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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뢰아 사람은 신사적 이었습니다

박용래 (대전광역노회,대전장로교회,원로목사) 2013-07-17 (수) 16:03 10년전 11278  
베뢰아 사람은 신사적 이었습니다
17:10-15                                                                                                  2012.07.22.  
 
겁나게 빠른 닭어느 나라에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닭 한 마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 남자가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앞서 달리던 자동차들을 추월하던 그 남자는 저 뒤에서 엄청난 흙먼지와 함께 무언가가 달려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놀랍게도 닭 한마리가 그의 차를 추월하려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이 남자는 당연히 차의 스피드를 높여서 닭의 추월을 막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닭은 엄청 빨랐습니다. 얼마나 빠른지 자기의 차를 추월하고 말았습니다. 너무 놀란 이 청년은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 청년은 인근 마을 찾아다니면서 수소문해서 빠르게 달리는 그 닭의 임자를 찾았습니다.
 
그는 당장 거래를 했습니다. 주인에게 "그 닭 100만원에 파쇼."
그러나 주인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럼 1,000만원에 파쇼!!" 그래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에잇!! 그까짓 닭 한 마리 가지고!! 좋아!! 2,000만원에 내 차까지 얹어주겠소!!"
그는 이미 차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주인은 잠시 움찔했으나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 남자가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 "대체 안파는 이유가 뭐요? 이유라도 좀 알려 달란 말이요? 그러자 주인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잡혀야 팔지 유." 웃지 못하는 병도 큰 병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오늘아침 봉독한 성경말씀에는 한밤중에 도망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10절의 말씀 밤에 형제들이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에 조금 더 머물며 교우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교회를 더욱 든든히 세우고 싶었지만, 불량배들까지 동원해서 해치려는 유대인들 때문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캄캄한 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야음을 틈타서,
데살로니가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인도한 사람들은, 바울 때문에 끌려가 돈을 주고 나온 야손과 믿음의 형제들입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권했습니다. 저희들이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사도님들은 여기에 계시다간 더 큰 화를 당하실 것입니다.
빨리 떠나십시오. 저희들이 고갯마루까지 안내하여 드리겠습니다. 큰 길을 따라 2-3일 걸어가시면 베뢰아란 도시가 나옵니다.
그곳에 가셔서 주님의 생명의 복음, 구원의 복음을 증거 해 주십시오. 베뢰아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들려주시어, 구원받게 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하여 바울과 실라, 그리고 함께 한 젊은 디모데, 그리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의사 누가는 데살로니가를 떠나 베뢰아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베뢰아에 도착해서 바울사도는 회당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듣는 베뢰아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11절 에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너그럽다. 새 번역 성경에는 고결한 사람들 공동번역 성경에는 마음이 트인 사람들개혁 성경에는 신사적인 사람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웠습니다. 더 고결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확 트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매우 신사적이었습니다.
 
베레아 사람들은 왜 이런 칭찬을 받았을까 요. ?
1.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바울 사도의 선교일행이 빌립보에 이어 데살로니가를 거처 베뢰아에 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을 때 감사한 것은 베뢰아 사람들은 복음을 들을 때 마음이 너그럽고 신사적인 사람이었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신사적이라 해서 어떤 외모에서 풍기는 에티켓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덕적인 매너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너그럽다, 신사적인 교인이라는 것은 진리의 말씀에 대한 열망,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벧전2:1-3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말씀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순수함이 생명입니다. 마음이 순수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쉽게 만나는 체험을 가집니다. 마음이 순수하지 못한 사람은 항상 타산적이고 계산적이어서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아니하면 늘 불평불만 불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베레와 사람들은 참으로 순수하게 복음을 잘 받아 들였습니다. 신앙이 자라기 위해서는 어린아이 같이 순수함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한 마음으로 잘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예배에 감격이 있고 말씀에 감격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음이 너그럽지 못하고 신사적이지 못할 때 항상 우리의 마음에는 불신과 비판과 시기와 다툼이 일어나게 되고, 자기를 자랑하고 교만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을 잘 받아드릴 줄 아는 신사적인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너그럽다는 말이 개역성경에는 신사적이라는 말로 번역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신사동 사람이라서 신사적이 아니고, 순수한 마음과, 또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사람이 신사적이라는 말입니다. 간절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사모하는 마음, 열정을 지닌 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확 트인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마른 땅이 비를 흡수하듯이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말씀하시면 듣겠습니다.”하는 자세입니다. 이것을 신사적이란 표현을 쓴 것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진지하게 받았습니다. 말씀을 아멘, 아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그 마음이 부드럽고 항상 긍정적인 마음,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 간절한 마음, 진지한 마음을 가진 신사적인 사람들이라 칭찬한 것입니다.
마음 바탕이 너그럽고 신사적이고 좋은 교인들이란 말입니다. 편견 없이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들마음이 트인 사람그러기에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성이 좋은 사람은 말씀을 듣는 자세가 다릅니다. 처음부터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세를 갖추고 말씀을 경청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전적으로 수용하며 아멘으로 주시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세입니다. 이런 베뢰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회개하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또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겸손한 마음을 가졌다는 말 입니다.신앙생활에서 겸손은 생명입니다. 누가 은혜를 받습니까? 겸손한 사람입니다.
겸손하면 말씀을 잘 받아들입니다. 언제나아멘을 잘하시는 분들은 겸손한분들입니다.
오늘 우리교회도 겸손한 마음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잘 받아들일줄 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또한 베뢰아 사람들은 순종하려는 자세가 있었습니다. 말씀을 받는다는 말은 바로 순종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순종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은 만날 수가 없습니다. 순종할 때 기적과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을 순종하려는 자세로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간절한 마음이란? 열정을 가진 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간절히 받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좋은 말씀을 전해주어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말씀이 튀어 나와 반항과 비방이 나오게 됩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을 들을 때 항상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간절한 마음, 순종하는 마음으로 말씀 듣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간절한 마음은 집중해서 말씀을 잘 들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집중해서 듣는 자세 ! 얼마나 신사적인 자세입니까?
복음을 듣는 자세가 순수한 마음으로 집중해서 말씀을 듣는 자세가 중요한 것입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세상 온갖 공상이나 하고 앉았다면 무슨 변화가 일어나겠습니까?
딴 생각으로 가득차서 말씀을 듣는데 무슨 은혜가 되겠습니까?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을 들을 때 집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에 집중할 수 있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데살로니가에 살던 유대인들은 폭력배까지 동원하여 바울의 복음을 저지하고 방해하려 했습니다. 이렇게 돌같이 굳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천사의 좋은 설교를 듣는다 해도 좋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은혜를 받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돌 같은 마음으로 굳어진 상태가 되면 항상 말씀이 삐딱하게 들려지 것입니다.
마음이 비비꼬여 있는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의심하는 마음이 가득 차게 됩니다.
말씀을 부정적으로 듣게 됩니다. 자기정서나 취향에 맞는 듣기 좋은 설교만 골라 듣기를 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설교를 들어도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들을 때에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항상 이런 모습으로 예수님의 말씀에도 따지고 비난하고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바울사도의 설교를 들으면서도 돌같이 굳어진 마음을 가졌던 유대인들은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난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듣느냐가 중요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마음이 열려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아멘, 아멘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므로 날마다 은혜 충만하고 축복을 체험하고 성숙해져가는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에 경청하고 말씀에 집중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은혜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축복받는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기 때문입니다.
11절하 이것이 그런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여기상고한다.”는 말은 날마다 성경말씀을 묵상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성경 말씀을 묵상함으로 판단하고 구별하고 결정하면서 살려고 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을 뿐만 아니라, 하루의 모든 일을 내 마음대로 판단하고 내 마음대로 결정하는 성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에 비취어 보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성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긋나는 것은 하지 아니하는 사람, 얼마나 멋있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성도, 얼마나 멋진 성도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사람, 얼마나 멋있는 사람입니까?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굴뚝을 청소했습니다. 한 사람의 얼굴에는 숯검정이 묻어 있고,
한 사람에게는 숯검정이 묻어 있지 않습니다. 둘 중에 누가 가서 세수를 하겠습니까?
한번 손들어 표현하여 보시겠습니다. 숯검정이 얼굴에 묻은 사람이 세수를 한다.1. 숯검정이 얼굴에 묻지 않은 사람이 세수를 하러간다.2
 
숯검정 안 묻어 있는 사람입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가 보고 있는 사람의 얼굴에 숯검정이 묻어 있는 것을 보면서 내 얼굴에도 숯검정이 묻어 있겠구나 생각하고 세수를 하러 갑니다. 그러나 숯검정이 묻어 있는 사람은 함께 자기가 보는 사람의 얼굴이 깨끗해서 자기 얼굴도 깨끗할 것이라 생각하고 세수하러 가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을 바라보아서는 자기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세상을 바라보아서는 자기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영혼의 거울입니다. 성경은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게 합니다. 성경은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보게 합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게 하고 자신의 영혼이 병들어 있는 것을 보게 합니다. 영혼의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벧전3:3-4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날마다 자신의 모습을 거울 앞에서 단장하는 것만큼 우리의 영혼을 가꾸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 영혼의 거울 앞에 날마다 서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과 가정과 교회는 놀랄 만큼 변화되는 것입니다. 날로 늙고 후폐해가는 겉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속사람이 날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거울인 성경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자주 보시기를 바랍니다.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 놓고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베뢰아 사람들처럼 건강한 교인, 신사적인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기신사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아주 좋은 예절을 갖추고, 고상한 지식과 품격을 갖추고 왕을 섬겼던 사람들에게 gentleman이라고 불렀던 말인 것입니다.
 
❤❤ 대처가 영국의 수상으로 있을 때에, 연설을 하는 가운데 우리들이 오래 동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던 신사도가 깨졌습니다.” - 영국 백성들에게서 신사도가 깨진 것을 개탄하면서, 신사도의 부활을 역설한 바 있습니다.
 
신사도를 회복하자는 말은 옷을 잘 입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장을 하고 다니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사는 무슨 옷을 입었느냐? 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사는 신사가 갖추어야 하는 정신, 신사도를 지키는 삶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멋있는 옷으로 품위 있게 정장을 하였어도, 신사가 지켜야 되는 법도를 지키지 못하고, 품위 있는 행동을 하지 못하면, 결코 신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옷은 초라해도 품위 있는 행동을 하게 된다면 진정한 신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국의 신사도가 깨어졌습니다. 이것을 회복하자고 대처 수상은 외쳤습니다.
 
사실은 세계가 영국이 신사의 나라라고 불렀지만, 그들의 과거는 신사의 민족이 아니라 야만족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복음이 들어가면서 변화된 것입니다. 그래서 신사도의 나라가 되었던 것입니다.
핀란드, 노르웨이, 스페인 같은 나라들도 과거에는 바다에서, 도적질 해먹고 살던 해적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서, 복음이 들어가서, 그들을 변화시키었고 새로운 나라들로 만들게 된 것입니다.
영국에서 신사도가 무너지고 있다고 수상이 개탄을 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들의 신앙의 신사도는 무너지지 않고 잘 지켜가고 있는지를 반성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신사적인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사용되는 하나님의 나라의 칭찬받는 사역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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