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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정의를 물같이 흐르게 하라

김민수 (서울북노회,한남,목사) 2013-06-27 (목) 13:48 10년전 4317  
오직 정의를 물같이 흐르게 하라
아모스 5:21-24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중부지방이 가문 장마로 연일 30도 안팎 기온을 보이면서 불쾌지수도 상당히 높았습니다. 거기에 국정원 선거개입사건과 NLL 대화록 공개, 이에 대한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 새누리당의 행태에 불쾌지수는 더 올라갔습니다. 이에 분노한 대학생들과 시민, 종교단체에서는 시국선언을 하고 촛불집회를 열었으며, 임기를 시작하고 4개월여 만에 대통령 하야라는 구호까지 외쳐지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불법을 자행하는 자들이 권력의 비호를 받고, 사회적인 약자들은 조금만 잘못해도 철저한 법으로 다스려지는 세상을 보면서 저는 아모스서를 읽으면서 시대의 징조가 무엇인지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모스는 히브리어로 들어 올리다, 나르다라는 뜻입니다. ‘아모스아모스야의 축약형으로 아모스야주님께서 날라주셨다는 뜻입니다. 그 이름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어 올리는, 나르는 예언자라는 의미가 있고, ‘주님께서 날라주시는 것이니 예언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예언자는 그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아모스의 직업은 목양업자입니다.
베들레헴 부근 드고아라는 시골에 살던 유다인이었습니다. 시골뜨기 목자, 그러나 아모스서의 문체를 보면 상당히 시적이고 문장은 집약되어 있으며 수려하고 직접적이고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마치, 초야에 은둔하는 지혜자를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의 상황은 인접한 시리아 왕국의 쇠퇴로 태평성대를 누리던 시대였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이 시기를 틈타 요르단 건너편 지역을 탈환했으며, 그 승리로 새로운 이스라엘의 영화를 꿈꾸는 시기였습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외국과의 교역이 활발하여 번영하던 시기였습니다. 모든 면에서 다윗의 영화를 다시 재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장밋빛 미래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있는 시기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당시의 겉모습입니다.
 
그러나 속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시리아 왕국을 쇠퇴하게 한 아시리아는 팔레스틴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으며, 경제가 번영하는 가운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양극화 현상이 일어났으며, 수도 사마리아에는 졸부들의 속물근성이 확산하면서 사치가 만연했습니다. 결국, 계약백성을 결속시켜주던 유대관계에 금이 가고, 약자들에 대한 강자들의 착취가 자행되고, 법정에서는 부정한 판결로 강자들을 비호하기에 바빴습니다. 종교적인 면에서는 경제적으로 번영한 까닭에 의식은 화려해졌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경신례는 하나님께 혐오감과 불쾌감만 일으키는 예식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정의가 빠진 예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경신례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경신례는 겸손과 정의로 표현되었어야 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백성은 계약 구성원들 사이의 연대 표지가 될 수 있는 사회정의도 실천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신례의 기본정신은 사라지고, 형식만 화려해진 예식에 하나님은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로 돌아와 봅시다.
어렵다고는 하지만,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으로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손꼽는 대형교회도 많습니다. 주일이면 예배드리는 이들로 넘쳐납니다. 마치 북왕국 이스라엘이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시절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겉모습만 닮은 것이 아니라 속내도 닮았습니다.
 
사회 양극화 현상은 극에 달했으며, 탈법과 불법을 자행해도 법원은 강자의 편을 들어줍니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일해야 할 기관들이 권력을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자행하고, 거짓이 난무합니다. 진실이 밝혀져도 끝까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거짓과 불법으로 이득을 본 집단이나 개인도 반성하지 않습니다. 법은 약자들에게는 너무도 가혹하게 적용되고, 강자들에게는 그들의 불법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사용됩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타락을 하나님은 그냥 두고 보지 않으시고 아모스를 보내어 당신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모스를 공공질서의 교란자로 고발하고, 그의 예언활동을 금지합니다. 어쩌면, 너무도 똑같습니다. 잘못된 일들을 바로잡으려는 예언자적인 외침에 대해 종북주의자로 몰고, 공공질서를 교란한다고 경찰력을 동원해서 집회를 원천봉쇄합니다. 그리고 결국 국민 간의 유대관계를 깨뜨리는 책략으로, 보수단체를 동원하여 맞불집회를 하게 합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보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편이냐에 따라 행동합니다.
 
아모스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아모스의 예언은 먼저, 위협으로 가득한 예언들입니다. 하나님을 늦게 찾았기에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죽어갈 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합니다. 역사를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할 것입니다.
 
아모스의 예언은, 동시에 희망으로 가득한 예언입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은 순간에 하나님은 용서하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지금까지 지은 죄 탓에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여겨지는 벼랄 끝까지 가겠지만,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어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오늘 읽은 말씀대로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5:24) 하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정의와 공의, 그것은 단순히 대사회적인 영역에서만 이뤄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서도 반드시 이뤄야 합니다. 자기의 삶에서 정의와 공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대사회적인 정의와 공의를 외친다면 그것이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우선순위냐는 이야기를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인 것과 대사회적인 것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대사회적인 정의와 공의를 위해 일하려면 반드시 개인적인 삶의 영역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서 정의와 공의가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그것은 대사회적인 정의와 공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실개천에서 개천으로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는 물처럼, 그렇게 정의와 공의의 영역은 넓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개인적인 영역에서의 정의와 공의를 이루지 못한 이들이 대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정의와 공의를 외치는 것은 진정 정의와 공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정의와 공의의 가면을 쓴 것뿐입니다. 최근 국정원의 선거개입사건과 NLL 대화록 공개를 하게 된 것도 그들은 왜 했다고 합니까?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그리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예리한 눈으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침묵함으로 악에 동조하지 않을 수 있으며, 확신하고 악에 동조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자기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사명감으로 정의와 공의를 외치며 불법을 자행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예도 있습니다.
 
분명히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대사회적으로 정의와 공의를 촉구하는 이가 그런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갈 때 느끼게 되는 괴리감 같은 것입니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했습니다. 바깥보다는 안을 먼저 살피라는 이야깁니다. 이러면 너나 잘하세요!’ 하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오히려 불법을 자행하는 이들에게 빌미를 줄 뿐입니다.
 
천호동교회에서 최근에 발간한 전학석, 김재준 프란시스-하나님 나라가 임하소서라는 책을 읽다가 전학석 목사님이 푸념처럼 내가 설교한 말대로 살기가 힘들어!” 하셨다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런 자각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심정 없이 자신이 정의의 척도인 것처럼, 공의로움의 표본인 것처럼 행동하는 순간, 제아무리 불법적이고 악한 세력을 향해서 외치는 구호들은 공허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부족하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언자들이 하나님께 붙들려,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오직 정의를 강물같이 흐르게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절실하게 실현되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이 사회의 현상들을 직시하시고, 그 앞에서 여러분의 삶과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의 정의를 위해 헌신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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