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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표

생명으로 가는 길(막8:31)

홍성표 (서울북노회,예수제자,목사) 2013-02-28 (목) 12:08 11년전 3473  
교회는 지금 소위 사순절을 지나고 있다. 사순절에는 예수의 삶과 사역 그리고 죽음과 부활을 향한 그의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그는 오셨고 이 땅의 개인과 구조악과 그리고 우주적 악과의 싸움을 통하여 고난 당하시고 피 흘리셨으며 죽임을 당하셨으나 마침내 죽음을 무력화 시키고 살아계신 하나님에 의하여 부활 하셨다. 마가복음서는 우리가 아는 대로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고 완전히 멸망당한 후에 쓰여졌다. 이후  살아 있는 이스라엘이 1948년 까지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적어도 2000 년의 세월속에  이 땅의 국가나 나라로서의 역사는 부서지고 깨어진 채로 그야말로 떠돌이로 존재할 뿐 이었다.
 
마가 복음의 저자는 익명이라고도 하고 또는 베드로의 선교 동역자 이기도 하며 마가 자신의 신학적 의도를 가진 복음서로서 공관 복음서 중 가장 초대 교회의 정황과 가까이 있으며, 예수 시대의 정황과 자신이 살고 있는 역사적 삶의 정황을 가장 진솔하고 직설적으로 꾸밈 없이 전해 주는 복음서라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로마 식민 제국과 성전을 통하여 마카비 왕조가 파멸 되고 이스라엘도 물거품이 되었다. 이스라엘의 상징이요 삶의 존재요 의미 였던 성전의 파괴는 국가의 뿌리가 뽑힌 처참한 잿더미 그것 이었다. 예수가 구세주 라고 기대했던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그렇게 믿었던 성전도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이러한 피의 혈전으로 존재의 근거를 상실한 후에 마가 복음서가 기록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로마의 식민권력 싸움에서의 패배와 보이는 신앙의 근거가 사라져간 후에 마가복음은 역사적 예수를 전기는 아니지만 그의 역사적 사건과 삶을 자신이 살고 있는 역사적 삶의 정황 아래서 솔찍히 기록하여 수많은 전달 과정을 거쳐서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마가의 여러가지 특징 중 하나는 말을 돌려서 우회적으로 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하는 것이고 가능한 한 사실을 그대로 전 하려고 하는 애씀의 흔적이 보이는 것이다. 오늘날 밥벌이를 위하여 성직이라는 것을 유지하려는 아부와 아첨은 없고 생명을 무서워 하지 않는 참 생명의 삶을 말 하고 있는 것이다.
 
마가복음의 또 하나의 특징은 복음서의 3/1 이상이 수난 이야기로 구성 되어 있는 것이다. 왜? 예수가 수난을 격고 죽임을 당하는가? 우리는 여기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단순한 문자적 은혜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찌해서 예수가  말 구유에 오셨고, 출생부터 사역 그리고 전 생애에 있어서 세상의 악과 싸움을 하고 마침내 십자가에 돌아 가셨는지를 알아야 비로소 예수의 길을 선택하는 분명한 목표가 설 것이다.
 
예수 믿으면 복을 받고 부자가 되고 출세하며 부귀를 얻는다. 글세요 그런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산다면 아니 살려고 몸부림친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단순히 이 땅 에서 썩어질 복을 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생활을 절제하고 부지런히 일하며 절약하고 도덕과 윤리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현실적 삶이 분명 나아지고 개선되며 성장하는 점이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것이 복음의 목적이라면 그 것은 장사속이요 예수의 복음을 상품화 하는 것이며  예수를 하나의 상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분명 복을 받는다. 건강 해질 수 있다. 인간 관계가 좋아지고 심령에 평안이 오며 효자가 되고 사회를 향하여 봉사와 섬기는 자가 될 수 있다. 술과 담배도 끊고 가정도 잘 건사하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며 살 수도 있다.
 
예수의 사역을 보면 축귀 사역도 있고 병도 고치며 윤리적인 요소도 강하며 진실하게 살도록 하는 교훈도 있다. 큰 틀의 하나님의 나라 속에는 이 모든 것 들이 다 속하여 있다. 성서를 보는 자의 이해와 해석에 따라서 혹은 그가 차한 삶의 정황과 입장에서 다양한 이해 들이 다 포함 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 하는 이단을 빼고는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과 초점은 왜? 예수가 살아계신 전지 전능한 창조주이며 하나님의 아들 이심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당하고 타살 되셨는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예수를 편의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정말 예수의 가르침대로 그의 제자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제자는 스승을 닮는다. 스승의 인격과 삶, 그의 죽음도 닮고 그리고 그의 부활도 닮는다. 닮는다는 것은 그가 살아간 삶을 따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평생에 예수의 무엇을 닮아 가고 살아왔는가? 우리의 교회 공동체 우리 각자의 신앙의 생활들이 과연 예수의 삶을 닮아가고 있는가?
 
누구를 탓하고 말하기 전에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나라는 사람에게 촛점을 맟추고 그리고 가정 그보다 교회 공동체에게 물어 봐야 한다. 신앙의 간증으로 나를 묶어 두지 말고 실천과 행동(practice&doing)이 필요하다.
 
말도 예수가 원하는 대로 하고 (한 사안을 두고 이중 플레이 하지말고 한 입 가지고 두말하지 말고 신의와 원칙을 지키고, 약속은 신중히 하되 파기하지 말고 등. 최소한의 인간이 지켜야 할 덕목은 지키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 자기 유익을 위하여 남을 짓밟고 죽이는 일 하지 말고 교회와 교단을 이용하여 오적이 되지 말고, 세상의 유익을 위하여 예수그리스도와 교회 공동체 동료를 상품화 하는 일을 중단하고 그래도 정의편에 서고 약자를 돌보는 삶을 살고, 진정한 화해를 모색하고, 진정한 정의와 사랑을 강물 같이 흐르게 하는 삶을 위하여 자신의 고난과 고통 때로는 손해도 감수할 줄 알며, 밥벌이를 위하여 교권과 타협하며 아부와 아첨을 떠는 비굴한 자는 되지 말고 , 공과 사는 가릴 줄을 알며,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참 인간이 되려는 기도와 노력그리고 실천이 필요하다.) 행동과 실천도 예수를 따라야 할 것이다.
 
칼빈이 말한 것 처럼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사도 바울이 말 한 것 처럼 우리의 삶의 푯대는 예수 그리스도이다.(빌 3:12-14) 예수회 신학자 떼이야르 샤르뎅이 말 한 것 처럼 역사의 모든 것들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간다.
 
우리가 무섭고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 그 것은 하나님 이시다. R. OTTO( 루돌프 오토)가 "Das Heilige"  "성스러움의 의미" 에서 말 한 것처럼  우리가 떨리고 두렵고 신비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 뿐 이어야  한다. 우리의 스승인 김재준 목사님의 길 , 장준하 선생의 길, 문익환 목사님과 강희남 목사님의 길,  우리가 존경하는 은명기 목사님과 박형규 목사님, 우리의 많은 영적, 아니 역사적 삶의 자산 들을 언제까지 더럽힐 것인가?  
 
노회마다 더럽고 추한 새끼 교황들이 있다. 노회 임원을 두고 패를 가르고,총회 총대를 위해서 당을 가르고 총회에서 자리다툼으로 패당을 가르고 더럽고 추한 권모술수는 세상의 정당보다 더하고 교회를 물려주거나 교회 일 자라를 위하여 뒷거래를 공공연히 하고, 밤새 술을 마시며 타락한 끝자락을 보이고 자기 편 교회 심기 두목 놀이 하려고 다른 목회자 죽이고 이 짓을 언제까지 하려는가? 이것을 보고도 방관하는 사람들  공범자 아닙니까?
 
이것을 평신도가 그대로 배워서 한다. 장로회 남여신도회, 조직마다 오적이 난무하고 더럽고 추한 소식이 매일 들려온다.  교회 현장과 총회와 평신도가 오염이 극에 달해도 누구하나 나서서 말하는 자가 없다. 해고 당할 까봐 그러나? 아님 총대 못가고 총회에서 나누어 가지는 자리 못 가질까봐? 그러나 앞으로 총무나 총회 임원 되는데 지장이 있는가 보지요?
 
아! 스승이 없다고 탄식한다. 스승이 누구입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제사장과 백성이 일반으로 타락의 길을 가고 있다. 예수가 없는 교회가 예수를 다시 못 밖고 있다. 그를 창으로 찢고 있다. 교회가 민족의 분단을 연장하고 이 백성을 슬프게 하며 위로하지 못하고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교회 하나 나오면 수십 명 에서 수천 명이 문을 두드린다. 서로가 경쟁하고 한 사람 외에는 낙오자 처럼 절망에 빠져버린다.  그 교회를 자기 패 심으려고 더러운 교권자들이 돈과 술을 받아 먹고  교권 정치한다. 죄 없는 자를 중상모략하여  하나님의 일과 교회와 선교를 방해 한다. 교회도 세우지 못하게 하지요. 자기 자녀가 목회자이고 목회자의 자녀 인데 그런 일에 앞장 서는 사람도 있고 아버지 장로의 DNA를 받아 사탄의 괴수 노릇 하는 자도 있다. 어떤 자는 목사의 자녀 목사인데도 세계에 그 유명세가 사탄 1호라고 불리어지는 자도 있다.
 
2015 운동한다 하며 개척을 돕고 선교를 표방하는 자들이 함께 모여 더러운 교권을 휘둘러 댄다. 거기에 오적 엘더 ㅎ. ㅇ,ㄱ. ㄱ ㅇ 가 있고 미니스터 오적이 있고 그들에게 아부 아첨 하는 교권 패걸이 들이 득실 거린 단다. 이명박을 비교할 바 못 되고 박정희 전두환을 비교할바  못 되며 이완용이를 비교할바 못 되는 하늘에 역천하는 자들이 있다.
 
예수님은 고난 받기 전 성전을 정화를 하셨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 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 나신다 말씀 하신다. 우리의 더러운 성전을 이대로 방치 해서는 안 된다. 더러운 장사꾼들을 몰아 내고 더러운 상을 엎어버리며 채찍을 들어 내리쳐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고는 우리의 교회 공동체 교단  그리스도인의 미래와 희망은 없다. 우리는 이 사회의 변혁과 혁명을 실행 할 수 없고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할 수 없다. 우리는 밥벌이를 위하여 공범자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우리가 이 일을 하려고 할 때 예수님과 유사한 고난과 고통이 따를 수 있다. 교회 임지를 가는데 방해를 받을 수도 있고 교회를 세우는데 방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된다. 만일 이런 행패를 무서워하고 뒤로 미룬다면 우리의 공동체와 교회는 회복 할 수 없는 어둠의 세력에 무너질 수도 있다. 우리가 일을 할 때기 바로 이 때 이다. 글을 쓰고 행동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같은 생각과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교회에서 이 일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처한 세상이 너무나 어둡다. 아니 우리의 교회가 세상보다 더 큰 어둠에 갇혀 있다. 이제는 새로운 생명의 빛과 성력의 능력과 생수가 정의와 사랑의 강물이 폭포수 처럼 흘러야 할 때 이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지키시고 살리실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고난과 죽임을 통하여 이미 승리하고 있다. 승리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피땀 흘리는 기도를 할 때 이다. 기도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가는 세력들을 엎어버리고 내리치며 성전을 정화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에게 큰 화가 미칠 것이 자명하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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