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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규

지혜자의 생활 설계!

이선규 (서울남노회,대림다문화센터,목사) 2013-10-02 (수) 09:39 10년전 2627  
지혜 자의 생활 설계 (고전 7:29-31)
어느 대학 교수의 글에서 ‘인간의 이상적인 삶에 대하여’란글 을 읽어 보았습니다. 젊은이는 반드시 세 가지는 있어야 하는데
첫째, 고상한 꿈,
둘째, 그 꿈을 실현 할 수 있는 기능,
셋째, 그 기능을 발휘 할 수 있는 건강과 힘을 가져야한다.
그렇습니다. 제아무리 고상한 꿈이 있어도 그 꿈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없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상적인 삶을 살려면 먼저 야곱이나 요셉과 같이 고상하고 위대한 꿈을 가져야하고 다음 그 거룩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이 기능이 바로 성령의 은사이고 이 기능을 발휘 할 수 있는 힘은 신자들의 영혼이 병들지 않는 영적 건강과 믿음이라고 판단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우리그리스도 인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있어도 없는 것같이 없어도 있는 것 같이 살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있습니다.
본문에는 ‘없는 자같이 살아라’. 하는 단어가 무려 5회에 걸쳐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하며 (29:30- 31)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세상의 형적은 다지나감이라”
결국은 사라지고 말 것들인데 그것에 집착해서 살지 말고 언제인가는 없어지고 말 그때를 생각하고 살아라하는 말씀입니다.
재산 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건강이라 하는 것, 명예, 권세,가 다 그렇고 우리의 생명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모두 영원하지 못합니다.
아내가 예쁘거나 남편이 잘나고 훌륭하다고 해서 마치 가족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능대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동물은 본능에 이끌려 사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생각을 할 줄 아는 존재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사람과 동물을 구별 짓는 중요한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육체적 본능에 이끌려 사는 사람이라면 역시 동물적 수준의 인 간일 수 밖에 없습니다.
먹고 입고 사는 것 이런 육체적인 생활이란 어떤 사람이든 너나 할 것 없이 그게 그것이고 거기가 거깁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입니다. 생각과 관심이 언제나 고상하고 높은데 있으면 고상한 사람이요, 그 생각과 관심이 언제 나 황막한 사막에서 맴도는 사람은 저속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 타입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먼저 본능대로 살아놓고 생각을 이에 맞추어 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행동거지를 합리화하고 변명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어.’ 또는 하루하루를 자기본능을 지배해나가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최종 목적이 무엇이며 궁극적 관심 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데 있습니다. 생각할 가치가 없는 것을 생각하고 관심을 둘 필요가 없는 것에 관심을 둘 때 에 거기에 불행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생각은 어디에 머물러 있습니까? 어디에 붙잡혀 있습니까? 어디에다가 마음을 두고 살아갑니까?
내 중심의 생각이 어디에 있느냐 말입니다.
우리는 쓸데없는 일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곤 합니다. 머리가 터지도록 몸이 쇠약해 져서 마침내 자리에 드러눕도록 마음을 쓰고 애를 태웁니다. 그러다가 뒤늦게 생각해보니 모두 무상한 일 이요 쓸데없는 일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가슴을 치고 후회를 하 나 부질없는 일입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여러분 진정 사랑의 대상이 누구 입니까?
아내나 남편이 없을 때에는 그 사랑이 하나님께 집중되어있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부터는 하나님에게 쏠려야 할 사랑이 가족에게로 기울어집니다.
결국 가족이 우상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멀리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아들이 없을 때에는 ‘주님만 바라봅니다’ 세상의 그 어느 것 보다도 주님을 사랑 합니다 하던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낳게 되니 사랑의 대상이 바뀌어 집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 아이고 예쁜 것’ 날마다 이삭에 관심이 쏠리다 보니 자연히 하나님을 멀리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네 아들 독자를 바치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냐? 아들이삭이냐? 하는 기로에서 하나님을 택했을 때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온전한 사랑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 인격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먼저 우리를 위해 외아들 독생자까지 사랑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는 자는 울지 않는 자 같이하며 기뻐하는 자는 기뻐하지 않는 자 같이하라’ 30절
사람은 울고 싶을 때가 있고 웃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이성의 동물이면서 또한 감정의 동물입니다. 그래서 이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감정의 노예가 되어 그 생을 망치는 경우를 허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싸울 때 보면 ‘어 네가 내 감정을 건드렸어’ 하고 죽기 살기로 달려듭니다.
우리는 이 감정이라는 사슬에 종이 되어 있습니다.
슬프다고 슬픔의 감정에 매이면 감정의 노예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 목사 부부가 셋째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가 다운 증후군 아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가슴이 철렁 내려 않았고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신다면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원망하는 마음 생기더랍니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그 동안 내가 기뻤던 일이 좋은 일과 좋은 생활과 좋은 환경 때문 이었구나? 환경이 조금만 어려워도 내안의 기쁨이 사라진다면 아 내가 예수님으로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고 이 아이가 다른 집에 태아 났더라면 버림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다른 집의 장애아를 생각하게 되더랍니다.
그때 갑자기 6섯 살 된 딸에게 선물을 사다 주었는데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던지고 화를 내며 울던 장면이 떠오르더랍니다.
그때는 부모로써 딸을 이해시키기가 힘들었는데 ...아 그렇구나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셨는데 내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내 생각과 다르다고 원망과 불평만하고 있구나. 이 아이가 축복이구나? 아이가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이어가게 할 축복의 통로라는 것을 깨닫자 정말 감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으로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으로 행복하면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 예수님만 생각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구하고 주님 안에 거하고 예수 안에서 죽고 예수님으로 살고 예수님을제일로 사랑하고 살기로 결단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상의 복이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닥쳐도 하나님이 내게 함께 하심을 믿고 그 능력을 힘입어서 나의 감정을 다스 릴 수 있을 때 하늘로부터 용기와 믿음과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슬픔에 잠기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 목자가 되사 생명 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저희의 눈물을 씻어 주시고 저희 행위를 기록하라고 하신대로 하나님 앞에서 받을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고’(30)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모든 매매하는 것을 멈추라는 말씀입니까? 사람이
물질을 아무리 많이 쌓아 놓아도 주님이 임재 하시는 그 날에는 돈은 휴지 조각으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물질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 주지 못합니다. 물질을 의지하고 살던 그것들이 그 어느 날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게 될 그날을 생각하고 돈의 노예로 살지 말고 열심히 벌고 모으되 하나님의 사업에 부하고 믿음의 부자로 살아가는 지혜로운 청지기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물건을 쓰는 자 는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31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언제인가는 자원도 고갈 될 때가옵니다
먹는 것도 좀 절제하고 환경을 잘 보관하여 공해를 줄여야 후손들이 편안한 삶을 살게 해 주어 야합니다.
가급적 일회용 기구는 삼가고 최대한 아껴 쓰고 바꿔 쓰고 나누어주고 재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돈이란 신비하고 위대한 기능과 능력을 가지고 있고 나아가서는 국가를 부강 하게도 합니다. 그러므로 요한 웨슬레는 돈을 모으는데 까지 모으라 저축 할 수 있는데 까지 저축하라 그리고 선한 일에 많이 쓰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하늘 창고에 쌓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사랑하지 말고 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돈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성경 마태 복음 6:28절에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 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먹어야 삽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너무 먹어서 탈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분명히 알아 야할 일이 있습니다. 음식 문화의 발달은 정신문화의 퇴보를 가 져 온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먹는 일에 정신 팔려 있는 세상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으며 무슨 가치 있는 일이 있으며 무슨 정신적인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사람이 먹기 위해 살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잘 먹으면 얼마나 잘 먹으며 많이 먹으 면 얼마나 많이 먹겠습니까? 많이 모아 놓고도 소화가 되지 않아서 못 먹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미국의 휴즈라는 사람은 돈 많은 사람으로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여러해 동안 오렌지 쥬스밖에 먹지 못했다고 합니다.
먹는 것이 무어 그리 대단 합니까? 우리가 신경 쓰고 염려하기 에 는 너무나도 허망하고 무가치한 것들 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 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여러분 우리 에게는 생명문제가 중요 합니다. 마땅히 여기에 관 심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나라요 이웃의 생명이요 하나님의 사업입니다.
3 the three f입니다.
첫째 f는(faith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아버지 (father)언제든지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 분 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셋째 f는 the first 무엇이 먼저냐 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이 먼저요 나는 나중입니다. 무너지는 세상, 사라지고 말 것들을 바라보고 실망 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루를 살아도 없는 것처럼 없어도 있는 것처럼 세상의 것 많이 가지지 못해도 믿음의 부자만 되면 하나님은 이 모든 것들을 더하시리라.(마6:33)
세상의 행적은 다 지나갑니다.
이사야 406절에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고 말했으며
이사야 38:12절에는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거둬 가시기를 목자가 장막을 걷어 올림같이 하며”라 했으니 장막을 거두어 버리면 그 자리는 허 허 벌판만 남고 적막한 자리만 남게 됩니다.
인생은 적막으로 돌아 갈 때가옵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적 탐욕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하나님의 자 녀들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차선의 것을 최우선에 두거나 상대의 가치를 절대가치에 묻혀서는 안됩니다. 그 삶이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그 마지막이 비참해 집니다. 무엇이 최우선이며 차선인가를 잘 분별할 줄 아는 여 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미래를 위한 좋은 터를 예비하는 지름길이 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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