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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시편 119)

신솔문 (전북동노회,임실전원교회,목사) 2012-01-27 (금) 10:57 10년전 3390  
전북기독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처음 시편을 쭉 읽다보면 특이한 시를 만나게 됩니다. 아기자기한 산길을 걷다가 갑자기 긴 평원에 들어선 느낌이지요. 무려 176절로 이루어졌는데도 단어나 표현의 반복으로 얼핏 ‘풍경’의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여서 빨리 통과하는데 의의를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눈여겨봐야 얻을 수 있는 묘미를 놓치고 마는 것입니다.
이 시편은 119편입니다. 쓰다 보니 길어진 시가 아니라 답관법(acrostic)이라는 형식으로 짜인 시편입니다. 히브리어의 22개 알파벳 순서에 맞추어 각 연(聯)을 시작하고 하나의 연당 8행(行), 총 22연 176행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결을 보면 반복되는 표현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찬송가 후렴구 비슷합니다. “언약의 말씀”을 사모한다는 주제를 반복적으로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지요. 각 연에서 이 바탕을 괄호를 묶은 후 나머지에서 변주(變奏)를 포착하면 얼핏 단조로운 풍경 속에서 다채로운 의미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연은 169~176절입니다. 이러한 해석 방법을 적용하여 쭉 읽어오다가 이 대목에 이르면 약간 난감해집니다. 칸타타의 피날레에서 우리가 예상하는 마무리가 있는 것처럼, 마침내 도달한 이 길고 긴 시편의 마지막 연에 대해서도 비슷한 기대가 있기 마련입니다. 애쉬(C. Ash) 목사님은 이러한 마무리를 떠올립니다.
“내 말을 들어보라! 나는 위대한 성경학자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한 연당 여덟 절씩 할당해 총 스물두 연으로 된 훌륭한 시를 썼다. 짜임새는 아주 정교하고 신학적으로는 심오하다. 내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이제는 승리를 누리며 당당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모두에게 꼭 알리고 싶다. 수많은 대회에 강사로 나를 초청해도 좋다. 아름다운 아내와 최신 자동차, 넓은 사무실, 성공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내 사진을 찍어 광고 책자에 실을 기회도 주고 싶다. 나에 대해 ‘이 사람은 제자도와 결혼생활과 가정생활과 사역에 완벽하게 성공한 사람입니다’라고 소개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통상적인 기대와 마지막 연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해피엔딩이 아닌 듯 보이며, 뭔가 흐지부지된 느낌입니다. 그래서 해피엔딩이라는 ‘당위’를 위해 우리들은 적극적인 해석을 투사합니다. 예를 들어 22연 8행에서 앞의 네 개 행의 메시지는 “주여, 들으소서!”이고 나머지 네 개의 행은 “주여, 행하소서!”라는 것이죠. 이렇게 해야 제대로 마무리 된 느낌을 우리는 갖습니다.
 
하지만 애쉬 목사님은 시편 119편의 마무리에서 어떤 메시지를 발견합니다. 과장된 삼류 간증이 아닌, 영적 진실을 여운(餘韻)으로 남겨두는 마무리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연 처음 두 행은 어두운 분위기입니다. 대단원의 마지막 연이니 애초에 어려움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 좋겠는데, 또 탄원 기도라니요. 다행히도 그 다음 네 행의 분위기는 밝게 바뀝니다. 전날의 한숨이 노래가 되지요. 이제 끝까지 이 분위기 유지하면 해피엔딩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두 절에서 다시 어두운 분위기가 나타납니다. 절박한 간청 기도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불순종을 함의할 수도 있는 ‘방황하다’는 동사를 써서 자신을 길 잃은 양으로 비유하기까지 하지요.
결국 아쉬움을 주고 마는 마무리가 되었는데, 사실 여기에 아주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고 애쉬 목사님은 봅니다. 비현실적인 영웅담이 아니라,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긴장 상태에서 은혜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성도의 현실,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경험을 드러내주자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현실을 직시하고 성공자가 아닌 순례자로서 겸허하게 언약의 말씀과 주님의 은혜에 부단히 의탁하는 성도의 길을 강조한다는 것이죠.
제가 보기에 미완의 결말인 119편 176절은 다시 119편 1절로 이어져야하며 이러한 성화(聖化)의 반복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영화(榮化)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우리 순례자인 것 같습니다.
 
벌써 2012년 1월이 훌쩍 지나가버렸습니다. 새해를 원대한 소망가지고 시작했지만 이쯤 되면 예년과 여전히 비슷한 일상에 자조(自嘲)적이기 쉽습니다. 170여 절을 달려왔는데 다시 슬픈, 시편 119편의 마무리를 보는 느낌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네 삶의 현실이고 진실입니다. 이 불편함에 당황하실 것 없습니다.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시편 119편 기자처럼 다시금 언약의 말씀과 은혜에 의지하십시오. 이러한 신앙결단-작심삼일은 시지프(Sisyphus)처럼 반복적이지만 그와는 달리 우리는 천성을 향해 전진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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