊은 무의식 속에 있어서 1차 꿈으로는 노출이 안 되는 심성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은 1차 꿈속에서 다시 꿈을 꾸게 해서(2차 꿈) 찾아내면 된다는 아이디어가 참으로 기발한 것 같습니다. 비록 공상이지만요.


2차 꿈속에서도 안 드러나면 3차 꿈을 통해 드러내는데요, 영화에서 이러한 근본적인 심성을 찾아내는 것을 “추출”이라고 하고 이러한 심성을 깊은 무의식 속에 “심는 것”을 인셉션(시초, inception)이라고 합니다. 영화는 어떤 대기업 상속자의 꿈으로 침투하여 어떤 생각을 인셉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3.

공교롭게도 이번 주일아침예배 설교가 심리학적 내용(예수님의 긍정심리학/ 누가복음 19:1~10)이었습니다. 긍정심리학은 정신분석학을 거부하지는 않으나, 무의식을 중시하는 심리학이 소홀히 여기는 의식을 조정하여 각 개인의 심성의 변화를 꾀하는 심리학(심리치료술)입니다. 무의식에 어떤 생각을 심어 심성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 영화의 인셉션이라면, 의식에 어떤 생각을 심어 심성의 변화를 꾀하는 긍정심리학의 방식도 일종의 ‘인셉션’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말씀을 통해 교인들을 성화시키는 설교야말로 진정한 인셉션 아닐까 싶습니다. 주 안에서 주고받는 정상적인 설교라면 그 안에는, 영화의 인셉션처럼 공상적이지 않고 긍정심리학처럼 제한적이지 않은 파워가 있기 때문이지요.


“인셉션을 참 어렵게 하네!” - 영화가 끝나고 중얼거린 제 독백에는 이런 작은 깨달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무의식적 인셉션>에 대한 생각이 맵 돕니다. 교인의 심령을 복음의 옥토로 가꾸는 것이 <의식적 인셉션>(설교)만으로는 2% 이상 부족할 것 같은데요... 어떤 것들이 목회 활동에서 무의식적 인셉션 비슷할까요?


기도... 모범적인 삶... 동고동락...?



4.

참고로, 주보글을 붙입니다.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라는 공익광고 속에서 J.오스틴의 『긍정의 힘』의 영향력을 알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의 원제가 “지금 최선을 다하라”(Your Best Life Now)는 사실입니다. ‘긍정의 힘’ 제목은 우리나라 출판사에서 붙인 것입니다. 이 작명은 로버트 슐러나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님들의 “적극적 사고” 출판시장에 쉽게 편승하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 같습니다(‘적극적’과 ‘긍정적’ 표현의 영단어는 같은 'positive'입니다).


일종의 지혜처럼 여겨졌던 “긍정적 사고”의 유익성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것이 1998년에 태동한 <긍정심리학>입니다. 심리(과)학인만큼 차분한 톤으로 이러한 삶의 태도의 중요성을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어떤 심리학자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마틴 셀리그만은 기존 심리학과 보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부정적 사고”를 전적으로 무시하지 않습니다. 나름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마음의 바탕이 긍정적이고, 실천의 지향점이 미덕일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행복 자동조절기> 같은 것이 사람마다 있다고 합니다. 보일러 온도조절기처럼, 감정이 극단적으로 가지 않도록 희열이나 좌절을 누그러뜨리는 기제가 있다는 것이죠. 감사의 마음이 얼마 못가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조절기’는 사람마다 선천적으로 조정이 되어있고 변화시키기 어렵다고 합니다. 만일 이것이 행복도(幸福度)를 결정한다면 행복은 운명이겠죠. 그러나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요소가 있고 이것은 행복도에 강력한 영향을 주는데, 그것이 긍정적인 태도와 미덕 실천이라고 합니다. 우리 예배당 모터가 자동으로 작동하지만 수동으로 가동시킬 때가 있듯이 작심하고 긍정적 마음과 미덕 실천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시킨 기존 심리학(심리치료)에 반해, 긍정적인 측면의 계발을 통해 부정적인 측면까지 개선한다는 의미로 ‘긍정 심리학’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프로이트식 심리학과는 달리 우리 마음을 환하게 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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