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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계절과 오는 계절 사이에서

김민수 (서울북노회,한남,목사) 2010-10-29 (금) 10:55 13년전 2628  

가을이 실종되고 겨울이 오는가 싶더니만 아직은 아니라고 가을 빛이 완연한 아침을 맞이합니다.
가는 계절 겨울과 가는 계절 가을이 맞물린 시간, 가을 빛에 취해있는 느티나무 이파리에 눈길을 모아봅니다.

나무,
그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옷을 벗습니다. 월동준비를 하며 하나 둘 쟁여놓는 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서로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계절의 변화 속에서 나무의 옷벗음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은 끊임없이 우리의 삶 비우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무는 겨울이 오기전에 나뭇잎을 놓아버리고, 제 몸에 있는 물기를 최소한만 남기도 내어놓습니다. 그래야,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얼어서 죽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물, 타는 목마름으로 겨울을 나지 않으면 그들은 봄에 새순을 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나무의 살아가는 방식인 것입니다.

나무에는 옹이가 있습니다.
옹이는 나무의 몸 중에서 가장 단단한 곳이기도 하지만, 나무의 향이 가장 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옹이는 나무가 상처를 받았을 때, 그 상처를 치유하면서 생기는 것입니다. 상처받은 나무가 그 곳에 가장 깊은 향기를 담았다는 것과 제 몸 중에서 가장 단단한 곳이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서 당하는 고난 혹은 아픔이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임을, 그래서 반드시 그 고난과 아픔을 이길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봅니다.

제 삶도 많이 아팠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긋지긋하고, 왜 나에게만 이런 아픔을 주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삶의 날수가 길어지면서부터는, 그리고 자잘한 고난들을 극복한 뒤 성장해가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는 달라졌습니다. 일부러 불러들이지는 않지만, 내가 원하지 않아도 고난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 '까짓거 부딛쳐 보지!'하는 것이지요.

굴욕적이고 힘든 상황들이 일년이 넘게 이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니 그것도 은혜입니다. 지나고 나니까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 당시에는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못했으니, 고난당한 이들을 위로해 준다고 너무 쉽게 말하지는 말아야 겠습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불후의 명작 <월든> 숲의 경제학 부분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다른 모든 저자들에게도 남의 생활에 대하여 주워들은 이야기만 하지 말고 자기 인생에 대한 소박하고 성실한 이야기를 해줄 것을 부탁하고 싶다.'

자신의 이야기를 '나'라는 일인칭으로 서술하겠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쓰겠다며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자신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임을 암시하는 구절입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우리의 신앙,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들에게 꼭 필요한 구절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의 신앙에 대하여 주워들은 말씀만 전하지 말고 자신 신앙에 대한 혹은 신앙적인 삶에 대한 소박하고 성실한 설교를 해야 한다.'

요즘 한국교회에서 선포되는 설교의 맹점은 설교자의 신앙고백이 없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믿습니다! 혹은 믿습니까?'가 신앙고백이 아닙니다. 일상에서 부닥치는 문제들이나 상황 속에서 본인이 어떤 신앙고백읋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 전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이상한 설교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삶의 반경이 온 우주적일 수는 없는 일이지만, 교인들이 인식을 하든 하지 못하든 교인들의 삶 속에 파고드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침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만!'이라고 하는 것은 정직한 설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한 예만 들면, '4대강 사업'의 경우 정치적인 입장에서가 아니라 성서에 근거해서 기독교인이 어떤 입장에 서는 것이 신앙적인 결단인지를 분명하게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포한 내용이 진실이라는 증거들을 교인들에게 제시하고, 그와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가한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예와 아니오를 해야할 때에는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치 교회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정치적인 이슈를 끌고 들어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교인들은 오해하고, 차라리 설교자들은 침묵하는 것이지요. 결국, 현실과 동떨어진 이여기, 남의 신앙에 대해서 주워들은 말씀만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삶을 다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독서나 묵상이나 사색을 통해서 대리경험을 하고, 그 대리경험한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재해석 해내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 아주 사소한 것들과 작은 것들 속에 하나님의 계시가 들어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눈을 뜨는 것이지요. 눈을 뜨면 보이고, 보이면 들리고, 보고 들으면 말하게 되는 것, 그런 설교가 선포될 때 비로소 힘있는 설교가 선포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이 영성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가는 계절과 오는 계절이 맞물려있는 시간에, 겨울이 오기 전에 지금까지 익숙하게 여겨왔던 것들에 의문부호를 던져보는 것도 의미있는 시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맞물린 시간에 겨울을 준비하는 자연의 흐름을 보면서 말입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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