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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제공동체와 떼제찬양

이상호 (대전노회,공주세광교회,목사) 2012-12-18 (화) 15:22 9년전 6220  
떼제공동체와 떼제찬양

예수영성제자훈련을 하다보니 떼제공동체와 떼제의 묵상노래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먼저 떼제공동체에 대해 알아보고 이어서 떼제 찬양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떼제공동체는
1940년, 25세의 스위스 출신의 청년 로제 수사로부터 시작, 그는 2차 대전의 참화속에서 신뢰와 나눔, 화해를 실천 할 공동체를 일구었다. 로제 슈츠(Roger Schutz)는 1915년 스위스의 너샤텔 근처 프로방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개혁교회 목사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 아버지 역시 로제가 어렸을 때 가톨릭교회에서 기도할 만큼 에큐메니컬한 사람이었다. 로제가 교파를 초월한 화해의 공동체를 만들었지만 그 자신 역시 개신교 출신이라는데 우리의 자부심이 있다.

로제는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 이후의 허무주의와 패배주의에 젖은 유럽의 영성적 기후 아래 자랐다. 폐결핵으로 요양하던 중 강력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다. 유럽의 평화와 갈라진 그리스도인의 화해를 위해 아주 작은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었다. 기도와 준비 끝에 25세의 나이로 로제는 스위스를 떠나 전쟁으로 고통 받는 프랑스로 갔다. 공동체를 시작할 집을 찾던 중 고도(古都) 클루니(Cluny)에 도착했고 근처에 집 하나가 났다는 말을 듣는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두리번거리다가 폐허처럼 버려진 집에 들어가 할머니에게 먹을 것을 구해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받았다.

다음 날 길을 떠나려고 집을 나설 때 할머니가 한 말이 로제의 영혼에 부딪쳤다. “젊은이, 여기에 머물게. 우리는 너무 가난하고 외롭다네.” 그날 로제는 이 말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다. 그리고 근처에 집을 사 혼자서 기도하며 살기 시작했고 피난민들, 특히 유대인들을 맞이했다. 그 마을의 이름이 떼제였다.

몇 년 뒤 첫 형제들이 동참했다. 유태인들을 숨겨주어 나찌로부터 위험을 겪기도 한 로제 수사는 1949년 그와 뜻을 같이한 여섯 형체와 함께 서약, 떼제공동체가 탄생한 것이다. 후에는 교회 지도자들도 떼제를 찾아온다. 공동체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켄터베리 대주교 세 사람, 정교회 대주교들, 스웨덴 루터교의 주교(감독)14명과 세계 각지의 수많은 목사들을 맞이했다. 1962년부터 떼제의 형제들은 소리없이 동유럽을 방문하거나 준비된 젊은이들을 파견해서 고립된 이들과의 접촉과 나눔을 쉬지 않았다.

떼제가 주는 은혜는 거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환대받는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떼제에 있는 사람들은 소수의 수사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나그네들이다. 많을 때는 매주 5000명까지 오고 1년에 10만명이 온다. 매주 토요일 저녁, 주일 오후는 오는 사람, 가는 사람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곳을 찾는 사람은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를 비롯, 전 유럽을 망라한다.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서 온다.

떼제의 생활
은 성찰과 나눔의 시간, 매일 세 번의 공동기도 참석, 생활에 필요한 실제적인 노동 등으로 이루어진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하루 세 번 드리는 공동기도(예배) 시간이다. 무슨 일을 하다가도 기도 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일손을 내려놓고 교회로 모인다. 아침 기도는 8시15분, 낮 기도는 12시20분, 저녁 기도는 8시30분에 시작된다.

공동체 규율
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칙이지 사람을 속박하기 위한 법적 조항은 아니다. 떼제는 아무도 붙잡지 않으며 아무도 구속하지 않는다. 떼제는 마치 옹달샘과 같다. 누구든지 목마르면 와서 갈증을 풀고 가면 된다. 자원봉사가 있지만 그것은 하는 만큼만 하면 되고 힘들면 쉬어도 된다. 어떤 강제규정도 어떤 종파적 규율도 없다. 창설자 로제수사의 말이다. “하나님은 힘센 방법으로 겁을 주어 자신을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거룩은 결코 강압으로 되지 않는다.” 공동체를 공동체답게 만드는 것은 규율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다.

떼제찬양 :
우리 예배와 비교하면 떼제의 예배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예배의 중심이 설교가 아니라 찬양이라는 것이다. 설교는 성경읽기와 침묵기도가 대신한다.

떼제 찬양은 떼제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가톨릭 미사곡이 중후하지만 너무 무겁고 개신교 찬양은 자유스럽지만 조금 가벼운 느낌이 있는데, 떼제 찬양은 이 양 극단을 보완했다. 초기에는 프랑스 작곡가 자크 베르티에(Jaque Berthier)가 대부분을 작곡했다. 그가 곡을 쓰면 공동체 안에서 먼저 불러 보고 익숙해지면 공식적인 찬양으로 올렸다고 한다. 떼제 찬양은 단순하다. 대부분 한두 소절의 반복이요, 내용은 물론 성경적이다. 찬양의 내용은 주로 ‘경배’이다. 인간의 요구를 위한 찬양은 거의 없다. ‘키리에’ ‘할렐루야’ ‘글로리아’ 등 직접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떼제 찬양은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지는 찬양을 지향한다.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인간을 위한’ 찬양에 익숙한 사람들은 순전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에 잘 적응하지 못하지만 점차 그 속에서 하나님의 깊은 임재를 체험한다. 그렇다. 하나님을 향해 직접 말하는 찬양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떼제 찬양은 반복한다. 찬양을 반복하는 이유는 처음에 가사가 주로 프랑스어 라틴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외국인에게 도움을 줄 목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반복이 찬양에 도움이 되고 반복 자체가 찬양의 본질임을 알고 한 곡을 보통 대여섯 번 아니 스무 번 이상 부른다. 처음에는 진부하게 느끼지만 같은 내용을 반복하면 가사의 내용이 심령에 배어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진다.

우리의 찬양은 가사가 갖는 깊은 영적 의미보다 찬양의 감성적 선율에 더 지배를 받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떼제 찬양은 기교가 없고 단순하다. 일체의 당김음, 가성도 없다. 선율은 서양의 이지적 선율도 아니며 동양의 구슬픈 가락도 아니다. 고도의 절제된 균형미와 축제의 기쁨이 배합된 노래로, 감성적 파토스(pathos)를 뛰어넘어 영혼을 해방시키는 깊은 영성의 경지에 이른다. ☺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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