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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맛 나게 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김민수 (서울북노회,한남,목사) 2013-02-22 (금) 12:57 11년전 3534  
살맛 나게 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마태복음 5:13
 
살맛이 안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맛이 좋다, 나쁘다는 것은 단지 음식에 국한된 말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하나의 상징적인 단어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일까요? 살맛 안나는 세상을 살맛 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닐까요?
 
성서에는 소금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먼저 창세기에는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19:26)가 나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3034절 이하에 보면 거룩한 향을 만들 때에 성결케 하는 의식으로 소금을 칩니다. 역대하 135절에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언약을 소금 언약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복음서의 말씀에서는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대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하십니다. 마가복음 950절에는 소금의 맛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하십니다. 서신 골로새서 46절에서도 말을 할 때에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고 합니다. ‘소금에 대해 성서에서 언급된 내용을 보면 대부분이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소금에는 이중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누룩과는 달리 보존하고 정화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누룩은 본질의 변형이라는 상징으로 부정적으로 많이 사용되었지만, 그와 다른 개념으로 소금이 사용된 것은 본질의 보존’, ‘정화라는 상징과 맛물려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소금의 기능으로서 소금은 맛을 내는 양념입니다. 모든 음식에 소금은 필수입니다. 그리하여 이런 소금의 본성에서 계약의 소금’(2:13, 18:19, 역대하 13:5)이며, 짠맛을 절대로 잊지 않는 소금으로 상징되는 영원한 계약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서에서 소금은 보존하고 정화하는 의미보다는 맛을 내는 것으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소금으로 산다는 것은 살맛 나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입니다.
 
첫째, 여러분이 양념이 되십시오.
 
음식에 사용되는 소금은 양이 많지 않습니다. 음식과 비교하면 아주 작은 양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소금은 그 형태 그대로 사용되기보다는 녹아서 그 형태가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없으면 안 되는 양념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작은 양이지만, 보이지도 않지만, 소금이 빠지면 음식의 맛을 낼 수 없습니다.
 
세상은 어떠합니까?
이렇게 드러나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을 잘 모릅니다. 알아주려 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큰 것만 되기를 원하고, 드러내지 않으면 존재감이 상실된다고 생각합니다. 큰 것을 추구하는 것은 맘몬입니다. 맘몬의 세상에서 자기 스스로 높아지거나 드러내지 않으면 실패한 삶으로 규정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소금과도 같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 양념 같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습니까?
 
그러나 압니다.
미식가들뿐 아니라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소금을 인지하고 있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있어 음식이 맛나다는 것을 알 듯이, 소금과도 같은 사람이 존재함으로 이 세상이 여전히 살아갈 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더 잘 아십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신앙인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렇게 보이지 않아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자기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속해있는 곳에서 양념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저 사람이 있어 살 맛이 난다는 칭찬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 칭찬을 받지 못해도, 그런 삶을 살아간다면 자부심을 품고 살아가십시오.
 
둘째, 양념이 되지 않으면 버려져 짓밟히게 됩니다.
 
길가에 버려진 소금, 이 얼마나 비참합니까?
우리는 이런 현실들을 목도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신앙인들이 교회가 세상에서 짓밟히고 있습니다. 가짜 신앙인들과 대형보수교회들의 행태로 인해 개독교라고 욕을 먹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본질이 변해서 그렇습니다.
 
위에서 소금계약이라는 말씀을 드렸지만, 절대로 변하지 않는 복음의 본질을 오늘날의 교회와 신앙인들이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 화학조미료를 과다하게 사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맛은 비슷한 것 같은데, 소금이 낸 맛이 아니라 화학조미료가 낸 맛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앙인이나 교회 자체가 개독교라고 비판받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인 척, 교회인척하는 것들이 비판을 받는 와중에 신실한 신앙인과 교회도 도매급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간혹 목회자로서 목회적인 양심에 따라 그릇된 기독교와 신앙에 대해서 비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감싸주지 못할지언정 같은 편끼리(?) 비판을 한다고 시비를 겁니다. 그런데 감싸주어야 할 것이 있고, 개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더는 신앙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교회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것들을 향해 침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밖에 버려져 짓밟히는 소금, 이 얼마나 비참합니까?
회복되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생활하는 삶의 현장에서 신앙인으로서 비아냥거림을 당하는 수모를 겪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신앙인이라는 것이 저래?’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앙인으로서 인정받을 만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 인정이라는 것은 무조건 적인 칭찬이 아닐 수도 있지만, 길에 버려져 짓밟히는 것인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인지 지혜롭게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세상을 살맛 나게 하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민주주의가 억압당할 때에는 민주주의를 외치던 이들이 세상을 살맛 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굶주림으로 배고파하는 이들에게는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살맛 나게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아보십시오. 살맛이 안 나서, 힘겨워서 한숨을 쉬고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곳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을 위해서 먼저 자신의 삶이 살맛 나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안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위선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살맛 나게 하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자신의 삶이 맛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세상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기 정체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신앙인들의 자기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뜻이 있어 이 땅에 보내진 귀한 존재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지켜주실 것이다. 이런 것들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중에서 별 볼 일 없는 것은 없습니다. 나에 대해서도 이웃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짓는 일입니다. 죄를 짓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자녀를 향해서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을 따라 이 세상에서 소금으로 살아가시고, 그로 인해 여러분 가는 곳마다 살맛 나는 일이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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