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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을 품고!

이선규 (서울남노회,대림다문화센터,목사) 2013-09-08 (일) 16:43 10년전 3042  
마지막에 힘쓸 일 로마서 12:3-13절
오늘의 첨단의 과학 문명의 시대에 미래를 예측하는 미래 학자들은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고 있습니까?
유럽의 최고 지성이라고 불리는 아우렐리오 파체이가 쓴 벼랑에선 인류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지구는 지금 파국을 향해서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으며 앞으로 인간이 지금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수정하지 않으면 앞으로 닥칠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그런데도 현대인들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방향을 수정 하려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할 수 있는가를 묻고 그는 그 답에서 그는 인류의 방향 전환을 요청 한다고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인간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21세기는 신앙은 설자리를 잃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까? 오늘의 인류의 비극은 영성을 상실한 결과에서 온 결과라고 보는 경향이 대두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그 해답을 듣고자 합니다.
로마서는 바울사도가 로마에 있는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 당시 로마는 세계의 도시 이었으며 부와 영화를 과시하는 도시 였습니다.
그런 반면에 사람들의 감성은 메말라 가므로 암투와 파당과 경쟁으로 사회가 점점 어두워져 갈 때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로마 교인들에게 그런 사회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거기에 동화되지 않으면서 생명력을 유지 할고 살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삶의 자세는
첫째 사랑을 회복 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라. (10) 아우레리오 파체이가 지적한대로 현대가 과학의 영향 하에 끌려가다보니 거기에는 냉철한 판단만을 요구받게 됩니다.
현대는 발전과 진보라는 구호아래 광란의 질주를 하기 때문에 사람과 사이는 첨예한 대립만이 존재하고 이웃과 이웃 사이에는 양보와 이해의 개념은 발붙일 틈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성서는 마지막 때에는 사람들이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우리에게 날마다 요구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
계산을 산을 잘해라. 냉철한 판단력을 키워라 손해 보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
만일여기에 미치지 못하면 바보 취급을 받는 세상입니다.
이렇케 영리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
왜 이렇게 성서는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를 성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고 하였고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 하신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13;1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우리를 이같이 우리를 사랑 하였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 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의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인데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 로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한자니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효과 적인 예배의 조건은 주님에 대한 우리들의 사랑 입니다.
세상 모두 사랑 없어 냉 냉함을 아느냐
곳곳마다 사랑 없어 탄식 소리뿐일세
악을 선케 만들고 모든 소망이루는 사랑 얻기 위하여 저들 오래 참았네, 어떤 사람 우상 앞에 복을 빌고 있으며 어떤 사람 자연 앞에 사랑요구 하도다. 먼저 믿는 사람들 예수 사랑가지 고 나타내지 않으면 저들 실망 하도다
너희는 그날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이 겨울이 되지 않기 를 기도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이 식어가는 이때에 처음 사 랑을 회복하는 여러 분들 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 십니다.
(11절) 여기 열심을 품고라는 단어를 어떤 주석에는 불타는 정렬로서 주를 섬기라는 의미로 해석을 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한 가지 열정은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육신에 관한 일에는 너무 과열되어 있는데 영적으로는 점점 차거워 지는 경향을 띠고 있습니다.
영과 육이 함께 뜨거워지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으로 뜨거운 사람들을 쓰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의 온도는 몇 도에 머물러 있습니까?
요리는 100도 일 때 요리를 해야 요리를 요리가 되고 맛이 난다고 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신앙의 온도가 100도 이상 높아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11절의 열심을 내라는 말은 100도를 유지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거기서 무엇인가를 기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세상은 점점 거짓 열심에 속고 있습니다.
이단들의 열심이 교회와 이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여호와 증인이나 이만희의 신천지 안상홍파나 중국에서 넘어온 국도교 같은 이단들은 자신이 이미 메시야로서 이 땅에 재림 주라고 서로 주장하고 있는데 재림주는 하나이어야 하는데 다른 재림 주 행사에 서로 격려를 보내는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불행하고 비참한 것은 무엇이나 무슨 일에 있어서나 자기의 젊음과 정열을 쏟아 놓을 곳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한번 생각 해 보십시다. 생의 보람을 남기고 간 사람치고 그 정령을 다 쏟아 놓지 사람은 없었습니다.
에디슨은 연구에 미쳐 버렸고 피카소는 그림에 베토벤은 음악에 섹스피어는 작가로서 정렬을 쏟았고 이달 말에 우리 교회에 오시는 김소엽 시인은 나는 영혼을 깨우는 시를 쓰기에 미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행복이니 보람 있는 삶이니 하는 것은 모두 열심이 없이는 성취 할 수 없는 것들 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선한 일에 열심을 다하는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되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 열심을 품고라는 단어는 “퓨뉴마티 제온테스”입니다. 이것은 성령이 부글부글 끓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을 믿고 사랑하며 섬기는 생활이 보통의 열심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불이 타오르는 것 같은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라는 뜻입니다.
여기 섬긴다는 의미는 보통 봉사 한다는 말로서 요즈음은 영어사용이 상식이 되어 서비스한다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심지어 유흥업소 같은데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봉사는 상대편의 인격이나 존엄성에서 나오는 봉사가 아닙니다.
단지 그러한 말과 행동을 통해서 얻어지는 이해관계에 근거한 봉사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경우에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배치되는 경우는 언제든지 등을 돌 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내안에 들어오시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추구하는 열심, 교회를 사랑하는 열심, 영혼에 대한, 불타는 사랑 하는 마음이 불같이 솟아나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열심을 품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소망중에 즐거워합니다. 우리에게는 이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이며 세상에서는 비교 될 수 없는 것 들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천국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이어 받을 하나님의 후사 들인 것입니다.
이 빼앗길 수 없는 소망을 간직 했기에 소망중에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에 소망이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즐거워 할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둘째 환란 중에도 참을 수 있습니다.
신앙심은 우리를 더욱 인내하게 만듭니다. 저는 어렸을 때 예방주사를 맞으라고 하면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한번 맞아 놓으면 그만큼 효과가 있습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세상을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 지어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 잡 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로 죽으리니 성도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도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 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억매인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에게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를 게의 치 아니 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않으신 이를 기억하라.
인내하며 주님과 함께 승리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기도에 힘쓰게 됩니다. 힘쓴다는 말은 한 번 해본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고 또 하고 일곱 번을 해도 응답이 없으면 여덟 번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20일 기도해서 응답이 없으면 21일 기도 하는 것이요.
1년이든 10년이든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일생 기도하다 하나님 나라에 가면 그 응답을 후손들이 받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9절에서 “너희는 선에 속하라”고 분부하십니다.
이선하심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희생하신 우리 주님의 품성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여는 자들 이어야합니다. 마음을 열고, 눈을 열고, 가슴을 열고, 그리고 손을 펴는 자들 이어야 합니다.
마음을 열어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자녀의 복을 누리고 눈을 열어 천국을 보고 그영광을 바라보고 기도 할 때에 우리의 가슴이 열려 사랑을 펼 수 있고 우리의 손을 펴서 이웃을 위해 봉사 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도 인 들인 것입니다.
우리의 눈을 여십시다. 우리의 가슴을 활짝 여십시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인류를 구원 시키고자 천년이 하루와 같이 하루가 천녀같이 기다리십니다.
독생자까지 보내시고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열심을 가지시고 일하시는 분이 십니다 우리도 열심을 품고 영혼을 구원하고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부흥시키고 민족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 받는 저와 여러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하나님의 열심히 여러분들의 열심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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