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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규

예수믿고 망한 사람들?

이선규 (서울남노회,대림다문화센터,목사) 2012-07-03 (화) 15:13 11년전 2331  

예수 믿고 망한 사람들!

지난주 크리스천 문인들의 모임에서 화성시 발안에 위치한 제암리 교회를 방문하였다

말로만 듣던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였으며, 짧은 시간에 많은 것들을 느끼고 체험 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데 다른 데는 조금만 볼거리만 있어도 찾아 갔던 것과 비교하면 만시지탄의 마음이다.

먼저 도착 예배를 드렸는데 지역의 산 증인이시고 30여년을 목회하시다가 금년도 은퇴하신 목사님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3.1운동 당시의 상황과 오늘의 있기까지의 내력 을 말씀하시며 발안 일대가 독립 운동의 근거지가 되었다는 사실과 수많은 주민들이 갈 곳도 모른채 피난을 한 일이며 일본군 보병 79연대 소속 아리따도시어 중위는 주민23인을 제암리 교회에 가두고 총살 방화로 살해당한 사실이며, 마을 주민 주택 30여채가 방화로 전소한 사실도 새롭게 그 현장에서 듣게 되니 민족의 아픔과 상처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런 모진 태풍이 스쳐간 후 인근지역에서는 저 교회는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잘 된다고 하더니 예수 믿고 망한 교회이다”. 라는 소문이 파다하였다고 한다.

목사님이 이 교회 부임당시 노인들만 6명이 나왔는데 예배 후에 들려오는 소리는 ‘오늘이 제일 많이 나온 거예요’ 앞이 노랗더란다. 파다한 소문을 진의를 이해 할 것 같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 뒤로 23인의 합장된 무덤 앞에서 잠시 나의 삶을 돌아보며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가를 묵상해 젖어본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기마련이 아니가? 만일 누구나 죽는 시간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선악의 개념은 달라질 것이고 지금 같은 비 인간화의 무질서도 사라지 않을까? 과연 이곳에 잠들고 있는 이들은 그 마지막 순간 어떤 자세를 취했을까?

오래 동안 사형수의 최후 장면을 지켜보던 분의 증언에 의하면 다만 인생무상만을 느끼게 하는 것이 대부분 이라 하는데 옆에계셨던 장로님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처절한 죽음 앞에서 서로 함께 껴안는 모습 이었다고 일러 준다.

왜 그러했을까? 억울해서일까? 세상 것들이 너무도 아쉬워서, 아니면 공포에 두려워서 였을가? 분명 그들은 함께 위로하며 이 고통을 이기게 해 달라고 주님께 부르짖었으리라.

악착같이 재산만을 모았다거나 명예욕에 집착했던 사람들은 거의 다. 죽기를 몹시 싫어하고 두려 한다고 하는데 그런 모습, 아니면

쪼들리는 생활에 얽매어 나날을 무의식적으로 고되게 살아온 사람들은 죽는 고통 그 자체만을 괴로워하면서 떠난다고 하는 이런 모습 , 저런 모습의, 죽음의 모습을 떠 올려 본다.

[카아라인은} “울면서 밤을 세워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

고 하지 않았나. 죽음을 보지 않고서는 삶의 참 뜻을 헤아릴 수 없다는 의미 이리라.

저마다의 일생은 숨을 거둘 때 그 평가가 내려져야 한다고도 했다.

“내 몸이 산산 조각나는 것은 개의치 않아요.” 오래전 자살 폭탄 테러 요원에 자원한 한 팔레스타인 여성이 미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당 하게 밝힌 인터뷰이다. 젊은 그 녀가 가족 몰래 자폭 테러 요원에 자원한 것은 아랍을 짓밟는 이스라엘에 한 증오 때문 이었다고 한 다.

이 여성을 증오의 순교자라고 붙여주고 싶다.

성서에서 말하는 순교는 평화를 파괴하는 증오심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 나라 그리고 그 의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친 고구한 죽음에만 적용하여야 옳다.

히브리어로 순교는 ‘마르튀스는’ 증거를 뜻하는데, 그리스도 또는 복음을 증거 한다는 것은 목숨을 바치는 행위와 같은 의미로 그렇게 불려 졌으리라 확신한다.

오늘의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사도 바울과 같이 ‘나는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가? 참 그리스도인 이라면 이 흔적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하겠거늘 모두가 편하고 안일한 예수만 따르려는 무리들만 넘쳐 나 는 교회를 향하여 너희는 이 흔적을 가지고 있는가? 무덤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의 피위에 기록된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순교자들은 비록 목숨은 잃었지만 그 분들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완전한 행복을 선택하였다. 순교의 삶으로 신앙의 빛을 드러내었다. 누룩과 같이 가루 서 말 속에 드러 가서 삶과 역사를 변화 시켰다. 우리는 어떠한 삶으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할까? 에 대한 대답을 주는 듯 그들은 말없이 무덤을 찾아오는 수많은 순례자들을 향하여 말하고 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리므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그 믿음으로써 그들은 말하느니라 히11:4 ) 믿음으로 말하는 소리를

역사의 현장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바로 저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신앙의 참 자유를 누리며 풍요를 구가하고 있건만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함께 달리는 차안에서 굳은 의지가 보인다 .그래서 역사의 현장을 자주 찾아야 할 것 같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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