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인천 내리교회 탐방

이상호 (대전노회,공주세광교회,목사) 2012-11-20 (화) 21:45 11년전 8889  
1884년 황해도 송천에 세워진 소래교회는 남북이 분단되면서 그 역사성을 꾸준히 이어오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고, 새문안교회와 정동교회는 공식적이고 제도적인 측면에서 한국의 모교회들이라는 사실에는 아무 이의가 없다.

그런데 인천에 선교사적(宣敎史的)인 차원에서 모교회로 불릴 수 있다는 교회가 있어서 어제 찾아보았다. 내리감리교회이다. 월요일은 모든 박물관, 교회들이 쉬는 날이라는 것을 깜빡했다. 다행히 관리권사님이 친절하게 안내해주어서 둘러볼 수 있었다.

한국 개신교회의 공식적인 선교는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제물포 항에서부터 비롯되었으며 제물포 선교의 첫 열매가 바로 내리교회이기에 모교회라는 것이다. 내리교회는 1885. 7. 29 아펜젤라 선교사에 의해 시작된 '한국의 어머니교회'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언더우드와 달리 아펜젤러는 부인과 더불어 곧바로 입경하지 못한 채 두 차례에 걸쳐 약 45일 동안 제물포에 체류했고 두 번째 체류 기간 동안에는 아예 초가집을 세내어 내리교회 주변에 기거하면서 선교적 사역이라고 볼만한 일들을 여러 차례 시도했고 선교의 씨앗을 뿌렸다는 것이다.

1887년에 아펜젤러가 인천에 파송한 노병일은 1890년에 한국 최초의 자비량 예배당인 회당 여섯 칸을 건축했다. 1894년 한국 최초의 여성 전용 예배당을 자력으로 건축했다. 아펜젤러를 뒤이어 제 2대 담임목사요 제물포 선교 책임자로 부임한 존스(趙元時) 목사는 1893년 강화 교산교회 개척을 필두로 담방리교회(현 만수교회), 강화 홍의교회, 강화 상도교회, 강화 고비교회, 부평 굴제교회 등을 차례로 개척하여 내리는 명실상부 인천 강화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1892년에는 존스 선교사의 부인에 의해서 영화학교가 설립되었는데 현존하는 한국 최초의 초등교육기관이 되었다. 내리는 또한 1901년 5월 김창식과 더불어 안수 받은 한국 최초의 목사요 노병일이 전도해서 얻었던 인천 최초의 결신자인 김기범 목사를 배출했다. 그 5대째 후손이 오늘까지 내리에 출석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 한국 감리교회의 못자리판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하와이 이민사에 길이 남을 선구자들을 길러냈는데 김활란 서은숙 김영의 김애마 등 이화 대학의 창립주역들이 내리와 영화 출신이고 황정순 곽규석 이혁재에 이르기까지 다재다능한 연예인들도 나왔다. 이익모, 신홍식, 김영섭, 윤창덕, 김종필, 이복희 목사 등의 지도를 받은 수많은 목회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1954년 한국 최초로 헨델의 메시아 전곡을 초연한 이래 오늘까지 매년 메시아 전곡을 공연해오고 있다고 한다.

휴일인데도 본당에는 파이프오르간 연주자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아쉬운 점은 역사를 자랑하고 한국선교사적 모교회라 주장하는 내리교회 역사관이 너무나 초라한 점이다. 중간에 불이 나서 모든 역사자료를 태웠다는 얘기다. 그러나 교회뒤편과 복도에 설치한 역사적인 사진들을 보는 것으로 역사를 대신했다.



내리교회 전경 - 선교 100주년에 세운 예배당(1985)


내부


110주년에 봉헌한 대형 파이프오르간


휴일인데도 연주를 해 예배당 안이 꽉찼습니다.


기둥이 없는 것이 특징





역사관 : 그나마 그라프로 사용, 역사의식 부재현장의 모습이었다.


아주 어렵게 촬영


33인중 한분이었던 신홍식 목사도 시무





























아펜젤러, 김기범, 존스 목사상









아펜젤러 비전센터 건축과 웨슬리 예배당 복원


미주 한인선교 100주년 기념탑


1902.11한국 최초의 하와이 이민선 제1호선에 내리교인 50명이 이민감, 이어서 홍승하 전도사 파송, 1903.11.03 현 호놀롤루 미연합감리교회 창립








읽어보려고 무조건 담았습니다.






공주시기독교역사위원들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츲ҺڻȰ ⵵ 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ȸͽ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