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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신앙인의 무례함을 봅니다.

박용래 (대전광역노회,대전장로교회,원로목사) 2013-10-14 (월) 13:36 8년전 6364  
신앙인의 무례함을 봅니다.
20:7-12                                                                   2012.09.02.
 
결혼. 유머
한 청년이 결혼을 앞두고 목사님께 주례를 부탁하러 왔습니다. 주례를 부탁하려면 신랑, 신부, 부모님과 함께 와서 목사님께 정중하게 주례를 부탁해야 합니다.
그런데 달랑 신랑 혼자 와서 목사님께 주례를 부탁하자 목사님이 마음이 좀 상했습니다.
그런 차에 그 청년이 목사님께 하는 말'. 목사님 주례 사례비는 얼마정도가 좋을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당돌한 질문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주례를 할 때 돈을 받고 하는 것은 아니지요. 사랑의 마음으로. 새 가정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주례를 받는 사람은 축복해 주신 주례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인사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래도 사례비를 얼마면 좋습니까? 묻는 거 에요.
그래서 괘씸하게 생각한 목사님은 그 신랑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자네 신부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만큼 주게나.” 그랬더니 결혼식 날 아침 예식이 시작되기 전에 신랑은 목사님께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좀 황당해서 목사님이 봉투를 봤더니 100원짜리 동전 하나가 담겨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하지를 말던지설사, 아무리 예쁘지 않더라도 사랑하여 결혼하는 신부인데 100원 정도 밖에 예쁘지 않다는 뜻인가.?

결혼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신부의 얼굴이 궁금해졌습니다. 신부입장 하는 신부의 얼굴을 목사님은 자세히 보았습니다. 결혼식을 끝내고 목사님은 신랑을 불러냈습니다.
 
그리고 신랑에게 50원을 건네주면서 '받아두게. 거스름
 
돈이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은?자네 신부의 미모라면
 
50원이면 됐다네! 글쎄 그랬답니.
 
항상 웃어야할 때 웃지 못하는 사람은 병중에 큰 병든 줄
 
을 모르시나 봅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인터넷에 올려 진 유머의 한 토막입니다. 이야기 주제는 없습니다.
굳이 이야기의 주제를 붙인다면 '무례함' '버르장머리 없음' 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 성경 본문에는 '드로아' 지방의 '유두고'
 
라는 한 청년의 모습에서 하나님
 
앞에서 무례함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만들어 주는 내용
 
입니다.
 
이런 신앙인의 무례함은 본문의 나오는 한 청년에게서만 볼 수 있는 무례함이 아닙니다. 오늘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들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무례함이란 것입니다.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공경이요 경배입니다.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최선을 다하고 마음을 다 바쳐 섬기고, 공경하고, 예배해야 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대한 이런 공경은 예배시간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정성껏 하나님을 경배하고 높이고 찬양하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드로아를 방문한 바울 사도가 떠나기 전에 마지막 송별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배 도중에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유두고' 라는 청년이 창문에 걸터앉았다가 그만 졸
 
음을 이기지 못하고 3층 아래로 떨어져서 죽고 만 것입
 
니다. 큰 소동이 났습니다. 예배는 중단되고 설교도 중
 
단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얼른 아래로 내려가서 죽은 청년을 부등켜 앉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행히 생명이 돌아왔습니다. 교회는 살아난 청년으로 인하여 많은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예배시간에 왜 이런 문제가 발생 하였습니까 ?
'유두고' 라는 청년을 통하여 오늘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더욱 성숙한 신앙으로 회복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무례한 청년의 신앙상태를 점검해 봅니다.

1) 예배시간에 늦게 왔습니다.
유두고는 예배시간에 늦게 왔습니다. 와서 보니 이미 3층 다락방 교회는 앉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창문틀에 걸터앉았습니다. 그리고 졸음이 왔습니다. 그래서 그만 3층 창틀에서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만 것입니다.

이 청년은 예배시간에 늦게 왔고, 창가에 걸터앉았고, 말씀 듣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졸았기 때문에, 떨어져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분명히 예배에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졸았 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 유두고'라는 청년은 교회에 출석은 하였지만 예배를 갈망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소중히 여기지 않거나, 예배를 통하여 은혜를 갈망하는 마음이 없으면, 여기 유두고 라는 청년처럼 부끄러운 신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학생은 강의실의 좋은 자리를 맡으려고, 학교정문에서부터 뜁니다. 좋은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공부할 마음이 없는 학생은, 발걸음만 보아도 압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이 억지로 터벅 터벅 걸어갑니다.
 
지난여름 학생회 수련회에 참석한 우리 학생들이 은혜를 사모하는 열정이 있어서 은혜받기에 좋은 앞자리를 맡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수고를 했다고 합니다.
주일날 교회에 은혜 받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주일날 일찍이 일어납니다.. 목욕을 합니다.. 예배준비를 합니다. 옷도 청결한 것으로 갈아입고 헌금도 준비하고 항상 30분전에 1시간 전에 교회 와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예배에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은, 항상 예배시간 앞부분 10분은 잘라 먹고 나옵니다.
그리고 축도 전에 나가기가 바쁩니다. 예배자의 태도에서 예배의 소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신앙생활에 올 바른 태도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이 성숙해집니다.
언제인가 민주화가 이뤄진 다음에 청화 대에 한번 초청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대통령 한번 만나는 것도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시간 늦으면 청화 대에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어떤 이유로도 용납되지 아니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나오는 것입니다. 약속시간 하나 지키지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러 나오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그리고 온 힘을 다하고, 온 뜻을 다하고, 온 정성을 다 하여, 겸손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 자들을 찾으시어 은혜와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4:23-24)

본문에 유두고 라는 한 청년은 교회에 나오긴 했지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예배시간에 늦어서 창틀에 걸터앉아 졸기만 하다가 떨어져 죽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이렇게 부끄럽게 하지 않기로 결단하는 아침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창에 걸터앉았습니다.

'유두고' 는 창에 걸터앉았다가 떨어져 죽게 된 것입니다. 창에 걸터앉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 가는 중립지대입니다. 안인지 밖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곳입니다. (in) 도 아니고 밖(out) 도 아닌 중립지대를 성도는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신앙생활이란 회색지대는 있을 수 없습니다.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양자택일해야 합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어떤 군인이 어느 쪽의 공격도 받지 않기 위해 한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습니다. 윗도리는 북군 옷을 입고 아랫도리는 남군 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양쪽이 다 보호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남군(南軍)은 그가 입은 윗도리의 북군 군복을 보고 윗도리에다 총을 쏘아대고... 북군(北軍)은 아랫도리의 남군 군복을 보며 아랫도리에다 총을 쏘아대서.. 결국 그는 아래위로 두 배의 총알을 맞고 죽었다고 합니다.
타협하는 인생의 말로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타협하지 않는 믿음
1930년 프로펠러 하나 달린 단발기를 몰고 대서양을 처음 횡단한 영웅이 있었습니다.
바로 린드버그 대위입니다. 생명을 건 모험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 일에 도전했다가 생명을 잃었습니다. 린드버그 대위는 조그만 비행기를 타고 서른 몇 시간 동안 대서양을 횡단했습니다. 그리고는 일약 세계가 주목하는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가 영웅이 된 다음에 파리를 한 번 방문했는데, 그가 온다는 말을 듣고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렸습니다.
어느 큰 담배 회사 사장이 이 기회를 이용해 자기 회사의 담배를 광고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린드버그에게 다가가 담배 한 개비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것을 손에 끼어도 좋고 입에 물어도 좋습니다. 포즈 한 번만 취해 주십시오.
그러면 사진 한 장을 찍는 대가로 5만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70년 전에 5만 달러라면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그러나 엄격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린드버그는 이런 말로 대답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저는 세례 받은 교인입니다.”

이 말은 파리 신문에 기사로 나왔고, 그의 말을 듣고 그 당시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성금 10만 달러를 모아서 린드버그에게 갖다 주었다고 합니다.
 
창에 걸터앉은 신앙은... 세상과 타협하는 신앙입니다.
타협적인 신앙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성도는 타협하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항상 늦게 와서 창에 걸터앉아 있으면 졸음도 옵니다. 결국엔 떨어져 죽게 되는 자리입니다.
창가는 소극적 인 자리입니다. 나태(懶怠)한 자리입니다. 방관자(傍觀者)의 자리입니다.

예배당에는 () - 맨 앞자리, () - 중간 자리, () - 맨 뒷 자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꼭 동() 자리, 뒤 자석에만 앉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제나 사정이 생기면 예배시간에도 떠나겠다는 태도입니다.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는 자세가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분명한 결단과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도 좋고.. 저 것도 좋다. 기독교를 믿어도 구원이 있고.. 불교를 믿어도 구원이 있고.. 이런 종교다원 주의는 기독교를 무너트리는 잘못된 신학입니다.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믿어야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이 참 믿음입니다. 전적으로 예수님만 바라보고 신앙생활 하셔야 합니다. '유두고' 처 럼 창문에 걸터앉아서 예수님 좀 바라보고, 세상 좀 바라보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집중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는 창가에 걸터앉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차지도 덥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상태로, 신앙과 세상에 양다리를 걸치고 창가에 걸터앉아 안도 아니고 밖에도 아닌 중간지대에 머무르면 결국에는 실패하고 부끄러운 신자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신앙고백으로 하나님의 시민권을 가진 백성으로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예배시간에 졸았습니다.
20:9- 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아기들을 키워보신 어머니들이 고생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아기가 밤낮이 바뀌었을 때 참 고생을 많이 하게 됩니다. 잠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복입니다.
 
127:2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밤에는 평안히 잠을 잘 수 있고 낮에는 자유롭게 깨어서 활동을 하는 것이 복입니다.
그럼으로 평안한 잠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낮과 밤을 만들어 주신 것은 낮에는 열심히 활동을 하고 밤에는 편안하게 잠을 자라고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잠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시도 때도 없이 잠을 잔다든지,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고 졸고 앉아있다면 그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교통사고의 주된 원인은 과속운전, 과로운전, 음주운전, 졸음운전 입니다. 주행 중 조는 시간은 불과 2-3초에 불과하지만 그 결과는 끔찍하고 오래갑니다.
어떤 사람은 잠시 졸았던 것 때문에 이세상의 사람이 아니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잠시 꾸벅 졸았던 것 때문에 평생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 보내기도 합니다.
전쟁 중에 낮잠에 빠졌던 다윗 왕은... 충성스런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를 범하는 죄를 저지르고... 그 남편을 죽이는 악행까지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보면 신랑 오기를 기다리던 열 처녀들 가운데...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해 놓지 못하고 잠을 자다가 혼인 잔치에 참여하지도 못했고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는데... 곁에서 잠에 빠져 있다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유두고'는 예배시간도 지각생인데다가, 창틀에 걸터앉은 것도 문제인데, 또 깊이 졸았습니다.
은혜 받는 귀중한 시간에 조는 것 때문에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시간에 들어야할 진리의 말씀이 졸음 때문에 놓쳐 버리고 맙니다.

예배드리면서 은혜 받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몇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 중에 아이들이 울고 떠드는 것도 예배에 방해를 줍니다.
그러므로 애기 엄마들이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어린 아기들이 울면 예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유아실로 가고 잠시 밖으로 나가야 됩니다. 부흥회에 가보면 아기가 우는데도 엄마가 은혜 받는다고 예배 실에 버티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은혜받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이들이 예배 시간에 떠들지 않도록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예배를 바르게 드리는 태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수요일 밤에 유아 실에서 뛰고 소리치는 소리가 아래층 예배 실 까지 들립니다.
왜 예배드리러 와야 하는지? 예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바른 자세를 가르쳐야 합니다. 아니면 밖에 나가서 놀도록 해야 하는데 유아 실에서 뛰고 떠드는 것도 부모의 예배를 방해하는 일인데 방치해 두는 것은 예배의 바른 자세를 가르치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예배에 소란을 피우는 것은 예배에 방해를 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녀가 귀여우면 다른 사람에게 사랑 받을 수 있도록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드리는 데 방해되는 일은 예배시간에 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주보에 애인의 이름을 적고.. 낙서를 하는 것도 예배에 방해거리입니다. 예배드리는 일에 집중하지 아니하고 두리번거리거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것도 예배에 방해가 되는 행동입니다. 성도들은 경건한 예배를 위하여 이런 일들을 삼가 해야 합니다.

예배드리는데 매우 큰 방해되는 또 한 가지는...예배시간에 조는 것입니다.
물론 육체가 너무 피곤할 때는 졸 때도 있습니다. 또 토요일 야간 근무하고서도 예배드리러 나올 때는 졸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예배시간만 되면 졸면서 비몽사몽간에 예배드린다면 그것은 심각한 예배의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서 토요일 밤은 푹 쉬어야 합니다. 그래야 맑은 정신 맑은 영()으로 하나님께 졸지 않고 예배를 잘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밤에 푹 쉬고 안식일을 맑은 정신으로 거룩하게 지킬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의 성공 자가 돼야 신앙생활에 성공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성공해야 인생의 성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생활에 실패하면 인생도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본문의 '유두고' 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더 주목하여 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는 우리들의 태도가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 지를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잘못된 예배태도를 고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배를 방해하는 것들을 잘 극복하고 예배를 통하여 은혜 받고 축복받는 예배의 성공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는 감격이 넘치는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유두고 처럼 살다가 음부의 나락으로 추락당하는 어리석고 무례하고 불행한 신자가 아니라 예배생활에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고 간증이 넘치는 주님의 제자들로 거듭나고 쓰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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