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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규

이상 적인 자녀 교육(이선 규)

이선규 (서울남노회,대림다문화센터,목사) 2013-05-04 (토) 14:52 10년전 3259  
이상적인 자녀 교육 (사사기 13:8-14절)
우리는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습니다. 21세기는 이제까지 세상이 변화된 것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모든 면에서 생각 할 수도 없고 이해도 안되는 일들이 지금까지 있었던 것보다도 앞으로 더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 변화는 긍정적 인면도 있지만 부정적인면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변화를 예측하고 준비하여 자녀들에게 잘 가르칠 필요성을 느끼게 것입니다.
자녀들을 양육함에 있어서 말로 되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 버렸습니다. 물질이 풍부 하지 못했던 시대나 인터넷과 t.v가 보편화 되지 않았을 때는 부모의 권위로 자녀를 붙잡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는 그런 일이 그렇게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갈 자녀들 양육하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해답을 갖고 있습니까?
대답은 글쎄요 입니다.
인격이 돈 들여서 좋은 대학을 보낸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세상에 돈으로 해결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자녀교육 특히 예수 안에서의 자녀 교육 교육이 돈으로 해결 할 수 없습니다. 돈을 주고 좋은 침대를 살수는 있지만 잠은 돈으로 살수 없다는 말처럼 돈으로 좋은 교재 실력 있는 선생은 살 수 있지만 돈으로 자녀를 올바르게 양육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 키우기가 너무 어려워요 더구나 시 대가 너무 악해서 요즘 아이들은 옛날 아이 같지가 않아” 하지만 요즘 부모는 부모 같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릅니다.
성공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한 부모는 아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무관심 합니다.
그러면서도 부모 뜻대로 자라지 않는다고 욱박 지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녀들을 어 떻게 양육 하였는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사기 13장 8절과 12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아이의 잉태를 예고 받은 마노아와 그 아내가 기도한 내용 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여 구하 옵나니 ...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가르치게 하소서 (8절) 얼마나 귀한 기도 입니까? 오늘 어린이 주일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들도 이러한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자녀 양육은 사람들이 전해주는 말만 따를 것이 아닙니다. 유아학자나 어린이 유아 방법에 적혀있는 방법 대 로 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닙니다. .
먼저 부모 자신이 하나님께 양육에 대하여 물으며 말씀 속에서 양육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그 순서를 바꿔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묻고 기도하고 말씀에서 지혜를 얻는 것을 뒤로하고 학원에다 학습지에다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또는 부모는 그 기도만큼 자녀들을 향한 관심과 양육에 대한 계획들이 있어야 합니다.
좋은 학습 여건과 교재들을 만들어 주고 구입해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녀들이 느끼는 부모의 사랑이며 괌 심입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4살난 어린아이를 둔 어머니는 잠자리 때마다 함께 기도 했습니다. 늘 건강하게 해 주시고 또 총명하게 해주시고 엄마 말 잘듣는 아이로 만들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4살 어린 아이가 자기가 기도 하겠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조그만 입을 열어 이렇게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엄마가요 내말 잘 듣게 해 주세요. 이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 기도하는 것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밝고 명랑하며 깨끗하게 자란 큰 일꾼이 된 아이와 어둡고 독선적으로 자라 악한 아이가 된 아 이 들에 대한 비교가 나옵니다. 한 아이는 한나의 아들 사무엘이며 다른 편은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 느하스 입니다. 11절을 보면 사무엘이 ‘제사장 엘리앞에서 여호와를 섬겼다고 기록하였고 12절에는 제사장의 아들 들은 불량자요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는 18절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기록입니다.
3:1절에서 말씀하는 대로 당시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사사기 17장 6절과 21장 25절에서 말씀하는 대로 그때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기 때문 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고 무엇을 하든지 그저 자기 생각에 옳으면 그대로 행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지 않으시고 말씀으로도 계시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서 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고 사무엘이 응답하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의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사무엘에게만 나타 나타나셔서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 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는 사무엘을 귀하게 보시고 그를 사용하시기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3:19절 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고 고 하셨습니다.
20절은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 알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어떠했다고 했습니까?
비록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사장이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그들은 불레셋의 전쟁에서 처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종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는 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에 옳으면 다입니다.
법궤를 메고 나간 것도 하나님의 듯과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을 앞 세웠을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누가 자기 자녀들이 홉니와 비느하스 처럼 자라나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고 그렇게 비참 하게 죽기를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바라지는 않더라도 방관하고 무관심 한 부모는 너 무나 많습니다.
단지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과 하나님 앞에서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며 양육 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 입니다.
이것이 엘리의 자녀들과 사무엘의 큰 차이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두 부모의 차이 일가요.
첫째, 신앙과 말씀으로 양육입니다. 하나는 사무엘을 기도로 잉태하였고 기도 가운데 출산 하였습니다. 자녀는 부 모의 영적인 영향력에 크게 좌우 됩니다.
기도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나 신뢰가 남다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아는 부 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역시 하나님의 불 꽃 같은 눈을 의식하며 행동 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며 자란 자녀 들 은 그 들 역시 순종과 섬김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엘리 사벳의 몸속에 역시 잉태한 마리아의 방문을 받자 복 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던 것입니다.
또 아이에게 어떻게 행 할 것을 가르쳐 달라고 기도했던 마노아의 아들 삼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고 여호와 의 신이 그들에게 감동 하셨습니다.(삿13:24-25)
그러나 엘리 제사장에게는 이러한 영적 영향력의 전달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자녀 순종하는 자녀 겸 손한 자녀는 거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역시 영적인 영향력을 자녀에게 줄 수 있는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말씀으로의 양육 입니다.
사사기 1:23절 그 부모가 사무엘을 어떻게 양육하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섬겨야 할 것인지를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 성공하는 삶인지를 배웠을 것입니다.
잠언 20:1절은 비록 아이라도 그 동작으로 자기의 품행의 청결하며 정직한 여부를 나타 내느니라고 기록 하였습니다. 비록 아이 이지만 말씀으로 양육된 사무엘은 스스로 자신의 어떠함을 나타낸것 입니다.
에베소서 6:4절입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셨는데 이스라엘 교육에 성공 적 이 된 것은 어릴 적부터 하나님의 말씀 쉐마로 교육을 시켰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위하여 땀을 흘려 일하고 자녀들은 부
모에게 기쁨을 주고 효도하고 가정은 모두에게 평안을 주고 안식을 줄 때 그곳을 가리켜서 스위트홈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맑고 건강하게 자라야 할 우리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염려스러운 대상 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대화가 안 될 정도로 세대 간의 차이를 느낍니다. 가치관과 도덕의 기준이 빨리 흔들리고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마땅히 행 할길 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서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 하리라 무 엇을 가르치라는 말입니까?
세대가 아무리 각박하게 변화되어가고 그렇게 흘러 갈 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가르쳐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 공부도 중요 합니다.
그러나 세상 공부는 최선의 경우라도 현실과 육신만을 약간 잘 되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육신과 영혼 현실과 내세 그리고
이 땅과 천국의 영원한 축복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의 입신양명을 위해 대대로 무학자였던 한을 풀기위해 또는 자신들의 노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자녀들을 부지런히 가르쳐왔습니다.
그러나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의 결과 자녀들은 도시 산업과 문명사회로 진출해 버리고 늙은 부모만 외롭게 살아가는 신세가 되고 고급 인력은 남아돌아서 실업자만 양산되고 말았습니다.
인본주의 교육 철학자 죤듀이는 “종교 교육을 어릴 때부터 시키는 것은 잔인한 학살 이라고 평가하고 스스로 판 단력을 갖기 전에 종교교육을 시켜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습니다.
오늘날 청교도 정신에서 이탈하고 죤 듀이의 인본주의 교육 철학을 따르게 된 미국은 무시무시한 마피아단과 술과 음탕과 도박, 갱들의 총 소리로 얼룩져 버렸습니다.
이렇듯 아담후의 인간은 타락한 품성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스스로의 의로운 길을 선택 할 만 한 능력을 상실하 고 말았습니다.
신본주의 교육 철학은 때묻지 않은 어린이의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주입 시키는 것으로 시작 합니다.
모든 학과를 성경의 기초위에 시작하는 것입니다.
심령이 비뚤어지면 모든 사물과 사리를 그릇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바하 우쓰라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영혼의 갈망을 무시한 인본주의적 교육은 인간의 동물성을 탈피 할 수가 없다 는 말을 했습니다. 가장 우수한 교육 철학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교육의 목적은 사람을 그것도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데 있는 것 아닙니까? . 그런데 신본주의 교육 철학은 사람 을 만들되 기계적인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데 목적으로 합니다.
디모데후서 3:17에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느니라.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사람을 교육하여 하나님의 정치가 하나님의 군 하나님의 세우신 과학자 하나님의 교육자들이 많이 나오게 되기를 축원 합니다.
현대의 교육이 사람의 양심을 바르게 가르치지 못합니다.
현대의 교육으로는 사람의 영혼을 조금도 자라게 할 수 가없습니다.
현대의 교육이 사람을 온전하게 하지 못합니다. 딤전 3:15-17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교육 할 때 이 모든것 들이 바로 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고 말씀 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어려서부터 우리 자녀들 심령에 심어 30배 100배의 결실히 있기를 축원 합니다.
교육은 역시 중요 합니다.그러나 교육 이라고 다 같은 교육이 아닙니다. 불량 만화 불량 영화, 불량 교사, 불량 부 부모, 불량 학설, 불량 광고, 불량선전, 등이 얼마나 횡행 합니까?
셋째 어떻게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들은 몸으로 자녀들에게 신앙적 교육을 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썬다싱 인도의 성자는 “나의 가장 진정한 학교는 어머니의 무뤂이다.” 라고 했습니다. 입으로 가르치는 것도 중요 합니다. 그러나 신앙을 체험 할 수 있다면 더 효과적인 교육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그 가정에서 일 년 내 내 찬송 소리 울리는 것을 보지 못하고 어머니의 기 도 하는 소리를 한번 듣기가 어렵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장난 신앙생활 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부모들이 몸으로 보여주는 신앙생활이 필요 합니다. 그것이 우리자녀들을 진정 축복의 자녀로 자라게 할 수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자녀의 생명을 위한 뜨거운 기도가 있는 동안에는 그 자식은 결코 망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삼손이 감옥 속에서 머리가 자라고 새 힘을 얻고 마지막을 주를 위해 헌신된 것은 그 어머니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잘 가르치라 고 맡겨 주신 나의 분수입니다. 내 자녀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을 바라보며 믿음과 말씀으로 양육해 가리라는 다짐이 있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말씀 앞에 바로서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기대를 갖는 것만으로 안 됩니다. 자녀에게 훌륭한 믿음의 부모로 인정되어 그 믿음을 유산으로 남겨 주시는 부 모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땅히 행 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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