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
 
 
 

외자설교 - '봄'

김민수 (서울북노회,한남,목사) 2013-10-15 (화) 11:40 10년전 4520  
()
마가복음 4:26-29
 
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
봄은 땅속의 씨앗들이 춤을 추며 올라오는 계절입니다. 봄비라도 내리고 나면, 그야말로 스프링처럼 여기저기 숨어있던 씨앗들이 땅 위로 올라옵니다. 어떤 것은 꽃부터 내어놓고, 어떤 것은 이파리부터 내어놓고, 어떤 것은 어느 날 문득 솟아오릅니다. 생긴 대로 저를 드러내는 봄. 지난겨울의 고단함을 견뎌낸 씨앗들이 펼치는 봄의 잔치 앞에서 생명의 경건함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동면의 상태에서 고요하게 봄을 기다리던 씨앗과 뿌리를 통해 침묵을 배우고, 고요함의 영성을 배웁니다. 인내의 영성을 배웁니다. 침묵이나 고요함이나 인내, 이 모든 과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아무것도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아무 일도 없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의 때를 기다리며 자신을 지켜가는 것입니다.
 
씨앗, 뿌리, 나뭇가지, 꽃눈.
이 모든 것은 기도하는 독방입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묵상하며 명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로세로 높이 50cm의 땅속에는 약 2만 개의 씨앗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피어나면 어찌 될까요? 그러나 그들은 한꺼번에 피어나지 않습니다. 봄이 오면 지천으로 냉이가 있지만, 피어난 것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1(0.3025),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면적에는 약 100포기의 냉이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 장소에서는 무려 열매는 4만 개, 씨앗의 수는 120만 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120만 개의 씨앗 중에서 약 100포기만 싹을 틔운 것이지요. 그러면 나머지 씨앗들은 죽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때가 되면 피어날 것들입니다. 완전한 씨앗입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때론 아주 오래 걸리기도 합니다. 봄마다 냉이를 캐 먹어도 냉이가 지천인 이유입니다. 기다림, 명상, 침묵, 고요함, 인내는 그들의 삶 자체입니다.
 
*
봄은 볼 것이 많아 봄입니다. 보고 보고 또 보아 봄입니다.
씨앗과 뿌리와 꽃은 각자 자기의 몫을 충실하게 수행하되 서로에게 유익을 주는 일체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하여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도 보면 씨가 나서 자라는 과정에 대해서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은 이삭이요, 그다음은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고 합니다. 뿌리와 줄기와 이삭, 그 모든 것들이 서로에게 유익을 주며 일체화된 삶을 살아간 결과 열매가 익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비유의 말씀은 성서에 비유의 이야기가 그렇틋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이냐? 자기의 몫을 성실하게 수행하되 서로가 서로에게 유익을 주고, 그것이 일체가 되어 선을 이루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런 봄, 보고 또 보아도 좋지 않겠습니까?
오로지 제 몫만 챙기며 살아가려는 세상, 그리하여 결국에는 죽음을 향해 가는 세상과 다른 모습을 우리는 작은 씨앗 한 톨에서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작은 씨앗 하나는 우리의 스승입니다.
 
*
위의 말씀은 김해자 산문집 <내가 만난 사람은 다 이상했다> 중에서 봄의 설법을 읽고 참고하고 부연하면서 정리한 것입니다. 자연은 그를 깊이 바라보는 이들에게 깊은 깨달음을 줍니다. 그 깊은 깨달음이란, 진리와 가까운 것인데 아하!’ 하는 것은 나도 자연과 더불어 있을 때 그와 같은 경험 혹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는지에 대한 차이와 저마다 다른 감수성 때문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만 따라 느낌 아니까~’입니다.
 
이란 보다의 명사형입니다.
무엇을 보는가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성서에는 해 아래 새것이 없다”(1:9)고 합니다. 결국, 이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보는 것이 중요하고 그 눈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히브리서 111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것(실상)처럼 보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눈뜸의 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것만이 예수님 치유의 목적이 아니라 그가 전인적인 자유인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 기적은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봅니까?
인간은 보려고 하는 것만 봅니다. 보려고 하는 것만 보입니다.
아무리 단풍이 곱게 들었어도 어떤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아무리 봄에 꽃이 피어나도 어떤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볼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는 눈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왜 보는 눈을 잃어버렸습니까?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헛된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눈을 치유하려면 먼저 우리는 창조세계 중에서도 자연의 변화를 깊게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창조세계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것을 통해서 시대의 징조를 정확히 보는 일, 시대의 징조를 보고 예언자적인 선포를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일, 이것이 일체의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신앙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하나님 나라는 그냥 오지 않습니다.
추수의 전제는 씨 뿌림입니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거두는 이는 씨 뿌린 사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라게 하셨지만, 씨 뿌린 이가 거두게 하시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상호 2014-03-18 (화) 07:31 10년전
읽다가 읽다가 감동이 되어 로그인했습니다.
계절에 맞는 설교문이 참 좋습니다.
꽃도 좋고 다 좋습니다.
글쟁이 + 명 설교가시군요.
주소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츲ҺڻȰ ⵵ ȸ ѱ⵶ȸȸȸ ()ظ ѽŴѵȸ μȸڿȸ ȸ б ѽŴб ûȸȸ ŵȸ ŵȸ ȸÿ ѱ⵶ȸȸͽ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