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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정의

김성 (서울동노회,예수원교회,목사) 2010-10-30 (토) 14:49 13년전 2796  

 


                                                     고통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정의  




지난 주간에 신학교동기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철부지들이 신학교에서 만난 지 벌써 이십년도 넘는 세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동기들 대부분이 어느덧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습니다. 동기라고는 하지만 모두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서 교회를 맡고 있다 보니 일 년에 한 번 동기회 모임 할 때라야 간신히 얼굴 한 번 보는 것이 고작입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모두가 제 나름의 아픔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상처(喪妻)의 아픔을 가진 사람, 첫 담임목회지에서 쓰라린 아픔을 겪고 교회개척을 결심한 사람, 개척교회를 하느라 생계의 어려움에 시달리는 사람, 겉으론 번듯해 보이는 교회를 맡아있지만 속으론 골병을 앓고 있는 사람,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아픔을 겪고 고통을 당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아픔과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기도해주어야 하는 목사의 직(職)을 가진 사람들도 예외 없이 아픔을 호소하며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겪습니다. 고통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신앙인이라고 해서 고통이 비켜가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신앙 때문에 그가 당하는 고통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기도 합니다. 누구도 고통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고통 앞에 체념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고통을 내게 의미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고통을 가치 있는 것으로 전환한다는 뜻입니다. 불어오는 바람은 누구도 막을 길이 없지만 만약 풍력발전기를 세운다면 불어오는 바람을 전력(電力)으로 전환시킬 수는 있습니다. 고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고통을 가치 있는 것으로 전환시켜서 삶의 의미 있는 동력(動力)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고통을 새롭게 해석해야 합니다. 해석은 의미를 바꿉니다. 의미가 달라지면 실체를 대하는 마음과 자세가 달라집니다.
동기회장으로서 인사말을 하라기에 저는 고통에 대해 제가 최근에 알게 된 가장 아름다운 정의를 소개했습니다. 예수회 신부 폴 드 재거(Paul de Jaegher)는 <사랑의 미덕>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통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우리 영혼에 내리시는 입맞춤입니다. 평범한 영혼은 보통 고통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벌, 하나님이 벌을 내리셨다거나 혹은 하나님이 화가 나셨다는 증거밖에 보지 못합니다. 이에 비해 인자한 영혼은 고통에서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를 발견합니다. … 저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예수님이 제 영혼에 내리신 입맞춤은 제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수많은 작은 고통입니다.”

“고통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입맞춤입니다” 고통에 대해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정의가 또 있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과 입을 맞추기 위해서는 그 분과 얼굴을 마주해야 합니다. 얼굴과 얼굴이 맞닿는 순간 예수님이 쓰신 가시관에 우리의 얼굴이 찔릴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 예수님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전해져 옵니다. 그러므로 아픔과 고통은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신 예수께 우리가 그만큼 가까이 다가갔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고통당한다는 것은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신 예수께서 입을 맞추실 정도로 우리를 향해 몸을 깊숙이 숙이셨음을 의미합니다. 고통의 때는 예수께 가장 가까이 다가서 있을 때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때는 출애굽후 광야를 유랑하던 때였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나머지 차라리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때를 그리워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가장 고통스러웠던 광야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만났고 비로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믿음의 인물들 역시 모두 고통의 때에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만났습니다. 다윗이 쓴 시편 중 많은 시가 “다윗이 유다광야에 있을 때”라고 제목이 붙어있습니다. ‘물이 없어 메마르고 황폐한 광야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갈망하고 또 앙모했습니다.(시63:1)

자녀가 아프고 고통당할 때 부모가 자녀의 머리맡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듯이 우리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고통을 하나님의 형벌이 아니라 십자가에게서 고통당하신 예수께 더 가까이 다가선 증거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가까이 만날 소중한 기회로 이해한다면 고통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영혼의 힘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2010.10.31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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