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홍성표

한나(Hannah)의 기도

홍성표 (서울북노회,예수제자,목사) 2012-02-01 (수) 05:28 12년전 3452  

존 맥아더(John MacArthur 예수님의 기도) 의하면,  유대인 들을 향한  부족한 생활의 지적을 세가지 영역, 구제 기도  금식에 촛점을 맞추었다 말 한다. 그리스도인 에게 있어서 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다함이 없다. 예수님의 기도의 시작은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 에서 40 일을 금식 하신것 에서 부터이시다.(마 4:2)

맹자도 하늘이 쓰는 사람은 먼저 주리게하여 배고픔을 알게 한다 하였다. 사람이 주려 본 경험이 없는 자가 어찌 가난한 자와 배고픈 자의 심정을 알겠는가? 가난과 배고픔의 삶을 겪고 나서야 비로서  삶을 알기 시작하고 하늘의 뜻을 깨닫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사람에게 보이려 하거나 자랑하지 말라 하셨고, 골방에 들어가 은밀한 중에  아버지께 해야 하며,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 하지 말라 하셨다( 마 6: 5-7) 그리고 주의 기도를 가르치셨다 ( 마6:9-13)

또한 금식할 때 금식의 티를 감추라 하셨다.(마 6:16-18), 예수님은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기 위하여 하늘을 향하여 감사의 기도를 하셨으며(마15: 35),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랐으며(마 19:13)  예수님의 기도의 절정은 게세마니의 기도이다. 십자가의 죽임 당하심을 앞에 두고 삶과 죽음 가운데, 하나님의 대한 절대 순종과 사명의 길을 다하기 위한 사생 결단의 기도,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기도가 바로 겟세마니의 기도이다.마 26:37-39) 이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처절하고도 온 오장 육보와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과 소명의 완성을 위한 몸을 기름짜는 기도이다.

그리고 이 보다 더 처절하고 마지막 한계상황에서 부르짖는 기도가  못박힌 십자가 선 상에서의 기도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27: 46)의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자의 절규의 기도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소위 성공한 소명자의 기도와는 전혀 다른 질적 차이의 기도이다. 많은 사이비 기도자 들이 자신들이 얼마간의 금식과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는 자기 자랑의 선전을 위한 기도를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교회의 양적 성장을 자랑하며 거드름을 피우고 자만과 오만방자한 교권을 휘두르는 사이비 거짓 사업가들 과는 다르다.

한국 교회 처럼 기도의 종류와 기도의 시간을 많이 가지는 교회가 없다. 우선 새벽기도회, 금요기도회, 절기마다하는 기도회,특별기도회, 금식기도, 전도기도, 호곡기도, 국회조찬기도, 기도원의 몇 산 기도, 치유기도, 입시생을 위한 기도, 축귀기도 등 기도의 종류도 헤아릴 수 없다. 이 땅에 복음이 들어 온 이후로 한국의 땅은 기도의 강과 바다를 이루었다해도 지나침이 없다.

아마도 기도를 이 만큼이라도 하니 이정도 의 한국이 존재하는 것일게다. 사도 바울의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가장 잘 순종하는 교회가 아닐까 한다.  기도는 호흡이요 생명의 원천과도 같다.  하나님이 이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기도하는 곳에 기적이 있고 기도가 죽으면 삶은 피폐하게 된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생명인 것이다. 구하라 주실것이요 찾으라 만날 것이요 두드리라 열리리라( 마. 7:7)

이 예수님의 기도를 보며 한나의 기도를 보게 된다. 한나의 기도의 시작은 사실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과 섭리에서 비롯 된다.  당시 축첩 제도가 허용된 시대에서 라마다임 (엘가의 거주지 두개의 언덕) 소빔의 에부라임 사람 엘가나에게 두 부인이 있었다.

한나와 부니나가 그녀들이다. 고대 사회에서 여자의 출산은 그 자신의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중요한 사안이다.  한나는 아기를 잉태치 못하는 고통에 싸이게 되고 이 것으로 인한 둘째 부인 부닌나의 괴롭힘이 시작 된다 이로부터 한나의 가슴앓이와  한이 쌓이게 되고 그녀의 기도가 시작 된다. 한나는 식음을 전폐하고 그의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찬다.

결혼한 남편에 대한 미안함 과 가족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실존의 슬픔으로 인하여 깊은 한으로 괴로움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이 러한 모든 한계상황을 극복하는 것으로의 유일한 길은 성전에 나아가 창조주께 기도하는 길 외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알고  슬픔과 고통이 넘쳐 소리도 내지 못하고 내면의 고통으로 통곡하며 깊은 심연의 기도를 토해 낸다.

오직 하나님만이 들을 수 있는 마음과 심장의 고요한 소리로 술에 취한듯 오해를 불러 일으키며 깊은 탄식의 기도를 드린다.  너무 고통이 심하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 너무 간절한 사연이 한이 되어 쌓이면 말이 나오지 아니한다. 오직 신  외에는 이 탄식의 기도를 알 길이 없다.

오 주여(O! Lord!) 이 말 외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하나님을 향하여 아뢴다.  미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In bitterness of soul Hannaah wept) 너무 한이 깊고 고통이 심화 되면 입에서 쓴내가 난다.

그녀의 통곡과 울음은 밖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안에서 응어리져 요동친다.  이 고통을 하나님 여호와 창조주께서 들으신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않겠나이다.(삼1:11)

엘가가 보기에 그는 입을 열지 않기로 술에 취한 듯이 보였다.  인간의 심한 고통과 슬픔을 인간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고난 중에 인간을 찾아가 호소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오히려 위로보다는 멸시와 조롱을 받기 쉽상이다. 이 고난의 깊이에서는 신을 찾아가 기도하는 일이 제일이다. 신 만이 그 탄식을 들으실 수 있고 위로해  주실 수 있다.

그 기도를 들으신 여호와 하나님은 그로하여금 사무엘을 선물로 잉태케 하신다. 한나는 사무엘을 하나님께  주의 집에 항상 살게하신다. (LORD, and he will live there  always) 한나의 기도는 계속 된다.  내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불이 여화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다.  즐거움도 힘의 원천( 뿔)도 구원도 그 주체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는 거룩하고 흔들림 없는 반석이시다.  그러므로 그 앞에서 교만한 말을 하지말며  지식이 하나님 앞에서 지식 있는체 자랑과 오만을 떨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용맹은 꺽이고  넘어진자는 살아난다, 위치가 뒤 바뀐다. 유족한 자와 주린 자의 처지가 바뀐다.  출산 자와 무출산 자의 위치도 뒤 바뀐다.  지금의 인간의 처지가 항상 유지 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뒤 바뀔 수 있다 그러므로 교만 해서는 아니 된다.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며,  가난과 부, 높음과 낮음을 바꿀 수 있는 주권자 이시다.  가난한 자와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 에서 일으키시며 귀족들과 함께 하게 하시고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며 더욱이 알 것은 땅의 기둥이 여호아 하나님 이심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둥을 흔들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허사가 된다.  하나님을 이길 힘이 없다.  하나님을 대적 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지고 말것이다.( those who oppose  the LORD will be shattered)

사실 한나의 고통과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을  선물로 주신  이 모든 것은 철저히 하나님 자신의 계획과 섭리에 의한 것이었다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만을 의지케하고, 기도하게 하시며, 그 고통을 해결하고 기도를 들어 주실 분도 하나님 이심을 알게 하신 것이다.

고통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 이시며 그 고통을 풀어 주시는 분도 하나님 이시다. 그 하나님은 땅의 기둥 이시며 주인 이시고 우주 만물의 창조주 이시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인간의 인위대로의 탐욕을 요구하면 산산이 깨어지고 부서지는 멸망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 할 분이고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시며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유일한 분이시다.  그 분은 우리의 소망이요 우리의 삶의 가치와 의미 이시며  찬양과 영광을 받으실 분이시다.  우리의 삶과 죽음이 그 분의 손에 달렸으며, 우리의 빈부가 그 분에게 달려 있다.

그 분을 대적하는 모든 권력과 교권 자본의 오만과 교만이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우리의 살 길은 오지 그 주님을 의지 하고 순종 하는 것이다.  믿음의 기도는 그 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우리의 삶 전체를 그 분께 맡기는 것이다.

우리의 고통과 고난을 인간에게 내어 맡기고 상의할 필요없다. 우리가 삶의 문제를 상의하고  의존할 분은 오직 주님뿐 이시다. 그 것을 한나의 기도가 가르치고 있다. 

필립 얀시(Philip D. Yancey) 는 그의 책"Prayer"(기도) 에서 " 기도란 하나님을 가까이 불러 오는 도구가 아니라 거룩한 임재에 반응하는 방식을 가리킨다라고 말 한다." 또 그는  " 기도란 진작 부터 함께 계신  하나님과 계속해서  동행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라고 갈파한다. 

기도는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기도 하는 것이다. 기도는 머리로서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 하는 것이다. 기도는 말이 아니라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는 행동이고 실천이며 노동이다. 그러므로 기도 후에는 반드시 열매가 있기 마련이며 결과가 있다. 단지 그 것이 눈에 보이는 것만은 아니다.

한나는 기도 했고 응답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의 주체는 역시 하나님 자신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최고의 소통의 수단이다. 기고하는 자는 하나님께 말을 건네고 하나님은 그 말을 들으시며 응답하신다.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이며 가까이에 계신다.  기도할 때 우리는 인간과 자연의 모든 한계를 벗어나 있는 우리와 모든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덧 입게 된다.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츲ҺڻȰ ⵵ 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ȸͽ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