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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표

사람 낚는 어부(막.1: 16-20)

홍성표 (서울북노회,예수제자,목사) 2012-01-02 (월) 21:27 12년전 5035  

이 이야기는  공간 복음서에 ( 막 , 마 눅) 모두 에서 나온다. 마태복음 에서는  4: 18-22 에서  두 형제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어부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를 부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며 내가 너희로 하여금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라라고 말씀 하신다. ( "Come , fllow me," Jesus said, " and I will make you fisher of  men.")


마태 와 마가는 어부가 되게 하는 것을 이 문장을 똑 같이 쓰고 영어의 make 를 써서 만든다는 인위적 표현을 쓰는데 반하여(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공동번역(New American standard Bible& KJV) 은 동사 become 을 덧붙여(  I will make you become fishers of men 으로 번역하여 쓴다.  되다는 만들다 보다 더 깊은 내적 변화의 느낌과 make 가 물리적 변화의 느낌을 준다면 become은 화학적 변화의 느낌을 준다.


공동 번역(Good News Bible)은  이 문장을 조금 다른 표현으로 바꾼다." Come with me, and i will teach you to catch men." 앞의 표현과 다른 것이 가르치다는 동사와  만들다, 되게한다는 표현을 붙잡게 한다는 표현을 써서 더 철저한  교육 과정을 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여기에 비하여 누가복음의 어부에 대한 제자 부름 이야기는 마가와 마태의 기사보다 더 길고도 독특한 누가 만의 의도된 이야기로 서술한다. 특히 눅; 5:4 절에서 배를 깊은 물에 대고 너의 젊은 동반자들과 함께 고기를  잡기 위한 너의 그물을 내려라((GNB). 깊은 곳으로 항해 하여,  너의 부족한 것을 위하여(for drought)  그물을 내려라(KJB). NIV 에서는  깊은 물로 나아가라, 그리고 고기를 잡기 위하여 그물을 내리라"put out into deep water,and let down the net for a catch." 라는 표현을 쓴다. 특히 누가에서는 베드로가 무릎을 꿇고  이 사건의 결과 후에 예수를 자기로부터 떠나라 하며 자신이 죄인 임을 고백하고  예수를 주 (Lord)라  칭하며. he  fell Jesus '  knee and said, Go away a from me, Lord; I am a sinful man. 고백한다.(NIV)


촬스 스펄전 (C. H. Spurgeon) 은 그의 책" 영혼의 승리자(The SOUL Winner) "사람 낚는 어부" . (민병구 역 . 기독지혜사) 에서  마가 1:17 절을 본문으로 " 사람 낚는 어부" 에 관한 설교를 적고 있다. 그는 분명 우리 시대 와는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청교도의 설교자이다. 


그러나, 그의 글을 읽다보면 말씀의 서슬이 시퍼런 회개repent)와 감동을 주는 것은 틀림 없다.  역사적 예수는 제자를 삼기 위하여 기다리지 않고, 삶의 치열한 전선 에서 땀 흘리는 현장을 찾아 나선다. 그는 누가, 무엇이 찾아 오리라는 안일함이 아니라 적극적으로(Potive) 로 찾아나선다.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린다.(마 7:7)라는 하나님의 나라( The kingdom of God) 건설을 위하여 제자와  전사를 찾아서  교육(education)하고 가르치며( teach), 훈련(trainig)을 모색한다. 그는 오늘날 자기의 명예와 부와 교권을 통하여 자기 뱃속을 차리려는 계산과 정치적 속셈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reigm)가 이루어지도록 필요한 제자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소위  큰 목장을 차지하지 못하거나,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좌절과 위축을 느끼며 교권을 잡은 자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사명이나 소명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의 가시적 눈 높이로 자신과 타인의 삶을 저울질 한다.

인맥이 있거나 박사 학위가 있거나, 세습을 한 교회 황제이거나, 어찌하여 자기 성장을 하여 자리 잡은 자들의 거만함과 오만함에 비추어 그러지 못한 자들은 왜소함으로 살아간다. 목사도 등급이 있고 장로도 그러하다. 교회가 크면 교만과 거드름을 피우고 그렇지 못하면 어깨가 늘어진다.


우리는 정말 제자의 부름(calling)을 받았는가?  나를 따르라. 내가 너를 고기 잡이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어 놓겠다. " 갈릴리의 시골뜨기가 모든 만물과 죄인 된 인간의 구세주가 되었다. 그 시골뜨기 예수가  명령한다, 나를 따르라.( nachfolge)


그런데 이 명령에  야고보와  요한이.  아비와 삯군들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간다. 이것은 놀라운 사건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업의 도구인 배와 심지어 아비와 그리고 그들의 생업을 위하여 일 하는 일꾼들을 버려두고 갈릴리 촌에 사는 삶은 아무런 삶도 보장 되지 않는 무일푼의 백수를 따라 나서고 있다. 대단한 생의 결단(determination of life)이요 카이로스(Kairos) 이다.


만일 오늘날 우리에게 갈릴리의 시골뜨기 촌사람, 깡촌의 예수가 다가와서 나를 따르라 부른다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를 자신이 있는가?  아니다 우리는 그 예수를 위 아래로 훝어보며 미친 놈 하고 욕하며 헛 기침을 해 댈 것이다.


먹고 살기 힘든데. 무슨 통일운동과 정신대 문제를 위한 시위라니. 계산을 해봐 점잖은 성직자가 장로와 교인들 눈치를 보고 그만 냉소적으로 눈과 귀를 막아버린다. 개혁이나 혁명은 정신 나간자나 아니면 할 일 없는 백수가 소리치는 것이다.  그럴까?  할일 없어 감옥에 갇히고, 할일 없서 집회 현장이나, 해고현장, 민중이 눈물짓는 현장에 찾아가는 것일까?


대개의 교회 현장에서 이 본문의 설교는 성장을 위한 적극적 전도 행위로 되어져 왔다.  많은 고기( 전도)잡이를 하기 위한 도구를 준비하고 개발하며(총 동원주일) 교회의  부와 목회의 과시를 위해 악용 되었다. 인간과 세상 자연의 구원과는 무관한 자본주의적 해석과 부와 성공 명예와 자기 과시를 위하여 많은 물고기를 잡는데 혈안이 되어져 왔다.

거기에 역사적 예수도 없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른 제자도 없다.  목회의 성공을 교회의 부와 성장으로 가늠한다.  목사가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자동차를 타고, 크고 화려한 에배당과, 그것도 모자라 수양관 휴식처 등 부동산 투기를 하며 재물을 불려간다. 하나님과 예수를 팔아  도적질을 하며 목회의 성공을 한 것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거룩을 사기친다. 


교권을 잡고 지속적인 힘을 위하여 패거리와 그룹을 만들어 위장하고, 자기 편을 큰 교회에 끌어 들여 장기 집권과  죽을 때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 든다. 신과  교회의 사유화가 그들의 거짓된 거룩 속에 넘실댄다.  거기에 목사와 장로 그리고 평신도까지 야합하거나 공조하고 경합한다. 

우리는 진실로 사람을 낚을 만한 존재로 훈려받고, 예수의 제자가 될,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 있는가?  모두 한 통속이 되어 좋게 좋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따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로 살아가는가?

우리가 부름 받은 이유를 알고 있는가? 아니 부름을 받은 확신은 있는가? 아니면 첫 사랑을 잃어버리고 맘몬의 기에 눌려 소금의 맛과 성령의 기름이 다하여 빛을 상실 하였는가? 


사람 낙는 어부가 되려면,1)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2)  다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야 한다. 3. 시대의 징조와 인간의 속을 꿰뚫는 영적 분별과 역사의 모순을 알 수 있는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4) 그리고 내가 가진 기존의 모든 것을 버리고라도 예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는 결단의 카이로스적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하나 밖에 없는 생명과 목숨마저도 이 역사와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내 놓아야 할 그 이상의 용기 말이다.

5) 사람 낚는 어부가 되려면 인간이 원하는 모든 썩어질 것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희랍인 작가 카잔카 차스키의 " 최후의 유혹"은 달콤한 가정이다.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아이들이 눈에 걸려 앞으로 전진하지 못한다. 누가 자신의 피붙이를 귀하고 소중하게 생각지 않겠는가? 

누가 안락 의자에 앉아   몸을 흔들며 행복에 겨워  콧 노래를 흥얼거리며 망중한을 꿈 꾸지 않겠는가? 악한 자라도 자기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며, 자신의 몸으로 총탄이나 폭탄이라도 막아 살리지 아니 하겠는가?

예수는 단지 역사적 예수가 아니고 신의 아들인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우리는 차안 에서 거룩을 사기치고 피안을 강조하며  썩어질 육신의 쾌락과 탐욕을 쫓고 있는 것인가?  물 속의 벤뎅이가 웃을 일이다.

오늘도 예수는 우리를 부르신다. " 최후의 유혹" 을 뿌리칠 수 없는 연약한 우리를 안타까이 여기시며 그래도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 하시리라고 명령하신다. 거짓 된 정치 권력과, 더럽고 타락한 종교 귀족과, 아부하고 기생하며,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썩고 부패한 권력을 송두리째 감싸고,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핥기에 여념이 없는 언론들, 억울함과 , 힘 없고 가난한 민중과 서민을 협박하고 위협하는 검찰과 법원의 쓰레기들이 역사를 죽음으로 내 몰고 있다.


두 가면(PERSONA) 을 쓰고 오늘도 타락한 종교의 교권들은 죽은 자의 장례식에 몰두하고 있다. 십자가에서 빨간 선혈을 쏟아내며 예수가 울고 있다 . 나를 띠르라  허리 잘리고 병든 한반도를 구하고  일제의 잔인한 식민지의 희생으로 평생을  사는  정신대의 한을 풀어주며, 고문으로 별세한 김근태의 유언을 귀담아 듣고,  동학과 3.1 , 4.19, 518, 그리고 제주의 4.3, 관동의 억을한 한을 풀라,


전태일의 음성을 땅에 묻지말고 이름도 빛도 없이 죽어간. 해고 노동자와 근로자, 민중의 탄식과 한숨의 소리를 외면하지 마라  종교적 " 우상의 동굴"에 갇혀  거짓된 거룩의 사기 행각을 멈추고 겸손히 주께 나와 나는 죄인 입니다 고백하며 나의 존재를 모두 주께 드려라.


주님이 부르신다 나를 따르라.( FOLLOW ME. NACHFOLGE) 그리고  너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를 고기 잡이 어부에서 " 사람 낙는 어부"로 만들어 이 묶은 땅을 갈아 엎고, 도적과 강도의 소굴이 된 성전의 상을 엎어, 더러운 종교의 장사치들을  하나님의 기도의 집 에서 몰아내리라.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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