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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

항아리

김성 (서울동노회,예수원교회,목사) 2013-01-25 (금) 11:32 11년전 3868  
                                                - 항아리 -
 
정호승 시인의 동화 <항아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도자기를 만드는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 젊은이가 만든 첫 번째 작품은 투박한 항아리였습니다. 서툰 솜씨로 만든 것이라 볼품이 없었습니다. 젊은이는 항아리를 뒷마당에 버리듯이 갖다 놓은 후 잊어버렸습니다. 항아리는 자신이 버려지고 잊힌다는 것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젊은이가 삽을 가지고 와서 깊게 땅을 파고는 모가지만 남겨둔 채 항아리를 파묻고는 돌아가 버렸습니다. 항아리는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이건 뭐지? 그 날 밤, 젊은이가 항아리에게 다가왔습니다. 항아리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항아리는 자신을 찾아준 젊은이를 향해 마음속으로 가슴을 크게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젊은이는 바지춤을 열더니 항아리를 향해 오줌을 누는 것이 아닙니까? 오줌을 갈기고선 젊은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항아리는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내가 오줌독이 되다니! 그 날 이후 젊은이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선 실컷 오줌을 갈기곤 돌아갔습니다. 항아리의 가슴께까지 오줌이 차오른 채 겨울이 찾아왔고 항아리는 오줌이 얼어붙어 자신이 터져버리지는 않을까 조바심을 치며 겨울을 지났습니다. 봄이 찾아오고 항아리 안의 얼었던 오줌도 녹았습니다. 사람들이 밭을 갈고 씨를 뿌렸습니다. 그리곤 항아리에 가득 담겨있던 오줌을 퍼다가 밭에 뿌렸습니다. 밭에 심은 배추와 무들이 씩씩하게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항아리는 흐뭇했습니다. 자신이 오줌독이 되어 오줌을 모아준 것이 배추와 무에게 큰 힘이 된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엔 오줌독보다는 무언가 좀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쓰임 받고 싶은 열망이 달아올랐습니다.
 
그 후로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항아리를 만든 젊은이도 늙어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항아리를 짓던 가마도 허물어져 폐허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그림자라곤 찾아볼 수 없고 들짐승들만이 가끔씩 곁을 지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갑자기 두런두런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폐허가 된 가마터 위에 사람들이 꽤 큰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사람들이 짓는 큰 집은 다름 아닌 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몇 해에 걸쳐 일주문과 대웅전, 비로전 등을 짓고 종각까지 지었습니다. 종각이 완성되자 사람들이 종을 가져다 걸었습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새벽마다 종을 쳤습니다. 항아리는 그 종소리가 새소리처럼 아름답게 들렸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소리가 아름답지 않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종소리가 탁하고 진중한 울림이 없다고들 야단이었습니다. 절의 주지스님은 어떻게 하면 맑고 아름다운 종소리를 낼 수 있을까 날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항아리 앞에 주지스님의 발이 와서 멈추어 섰습니다. 주지스님은 한참 동안 항아리를 내려다보더니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으음, 이건 아버님이 만드신 항아리군. 이 항아리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니, 이 항아리를 묻으면 좋겠군” 주지스님은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고 곧 항아리를 파내 종각의 종밑에 다시 파묻었습니다. 항아리는 무엇 때문에 종 밑의 땅에 파묻히는 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 날 새벽,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새벽에 종을 치자 종소리가 항아리 안에 들어와 항아리 안을 한 바퀴 휘돌아나가면서 너무도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끊어질듯 이어지고, 이어질듯 끝나며 종소리는 항아리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맑고 아름다운 소리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항아리는 그제야 자기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오랜 세월을 기다려왔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소중한 무엇이 되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고요한 산사에 종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항아리는 기쁨으로 가득차 올랐습니다. 한 때는 오줌독이었던 자신이 산사의 아름다운 종소리를 낸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습니다. 항아리는 비로소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찾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누구의 삶이든 참고 기다리다보면 세상에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난주에 크리스찬치유상담연구원에서 주최하는 <영성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2박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영성수련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가슴 아픈 상처와의 만남을 통해서 너무도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항아리처럼 누군가에 의해 세상에 빗어져 나온 존재들입니다. 어떤 항아리든지 뜨거운 가마 속의 열기로 구워져 세상에 나올 때는 어딘가 쓸모가 있기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세상에 나와 보면 한 동안 쓸모없이 버려지기도 하고 사람들이 대놓고 오줌을 갈기기도 하고 오랜 세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인생도 항아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우리 모두 세상에 태어날 때는 어딘가 쓸모가 있기에 태어났을 것입니다. 다만 항아리처럼 자신의 용도를 스스로 미처 알지 못할 뿐이지요. 항아리가 종 밑에 파묻힌 후 비로소 깨달은 것처럼 버려지고 모욕을 당하고 상처를 받고 잊히는 한 때를 참고 견디다 보면 언젠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소중한 존재로 쓰임 받을 때가 누구에게나 찾아올 것입니다. 쓸모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상처로 금이 가고 깨지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로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들 인생입니다.
                                                                                                    (2012.1.26)
 
 
김성 칼럼은 베리타스(www.veritas.kr)에서 큰 활자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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