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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안동답답(安東畓畓)

김성 (서울동노회,예수원교회,목사) 2013-01-04 (금) 10:38 8년전 5893  

                            
            
                                                 안동답답(安東畓畓)
 
2013년 1월의 담임목사 추천도서로 소개한 <다산어록청상>엔 <안동답답>이란 짤막한 글이 실려 있습니다.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산 속에서 지낸 날이 오래다보니 시험 삼아 각종 풀잎과 나무껍질을 채취해서 즙을 내거나 달여서 옷감에 물을 들여 보았답니다. 그랬더니 오색(五色)과 자주색, 녹색 외에도 그 빛깔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기이한 색깔들이 헤아릴 수도 없이 튀어나왔답니다. 다산선생은 그제야 중국에서 들여오는 비단과 종이에 물들어 있던 기이하고 고운 색깔들이 모두 산천의 평범한 초목들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다산선생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색(五色)외에는 오로지 자주색과 녹색만이 전부인 줄 알고, 어떤 빛깔이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면 모조리 쓸모없는 것인 줄로 알고 내다버리는 행태를 비로소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안동답답(安東畓畓)이라는 것입니다. 시험 삼아 몇 조각의 종이를 버릴 요량하고 여러 뿌리와 껍질을 두루 섞어 시험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이처럼 서로 감응하는 사물의 성질을 다 궁구해볼 길이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다산이 말한 안동답답(安東畓畓)이란 무슨 뜻일까요? 책의 지은이는 <곧이곧대로 하던 대로만 하는 것을 다산은 안동답답이라고 표현했다>고 말했습니다. 마치 안동양반들이 옛 것만 고집할 뿐 새것을 얻기 위해 실험정신을 가지고 도전하지 못하는 것을 다산이 몹시 답답하게 여겼다는 뜻입니다. 인순고식(因循姑息)만을 미덕으로 알아서는 발전이 없다고 다산은 생각했습니다. 좀체 낡은 습관과 폐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익숙한 것에 평안함을 느끼고 안주하려는 태도를 다산은 답답하게 여겼습니다.
안동답답을 한자사전에서 찾아보면 안동(安東) 대신에 안동(按棟)으로 나옵니다. 안동답답(按棟畓畓)은 용마루기둥을 가슴에 안고 있는 답답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용마루는 지붕 꼭대기 가장 높은 곳에 가로로 놓인 기둥을 말합니다. 커다란 기둥을 가슴 가득히 안고 있으면 얼마나 가슴이 답답하겠습니까? 다산선생은 안동(安東)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양반 식자층이 오로지 옛것에만 고루하게 집착하는 모습에서 큰 기둥을 가슴에 끌어안고 놓지 못하는 답답한 모습을 모았던 듯 합니다.
 
오로지 성리학만을 절대진리로 신봉하고 고전에 대한 해석도 주희의 해석을 벗어난 해석은 모조리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이단시했던 꽉 막힌 시대 속에서 다산선생은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학문의 세계, 정치의 세계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색깔을 취사선택하는 미(美)의 세계에서조차 옛것, 익숙한 것만을 고집할 뿐 새것을 실험적으로 추구해보지 못하는 풍토에 다산은 절벽 같은 답답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아까운 종이 몇 장쯤 버릴 각오를 하고 새로운 색깔을 찾아보려는 실험정신이 있어야 새 것을 만날 수 있다고 다산은 힘주어 말했습니다.
 
최근 논란 끝에 비록 한시적이긴 하지만(혹한기 1~2월) 새벽기도회시간을 오전 5시에서 오전 9시로, 수요예배시간을 오후 7:30분에서 오전 11시로 옮겨서 시행해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유는 보다 많은 성도들의 참여를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오래도록 지켜오던 예배시간을 옮긴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논란의 와중에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하루의 첫 시간인 새벽에 기도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분은 새벽기도회가 아침기도회로 바뀌는 것이 내심 탐탁지 않은 분도 계실 것입니다. 물론 새벽시간이 가지는 신령한 상징성이 분명히 존재하고 새벽기도 드리는 정성이 또한 고귀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새벽이 신령한 시간이고 그 시간에 깨어 기도하는 정성이 아무리 갸륵하다할지라도 성도 대부분이 현실에서 새벽기도에 실패하고 있다면, 굳이 새벽시간에 기도해야 한다고 우리 모두가 새벽에 목을 맬 이유가 없습니다. 새벽을 신비화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도시대에는 지금과는 달리 교회가 정한 하루 세 번의 기도시간이 있었습니다. 우선, 유대시간으로 제삼시(오전9시)를 기도시간으로 정해놓고 기도했습니다. 이유는 예수께서 제삼시(오전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입니다.(막15:25) 또한 제육시(정오)를 기도시간으로 정했습니다. 이유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로 인해 온 땅에 어두움이 임했기 때문입니다.(막15:33)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구시(오후3시)를 기도시간으로 정했습니다. 이유는 예수께서 그 시간에 절명하셨기 때문입니다.(막15:34)
 
사도시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의 시간표에 따라 기도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사도시대교회는 기도생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억하려 애썼다는 점입니다. 기도시간을 십자가 고난과 죽음의 시간표에 맞춘 이유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받고 되살려야 하는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 일상의 삶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것을 위해 일상적인 기도생활이 필요한 것이고, 매일의 새벽기도는 그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 실제로 일상적인 기도생활을 하느냐 여부이지 새벽이라는 특정한 시간에 기도하느냐 여부가 아닙니다. 보다 많은 성도가 일상적으로 기도할 수 있다면 하루 중 어느 시간대로 옮겨도 상관없는 게 기도시간입니다. 대부분의 성도가 실제로 하지도 못하는 새벽기도라는 용마루기둥을 안고 서로가 답답해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어떤 문제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과감한 실험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새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당장 수요예배는 저녁시간에서 오전으로 시간을 옮기고 난 후로 이전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종전에 하던 것만 곧이곧대로 하는 안동답답(安東畓畓)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새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에도 진보가 있습니다.
                                  
 
                                                


이규헌 2013-01-08 (화) 15:05 8년전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경북 안동에서 목회하는지라 글 제목이 눈이 확 띄더군요.
내용이 실감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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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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