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홍성표

카이로스 (막 1:15)

홍성표 (서울북노회,예수제자,목사) 2011-12-06 (화) 12:30 12년전 3118  

우리는 예수의 출생과 성장, 사역, 고난 받으심과 죽음 그리고 죽은 자로부터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부활 하셨으며 승천과 다시오심의 유사성, 그러나 복음서 기자의 의도와 신학적 입장 에서  다른 마태, 마가 누가 복음서를 같은 관점이 있다 하여 공관 복음서라 부른다.

오늘은 마가 복음 1:15 에 있는 카이로스 에 대하여 생각 해 보고자 한다. 박수암은 그의 마가복음 주석 에서, 마가의 특징을 1)이야기의 진술이 단순하며 직설적이고 상세하다 2)예수와 제자, 무리의 표정과 감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3)예수의 교훈보다는  행위를  쉴 사이 없이 기록해간다. 4) 지리적 시기적 구분의 관점에서 예수 이야기를 서술한다. 5) 제자들의 긍정과 부정의 양면 묘사를 하고있다. 6) 이방 선교에 지대한 관심,7)메시아 비밀 동기. 8)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세히 보도.9)예수의 종말에 관한 강화가 어느 복음서보다 성전정화, 수난 설화와 연결 되어 있다.10) 전승자료의 병행 서술,다른자료와의 대조와 반복을 이룬다 등으로 설파한다.

카이로스의  오리지널 의미로는 어떤 결정적 장소나  암시, 현저하게 순간적인 공간 등을 말 한다. 또 그 것은 시간적 관점 에서   세월을 의미 하기도 한다. 카이로스는 어떤 상황 에서의 삶의 결정적 순간을 의미 하고, 결정적 순간 그 자체 이기도 한다.

카이로스는 종교적으로 결정적 시간을 말 한다. 결정적, 이 것은 하나님의 의하여 주어진 마지막 축복의 시간을 의미한다. 그 것은 하나님의 의해 약속 된 죽음의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카이로스의 상황은  구원사 속에서 명확히 정초 되어 있다. 카이로스는 비판적 인 것을 담고 있다. 그 것은 상식적으로 순수하게 순간적 감각으로 이해 된다.  그 것은 시간의 확장이기도 하다.

그 것은 결정적이며, 결정적인 찰나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 것은 하나님 의해 결정 된 사실을 의미 한다. 마가 1: 15에 따르면  이 카이로스의 실재는  충만함 속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로서 지금의 현존을 의미한다. 카이로스의  개념에 대한  헬라적인 예비돤 현존은  예수의 종교적인 선포와  바울의 도덕적 요구 둘다 우리가 찾는 야릇한 격렬함으로 주어진다.

카이로스 는 현존의 충만함과 함께 ㄸ끝이 아님을 말 한다.. 카이로스는 그리스도인 매 순간의 삶을 회상 시킨다. 카이로스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구체적으로  충만한  요구에 대한 것을 동시적으로 그를 통하여 인정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 카이로스를 소유 하고 있다. 그 것은 영의 사람으로서 능력을 가지게 되며, 그 것에 대한 충만한 요구를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 자체이다.  그 것은  카이로스의 신성 아래 서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 1:15)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사건이 카이로스의 진짜 의미 이다. 죄악으로 물든 이 세상(코스모스)을 구원하시려  하나님의 동등한 위치를 포기하시고 낮고 천한 땅에 오시어 갖은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며, 고난과 죽임을 당 하셨다.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임재의 시간이요 결단의 시간이다. 그 것은 인간 일상적 시간의 연장(크로노스적 시간)이 아니라 단 한 번(einheit, )  의 죽음의 시간이요 부활의 시간이다. 한 번 살고 한 번 죽는 다. 그리고 전적으로 죽고 전적으로 다시산다. 카이로스는 새로운 시작이요 끝이 아닌 영원의 시간이다.

 그 것은 생성과 성장 소멸의  슈팽글러식 순환적 시간이 아니라  단 한 번 살고 단 한 번 죽는 결정적인 시간이다. 그 것은 개인에게도 올수 있고 역사와 우주 전체의 시간 일 수도 있다. 그 것은 영원을 사는 희망의 시간을 창조하며 종말론적(eschaton) 시간을 매 순간 가르친다. 그리스도인 들은  이 역사의 땅을 살 뿐 아니라 역사를 넘어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종말론적 카이로스를 사는 사람들이다. 

그 것은 나의 몸 전체를 기투하는 실존적 결단의 삶 이다.  그 것은 소유를 위하여 우리의 마지막 지성소를 버리는 전적 타락의 삶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하여 전 존재를 드리는 것이다.

그 것은 하찮은 감투와 명예, 가면과 인격을 혼돈하도록  이중적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아주 투명하게  전 존재를 공개해도 흠과 허물이 없는 성화의 몸부림을 사는 결연한 삶을 구가 하는 것 이다.

예수 그리스도 께서 친히 먼저 그 삶을 본을 보이셨고, 우리 에게 살도록 성령을 통하여 재촉하신다.. 우리가 이 카이로스적 삶을 결단 할 때 무한한 자유와 측량 할 수 없는 기쁨과 평화가 우리의 전 존재를 덮어 흐른다.

썩어질 소유에 미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미친 자들, 예수 그리스도의 카이로스적 삶을 살기로 작정한 자들에 의해서 창조적 희망과 역사의 지평히 열려진다.

3.1의 유관순과 이름 없는 민중들, 해방과 자유를 위한  날의 생명과 지조를 위해 목숨을 버린 시대의 순교자들, 외세와 탐관오리 들로부터 민중의 생존권과 민족의 자주를 지키려 했던 동학의 전봉준과 함께 했던 이들,  나라의 주권을 강제로 빼앗은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하고 미련 없이 한 목숨 던졌던 안중근과 이봉창, 그리고 수 많은 열사와 의사들, 독재의 간악함을 볼 수 없어 분연히 일어나 깨끗한 선혈 아낌 없이 뿌린 4.19 혁명의 넋들,  군사 문화의 독재 아래서 신음하는 800만 노동자 들의 인권을 위하여   자신의 한 몸을 불태워 역사의 어둠을 밝힌 전태일 열사, 군대 마귀의 총칼을 맨 몸으로 막아 민주의 나라 건설을 이룩한 5.18, 분단 조국의 영구화를 막기 위하여 반쪽 선거를 부정하다 학살된, 4.3 제주의 영혼들,  이들은 개인과 역사의 카이로스를 산 사람들이다.

아! 그래도 역사가 이 정도 유지 되는 단 하나의 이유는 하늘의 명령에 순천하기 위하여 비굴하거나 비겁하게 구차의 연명을 벗어 버리고 결단의 카이로스를 산 하나님의 사람들이 시대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카돌릭 의 주교 로메로는 말씀만 남기고 남미의 헐벗고 굶주리며 착취 당하는 민중의 사제로 죽어 갔다. 그는 주교로서 대접 받는 상좌의 자리에 있었으나 하나님의 카이로스적  시간에 직면하여 민중의 삶에 투신하고 그 들의 생존과 인권을 위하여 영광의 자리 박차고 하늘의 뜻에 순종하여 결단의 삶을 살다 죽어 갔다 . 그 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영원의 시작 일 뿐이다.


역사가 우리를 부른다. 총회의 임원이 되기 위하여, 하찮은 명예를 위하여 그리스도 인의 명예와 지성소를 버리고 살아서는 안 된다. 한 줌도 안 되는 권력과  교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 이제 기장이 카이로스의 순간에 놓여 있다. 우리는 결단 해야 한다 . 우리는 돌이켜야 한다. 우리는 죽어서 부활을 살아야 한다.

본훼퍼의 말대로 이제 " 갑싼 은총과 은혜" 를 버리고 그리스도의 향기 날리는 역사의 창조자가 되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자. 그리고  우리의 주어진 길을 가자. 우리의 성직이 이 땅의 하나의 구조 악이 아니라 생명을 억압하고 거짓과 위선의 콘카리트의 벽을 과감히 무너뜨리고 동터 오는 새벽의 희망을 창조하는 역사와 구원의 빛을 발 하도록 하ㅏ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나의 전 존재를 드리는 재물로서 살기를 몸소 실천하자. 주님이 이를 위해 몸 버려 피 흘리셨음을 기억하자.  

 


hi
이전글  목록 글쓰기

츲ҺڻȰ ⵵ 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ȸͽ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