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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기독교역사 순례기

이상호 (대전노회,공주세광교회,목사) 2013-07-26 (금) 17:35 10년전 9853  
대구 기독교역사순례기
 
지난 7월 25일 최범수 장로와 함께 대구를 찾았다. 쉐마 천재교육과 도마박물관장 조국현 목사를 만나고 제 2의 예루살렘이라 하는 대구 기독교역사순례를 하기 위해서였다.

대구시 동구 방촌동 우방강촌마을 상가 4층 도마박물관에서 말씀교회 조국현 목사(38총회 총대 고 조주용 장로 아들)를 만났다. 그는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사도 도마가 터키와 인도를 거쳐 땅 끝 한국에 직접와서 선교하였다고 믿고 연구하여 박사가 돼 성지순례코스를 개발하여 국가 관광 브랜드 가치를 높여가는 역사발굴 관광자원화 연구소장이자 스토리텔링 작가다.

경북 김천 출신으로 선조 중에는 정5품 중앙과거에 합격 서당집 후손으로 1천년 된 약방집 자손으로 교회적으로나 집안 내력으로나 뼈있는 집안 자손이다. 기장의 불모지인 영남에서 기장의 뿌리를 지키려 한신대를 졸업, 이장식 박사로부터 사사, 역사문화신학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연구하여 워싱턴 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대구경북 근대 기독교 유적지 탐방, 참전 UN군과 낙동강 방어선, 스토리텔링 관광, 도마성지순례 등 많은 관광프로그램을 개발했고, 특히 스토리텔링 분야는 대한민국 국가브랜드 관광분야 1위를 만드는데 공을 세웠다.

그는 공군 소령 예편, 2군수사령부 사령관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복무중 대구 신성교회, 구남교회 등에서 무보수 목회를 했다. 제대후에는 서울 남성교회에서 부목사로 안수를 받았고, 한신교회서도 목회를 했으며 1996년도에는 대구에 내려와 말씀교회를 개척,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저서로는 『가락국기해설』,『1세기 가야는 기독교국가였다』등이 있고 목판을 새기며 천연물감으로 한지에 찍는 옛 편지지인 시전지(詩箋紙)의 유일하게 남은 기능 보유자로 2011년도 카렌다 제작을 한 바 있다.

교회 안에는 본인의 시전지 조각작품과 액자, 이스라엘 유물, 성막유물 등 다양한 박물관 소장품들이 많았다. 박물관과 2층 교회에서 도마와 약초, 천재쉐마교육 등에 대해서 장시간 이야기 했다. 이에 대해서는 는데 구체적인 것은 도마박물관을 검색하여 직접 볼 수 있기를 바란다. (
http://cafe.daum.net/thomas7)

이제 본격적으로 대구 기독교역사유적을 둘러보았다. 먼저 동산병원 안에는 선교사 양관이 여러 채 있었다. 그런데 모두 잘 관리하여 지금은 각종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먼저 선교사 스윗쳐 양의 주택은
선교박물관이 되었다. 아쉽게 내부수리중이어서 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했다. 대구 최초의 처녀 순교자 스윗쳐 양은 부잣집에서 자랐고 미국에서 편안히 지낼 수 있었지만 한국에서 자비량 선교를 하다 순교하였다고 한다. 동산 선교사 묘지에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1900년에 대구에 사과나무(대구시 보호수 1호)를 심은 의사 존슨과
의료박물관으로 사용중인 챔니스 주택을 둘러보았다. 존슨이 초가에서 시작한 제중원은 현재의 동산병원이 되었다.

세 번째로는 선교사 블레어 주택은
교육박물관으로 활용, 당시 3.1운동 관련 자료와 사진을 보면 대구의 불교나 천주교에서는 3.1운동에 가담하지 않았고 기독교에서만 3.1운동을 하였다. 그래서3.1운동길이 있었다.

19세기 말 미 북장로교 아담스, 존스, 브루엔 등 선교사들이 대구에 들어와 남문 안에 있던 선교본부를 이곳으로 옮기며 "우리가 선 땅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이레의 땅"이라고 하였다. 브루엔은 당시 대구의 읍성을 바라보며 '다윗의 망대가 서 있는 예루살렘' 같다고 하였다. 이곳을 중심으로 교회, 학교, 병원을 설립, 제2의 예루살렘 대구 부흥의 시대를 열었다. 새로 지어진 대구제일교회당이 웅장하다.

이제 동산병원을 나와 근처
서현교회를 둘러보았다. 약령시 정규만 한의원장을 하던 정장로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많은 복을 받아서 당시에 동양 최대 석조 예배당을 지었다. 그 역사의 현장에 서 있게 된 것이 감동이다.

지나가는데 사적 290호
계산성당이 보인다. 서울, 양평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1902년에 지어진 서양식 성당건축물이다. 원래 이곳에는 1899년에 지어진 강화 성공회성당처럼 한옥형태의 성당이 있었는데 화재로 불타버린 것을 로베르신부가 설계하고 명동성당 건축에 참여했던 중국기술자 등이 참여하여 지었다고 한다.

끝으로 약령시에 있는 (구)
대구제일교회를 찾았다. 온통 담쟁이 넝쿨로 둘러쌓인 대구제일교회의 역사는 대구, 경북 지역 교회사의 축소판이다. 1898년 대구 경북지역 최초의 교회가 세워지고 1908년 서양 건축양식으로 단층을 지었다가 1933년 지금의 모습으로 벽돌로 지은 후 제일교회로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덤으로 제일교회 바로 옆에 있는
약령시한의약박물관을 둘러보았다. 대구 약령시는 조선시대(효종9년, 1658년)부터 이어져 온 전국 3대 한약재 전문시장으로, 수백 년간 전국은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유럽까지 한약재를 공급해온 세계적인 한약재 유통의 거점이며, 우리나라 한방을 대표하는 브랜드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약령시의 전통 한의약 문화를 보존·계승·발전시키고자 3층에는 한방역사실로, 2층에는 한방체험실, 1층에는 '한약재 상설시장'으로 다양한 전시, 교육, 문화, 관광을 위한 한방문화공간이었다.

 




선교박물관으로 사용중인 스윗즈 주택 - 수리중이라 못 들어 감.








대구 사과의 명성이 그립습니다.








의료박물관으로 사용중인 챌리스 주택





들어가 봅시다.


한의





























교육역사박물관으로 사용중인 블레어 주택








현재의 대구제일교회





선교사 묘원


3.1운동 길





나오면서 한번 더 - 스윗즈 주택과 제일교회


서현교회


정규만 한의원장 장로가 지은 예배당(별도의 이야기 참조)


계산성당 : 대구 중구 계산동에 있는 계산성당의 첨탑은 파란 하늘을 찌르듯 솟아 있었다. 서쪽 정면에 종탑(鐘塔) 기능을 하는 2개의 8각형 첨탑은 전주 전동성당과 함께 아름다운 쌍탑으로 유명하다.





구 대구제일교회


약령시장 거리에 있어요.





순전 한약거리





약령시한의약박물관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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