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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신솔문 (전북동노회,임실전원교회,목사) 2010-10-06 (수) 09:07 13년전 6700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그리스도를 어머니 마리아가 안고 있는, “피에타”(비탄)는 미켈란젤로가 24살 때 조각한 것입니다. 걸작이라서 모두들 풋내기 청년의 작품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는군요. 미켈란젤로는 이런 의심을 예상했는지 이 조각상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습니다.


그러나 이내 후회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걸작, 창조세계에 이름을 남기지 않으셨는데 내 작품이라고 해서 이름을 표시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송구함이었죠. 이것이 이후 그의 작품에 이름이 표기되어 있지 않은 이유라고 합니다.


만물에 하나님의 ‘서명’ 없는 것 맞습니다. 그런 것이 있다면 신앙생활하기가 구구단처럼 수월하겠죠. 그러나 성경은 만물을 보고서 하나님을 느낄 수 있다고는 합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 깨닫게 되어있습니다”(롬 1:20).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요?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또 사진이 떠오르네요. TV를 보면 리포터들이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서 ‘힘들다’는 말을 연신 해댑니다. 그때마다 저는 눈으로는 리포터를 보지만 마음으로는 무거운 카메라를 어깨에 올리고 그 리포터를 따라 올라가면서 촬영하는 사람을 봅니다. 패션 배낭을 멘 리포터가 힘들면, 카메라맨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화면에는 전혀 나오지 않지만 그 화면에서 카메라맨은 특이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가 보는 만물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손수 만드신 것을 보시며 “좋았다”하시는(창1:31) 하나님 때문에 우리가 만물을 향유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18세기 버클리(Berkeley) 주교의 “우주 전체에 가득 찬 영원한 정신이 있다. 이 정신은 만물을 알고 이해하며, 또 그 자신이 제정한 규칙에 따라 만물을 우리 시야에 드러내어 보여주고 있다”는 언명의 착상 과정이 이런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이 착상을 관광지 ‘증명사진’에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걸작이나 선경을 배경으로 자신의 모습이 나와야만 방문 증명사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자신이 직접 찍으면 사진에 없어도 그 사진에는 그 사람이 특이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죠.


우리 삶 속에 주님께서는 이런 특이한 방식으로 존재하십니다. 단 ‘사진작가’가 보다는 ‘연출가’에 가깝죠, 때로는 무대에 뛰어드는… 단적으로 예수그리스도가 인간 무대에서 주연으로 활동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자주 안 보인다고 너무 투덜대지 맙시다.

그래도 함께 하십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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