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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박용래 (대전광역노회,대전장로교회,원로목사) 2013-04-01 (월) 07:33 11년전 3146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7:54-60                                                                              2012.03.25 박용래 목사
 
유머. 부활할 까 봐 겁납니다.
미국의 어떤 남자가 고집이 너무 센 아내를 데리고 성지순례 차 예루살렘에 관광
갔다가 갑자기 아내가 죽었답니다. 장의사가 남편에게 말하기를 "미국으로 시
신을 운구하려면 5,000 달러가 들고, 여기 聖地에 매장하면 150 달러가
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남자가 잠깐 생각하더니 미국으로 데려가겠다고 했습니
. 그래서 장의사가 물었답니다.
아니 여기 성지에 매장하면 150 달러 밖에 안 드는데 5,000 달러라는
은 경비를 들여서 고국으로 운구 하려 하십니까?" 물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대답이 괴짜였습니다.
 
그 남편이 말하기를 "오랜 옛날 그러니까 2000여 년 전에 한 남자가 여기서 죽
어 묻혔는데 사흘 만에 되살아났다고 했잖소. 그렇치요. 여보시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쩝니까?" 그래서 5,000달러 주고라도 고국으로 간
답니다. 부인이 부활하까 겁이 몹시 난나봐요. 항상 웃어야할 때에
지 못하는 것도 병중에 병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요즈음 세상에는 구구 팔팔 이삼사로 살자 말이 있습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건강하게 살다가 2-3일만 아프다가 죽는 것이 세
상에서 가장 잘살고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지
구촌 안에는 세상적인 가치로만 잘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성경 말씀에는 기독교에 최초의 순교자를 만나게 됩
니다.
그것도 평신도인 집사가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죽는 최초의 순교자
가 나옵니다. 그 후로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의 피를 흘리고 세
상을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신 다음에
이 구원의 복음을 전함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한 알의 밀
알이 되어 순교하는 순교자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
라 세상을 살아간 성도들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최초로 복음을 들고 와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채우면서
헌신과 희생했던 선교사들의 순교의 피 가 있었기에 그리고 최초로 이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매를 맞고 가정에서 쫓겨남을 당하하면서 핍
박과 박해를 이기면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채워 가신 앞서간 성도들이 있
었기에 한국교회를 살려 놓았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의 피가 흐름으로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고 있습
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기독교의 순교자들의 신앙을 바라보면
서 어떤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오늘 아침 최초의 평신도 순교자를 만
나면서 여러분은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되실까?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말 순교자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특별한 은혜와 복받은 사람들이라
생각하실까? 아니면 순교자들의 정신은 존경하지만, 순교자들은 참으
로 어리석다고 생각하실까? 아니 오늘 우리들에게 순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쳐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결단 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갑자기 얼굴들이 상당히 심각한 고민에 빠지는 것 같습
니다. 고민하지 마세요.
 
순교를 각오한다는 말은 하지만 자신이 순교자가 되는 것을 원한다는 것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가치관을 가지고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세상에서 잘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잘 산다는 말의 의미는 바로 산다는 뜻이 있습니다. 호의호식하
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아도 어리석고 못사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말
입니다.
 
성경에 지옥에 들어갔던 부자는 세상에서 호화호식하면서 살다가 지옥
에 들어갔는데 그는 세상에서 잘 살았지만 아주 잘못 살은 불행한 사람
이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산다는 것은 세상을 바르게 사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
.
 
세상을 바르게 산다는 것은 영원한 삶과 이어지는 삶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잘살다가 영원한 천국을 빼앗기는 사람을 잘살았다고 말할 수
는 없습니다. 세상에 살면서도 영원한 천국을 이어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잘사는 것입니다.
 
육에 사람으로 호화호식하면서 부자로 살지만 천국을 빼앗기는 사람은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리석고 불행한 실패자로
산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잘 살아야하는 것만큼 잘죽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죽음에 복
도 큰복입니다
 
세상에는 죽음도 종류가 많습니다.
 
형벌의 죽음도 있습니다. 죄를 짓고 사형 당하는 죽음도 있습니다.
한 교통사고로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죽음도 있습니다.
 
병으로 고생 고생하다가 죽어가는 죽음도 있고 남에게 맞아 죽는죽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치를 가지고 살다가 순교하
는 것은 영광의 죽음이라 말을 합니다. 예수님은 33세에 죽으셨습니
.
 
세상에서 조금 오래 장수하는 것이 행복한 자라고 말할 수 있지만 하나
님 앞에서 바라보면 영원한 세계에 비하면 인간의 수명이 30년이냐
100년이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보면 그렇게 소중한 것이 아
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100년을 살고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지 못한 인생이란 솔로
몬이 고백한 것처럼 헛되고 헛된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바라보면 성도들에게 순교는 최고의 영광
스러운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순교는 하나님의 가장 큰상급과 면류관
이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누가 순교를 원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께서 힘을 주실 때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고난
을 채워 가시는 많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
면서 때로는 앞서간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아서 복음을 위하여 하나
님의 나라의 일을 위하여 고난에 동참하시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기독교에 최초의 평신도 순교자 스데반 집사의 순교를 생
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핍박 자들의 손에 의하여 순교 당했습니다.
 
스데반을 핍박하고 그를 죽인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세상의 악한 사람
들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이들은 산헤드린 공회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유대사람들 중에서는 소위 귀족들이요, 종교지도자들입니
.
 
자기들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너무 잘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스데반이 강도나 깡패한테 맞아죽은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을 믿
는다고 자처하는 종교인들에 의하여 스데반은 핍박을 받았고 그들의 손
에 의하여 죽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심각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많은 순교자들은 악한 권력에 의하여 핍박과 죽음을 당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교회 안에서 잘 난체하는 잘못된 신자들에 의하여 핍박과 죽
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순교적인 신앙을 가지고 순교자들 편에 설
수도 있지만, 반대로 순교자들을 핍박했던 잘못된 신자로 둔갑 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다는 말씀을 우리는 명심해야하겠습
니다.
 
스데반집사의 순교는 잘못 믿던 신자들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말
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서 알곡이 아니면 교회를 해치고 방해하는 가
라지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설교를 들었던 자들의 의해 순교 당했습니다.
 
스데반을 돌로 쳐 살인한 사람들은 설교를 듣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음을 듣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설교를 들었던 자들입니다.
 
51절 말씀에 스데반은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
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 도
.”라고 설교했습니다.
 
54절에,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았
" 했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스데반의 설교를 들었던 회중은 마음에 찔림을
받긴 했는데 설교자를 향하여 이를 갈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빗나갔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
한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이 말씀은 내게 주시는 말씀이다." "이 설교
는 지금 나한테 주시는 말씀이다." 그래서 스데반의 설교로 마음에 찔림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설교를 들으면 마음에 찔림을 받아야 합니까? 안 받아야 합니까?
아야 합니다.
그런데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림까지 받았는데 나타나는 반응은 아주 달
랐습니다.

사도행전 237절의 베드로 설교에서는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고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삼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36)" "너희가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 무서운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음으로 '옳습니다. 나 때문에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설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음에 찔림을 받고 놀라운 회개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럼으로 삼천
명씩이나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스데반 집사의 설교를 듣고서도 마음에 찔림은 받았지
반응은 반대로 나타났습니다.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림은 받았지만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어 스데반을 거짓으로 고소
하고 핍박하며 마지막에는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어떤 사람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고 회개하고 순종
함으로 구원받는 기회가 되고 축복받는 기회가 되었지만
 
어떤 사람들에는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고서도 설교자를 비난하
고 모함하고 거짓으로 고소함으로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데 앞장
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같은 설교를 듣는데도 어떤 사람들은 그 말씀에 회개하고 순종하여
구원과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같은 설
교를 듣고서도 마음에 돌 같은 마음 때문에 설교자를 핍박하고 박해
함으로 멸망을 받는 자들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에 가장 불쌍한 사람들은 교회 안에 돌 같은 마음을 가진 자
들입니다.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이 교회를 방해하고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교회 나오는 사람들이 교회를 헐고 결국에는 스데반을 죽이는 일까지
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자처하는 그 사람들이 스데반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신앙생활하면서 평생 동안 조심할 것은 사탄이 우리의 마음
돌 같은 마음을 심어 놓치 못하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말씀에 은혜를 받고 축복받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축원합
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수 있기를 축원합
니다.
설교를 들을 때마다 항상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을 수 있기를 축
원합니다.
또한 마음에 찔림이 있으면 즉시 회개와 순종의 아름다운 열매 맺기를
축원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은헤와 성령으로 충만함을 체험하는
능력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스데반은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7:56-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
했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땅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그 찬란한 영
광을 보았습니다.
 
영광의 주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면서도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만약에 땅만 바라보았다면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땅을 바라보면 걱정거리가 많았을 것입니다. 땅을 보면 처자식도 있습니
.
땅을 바라보면 나를 배신하고 이를 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보입
니다.
 
땅을 바라보면 얼굴이 일그러지고 분노와 원망을 버릴 수가 없었을 것입
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순교를 당하는 순간에도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바라
보았기에 고난과 핍박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얼굴에 평안함이 있었습
니다.
순교를 당하면서도 마지막 스데반이 남긴 말이 있었습니다.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영혼의 평안함
미국 시카고에 아주 행복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유명한 변호사이며 대학교수였던 스패포드(Spafford)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아름다운 아내와 네 딸을 큰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어느 날 아내와 네 딸이 프랑스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족이 승선한 여객선 하브호가 영국 배와 충돌함으로 226명이 익사하는 대 참사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네 딸은 모두 익사하고 아내만 겨우 생명을 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편 스패포드는 사고 현장에 도착해서 딸들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며 절규했습니다.
이때 사랑하는 아내가 절망적인 슬픔 속에서도 남편의 손을 꼭 잡으며 말을 했습니다.
여보, 딸들은 지금 천국에 있어요. 우리와 잠시 헤어져 있을 뿐이랍니다.”
남편은 아내의 이 말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즉시 시한편을 종이에 적었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 늘 잔잔한 강 같든지 /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이것이 바로 찬송가 470장이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노래가 오늘 우리에게 큰 위안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소망을 두는 삶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면서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둔 성도들은 어떤 환경을 만난다 할지라도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순교의 현장에서도 무릎 꿇은 스데반 집사의 기도는 간단했습니다.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오늘 우리들도 주님 앞에 서는 날 내 영
혼을 받으시옵소서. 주님께 내 영혼을 맡길 수 있게 되시기를 축원합
니다.
용서하는 말입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나는 저들을 미워하지는 않
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들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주소서.
 
자기를 돌로 치는 사람들에게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스데반이 두 번째로 남긴 말은 바로 용서하는 말이었습니다.
스데반처럼 은혜 충만 성령 충만함을 체험하고 넉넉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용서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자니라 했습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에게 막델라나 라는 14살 된 딸이 있었는데,
몹쓸 병에 걸려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임종을 얼마 남겨두
지 않은 시간,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루터가 딸아이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 아이를 진정 사랑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를 데려가려
시다니요." 루터는 딸아이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막델라나, 너는 나
와 함께 있는 것이 좋으니, 아니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로 가는 것이
좋으니?"
그러자 소녀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띄우며,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
르겠어요." 라고 말하고는 눈을 감았습니다. 순간 방 안에는 침묵이 흐
르고 모두들 눈물조차 흘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윽고 루터가 입을 열었
습니다.
"막델라나야! 편히 쉬거라, 이제 너는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날 것
이다.
 
그리고 곧 다시 부활할 것이다. 그래, 우리 그곳에서 다시 만나자. 우린
아주 잠깐 헤어져 있는 게야, 난 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으련다. 우린
조금 뒤에 다시 만날 테니 말이다.
 
스데반의 순교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라고 말씀했습
니다.
 
성도들의 죽음은 끝이나는 것이 아니라 자는 것입니다. 돌에 맞아 죽지
만 스데반은 살해당한 것이 아닙니다. 고요히 잠이 든 것입니다. 성도의
죽음은 어느 때에 어떻게 죽더라도 죽음이 아니요, 잠이라는 말씀입니
. 다시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천국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진 스데반 집사는 복음을 전하다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
하여 주님이 하시던 일을 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하였지만 죽음으로
끝이 아닙니다.
 
실패가 아니라 영원한 승리자가 된 것이고 자는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날 때 하나님의 나라에 영원한 상급과 면류관이 주어지는 것
입니다.
사람이 한 생애를 마감하고 세상을 떠나는 때에는 두가지 모습입니다.
하나는 죽음이 두렵고 무섭고 공포로 질려서 발악하는 모습입니다.
마귀가 영원한 지옥형벌로 끌어가는 것을 안끌려 가려고 발버둥치는 모
습 입니다.
 
또 하나는 죽음이 참 평강이요 기쁨으로 내 영혼을 주님께 맡깁니다.
는 승리의노래를 부르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영생이 있고 상
급이 있고 천국이 있기에 소망과 평안과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
입니다.
 
내 영혼을 주님께 맡깁니다.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
를 축원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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