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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마음의 회복 시편 51:1-12

이기영 (전남노회,,목사) 2013-10-25 (금) 09:03 10년전 8092  
  정직한 정직한 마음의 회복 시편 51.doc (87.5K), Down : 11, 2013-10-25 09:03:34

정직한 마음의 회복                                       시편 51:1-12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51:10)

1

사무엘하 12:1-15절에 나단의 책망과 다윗의 회개가 나옵니다. 선지자 나단은 다윗이 우리아와 밧세바에게 저지른 악행에 대해 비유로 말합니다. 비유 속에 나오는 불의한 사람에게 다윗이 심판을 선언할 때, 다윗은 자신을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우리아를 죽게 했기 때문에 모세의 율법대로라면 사형을 당해야 했습니다(24:19-22). 시편51편의 제목은 이 시를 다윗 생애에서 일어났던 이 사건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다윗에게 내려진 첫째 심판은 그의 후손 중에 비참히 죽는 자가 있으리라(12:10)는 것인데, 이는 아들 암논(13:29)이압살롬의 살해(18:9-15)로 실현됩니다. 두 번째 심판은 가족 중에 다윗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가 있으리라((12:11)는 것인데 이 역시(16:21-22) 그의 아들 압살롬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다윗의 이야기는 인간적인 야망의 극치까지 올라갔다가 인간적인 고뇌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이야기입니다. 어떤 의미로 볼 때, 다윗은 그의 위대함 때문에 희생된, 최상의 권력을 쥐고자 하는 그의 불굴의 의지 때문에 희생된 인물입니다. 자신의 성공과 국가의 영광을 바란 다윗이지만, 도량이 넓고 매력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친구는 물론이고 적들도 그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깊은 의미에서 볼 때, 그는 그가 섬기는 하나님과 갈등에 빠졌던 것입니다.

미국의 역사에서 워싱톤, 링컨, 리 장군과 같은 역사적인 인물들을 이상화시켰듯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다윗의 약점은 차츰 잊혀지고 그의 위대함이 다시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들은 다윗이 그 어느 왕보다 능력과 선을 갖춘 이상적인 왕이었다는 것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야훼의 종이며,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한(삼하8:15) 하나님을 두려워한 왕으로 기억되었습니다. 

2

지혜의 왕 솔로몬은 나이가 들어 죽음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렇게 소원을 빌었습니다. 주여, 제가 평생 소원해 온 것으로 아직 이루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제가 죽기 전에 그 소원을 이루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간구했습니다. 허탄함과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허탄한 마음, 허황한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 가진 것도 없으면서 있는 척 하는 것, 된 것도 없으면서 된 척 하는 것, 아무것도 아닌데 굉장한 듯 꾸며대는 것- 이것이 허탄한 마음이요, 허황된 마음입니다. 언제까지 허망한 생각을 품고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늘 허황한 생각을 하고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거짓말을 안 하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합니다.

회개란 정직성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정직성에 대한 진단입니다. 거짓됨의 반성입니다. 시편51편을 통하여 다윗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있습니다. 신학자 틸리히(P. Tillich, Systematic Theology, III., 219)에 따르면, 히브리어 슈브(shubh)는 특히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길을 전환하는 것을 말합니다. 곧 불의에서 정의로, 비인간성에서 인간성으로, 우상에서 신에게로의 전향입니다. 헬라어 메타노이아는 같은 뜻을 포함하지만, 인간의 심정과 관련해서 순간에서 영원으로, 또는 자신으로부터 신에게로의 전향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라틴어 콘벌시오(conversion)는 공간적 이미지를 지적 내용과 합일시키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틸리히는 이 같은 어원 이해를 근거로 해서 두 가지 사실에 집중합니다. , 회심 사건에서 부정되는 것과 긍정되는 것이 그것입니다. 전자는 실존적 소외에 구속당하는 것이고, 후자는 영적 현존으로 인하여 창조된 새로운 존재입니다. 전자는 회개를 통해서, 후자는 믿음을 통해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다윗의 일곱 편의 참회록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시편51편입니다. 이 시의 주제는 죄의 용서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종교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신앙의 내용이며, 동시에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속의 복음의 진수입니다.

다윗의 깊은 회개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하나님과 직선관계에서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직접 만납니다. 혼자서 후회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 가서 잘못 했다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입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 없습니다.라고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는 결과로 인해서 남을 원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내 잘못의 책임을, 그 원인을 결코 사회나 환경에 떠 넘기지 않습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취하는 엄청난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복합니다. 다윗은 그 많은 시편, 그 많은 회개 중에 단 한번도 밧세바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회개에 나타난 특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회개를 하다가도 내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기 일쑤여서 문제입니다. 이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다윗은 누구를 탓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깊은 죄를 회개했습니다.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5)라고 회개했습니다. 이 말은 히브리적으로 보면 결코 어머니가 부정한 관계에서 자기를 나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날 때부터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죄인이므로 오늘의 사건이 우연한 사건이거나 돌발적인 사건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본질적으로 죄인이요, 이러한 죄가 누적되어 오늘의 사건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진정으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사건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는 본질적으로 죄인임을 말하는 것, 이것이 회개입니다.

3

시편51 1-5절은 회개를 말씀함이요, 6-12절은 새롭게 됨을 간구합니다. 죄는 또 다른 죄를 낳고 죄에서 다시 죄로 연결되기 때문에 지금 자신이 회개하고 용서를 받는다 해도 스스로 거듭 죄에 빠질 수 밖에 없으며 죄짓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10)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창조를 의미하는 바라는 창세기 1장에 거듭 나타나고 있는 말로 천지를 창조하다 creation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다윗의 이 고백은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해 주세요. 그래야만 이제부터 바른 길을 갈 수 있겠습니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겠습니다.

여러분, 정직하려고 노력해 보았습니까? 그렇다면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부터 정직을 잃어버리고 살았기에 정직을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직을 생각하고 산 사람은 정직과 진실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가장 귀한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압니다. 모든 문제가 진실에 걸려 있습니다.

다윗은 죄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성실을 잃어버리는 죄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정직함의 회복을 소원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모든 죄를 회개하면서 더불어 정직성을 회복시켜주십사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앞으로 남은 시간을 바로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다윗이라는 이름이 무려 8백 번이나 나옵니다. 사람의 이름 가운데 가장 많이 나오는 이름이 다윗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극진히 사랑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붙여주신 별명으로 알 수 있습니다. 내 종 다윗, 정직한 사람 다윗- 바로 정직함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붙여주신 별명이었습니다.

 소년시절의 다윗은 참으로 정직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했고 사람 앞에 정직했습니다. 자연과 자신의 임무 앞에 정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무서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정직한 사람이기에 담대했으며 항상 평화로웠습니다. 또한 그에게는 목자로서 양을 칠 때에 맹수가 어린양을 물고 가자 달려들어 맹수를 죽이고 어린양을 되찾아 오는 용기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정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특별히 널리 알려진 골리앗대장과의 싸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에게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라고 소리치며 물매 돌을 내던지는 용기도 있었습니다. 이 역시 정직함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윗은 정직하고 진실하다면 하나님께서 항상 도와 주실 것을 믿었기에, 하나님은 정직한자의 편이심을 믿었기에 늘 자신만만 하였습니다. 다윗은 이토록 대단한 용기의 사람이었고, 이 용기는 그의 정직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4

그러던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그는 군왕으로서 못할 말과 못할 짓을 많이 저지르게 됩니다. 보좌를 지키기 위하여 거짓 되기도 하고, 말과 행위가 정치적으로 변하고 맙니다. 소년시절의 정직함은 하나 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거짓과 위선으로 부끄러워지고 약해지고 비겁해지고 두려워지고 마침내는 형편없는 인간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인격의 파탄이 오는 것입니다. 모도 병듭니다. 정직함은 자기자신과의 다른 만남이요, 자기자신을 찾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직을 상실하면 존재를 상실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정직한 만큼 자기정체를 향유하는 것입니다. 만일 모든 행위가 거짓되다면 그의 인격, 인간, 그의 존재는 없는 것입니다. 허깨비가 살아가는 것일 뿐, 지혜도 용기도 없습니다. 물론 행복도 평화도 있을 수 없습니다. 모름지기 존재의식이란 정직함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정체가 곧 정직함입니다.

또한 정직이란 하나님 앞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평가나 평판, 인간규례를 논할 것이 아닙니다. 남이 뭐라 하든 상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그분께서만 아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진실을 아신다고 한다면 나에게는 좌우 전후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두려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중심을 아신다는 것보다 더 큰 의지가 없는 것입니다.

나아가 정직함이란 자기자신에게 운명을 내거는 것입니다. 정직한 연후에 오는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여러분, 정직해서 다소 손해가 나더라도 정직함을 택하고 손해를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자세입니다. 이익을 보거나 출세하기 위하여 정직을 버리는 순간에는 모든 것을 잃고, 출세 좀 해보려다가 정직함을 내동댕이 친다면 이제는 양심도 인격도 없는 비참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모름지기 정직과 진실이 최우선임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하나님 앞에 참회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의인이 되려는 것도 아니요, 왕위를 유지하려는 것도 아니요, 오래 살고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이것이 그의 기도입니다.  

 5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정직이 신발을 신는 동안, 거짓말은 세계를 반바퀴 돈다 라고 말합니다. 정직하긴 해야 하겠는데 오늘이 아니라 내일 정직하겠다고 미루는 것입니다. 신발을 신는다는 것은 정직을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신발을 신는, 그 준비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오늘부터, 바로 여기서부터, 바로 이 사건에서부터 정직할 것입니다. 정직은 내일로 미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은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정직함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보증하십니다. 정직함으로 손해 보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보증해주십니다.

여러분, 잃어버린 재물로 근심하니까? 실추된 명예 때문에 번민합니까? 나이 들고 건강을 잃었다고 고민합니까? 이 모두 언젠가는 없어질 허망한 것입니다. 마지막 남은 가장 귀한 소원은 정직함입니다. 하나님이여, 이제 앞으로 며칠을 살더라도 정직한 생을 살게 하옵소서. 모름지기 내정직함의 현주소를 물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더는 변명도 말고 누구를 원망도 맙시다. 일었던 정직에 관심을 가지는 것, 이것이 최우선입니다. 모든 것의 근본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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