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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부흥회 감상(感想)

김성 (서울동노회,예수원교회,목사) 2011-03-12 (토) 16:52 13년전 3071  

 


                                 부흥회 감상(感想) - 2011년 새봄맞이 부흥성회를 마치고 -




한국기독교의 선각자 김교신 선생이 발간한 <성서조선> 1932년 3월호 권두언에 <부흥회의 감상>이란 글이 실려 있습니다. 김교신 선생이 교회 부흥회 강사로 초청받아 부흥회를 인도한 감상을 기록한 글입니다. 선생은 본래 부흥회를 인도하는 일을 매우 낯설게 여긴 분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선생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모 유명한 부흥목사와 같은 이는 그 단상에서 활동하는 것이 마치 최근에 유행하는 역기선수가 역량을 경쟁하듯이 힘쓰며, 혹은 우리 안의 원숭이가 관객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곡예를 연(演)하듯이 하니 그것이야 참으로 성신의 권능이 아니고서 어찌 할 수 있으랴는 평판이므로 나는 부흥회 인도를 아주 단념하여 버렸었다> 복음진리를 가르쳐야 하는 부흥사가 성도들을 즐겁게 할 요량으로 강단에서 지나친 쇼맨십을 발휘하는 것이 선생은 마땅치 않았던 듯합니다. 그럼에도 선생은 <성서조선>의 애독자임을 자부하는 모교회 목사의 간청에 못 이겨 마지못해 부흥회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선생은 부흥회 첫 집회시간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부흥회라고 하면 모두 울고불고하면서 여취여광(如醉如狂; 취한 듯 미친듯함)한 데까지 가야 흡족하여 하는 모양인 듯하나, 내가 그러한 무슨 능력을 소지하였다 하여도 그것은 근신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일시에 화열(火熱)하였다가 불일간(不日間)에 다시 냉각하는 따위 부흥회를 하기보다 차라리 오르는 열에다 냉수를 끼얹고 또 끼쳐서 마치 퇴비 쌓인 것이 차츰차츰 열도가 높아지듯이, 우리도 회합하였을 때보다는 산퇴(散退)한 후에, 고독할 때에, 괴로운 중에서 선생의 지도가 없을 때에도 점점 열이 올라가는 따위 집회를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는데는 냉정한 두뇌로써 성서본문을 깊이깊이 음미하여 두는 것이 가장 첩경일까 합니다> 선생은 성령충만이니 성신충만이니 하며 일시에 화끈하게 달아올랐다가 돌아서면 곧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감정적인 신앙을 지양(止揚)하였습니다. 대신 퇴비가 쌓이고 쌓이면서 발효열이 나듯이 성서말씀이 심령에 쌓이고 쌓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심령에 변화열이 나는 것을 지향(指向)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무당 굿하듯이 예수를 믿어서는 안 됩니다. 접신(接神)한 무당이 맨발로 작두위에 올라가 칼춤 추듯이 신앙생활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렇게 찰나적이고, 감각적이고, 충동적이고, 가학적이지 않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누룩에 비유했습니다. 발효는 즉각적이지 않고 서서히 일어나는 과정입니다. 예수는 또 하나님의 나라를 씨 중에서도 가장 작은 씨인 겨자씨에 비유했습니다. 겨자씨가 자라서 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틀 수 있는 큰 나무가 되기까지는 성장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생명의 역사는 반드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때문에 부흥이 진정 성령의 역사라면 그것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변하는 발효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김교신 선생은 부흥회란 즉각적으로 마음이 화열(火熱)하는 시간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발효(醱酵)하는 시간임을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누룩을 통한 마음의 발효, 그것이 진정한 부흥입니다.

선생은 부흥회에 임하는 신자의 자세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성서를 배우는데 손뼉치고 발 구르며 주지놀음 하지 않고는 안 될 법은 없는 줄 압니다. 성서를 가르치는 사람은 이전 날 서당훈장처럼 매채를 잡고 앉았고, 배우려는 사람은 이전 날 율곡이나 퇴계선생의 문하에 부급(負芨;책상자를 짊어지고 공부하러 감)하던 태도로 나아가면 우리 조선 사람이 기독교를 연구하는 태도가 천진스러울 줄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을 발효시키는 누룩이라면 그리스도인은 어찌되었든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죄 때문이 아니라 무지 때문입니다. 책을 싸매어들고 스승을 찾아가 공부하는 학생의 마음으로 성서를 깊이 공부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 그
말씀을 듣는 모든 자들에게 성령이 내려왔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행10:44)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요14:17) 때문에 진리가 있는 곳에 성령이 함께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진리에 눈 뜨게 하고 진리로 인도합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16:13> 따라서 정녕 부흥을 성령의 역사라고 믿는 사람은 부흥을 사모하는 만큼 성서 말씀을 치열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김교신 선생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수단 방법의 우열과 청중의 흥미 여하도 관계할 것 없이 충분히 성서를 알아 오로지 그 뜻대로만 강해하면 소위 양식(洋式) 설교법을 불해(不解)한다 하더라도 복음에는 복음 고유의 능력이 있어 회개도 일어날 수 있으며, 부흥도 생길 수 있음을 증험(證驗)하였다> 개인이 회개하든, 교회가 부흥하든 이 모두는 성서의 진리 안에 함께 거하는 성령의 힘을 통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무당 주문 외우듯 입술로만 성령충만을 되뇔 것이 아니라 학생의 마음가짐으로 성서를 깊이 공부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진리의 영인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2011년 부흥회가 끝났습니다. 부흥회를 통해 나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서 발효하여 우리의 심령을 변화시키고 교회를 변화시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1.3.13 주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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