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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규

기다리는 마음

이선규 (서울남노회,대림다문화센터,목사) 2011-12-16 (금) 16:04 12년전 2664  
 

  기다리는 마음 시편 130:1-8절

부모의 마음은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보고 싶은 아들의 연락 을 기다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딸의 얼굴을 언제 보나 하면서 지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렇게 기다려지게 마련입니다. 예상치 않던 연락이라도 오면 큰 은혜라도 입은 듯 누구에게 자랑이라도 하고 싶어지는 것이 바로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본문 시130편은 이러한  기다리는자의 모습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깊은 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 소서 이 구절에서 그러한 심정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주께서 죄악을 감찰 하실 때는 어느 누구라도 주 앞에 설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고 깨닫는 자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시는 여호와 앞에서 나는 정결하다 깨끗하다고 죄와는 상관없다고 나설 자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말라기 3:16절에도 피차에 말한 것 까지도 분명하게 행위 록에 기록 하리라고 했고 욥기 25:4절에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겠느냐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치 못하거든 하물며 조인인 인생이랴  얼마나 더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인생은 죄에 대한 관심조차 무디어져 있습니다. 나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으니까하고 스스로 회피를 하고 있으나 성경은 말하기를 인간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나단 선지자는 다윗 왕 앞에 나타나서 어느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행패를 부리는 비유를 말했습니다.

 다윗 왕은 크게 노하여 그런 놈은 당장에 처치 해버리라고  엄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때 나단은 “왕인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직고를 하게 됩니다.

다윗은 여호와 앞에 거꾸러졌습니다.

내가 여호와 앞에 범죄 하였나이다. 그는 자복하고 통회 했습니다.

여기서 다윗의 위대성을 봅니다. 보통사람이라면 온갖 변명을 늘어놓았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소인과 대인의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소인에게는 자기가 사랑하는 자의 큰 허물은 작 게 보이고 자기가 미워하는 자의 작은 죄는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니 이체는 죄의 관념은 병 이다. 라고 했지만 성경은 말하기를 죄 의식은 영혼의 척도라고 했습니다.

살인강도나 간음 같은 죄는 크게 여겨도 시기 질투. 비난. 증오. 거짓말은 대수롭잖게 여기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결코 가볍게 넘겨야 할 것들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전염병과 같은 것 들입니다.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습니다. 이 죽을 죄인들에게 ‘그러나’가 없으면 영 영 절망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는  죄인들에게 이보다 더 큰 위로의 말씀은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추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으므로 주 앞에 당당히 나아 갈 수 있는 길이 우리에게 열려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주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의인의 반렬에 세워주시려고 오신 날이 바로 성탄절인 것입니다.

사유하심이 주께 있으므로 우리는 떳떳하게 죄를 고백 하기만 하면 주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말씀이 주께 있습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 을 바라는 도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들어 오신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이시오 그날이 바로 성탄절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고 했습니다.

같은 말씀을 빌립에는 생명의 말씀이라 했고 엡113절에는 진리의 말씀 행13:26절에는 구원의 말씀 고후5:19절에는 화목케 하는 말씀으로 나와 있습니다. 

내 영혼이 말씀 사모하기를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 보다 더 간절하다고 하였습니다. 허리에 칼을 차고 손에 창과 훼불을 들고 적진을 응시하고 있는 병사의  마음에는 날이 새기만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날이 새면 경계가 쉬워지고  임무가 교대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갈망하는 자의 열 심은 사실 파수꾼의 기다림 정도에 비교 할 수가 없습니다.

기나긴 어두운 밤이 지나고 아침 햇볕이 비춰올 때 제사장은 아침 제사를 드립니다.

지난밤 성전을 지키는 파수의 임무를 다 마친 레위인도 동참 하여 함께 제단 앞에 나아가 감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자의 결국은  안식입니다.

밤이 지나고 부활의 새벽이 다가 올 때 세상 근심 걱정은 간 곳없고 부활의 변화한 몸으로 주 앞에 설 것입니다.

그때에 주님은 우리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입니다.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과 곡하는 것과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 하리니 저 주검 도 고통도 없는 영원히 안식하는 천국으로 인도 해 주실 것입니다. 

셋째;는 소망이 주께 있습니다. 자신이 철저한 죄인이라고 깨달은 소망 없는 자들에게 하 나님은 은총을 베풀고 용서해 주십니다.

그것을 보여준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죽으셨던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용서 하시고 자녀로 받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바랄 지어다.

여화와께는 인자하심과 구속이 있습니다.

저가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 하 시리이다.

“이 세상의 소망 구름 같고 부귀와 영화도 한 꿈 일세” 범죄 한 인간에게는 소망은 없습니다. 현대인들은 생존의 삶을 위해서는 피나는 경쟁 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긴 것으로 끝납니까? 수많은 실의와 좌절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문예 부흥과 종교 개혁에 뒤이어 인간 혁명의 기치를 들고 나온 것이 자본주의입니다.

이 자본주의는 인간이 가진 소유의 욕구 본능을 최대한으로 만족 시켰습니다.

이 자본주의는 국가주의와 결탁을 해서 현대 문명을 최대한도로 꽃을 피웠습니다.

여기에서 파생 되어 나온 것이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라는 것입니다.

이러 한 사 상의 조류가 흘러 인간에게 최후에 남긴 것이 무엇입니까?

 물질계는 유한하고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은 보다 더 절박한 초조와 불안과 좌절에 빠지게 마련입니다.

과학의 발달은 천체 세계의 개발에 총력을 다 기우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인간의 본성은 소 외 되고 추방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만들어 놓은 기계문명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기계의 위력 앞에서 공포로 떨고 있습니다. 방사능이 방출되지 않을 깡패같이 노는 김정일 이 핵무기를 만들어서 공격하지나 않을까? 

이로부터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격리 되었고 이웃과 동료 사이는 단절 되었고 고립 되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와 같습니다. 결국 인간은 죽음에 넘겨져서 무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결국 그 결국은 회의와 자살 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소망의 사도베드로는 일 찌기 선포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인류의 소망은 예수 그 리스도 에게만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무서워하는 것은 단순히 내가 오래 살지 못한다는 공포에서 오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죽음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각자의 양심이 고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해명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죄의 값이라고 죄는 죽음의 가시라는 것입니다. 죽음이 인간을 찌르는 것은 죄의 가시 때문이라 는 것입니다.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주의 사 자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자기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 할 자니라. 메시야 탄생은 전 인류의 소망입니다. 인류의 소망은 물 질 계에도 과학의 만능에도 지식의 팽창에 있는 것 도 아닙니다.

인류의 소망은 예수 그리도 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개개인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는 능력과 생명의 열쇠를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은 개개인이나 국가 비운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몸부림치는 자 들을 반드시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매달리는 그 자체가 이미 승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승리를 안겨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오시는 주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구원 의 기쁨 소망으로 바라고 기다리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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