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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표

주의 장막과 거룩한 언덕에 거할 자.(시편 15. 1.)

홍성표 (서울북노회,예수제자,목사) 2011-12-24 (토) 02:05 12년전 3070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주의 장막과 거룩한 언덕에 머물고 싶어한다.  죄로 말미암아 " 건 널 수 없는 계곡"을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의 구속으로 속죄함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장막과 언덕에 오르고자 한다.

이 시편 15 편은 24 편과 함께 " 특수 예배 의식" 으로서 성소에 들어가는 조건으로서  사제와 성가대 간의  토라 문답 의전  때 사용 된 시로 본다(김이곤 시편 주석 참조)

그러면 우리가 장막과  거룩한 언덕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이 무엇인가?

1)정직이다.

국어 사전에 보면  정직이란  거짓이나 허식이 없이  마음이 바르고 곧음. 이라  적고 있다. 오늘날 위선과 거짓을   밥 먹는 것보다 더 하는 사람 들에게 필요한 인간의 첫째가는 덕목이다.  거짓을 일 삼는  가장 신의 없는 목사와  종교가 그리고 성도들이 이런 부류의 사람들 이라면 무리일까?

요즘 개혁을 부르짖을 때 목사와 성직자 만이 타겠이다. 그러면 장로들과 성도들은 거룩한가? 자신 들은 세속의 더러운 시궁창 에서 놀고 목사나 사제 만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자신 들은 부동산을 불리는 투기를 하고 주식을 늘려가며 온갖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리고 쾌락에 빠져 살면서 목사의 작은 티를 보면 산 채 죽어야 할 탄핵의 대상으로 치부하는 것은 무슨 법인가?

호세아 선지자는  백성과 제사장이 일반이라(호. like people, like priests)했다.  장로 앞에서 목사는  고양이 앞의 쥐이다. 장로 눈치를 살펴서는 안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쩌다  목사가 되어 장로와 성도 들의 눈치를 살피는 왜소하고 나약한 인간으로 살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불쌍하기 짝이 없다. 존경도 못 받고  그렇다고 생활이 넉넉하여 경제적 안정감도 없다 . 늘 흔들거리거나 초조하고 불안한 삶을 산다. 어떤 큰 교회 목사는 자신의 교회갱신의 명분을 내세워 목사 신임을 묻는, 노회와 총회 헌법에도 없는 인기를 위해 만들어 놓아  가뜩이나 어려운 목회 현장을 더 삭막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는 자기는 큰 교회에 가서 그 신임 건을 꺼내지도 않는 부도덕한 인간이 되어 거룩을 외친다. 정직하지 못한 목사이다. 교수 역시 정직을 살라고 가르치면서 자신은 기회주의 자가  되어 교권과 야합하거나 눈치를 보며 철밥통을 지키려 한다.

목사의 위기는 장로를 세우고 난 직후이다. 집사나 안수 집사까지만 하여도  순진한 양 처럼 보이던 자가 장로의 직분 후에는, 목사의 상전이 되어 큰 기침을 해 가며 대감 행세를 한다.  교회의 최고의 벼슬에 앉아 두 눈을 부릎뜨고  목사를 공격하고 약점을 찌르고 공격하여 목사의 심장을 위축시킨다. 

장로가 아니라도 방귀깨나 뀌는 여 집사나 여 권사는 목사와 사람을 잡는 집사와 권투 선수가 되기도 한다. 목사와 성도가 일반이 되어 복음의 예수 정신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다. 거기에 무슨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 있겠는가?

앞에서 하는 말 다르고 뒤에서 하는 이야기 다르며, 서로 대립하여 여차하면 전쟁을 치르고 서로가 깊은 흠집과 상처를 낼 판이다. 마치 무차별 개발의 몀목으로  자연을 향하여 폭력을 구사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처럼 말이다.

교회에는 여우도 있고, 삵쾡이도 있다. 관계가 좋을 때는 상관 없지만, 조금이라도 괸계가 비뚫어지면 살인과 같은  관계의 파괴를 서슴치 않는 살벌한 공동체가 교회라면 잘못일까? 거기에 구렁이도 있고 이메기도 있다.  교권의 정치에 능숙한 예수 사업가도 있고, 장사치 들도 있다. 

역사의 예수가 다시 온다면  회초리를 후려치며 상을 엎어 뒤집을 것이 뻔하다. 거기에 무슨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 있는가?  거짓이 껍데기로 뭉친 더럽고 추한 타락한 집단, 그래도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선혈의 복음을 전해야한다.

목사가 먼저 바로 서야 한다.  목사가 먼저 피 흘리고 죽을 각오가 되어야 한다.  누가 자신의 가정과 가족을 좋은 집에서 안락한 삶을 살게하고 싶지 않겠는가? 숫자를 늘리고 헌금의 액수를 늘려서 도대체 예배당을 크케 지으며 , 성공의 과시라도 하면 좀 나아질까? 

아!  젊은 레닌이 다시 살아 나고,  칼. 맑스가  다시 살아 날 것이다.  그러면 교회가 그 때에 어떻게 할 것인가? 기적과 표적을 보이고, 큰 콘크리트 예배당과 헌금을  많이 거두어들여 호화로운 궁궐과 비단 옷을 자랑이라도 하려는가?

영국 속담에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 했다.(The honest is best policy.) 글세요 해적질로  턔양이 지지 않는 제국을 영위하던 영국이 얼마나 정직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말은 바른 말 입니다. 오늘날  정직이 없고, 거짓이 난무하여 인간과 인간 , 인간가 자연 . 신과 인간의 불신의 계곡은 건널 수 없는 계곡이 되었습니다.

돈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동료 인간을 죽이는 것은 물론, 신의 이름을 도용하여 자기 배를 채우는 것은 예사요, 자연을 속이며 미래 역사의 희망을 노래하는 거짓 혀 들이 땅과 하늘을 메우고 있습니다.

주의 장막과  거룩한 언덕에 오를자 누군가? 거짓을 단호히 끊고 정직을 위하여 목숨을 내 놓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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