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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김주한 (광주노회,한신대학교,목사) 2011-03-11 (금) 15:47 13년전 4899  
 
성경말씀: 출애굽기 4:1~4절                    
설교제목: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설 교 자: 김 주한 목사

   오늘은 삼일절 기념주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92년 전 우리민족이 일제식민지로 전락하여 고통 받고 있을 때에 전 국민이 만세시위를 통해 민족의 독립을 부르짖었습니다. 삼일 독립만세 사건입니다. 교회가 왜 삼일절을 기념하는가? 의아해 할지 모르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유월절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우리민족에게 삼일절 독립운동은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사실 기록을 보면 이 운동의 중심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일어난 삼일 운동을 보면 각 지방마다 교회가 거점이 되어 큰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렇게 민족의 아픔에 스스로 동참하여 고난의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을 오늘날 우리한국교회와 교인들이 이어받아 계승하는 일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지요.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제가 다닌 교회당 앞에는 늘 태극기가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나라사랑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모세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묵상해 볼 텐데 오늘 성경 본문도 이스라엘 독립운동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는 엄청난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이집트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라는 명령을 받았던 거지요. 모세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말도 어눌해서 사람들을 통솔 할 수 있는 재주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표적을 보여주시면서 그를 격려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모세가 대답하였습니다. “지팡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지팡이가 뱀이 되게 했습니다. 모세가 무서워 피하자 ‘꼬리를 잡으라’는 하나님의 말씀 따라 꼬리를 잡으니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계속 주저하고 변명하는 모세에게 자신의 소명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였습니다.
   오늘 이 ‘지팡이’에 집중해서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팡이는 원래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손’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라는 표현에 유의해서 출애굽기를 읽어 내려가면 많은 사건과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 해방 사건에서 하나님은 이 지팡이를 이용하여 수많은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모세가 이 지팡이로 나일 강을 탁 치자 강물이 피로 변했습니다(7:17). 또 이 지팡이로 강을 치니 개구리들이 온 이집트를 덮었지요. 이 지팡이로 땅의 먼지를 치니 이 먼지가 이로 변해 사람과 짐승들에게 이가 생겼습니다. 또 이 지팡이가 홍해를 가리키니 홍해바다가 갈라졌지요, 반석을 치니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습니다. 17: 9절 아말렉 군대와 싸울 때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산꼭대기 서 있을 때 이스라엘 군대가 승리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모세의 지팡이는 모세가 사막이나 산악지역을 다닐 때 걸음걸이를 도와주는데 사용하였던 단순한 일상적인 지팡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하실 때 이렇게 기적의 지팡이로 변했다는 겁니다.
   내 인생에서 하나님의 지팡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선교현장으로 파송하실 때에 그냥 빈손으로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런 대책 없이 우리를 이 세상에 파송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손에는 약간의 지푸라기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지푸라기로 모세를 누일 갈대상자를 엮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손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지금 하나님을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그의 손에 소구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 소구를 치면서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그녀의 손에 어린 아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그 아이를 하나님께 드렸을 때에 하나님은 위대한 선지자로 그녀의 아들을 키우셨습니다. 룻기에 나오는 룻은 그녀의 손에 한줌의 곡식을 갖고 있었지요. 하나님은 그것을 사용하여 그녀의 가족들의 생명을 건지시는데 사용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룻은 예수의 족보에 포함되는 은총도 누렸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손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한 어린아이가 작은 도시락에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를 가지고 있었지요. 그걸 주님께 드리자 주님은 그걸 사용하여 오천 명을 먹이는 놀라운 사건을 일으켰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을 진정으로 주님께 드려본 적이 있습니까? 사렙다 과부의 쌀독은 자신과 자신의 아들이 겨우 한 끼 정도 먹을 분량 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그녀가 그걸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나님은 그걸 사용하여 그녀의 가족들을 먹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기근으로 배고픔으로 허덕이는 예언자 엘리야를 먹여 살리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손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계십니까? 충북 음성군 맹동면에 가면 ‘꽃동네’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요즘은 종합사회복지시설로 발전했는데, 처음에는 주로 부랑인들이 함께 모여 살았습니다. 이 마을 어귀에 가면 한 거지 할아버지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한 손에는 깡통을 어깨위에는 망태기를 메고 있는 이 거지 할아버지의 이름은 최귀동 할아버지입니다. 이 분은 젊은 시절 일제 징용으로 끌려가 몇 번의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마침내 정신질환에 걸려 고향으로 쫓겨났습니다. 고향에 돌아왔지만 아내는 도망해버리고 최귀동 할아버지는 그 때부터 40여 년을 그릇 씻는 소리가 나는 집을 찾아다니며 ‘남은 밥 있으면 달라’고 구걸을 했습니다. 자신은 고혈압에 동상에 걸려 거동도 불편했지만 그렇게 구걸하여 얻어 온 밥으로 움막에 살고 있는 다른 동료 걸인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해질 녘 무렵 성당 앞으로 지나가는 최귀동 걸인의 모습을 보고 강한 느낌을 받은 한 젊은 신부가 있었습니다. 이 신부는 최귀동 할아버지가 구걸하여 얻어 온 밥으로 걸인들을 먹여 살리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날 밤 이 신부님은 주님으로부터 한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꽃동네에 가면 이 문구가 돌비석에 새겨져 있습니다. 이 신부님은 손에 쥐고 있는 1천 3백원으로 시멘트 한 포를 사서 1976년 11월 15일 15명의 거지들이 거처할 수 있는 방을 마련하였습니다. 오늘의 꽃동네는 이렇게 시작된 겁니다. 최귀동 거지 할아버지의 손에 든 깡통 하나, 그리고 오웅진 신부의 손에 쥐어진 1천 3백원을 통해 하나님은 이렇게 웅장한 일을 일구어 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 손에 지금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우리는 우리 손에 있는 것을 지금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찮게 여기고 보잘것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하나님은 그걸 통해 웅대한 비전을 이루어 내신다는 사실! 평범한 철사 한 조각은 5천 원 정도 값이 나갑니다. 그러나 이 철사 한 조각이 스위스제 고급 시계 바늘로 사용되면 5백만 정도의 값어치가 나간답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 용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손에 쥐어준 막대기들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모세의 지팡이와 같은 것을 쥐어준 일이 없는데요? 그렇게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모세 지팡이처럼 나에게도 뭔가 눈 앞에서 신기하고 기적과 같은 일을 보여주시면 믿겠다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실 때 하신 말씀 ‘표적을 구하는 세대’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내 손에 있는 지팡이는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는 시간이라는 지팡이가 우리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시간은 기회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루 24시간을 지금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하루 24시간을 초로 계산 해 보니까 86,400초입니다. 24시간 그러면 많은 시간이 아닌 것 같지만 86,400초 그러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지요. 여러분, 매일 아침마다 내가 가진 은행통장에 86,400원씩 자동으로 입금이 들어온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쓰지 않는 돈은 모두 은행이 도로 가져간다고 칩시다. 아마 우리는 단 돈 일원도 남기지 않고 매일 86,400백 원을 다 인출하여 사용할 겁니다. 우리는 지금 시간이라는 지팡이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기도하는 일에 얼마만큼 사용합니까?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얼마나 사용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사용하지 않는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밖에도 우리는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이러한 것을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지요? 스코틀랜드 블랜타이어 마을에 몹시 가난한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너무 가난했기에 방직공장에서 일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열심이었습니다. 어느 날 교회 예배 때에 헌금 접시가 자기 앞에 다가오자 이 소년은 너무 가난해서 헌금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 이 소년은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가난해서 지금 헌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헌금 접시 위에 저 자신 전체를 몽땅 얹어 놓습니다. 저를 사용해 주세요.” 그가 바로 아프리카 선교사의 아버지 리빙스턴입니다.              
  약자를 통해 강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모세를 통해 그 사실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모세의 약함을 통해 출애굽의 위대한 역사를 일구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가진 것이 보잘 것 없고 초라해 보여도 그것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해 보세요. 여러분을 통해 여러분의 가정이 새로워집니다. 교회가 새로워집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새로워집니다.  아멘.  한신대학교회 주일 예배 설교(2011.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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