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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이긴 사람

박원근 (서울남노회,이수중앙교회,목사) 2011-04-09 (토) 18:12 13년전 2884  

제목 : 자기를 이긴 사람

욥42:1-6,롬7:14-8:2

벌써 11년 전 일입니다. 제가 호주 시드니 연합교회 신학대학에서 한 학기 공부한 일이 있습니다. 그 학교 기숙사에는 Nelpawse라는 27세 되는 여학생이 있었어요. 그런데 방학을 했는데도 집에 갈 생각을 않는 거예요. 그래서 "왜 집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나에게 집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안 계시느냐?"고 물었더니 "두 분 다 생존해 계시기는 한데, 자기가 비비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거요. 알고 보니 아버지는 두 번 이혼했고, 어머니는 세 번 이혼한 겁니다. 그러니 누구를 아버지, 어머니라고 찾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토록 아름다운 나라 호주에서 사는 청년들도 이렇게 심각한 고민과 내적 갈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자기와의 싸움이 어디 결손 가정에만 있는 것이겠습니까? 우리나라 대학생 절반 이상이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40% 이상이 2000만 원 이상, 심하면 4-5000만원이나 되는 빚을 짊어지고 졸업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졸업을 해도 취업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 과학 영재대학인 카이스트에서 지난 석 달 동안 4명이나 되는 학생이 자살한 것입니다. 참으로 심각한 일이 아닙니까? 굳이 홉스(Hobbs)의 말을 빌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세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장"이 되어버린 지 오랩니다. 그래서 적자생존이란 말이 나오게 되고, 인생은 고해와 같다는 말이 절로 흘러나옵니다. 돈을 벌기 위해 힘든 전쟁을 치릅니다. 자존심이 상처 입지 않으려고 도도한 승부를 겨루게 됩니다. 경쟁이 심하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장로가 되겠다는 거예요. 장로 직은 명예직이 아닙니다. 교회를 위해, 성도들을 위해, 복음 선교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섬기는 봉사 직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 살신성인의 길입니다. 실로 겁이 나는 직분입니다. 실로 두려운 직분입니다. 그래서 서로 나는 못하겠다고, 나는 할 수 없다고 피하고 싶어 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물질과의 관계이든, 인간과의 관계이든, 하나님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크고 작은 갈들과 번민, 싸움을 치르면서 인생을 삽니다. 울면서 나와서 울리고 가야하는 인생길의 전 과정이 실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고통과 아픔, 상처와 쓰라림을 견디며, 치러내야 하는 처절한 싸움판입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하고 끈덕지고 힘든 싸움은 언제나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나에 대한 최대의 원수는 자기 자신입니다. "산 속의 적은 파하기 쉬워도 마음속에 있는 적은 물리치기가 어렵다."는 왕양명의 말은 100번 옳습니다. "밖에 있는 열성을 정복하긴 쉬어도 자신의 마음의 성 하나를 정복하기는 어렵다."는 말은 진리입니다.

도적은 언제나 제 가슴속에 있고, 배신이나 비겁은 언제나 제 심장에서부터 양육 받아 나오는 거예요. 나에 대한 최대의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냐 요. 내 안에 있어요. 가려져 있는 베일 속에 또 다른 내가 있다 말입니다. 이 숨겨진 나, 이놈이 언제나 나를 파탄으로 몰아가요. 내 인간성 속에는 두 개의 서로 조화시킬 수 없는 성품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정직하고자 하는 나와, 거짓된 길로 끌고 가고자하는 내가 갈등합니다. 사랑하고자 하는 나와 미워하고자 하는 내가 서로 티격태격 합니다. 믿고자 하는 마음과 의심하는 마음이 똑같이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어요. 이기심과 이타심, 도덕성과 부도덕성, 원칙과 타협, 당위와 개연이 모순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나라는 인간입니다. 야누스의 얼굴같이 두 개의 면상을 가지고 있어서 이쪽을 볼 때와 저 쪽을 볼 때가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래서 고민하는 것이 바로 나란 말입니다.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긴 합니다만, 어떻게 해결할 길이 없어요. 자신과의 싸움은 우리 범인들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자나 사도들에게 자신과의 싸움이 얼마나 심각하고 처절한 것인지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 보실까요?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야말로 비참하고 처절한 탄식이 아닙니까? 우리는 예수를 잘 믿으면 고민도 없고 걱정도 없고 모든 것이 만사형통이고 평안이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올시다. 지금 사도 바울이 어디 믿음이 없어서 이렇게 심각한 번민과 갈등, 탄식에 빠져 괴로워하는 것입니까? 아니지 않아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인간의 몸을 지니고 사는 한 이러한 모순과 갈등, 고난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더욱 인간답게 살려고 힘쓰면 힘쓸수록, 더욱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갈등과 번민은 더욱 커집니다. 인간의 실존이 고난인 것을 어떻게 고난의 멍에를 벗어 던질 수가 있겠습니까?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우리 인간은 고난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어요. 많이 배우고, 돈이 많고, 지위가 높고, 유명한 사람일수록 이 자신과의 싸움은 더욱 치열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세요. 사도 바울이 왜 이렇게 무서운 자기와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바울 사도의 가슴속에는 아직도 율법과 행위 등 유대교 전통이 청산되지 않은 채 잔재해 있었습니다. 그 위에다가 그리스도의 은혜,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에 이르게 되는 진리를 받아드린 거예요.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난 이후로는 당연히 평안과 기쁨, 감사만 넘쳐야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를 안 했어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아직도 그를 뒤에서 물귀신처럼 달라붙는 옛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서 그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탄식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뿐만이 아닙니다.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예수님도 하셨어요.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의 밤을 맞이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정말 딱해 보여요. 주님은 예루살렘에 가면 십자가를 지게 될 것을 알고 계셨어요. 그래서 제자들에게 세 번씩이나 십자가를 지겠다고 말씀하셨던 거예요. 그랬으면 좀 겁이 난다하더라도 당당하게 나가셨어야 하지를 않겠습니까? 그런데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 더욱이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은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어딘가 하나님의 아들답지가 않지를 않습니까? 곧 바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고 십자가를 수용하기는 했습니다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드셨는가를 알 수가 있어요.

예수님 마음속에도 해야 할 줄 알면서도, 피하고 싶은 마음이 계셨던 거예요. 예수님도 인간성을 가지고 계셨기에, 한 인간으로서 마음의 갈등과 대결, 싸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까지도 자신의 인간성 속에는 극복해야할 갈등이 항상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민은 “인류를 구원할 것이냐? 말 것이냐?”하는 원칙론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의 일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인류를 구원해야 하고, 십자가를 져야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 마음속에는 십자가를 피하고 싶은 심정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인간성 속에 두 개의 자아가 싸움을 벌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내게서 이 잔이 물러가게 하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했던 거예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연약한 인간성도 함께 지니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처럼 허기도 지고, 졸기도 하시고, 피곤도 느끼셨습니다. 실로 누구든지 인간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마지막 직면하게 되는 문제는 “제 몸 하나 어떻게 처신할 것이냐?”하는 문제로 귀결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마지막에는 고민하고 슬퍼하시면서 자신과 싸워야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모든 인간의 문제는 이 소우주라고 불리 우는 한 인간 속에 집약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우주의 축소판이며, 만상의 거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나 자신을 어떻게 가볍게 보고 쉽게 처신할 수가 있겠습니까? 작아 보여도 거대하고, 갈대같이 나약해보여도 태산 같고, 온 우주를 내포하고 있는 가장 신비롭고, 존귀하고, 한 번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보고가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러기에 나 하나 얻게 되면 천하를 다 얻는 것이 되고, 나 하나 잃어버리면 천하를 다 잃게 되는 거야요. 내가 그렇게도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까짓 하찮은 물질이나, 명예에 좌우될 수 없는 것이 나 자신이올시다.

바울은 둘로 나눠서 서로 대결하고 있는 분열된 자아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 자신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 범인들에게도 내 속에 늘 조화되지 않는 심각한 갈등이 존재하고 있지를 않습니까? 지지 않으려는 오기가 있습니다. 양보할 줄 모르고, 포기할 줄 모르는 고집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고, 그래서 괴로워하고, 그래서 슬퍼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절대로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비관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연약하고 모순투성이인 나 자신을 부둥켜 앉고 처절하게 괴로워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인간다움입니다. 고통이란 괴로운 것이기는 합니다만, 피해가려 해서는 안 됩니다. 정면으로 맞서게 되면 그 고난을 통해서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지혜가 생기고, 신앙의 장부가 되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고난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축복을 고난의 보자기 속에 싸서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몸부림치고, 때로는 두 손을 불끈 쥐고 머리칼을 쥐어뜯으면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서 인생의 참 모습, 진실한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고민하는 인생이 아름답다는 거예요. “나는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이 일찍이 예수 믿고 그런 문제는 이미 다 해결을 보았다."는 듯이 큰소리치는 사람은 겉으로는 믿음이 좋아 보여도, 실상은 아직도 인생의 진실이 무엇인지, 신앙의 참 모습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진실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고민만이라도 진지하게 할 수 있는 신자가 된다면, 그는 훌륭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너희가 나를 따르려거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쫓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진다는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예수님과 같이 죽는다는 말입니다. 고민하며 번민하고, 괴로워 하며 사는 것을 뜻합니다. 아픔도 없고 괴로움도 고통도 상처도 갈등도 없는 신앙이 좋아 보일는지는 몰라도 그것은 온실 속의 꽃과 같아서 우리 주님이 쓰시기에 귀한 일군이 되지는 못합니다. 믿고 또 좌절하고, 사랑하고 또 미워하고, 바라보고 또 절망하는 그래서 안타깝게 몸부림치면서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그리스도를 향하여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전진해 나아가는 모습이 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일이 있어요.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특히 자신과의 싸움은 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에 대한 비결이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나와요. 바울 사도는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느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우리 스스로는 자유 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인가에 매일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진리가 와서 모든 거짓과 불의 죄와 사망에서 나를 자유하게 해줄 때, 나는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을 해방시킬 수가 없어요. 우리가 육신의 법에 따라서 사는 한, 죄와 사망의 법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그 안에서 역사하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사로잡아 비참에 빠트리는 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켜 줄 때, 나는 비로소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할 수가 있겠습니까? 위기가 찾아 올 때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유혹을 물리치고 고난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올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기도로 승리했습니다. 우리 주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기도로 승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나 자신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고난의 순간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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