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이선규

깨진 석 류 맛이 그 립다.

이선규 (서울남노회,대림다문화센터,목사) 2012-10-09 (화) 10:16 11년전 1920  
깨진 석류 맛이 그립다.
전에 목회하던 교회 주차장 뒤 켠 에 어느 집사님이 심은 석류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어느 해인가 아직 채 익지 않은 석류 이지만 색깔이 너무 고와서 땄는데 깨지고 말았다.
그래서 그것을 아이들과 함께 먹어 보았다.
시큼한 맛이 입안에서 뒤 퉁 수로 그리고 눈으로 전해졌다 아이들도 그것을 먹었는데 표정이 세상에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는 표정이다. 문득 어렸을 생각이 났다. 마을에서 몇 그루되지 않은 석류나무 인지라 아이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새 빨간 이를 드러 내놓은 석류의 속살은 많은 이들을 유혹 했다.
석류 서리를 왔다가 담장에 떨어져 다친 아이이며 가시에 찔려서 고생 깨나 한 아이며 한번은 이제 막 꽃을 피워서 울긋불긋 석류 쳐다보는 재미를 더하게 하는 때 친구 몇 놈과 함께 장대를 가지고 나무에 달린 꽃을 모두다 초 토화 시키고 말았다. 그날 할아버지께 혼 줄이 나고서야 저녁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지금 석류나무 꽃을 함께 따던 친구들은 잘살고 있겠지 오늘은 어째서 인 지 옛 향수에 젖어 본다.
요즈음은 백회점과 대형 할인 마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인스탄트 식품의 맛과 비교 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 지만 그래도 어릴 때 간식으로 먹던 열매들이 스쳐지나간다.
반듯한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시내를 가득 채운 모습을 본다.
그리고 문명의 이기 속에서 우리들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 해 본다. 잃어버린 맛, 여유, 삶의 시각들 그리고 기개들... 하루를 버티기 위해서 지친 몸을 이끌고 어기적거리며 살아가는 이들, 두 눈을 감은 채 아무런 의미도 없이 목적만을 쫒아간다.
요즘 교포들과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다.
다른 날은 본인들이 해 먹으라고 밥통을 6개를 구입해 놓고 그들과 함께 서투른 음식을 만들어 먹는 재미 또한
평소에 맛보지 못한 기분이다.
이러다 보니 어느 듯 음식 맛을 내는 일에도 이력이 났다. 그런데 맛을 내는 데는 구운 소금 맛이 제격이다.
김장을 아무리 많이 담갔다 해도 거기 소금의 맛이 없다면 맛이 없고 금방 썩을 것이다. 맛있는 고깃국을 끊였다 해도 소금기가 없다면 그 고깃국은 맛을 잃고 누구나 먹기를 싫어한다.
이처럼 소금은 부패를 막고 맛을 맞추는 기능이 있어 우리의 생명과 연관되어 있는 물질인 것이다.
제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 해도 소금으로 간을 맞추지 않으면 제 맛을 잃고 만다.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 이라는 말씀을 되새기게 된다. 인간은 소금을 닮아 소금기가 있어야 하며 그 소 금기를 행동에 써야 하는데 행동에 앞서 지나친 행동을 해서도 안 되고 모자람 행동을 해서도 된다는 의미가 들 어 있다.
이 말씀은 바로 간을 맞추라는 의미가 아닐까.
여기서 말하는 간은 음식을 융화시켜 맛을 내게 하는 기능성과 같은 생각이 인간에게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인간도 소금의 기능을 발휘하면 인간과 인간이 융화되어 서로 화합 하고 사랑하며 이웃과 타자를 배려하는 세상이오지 않을까.
특히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는 물질이다. 소금에절인 음식은 금방 썩지 않는다.
싱싱한 모습을 유지하게 된다.
근래 들어 우리 사회를 가리켜 부패된 세상 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세상에 썩었다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썩어있을까.
“여러분은 땅의 소금입니다. 그러나 소금이 싱거워지면 무엇으로 짜게 되겠습니까 ? 아무데도 쓸데없으므로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뿐입니다. (마태5:13)소금은 구약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물에 항상 넣어야하는 재료이기도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맺으신 ‘소금 언약’ 즉 변치 않는 약속을 의미하기도 한다.
신학적으로는 “‘저주’ 페허 를 뜻하기도 하고 ‘정화’ 를 의미하기도 한다.
희랍어 ‘할라스’가 지니는 제사적인 기능은 신약에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세상 안에서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 신약성서의 중요한 개념임에는 분명하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세상에 짓밟힌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지 못하면 세상에서 버림을 받는다는 사실은 천만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세상은 자기들이 버린 소금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지나간다. 지난주 존경하는 선배와 함께 장준하 공원을 갔다 왔다 오면서 여러 대화를 나누는 중에 ‘그래도 암울한 시대에 그런 분이 계셨기에 한국의 교회는 이만큼 이라도 버틸 수 있었는데 이제는 한국이 교회를 외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말을 하신다.
세상에서 버림받아도 하나님께 버림 받지 않으면 희망이라도 가 질 수 있겠는데 이런 희 망 조 차 없는 것 같다 는 말을 하신다.
말은 성 총회라고 하면서 무엇이 두려워 비공개로 회의를 하고 가스총까지 등장해야하는 현실을 두고 하는 의도 인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그 분의 책을 들추다가 그 의도를 알게 되었다. ‘자기 부정이 없는 인간은 소금이 될 수 없다.
소금이 될 수 없는 인간은 역사의 구도자도 보존자도 될 수 없다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다. 자기 부정은 자기를 자랑치 않는다. 자기 업적이나 자기 능력을 의지 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는 철저한 자기 부정 일뿐 그 밖의 일은 하나님의 영력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가슴에 와 닿는다.
세상은 참으로 어지럽다. 인간의 정체성도 엉뚱한 모습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왜 그러할까?
소금 속에 더러운 물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가 소금이라는 정체성을 잊은 채 질주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그분의 말이 두뇌를 스치면서 소금의 기능을 바로 회복 하는데 한국교회의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소금 인 척 하 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것 같다 그러한 사람의 생각을 진실한 소금의 생각으로 바꾸어져야 할 것이다.
어렸을 적 석류를 훔쳐 따먹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츲ҺڻȰ ⵵ 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ȸͽ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