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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기독교역사순례

이상호 (대전노회,공주세광교회,목사) 2012-05-19 (토) 20:26 11년전 6206  
                           서울 기독교역사순례


절두산
천주교순교자기념관

지난 5월 6일 제6회 전교인 기독교역사순례가 서울지역으로 갔다. 순조롭게 달려서 먼저 보이는 마포구 합정동 일대의 한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절두산 천주교성지를 찾았다. 봉우리의 모양에 따라 용두봉(龍頭峰)·잠두봉(蠶頭峰)을 절두산이라고 불리게 된 유래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함대가 이곳 양화진까지 진격해온 적이 있었는데, 이에 흥선대원군은 "양이(洋夷)로 더럽혀진 한강의 물을 서학(西學) 무리들의 피로 씻어야 한다"고 하면서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웠으며 이와 함께 수많은 교인들을 붙잡아 양화진 근처의 이 산봉우리에서 목을 잘랐다고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절두산에서 가장 먼저 순교한 사람은 이의송(李義松)으로 1866년 10월 22일 부인·아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그후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까지 헤아려 천주교측에서는 약 1만 명가량이 이곳에서 처형당했다고 한다. 잘린 목은 그대로 한강에 던져졌고 머리가 산을 이루고 강물이 핏빛으로 변했다고 한다. 순교 100주년이 되던 해인 1966년 순교자기념관이 건립되었으며, 기념관은 성당·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체험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휘 둘러보았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근처 합정동 145-8에 위치한 외국인선교사묘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의사인 헤론의 사망에 고종이 하사하여 설립된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현재 417여 기의 묘가 있는데, 선교사들은 가족포함 145명이 잠들어 있다. 이곳에 묻힌 외국인 가운데에는 한국의 근대화 또는 독립에 크게 공헌한 인물들이 적지 않아 관심을 끈다. 그만큼 한국 근대사에서 양화진은 외국인과 깊은 관련이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일이어서 짧은 안내를 받으며 중요한 분들의 묘를 찾아 보았다. 루비 캔드릭의 묘를 쉽게 찾았고 선교사 언더우드·아펜젤러가의 묘소를 찾아보았다.

서대문 독립공원 형무소 역사관

이번에는 정동길 가는 길에 서대문 독립공원엘 들렀다. 우선 1908년 일제가 침략을 본격화하기 위하여 지은 근대식 감옥으로, 경성감옥, 서대문감옥,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 1967. 7월에 서울구치소로 바뀌는 등 여러 차례 그 명칭이 바뀐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엘 들렀다.

일제시대에는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고초를 겪고, 4·19혁명, 5·16군사정변 등 정치적 변동을 겪으면서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어 있던 곳이다. 도시의 발달로 인하여 구치소가 1987년 경기도 의왕시로 옮겨가고 서울시가 법무부로부터 이곳을 매입하여 1992년 8월 15일 광복절 제47주년을 맞이하여 독립공원으로 개원하였다.

역사전시관, 제9~13 옥사와 중앙사, 나병사, 추모비, 사형장, 지하옥사 등을 둘러보며 역사의 소용돌이를 느꼈다. 특히 독재자 박정희의 방과 민주화운동가 박형규 목사, 리영희 선생, 이소선 여사, 이돈명 변호사 등의 방도 둘러보았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점심식사 후에는 사직공원을 둘러보고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 교육 기관인 배재학당을 찾았다. 1885년 미국인 북감리교 선교사 헨리 게르하트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1858~ 1902)가 설립한 건물엔 이제 역사관이 되었다. 고종황제가 1886년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 이라는 뜻으로 ‘배재학당(培材學堂)’ 이란 이름을 하사한 곳이다.

배재학당 명예의 전당에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1875~1965), 한글학자 주시경(1876~1914), 시인 김소월(1902~1934)등 한국 근현대사에 큰 획을 그었던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배재학당은 이후 배재중학교, 배재고등학교, 배재대학교로 이어지며 무수한 인재를 배출한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최초의 감리회 정동교회

이어서 정동교회 벧엘예배당을 찾았다. 배재학당 바로 앞이다. 1897년 건축된 예배당은 문화재 사적 256호로 지정되었다. 주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무장님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한국 최초 감리교회를 둘러보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이화학당을 찾았는데 주일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지친 교우들에게 다행일 수도 있었다.

한국 최초의 장로회 새문안교회

서울 종로구 신문로1가 42번지. 1887년 9월 27일 선교사 H.G.언더우드 선교사가 설립. 광화문 서편의 돈의문(敦義門), 즉 새문[新門] 안에 있어서 새문안[新門內]이라 불리게 되었다. 서상륜과 백홍준은 이 교회에서 언더우드에게 장로 안수를 받아 조직교회로 출발한 점도 기록이다.

언더우드 기념관에 교회 사료관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일제의 탄압과 6.25전쟁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1955년 강신명 담임목사, 1981년 김동익 제5대 담임목사에 이어서 2000년 이수영 목사 6대 위임목사로 이어져 부흥하고 있었다.

보너스 경복궁과 청와대 국립민속박물관

끝으로 조선왕조 제일의 법궁인 경복궁을 찾았다. 정문인 광화문 - 홍례문 - 근정문 근정전 - 사정문 사정전 - 강녕전 -교태전의 궁궐과, 왕실의 연회나 외국사절을 접대하던 경회루를 보고 현재의 대통령궁인 청와대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다시 들어와 고종이 만든 향원정과 국립민속박물관을 둘러 본 후 돌아왔다. 너무 넓고 커서 예약하고 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돌아보아야 할 곳이었다.

계획했던 청계천과 기장총회(여신도회 희년의집)를 가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차량을 지원한 장로님과 마지막 저녁식사까지 잘 마무리하기까지 협조해 주신 성도님들께 감사하며 다음에 더 멋진 역사순례를 기약한다.




형무소 역사관


관리하기 좋게 만든 옥사들


간수 사무소











옥사 - 독림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들이 수감되었던 1920년대 감옥 원형


마루방과 고문대


박형규 목사 방


리영희 선생 방


이소선 여사 방


이돈명 변호사


한센병 죄수옥사





조형물 추모비 '민족의 혼 그릇' - 임승오 작, 이곳에 수감되었다가 순국하신 독립운동가들의 넉을 기리고 되새기기 위해 만든 작품


사형장 - 통곡의 미루나무, 2그루가 있는데 사형장 안에 있는 나무는 사형수들이 붙잡고 통곡하여 자라지 못함


교수대 - 이곳은 촬영불가


사형장 건물 - 1923년 원형 건물


시구문 -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을 사형시킨 후 외부에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을 몰래 반출하기 위해 만든 비밀통로





공주교도소도 보이네요.









































지하독방


정문


멀리 보이는 독립문


절두산 천주교성지에서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서


정동교회에서


이화학당 박물관 앞에서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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