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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표

예수의 눈물(요한 1:35 Jesus wept.)

홍성표 (서울북노회,예수제자,목사) 2012-01-17 (화) 05:35 12년전 3653  

우리가 사는 삶의 여정은  눈물이 강과 바다를 이룬다. 어느 사람들은 억울해서 운다. 어떤 사람들은 몸이 아파 울기도하고, 어느 사람들은 마음이 아파서 울기도한다.  사랑의 배신과 정치의 동지가 등을 돌려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내가 태어나 눈물을 처음 대한 것은 어머니의 눈물이다. 어느 봄날  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마루 밑의 토방에서 머리를 풀어헤치고 손 바닥으로 땅을 치며  서러운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니의 눈물이 50 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세월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석달 유복자와 함께 일곱 형제 자매를 키우시던 어머니께서 사업을 하시다 돈을 떼어 먹고 자살하던 자들 때문에 그 모든 빚을 안게 되어 집의 물건이 몽땅 차압을 당하던날 어머니는 방 한 쪽 구석에 가셔서 흐느껴 우셨다.


그리고는 어머니의 세번째 눈물은 한국에서의 목회를 잠시 뒤로하고 한국을 떠나  어쩔 수 없이 미국에 가야만 하는 나를 두고서 서러운 눈물을 흘리셨다. 이 모두가 지금 생각하면 다 자식들을 위한 눈물 이셨음을 안다.배 고픈 아이들을 굶기지 않게 하시려고, 할 수만 있으면 좋은 옷 좋은 신발 입히고 신기시려고 몸이 부서지도록 사신 어머니의 눈물이 어디 이 세번 뿐 이셨겠는가? 어머니는 자식들이 보지 않는 수 많은 눈 물을 몰래 훔치시며 사셨을 을 것이다. 


봄날 물댄 논에 엄마 우렁이는 껍질만 둥둥 떠다닌다. 아기 우렁이들이 엄마의 살을 다 먹어버려 이제 빈 껍질만 남아 물 위를 정처 없이 떠 다니는 것이다. 39 살 에 혼자 되시고 일곱 아이들을(사실은 열 낳고 둘은 6.25 피난살이에 죽고 하나는 사고로 죽고) 먹여 살리는 것은 그 시절 쉽지 않은 일 이었다. 


요즘은 그 나이에 결혼도 아니한 싱글이 얼마나 많은가? 그 어머니를 위하여 난 한 번도 제대로 울어보지 못하고 미국에서 돌아 온 후 얼마 안 되어 지금은 고인이 되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  어머니는 처음 예수를 믿고 목사가 된 나를 보고 예수님을 영접하셔서 돌아 가실 때까지 교회 일로 충성과 즐거움으로 사셨다.( 권사님으로, 교회 구제 부장을 지내시고) 


그러다 나의 목회가 순탄치 못한 것을 보시고  얼마나 가슴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시며 가셨을까?  많은 기대를 하며 목사가 된 나를, 모두에게 자랑하시던 어머니에게 나는 얼마나 아픈 마음을 주었고 실망을 하시게 했는지 불효가 아닐 수 없다.

그 어머니의 아픈 눈물은 내가 객지에서 병들어 마지막 하직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였다. 돌아서는 나의 다리를 붙들고 " 가지마라  고칠 수 있다"  하시며 내가 죽음의 길을 떠나는 것을 막으시고 온갖 것을 만들어 주시며 어머니의 사랑을 알게 하신 것 이었다.


우리는 눈물이 메마를 때가 있다. 너무도 기가 막힌 일을 당하거나, 갑작스레 충격적인 일을 당하였을 때 그러하다. 어설픈 목회를 한답시고 한 번의 효도를 못한 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때 늦은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모른다. 자식은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을 알리가 없다.  자식은 부보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 한다. 아기 우렁이가 어미의 몸둥이를 먹고 자라면서도 그  의미를 모르르는 것 처럼 말이다. 그것을 알게 된 때에는 부모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자신의 몸둥이를 다 주고도 더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사랑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시셨다고 요한은 보고한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를 1: 3절에서  누이들 , 마르다와 마리아의 보고를 통하여 알게 된다.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다.(3) 그 사랑하는 자가 마르다와 마르다의 오라비 나사로다. 예수는 이 말을 듣고  (이틀이  있는곳 요단의 베다니) 그곳에 더 머무르시고(6)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신다.(4)


나사로는 그 병으로 죽음에 이른다. 이것을 보신 예수께서는 그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들었다. 내가 깨우러 가겠노라 하신다.(13)  사실은 그는 죽은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다시 살리신다는 것이다 그것은 부활의 암시인 소생을 말한다. 온전히 죽고 온전히 사는 몸의 부활 말이다.(고전 15장)


예수는 죽은 나사로를 찾아 유대로 간다. 요단의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의 베다니로 발 걸음을 옮기신다. 제자들은 예수의 현실적 위험을 말한다.  유대로 가게 되면  돌로 맞아 생명의 위협을 당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8) 그러나 게으치 않으시고 유대의 베다니로 떠나신다.  그 이유는 사랑하는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사랑하는 그들의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기 때문이다.


사랑 하시는 자가 죽었다. 위험 따위가 문제 되지 않는다. 아니 정말 사랑 했다면 목숨이 두렵지가 않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땅의 값싼 사랑을 보며 주님의 사랑의 대한 결연한 행동을 보게 된다. 몇푼의 물질로 사랑을 주고  판다.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사랑을 배신한다.  그 곳에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거짓된 사랑이 있을 뿐이다. 계산 된 사랑이 있을 뿐이다.


예수께서 마르다 마리아의 집에 오신다는 말을 듣고  마르다는 버선 발로 뛰어 나가 맞고, 마리아는 집에 앉아 맞는다.(20) 마르다와 마리아는 주님을 원망하듯 그러나 아쉬움으로  그의 현존을 이야기한다.(21.22. 32)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눈물과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영과 괴로움이 깊게 요동치시며, he was deepiy moved in spirit and troubled) 그를 어디에 두엇느냐 물으신다.(34)


그리고 눈물을 흘리신다.(35)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눈물 흘리는가?
우리는 어느때 눈물을 흘리는가?

교회가  잘 성장하지 아니할 때
사업이 어려워질 때

 

원치 않는질병이 들었을 때와 갑작스런 사고를 당했을 때
자녀가 원하는 삶을 살지 않을 때
사랑 하는 이가 돌아서고 등을 돌릴 때
존경하는 이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버림을 당 할 때
은혜를 베푼 자가 배은망덕으로 목을 조여 올때


아니 역사가 뒤 틀리고 민중의 삶이 피폐의 나락으로 떨어질 때
나라와 민족의 앞 날에 먹구름이 밀려 올 때 
흘려야 할 눈물의 종류도 많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랑하는 자의 죽음으로 인하여 괴로움과 영이 요동치며 
눈물을 흘리셨다.


사랑하는 자의 죽음 그 것은 견딜 수 없는 아픔이다.
그것이 자식도 되고 
형제 자매도 되며, 동족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기아와 전쟁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세계의 민중이 될 수도 있다.


오늘의 거짓 된 역사와 
분단의 벽을 바라보며 울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다.

예수의 눈물은 사랑하는 자의 죽음 때문이다.
그의 영과 괴로움이 깊게 요동치는 눈물이다. 

눈물이 없는 시대와 삶은 사랑이 메마른 시대이다.
눈물이 없는 시대는 황량한 죽음이 지배하는 시대이다.

죽음을 보고도 눈물이 없는 독한 영혼은 사람의 영은 아니다


자신의 혈연과 이익만을 위하여 흘리는 눈물은 가증스럽고 값싼 눈물이다.

예수는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신다.
예수는 사탄의 장난으로 드리워진 분단의 벽을 보시고 우신다.
예수는 화려한 예배당과 거짓된 복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며 호위호식하는

한국 교회를 보며 눈물 흘리신다.


추잡하고 더러운 교권을 보며 가슴 아파하고 안타까워 눈물 흘리신다.예수는 오늘도 변두리에서 배고픔과 아픔과 추위에 떨며 잘못된 권력에 의하여 갇히고 매 맞고 일터에서 쫓겨나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의 삶을 보시고 우신다.


예수는 각종 질병과 숱한 고난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삶을 보시고 우신다.그리고 그들 모두가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부르시고 계신다.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편히 쉬게 하리라( 마 !1: 28)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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