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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케냐 선교여행에 다녀와서

이상호 (대전노회,공주세광교회,목사) 2013-10-30 (수) 11:59 10년전 9287  


아프리카 케냐 선교여행에 다녀와서
 
이상호 목사(공주세광교회)
 
필자가 마침내 1000회의 글을 쓰고 있다. 마침 지난 6-18일까지 아프리카 케냐 선교여행을 다녀왔다. 지지난 주일(6일) 모든 예배를 마치고 7명의 안디옥 선교회 회원들과 함께 선교물품을 가지고 인천공항을 향했다. 7일 1:15분 발 비행기지만 미리 가야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하면 떠오르는 것이 기근과 가난의 땅, 흑인 노예, 계속되는 전쟁과 폭동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57개국이 있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40개국 가운데 32개국이 아프리카에 속해 있으며, 아직까지도 내전의 소식이 계속 전해지고 있다. 그리하여 아프리카는 세계의 구호물품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이며, 8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가장 높은 인구 성장률을 가진 땅이다. 또한 다양한 지하자원으로 인하여 세계열강의 자원 쟁탈전의 현장이기도 하고,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소비 시장으로 많은 나라들이 앞 다투어 진출하려 하는 땅이기도 하다. 또한 다양한 기후와 아직까지 개발의 여력이 미치지 못한 여건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많이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케냐는 아프리카 대륙의 중동부에 위치해 있다. 적도가 케냐를 남과 북으로 나누며 지나간다. 이로 인하여 케냐는 강렬한 햇빛이 작렬하는데 이는 지력 감퇴와 토양의 산성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케냐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하여 다양한 기후가 펼쳐진다. 남한의 6배 크기의 땅이지만 해안가는 고온 다습하며, 내륙으로 올라오면 건조하고 서늘한 지역이 펼쳐지기도 하고, 밀림 지대가 있는가 하면 만년설이 덮인 킬리만자로 산(5,895m)도 있고, 나일강의 근원이며 남한만한 면적의 빅토리아 호수도 있고, 일부에서는 사막 기후가 펼쳐지기도 한다. 그래서 케냐를 천의 얼굴을 가진 땅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연중 강우량이 500mm이하인 땅이 72%를 차지해 물이 많이 부족한 땅이다. 케냐에는 약 50여 개 부족이 모여 사는데 인구는 약 3,500만 명 정도이고, 주 산업은 농업과 관광이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나자 유럽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위치와 권리를 인식하면서 아프리카에도 독립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61년에는 탕가니카와 잔지바르 왕국이 합쳐져 탄자니아로 독립을 하고 62년에 부간다 지역은 우간다로 독립을 한다. 1895년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던 케냐는 63년에 사회주의를 모방하는 주변 국가들과는 달리 영국과 미국의 도움아래 민주주의 국가로 독립을 한다.
 
무려 열 시간을 비행하여 아랍에미리트 수도 아부다비에 도착했다. 밤늦은 비행에 피로감과 지루함이 심했다. 마침 북수단에서 선교하다 추방되어 다시 남수단으로 선교차 이동하는 박경호 선교사 가족이 함께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서너시간 휴식 후에 다시 나이로비행 비행기에 올랐다. 30분이나 연착출발이다. 이곳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보다 6시간 늦은 시차의 나이로비에 도착하니 오후 1:50이다. 제법 긴 입국수속을 마치고나오니 임재찬 선교사가 기다리고 있다. 낡은 봉고에 짐과 함께 7명이 타니 한 차 가득이다. 큰 도로가 막혀 작은 도로로 낡은 차들에서 나오는 매연에다 에어콘이 없는 차이기에 문을 열어놓고 달리다보니 후진국에 온 기분이 확 들어온다.
 
그러나 해발 1,700m에 위치한 나이로비, 게다가 숲속에 위치한 선교센타에 도착하니 상쾌하다. 이항수 목사와 김미자 사모, 황숙경 사모 등이 반갑게 맞는다. 작은 집과 차고를 수리하여 만든 이선교사 댁에는 맛있는 저녁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모님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어 분위기가 더욱 좋았다. 케냐감리교 소유 부지에 30년 임대로 몇 분의 선교사 숙소인 선교센타를 지었다고 한다. 임선교사네 집 1층에 우리들 숙소로 두 방에 여 3명, 남 4명이 쉬도록 했다. 두 집 욕실을 이용하여 샤워를 하고 긴 여장을 풀었다.
 
8일 아침 먹고 2박3일 일정으로 마사이 마라 사파리를 떠났다. 사파리(safari)란 사냥과 탐험을 하는 여행이란 말로 대자연에 펼쳐진 동물구경이다. 두어시간 달려가니 굉장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레이트 리프트 벨리(Great Rift Valley), 약 2,500만 년 전부터 시작된 태초의 지각 활동으로 생겨난 지구대로 시리아 남쪽에서 시작, 홍해로부터 이디오피아, 탄자니아, 말라위, 짐바부웨까지 걸쳐있는 폭 35- 60km, 총 길이 9천 6백km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길이의 대협곡이다. 무수히 많은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는 드넓은 초원이다. 마사이 마라 국립공원을 찾는 관광객들이 들르는 곳이다.
 
다시 포장, 비포장 산길을 무려 4시간 달려 마사이 마라를 찾았다. 비포장도로라고 천천히 달리지는 않았다. 천장에 머리를 박을 만큼 튀어 오르기도 하고 오장육부가 흔들리게 덜컹거렸다.
 
자주 만나는 가축들의 이동장면,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과 건기라서 매마른 대지에 선인장 나무들을 지나 마사이 마라 국립공원 Kenya Masaimara National Park에 도착했다. 경비절감을 위해 저렴한 텐트형 숙소를 택했다. 휴식 후에 1차 사파리를 했다. 누떼, 들소, 얼룩말, 사자, 코끼리, 치타 등 각종 동물들을 만났다. 7:30 저녁을 먹고는 별로 할 일이 없다. 전기사정이 안좋아 독서도 어렵다. 발전하여 쓰는 전기는 초롱불 수준이다. 12시 소등하면 아침 6시나 돼야 불이 들어온다.
 
사파리 이틀째는 마라(평원)강을 찾았다. 물론 두 세 시간 계속되는 평원에는 각종 동물들이 즐비하다. 임선교사의 설명에 의하면 동물의 수가 13년 전에 비하며 10/1 수준으로 줄어든 모습이라고 한다. 자꾸만 사람들이 찾아오고 환경에 변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탄자니아와의 국경지역인 마라강에 이르렀다. 마사이마라 보호구역은 1961년에 지정 되었으며 넓이는 1,812평방km에 이른다. 남쪽의 경계는 탄자니아 쎄렝게티 국립공원과 인접하여 있는데 2박 3일을 지루하지 않게 둘러 볼 수 있는 넓이였다. 그런데 쎄렝게티는 이보다 10배나 넓다니 입이 벌어진다. 독수리떼와 악어, 하마들이 자연 그대로 떼를 지어 있다.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장면을 현장에서 보고 있자니 감동이다. 다시 1박 후 새벽 사파리를 하고는 늦은 아침을 먹고 다시 나이로비로 돌아왔다. 작은 체구의 황사모가 해준 저녁밥을 먹으니 고향에 온 기분이다.
 
10월 11일 드디어 2박 3일 여정으로 선교여행을 떠났다. 임선교사가 섬기는 교회들을 둘러보는 날이다. 15교회 중 가능한 대로 방문하려고 한다. 선교회에서는 학용품과 방문교회마다 전기가 들어오는 교회에는 강대상 절기장식품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교회에는 태양광으로 충전하여 사용할 수 있는 등을 준비했다. 임선교사가 케냐에 들어온지는 벌써 17년 째인데 고향이자 파송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찾아간 손님이란다. 물론 파송교회인 늘푸른(중동)교회에서는 방문하기도 하고 교회를 건축해 주기도 하였다.
 
먼저 잠시 마트와 재래시장엘 들렀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가격이 싼 농산물과 기념품들을 샀다. 그리고 선교지에 가서 먹을 것도 장만했다. 그리고 한참을 달려가 카지아도 지역 마트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가장 먼저 키탱겔라교회를 방문했다. 메루부족 사람들이 많은 교회라고 한다. 건축 후에 경계분쟁이 있어서 일부를 줄였다고 한다. 마침 교역자가 자리에 없어서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위하여 함께 기도한 후에 대표기도를 하고 나왔다.
 
이번에는 키레티교회와 학교를 찾아갔다. 키레티교회는 아들 잃은 부모가 세운 교회로 국회의원의 도움으로 학교도 운영하고 있었다. 교회 바닦은 시멘트이고 지붕은 함석으로 천정 장식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선물을 전달하고 위하여 기도를 드렸다. 학교에는 꽤 많은 학생들이 수업중이었다. 여교장 선생이 일행을 맞아 학교현황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었다. 아이들에게는 일행 최권사가 준비한 사탕을 나누어주었다.
 
다시 키사주교회를 찾았다. 비포장 도로로 찾아가보니 예쁘게 지은 예배당이었다. 천정과 벽을 잘 장식하여 요즘엔 샘플이 되어 이렇게 지어달라고 한다고 한단다. 홍콩에서 세운 교회로 최근에 우리쪽 도움으로 신축, 여성 전도자가 예배인도 한다고 한다. 저수지도 파 주었고 열심히 모인다고 한다.
 
네 번째로 도시에 있는 이신야교회를 찾았다. 이 지역 최초 교회로 감리사가 시무중이었다. 순식간에 아이들이 몰려온다. 시내 근처에 있다보니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공주 경천교회 도움으로 유치원 건물을 지으려고 터를 마련하고 있었다. 교회 안에는 오래된 의자들이 무질서하게 놓여있고 전혀 정성이 없어 보였다. 마을을 다해 위하여 기도를 드렸다. 주변에 화훼농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나이로비에서 남쪽으로 80km정도를 달려 카지아도교회에 도착했다. 카지아도는 우리 충청도만한 지역 타운으로 도지사 관사 근처에 임선교사가 세운 교회라고 한다. 유치원, 사택, 숙소, 사무실이 있어서 지역선교센터 역할을 하며 매주 임선교사가 주일 포함 2-3일 씩 머무는 곳이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지역교회 전도사들이 모여서 각 교회상황보고도 하고 주일날 선포할 말씀을 점검받으며 성경공부도 한다고 한다. 더욱이 내일은 이 교회에서 이 지역 지방회가 있어서 모두 모여 저녁을 함께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갔다. 케냐에 와서 처음으로 부부가 함께 하는 더블침실에 들었다. 그런데 이 무슨 난리인가?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고 샤워장에 들어갔는데 온수는커녕 아예 물이 나오지 않는다. 잘 통하지도 않는 말로 방이 많으니까 물이 나오는 방으로 바꿔주든지 물이 나올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건 케냐에서 무리한 요구였나 보다. 옥상 물통에 물이 없는데 밤에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일이었다. 샤워는 그만두고 발도 제대로 씻지 못한 채 엉거주춤 피곤하니까 그냥 자고 일어났다.
 
아침에도 문제는 여전했다. 화장실이 큰 문제였다. 일하는 현지인이 물통에 물을 가져와 가까스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면서 강수량이 적은 케냐체험을 확실히 한 셈이다. 게스트하우스 주변엔 학교와 성당 등 꽤 넓은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오전에는 카지아도교회에서 모이는 지방회에 참관하며 상견례와 선물나누기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생각보다 금방 시간이 지나간다. 점심을 해먹고 오후에는 다시 교회탐방을 나섰다.
 
먼저 비포장으로 한참을 들어가서 올로마이아나교회를 찾았다. 역시 학교도 있는 시골교회였다. 학교 교사로 있는 전도사가 시무하는 미자립교회였다. 이곳에도 저수지를 파 주었는데 가까이 볼 수 있었다. 물론 건기라 물은 없었다.
 
이번에는 탄자니아 국경 근처에 있는 비리카교회를 찾았다. 가는 도중 저 멀리 구름에 가려 절반만 보이는 킬리만자로 산도 보았다. 지역 학교 교장이 전도사로 있어 자립하는 교회였다. 역시 아이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강단이나 예배당에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교회, 선교사를 좋아하는 이 나라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읍내에도 교회가 있는데 시간관계로 들르지 못하고 대신 탄자니아 국경은 넘어가서 기념사진을 찍어왔다. 꽃이 만발한 휴게소에 들러 탄자니아산 원액 망고쥬스도 한 잔 했다.
 
이번에는 국도에서 비포장으로 20여 km를 달려 마일루아지역을 지나 나세리안(평화) 세레교회를 찾았다. 개울도 건너고 먼지 속을 뚫고 마치 정이품송 같은 아카시아나무 사이로 아름답게 물든 석양빛 고운시간에 교회에 당도했다. 대충 보아도 아름다운 교회와 사택이었다. 그런데 주변에 집은 하나도 없다. 그만큼 시골이다.
 
저녁을 해먹고는 처음부터 관심사였던 쇠똥집으로 안내되었다. 달빛 어슴프레한 들길을 지나 2km정도는 걸었던 거 같다. 짐승들이 있는 마을에 들어섰다. 안내하는 아이를 따라 몸을 굽혀 빠듯이 들어가는 마사이 목동이 사는 쇠똥집이다. 화로엔 불이 타 오르고 있다. 방에는 어린 아이가 자고 있다. 안주인은 얼른 아기를 안아간다. 담요 한 장, 벌레잡는 스프레이 한 통을 받아왔는데 먼저 약을 뿌리라고 한다. 늘 그냥 사는 주인을 생각하니 많이 뿌리기가 민망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대충 뿌리고 났더니 자기들도 뿌린다고 빌려달라고 한다. 무슨 말이 통해야 대화를 하지, 앉아있는데 차를 대접한다. 조금 마시고는 배가 불러 아이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잠을 청하는데 온 몸에 벌레가 슬금슬금 야단이다. 덥고 잠이 오지 않는다. 밖에 나가 달도 찍고 양무리 등 동물과 내가 잔 집을 사진에 담았다. 다시 잠을 청해본다. 자는 둥 마는 둥 날이 밝았다. 일출과 함께 마을전경을 사진에 담고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핸드폰을 쇠똥집에 둔 채 왔다. 되돌아가 전화기도 찾고 사진도 찍었다.
 
세레교회는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전경과 담임 전도사와 기념사진도 찍었다. 아침밥을 지어먹고 나니 나귀 떼가 짐을 싣고 한 여자의 인도로 무리지어 간다. 등에 십자가가 선명한 착한 동물,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타셨던 거룩한 동물 당나귀이다.
 
9시가 되니 어린이주일예배가 시작된다. 역동적인 찬양과 파워풀한 예배이다. 끝날 때는 모두가 입구로 나가 서로를 축복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이어서 어른예배, 아니 아이들과 모두가 함께 하는 주일공동예배가 시작되었다. 다같이, 어린이 찬양, 청소년부 찬양, 간증 1, 2, 3, 4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 일행 소개와 찬양이 있었다.
 
더욱이 오늘은 안디옥선교회 회장 이종민 목사의 설교에 선교사가 영어로 통역하면 전도사가 현지어로 통역하니 설교시간이 3배로 늘어난다. 역시 어른들도 모두가 밖으로 나가며 돌림악수를 하고 서로를 축복하며 끝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점심은 임선교사 지도로 만든 햄버거로 먹었다. 양배추에 각종 과일로 만든 소스로 맛이 있었다. 이제 성도들을 작별하고 나이로비로 향했다. 이웃마을 마일루아교회를 방문했다. 탄자니아로 간 박천달 선교사가 개척한 교회를 임선교사가 관리하고 있는 교회이다.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아이들이 몰려온다. 위하여 기도하고 사탕과 선물을 나누며 기념사진도 찍었다.
 
이제 비포장도로를 다 달리고 카지아도를 향하여 포장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차에 이상이 발견됐다. 결국 바퀴가 빠지는 고장으로 갓길에 세웠다. 앞서간 차를 불러 핸드폰을 소지한 김현수 목사와 여자들을 먼저 보내고 정비공과 함께 올 때까지 그늘에서 쉬었다. 되돌아 온 차를 타고 카지아도 선교센타에 와서 일행과 함께 봉고차에 타고 나이로비를 향하여 얼마를 달리는데 해가 졌다. 이번에는 교차로에 차가 엉켜서 3-40분 지연한다. 신호등이 없는 케냐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고 한다.
 
저녁은 원래 사파리 팍 호텔에서 목욕도 하고 다양한 고기를 구워주는 특식으로 예약을 했었다. 늦는 관계로 목욕은 포기해야 했다. 늦은 식사지만 멋진 공연과 함께 심신을 풀 수 있었다. 연기자들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선교센타에 들어와서는 샤워하고 곧바로 잠을 청했다.
 
14일에는 다시 2박3일 일정으로 남부 몸바사로 휴양을 떠났다. 몸바사는 케냐 제 2의 도시로 바닷가에 위치하여 30도를 넘는 휴양지이다. 열차로는 밤새 가야하는 거리라 비행기로 다녀왔다. 가면서 창가에 타는 관계로 킬리만자로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45분이 금방 지나갔다. 몸바사는 인도양에 연해 있어 아래쪽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다르에스살람과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다. 아랍, 포르투갈, 영국 등에게 차례로 지배당한 경험이 있으며 인구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는데 이는 회교국 오만의 오랜 통치 영향이라고 한다.
 
방을 배정받고 점심을 먹었다. 손목에 비표를 달아주는데 경내에서 식사, 간식, 수건 등 모두가 무료이다. 휴식을 취한 후 바닷가에 나갔다. 하얀 모래가 영락없이 떡가루다. 역시 부드럽기가 그만이다. 바다 또한 이제까지 경험한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벌레물린데 소독할 겸 일부러 바다에 들어갔다. 깊지 않은 바다가 놀기에도 좋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바닷가에 나가보니 일출광경이 경이적이다. 새벽기도회로 하루를 시작하여 생각해보니 아무런 프로그램 없이 바다에 온 건 처음이다. 2박3일을 어떻게 지내나 했는데 시간이 잘 간다.
 
호사다마라 오전에 수영장엘 갔는데 선교사가 깊다고 일러줬는데 배영을 즐기다가 그만 가장 깊은 곳에서 일어서다가 아주 큰일 날 뻔하였다. 배영을 하여 가다가 돌아 나왔다. 그런데 일어서보니 쑤-욱 들어간다. 확인하여 보니 방향을 잃어 일어선 곳이 280cm나 되었다. 가까스로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두통이 생겼다.
 
휴식과 자유시간을 가지다가 오후에는 물때를 맞춰 배를 탔다. 배 밑이 유리로 장식되어 바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사공들은 예상했던 만큼 고기가 없자 밑밥을 주고 갖은 노력을 다 한다. 사실 우리는 모래턱에 가서 바다를 즐기고 싶었다. 늦었지만 배를 움직여 모래턱에 이르렀다. 누군가 여기에 고기가 있다고 하여 일행 중 조목사가 손을 넣었다가 그만 바다장어에 물렸다. 제법 큰 상처를 입고 병원에 다녀왔다. 더욱이 얕은 바다에서 배의 기관이 바닦에 닿아 고장을 일으켰다. 노도 없이 사공들의 노력과 바람에 의해 육지로 나올 수 있었다. 몇 명 되지 않은 일행인데 사고의 연속이었다. 일행을 이끄는 선교사는 "오늘 하루가 가장 길었다"고 말한다. 우리도 '일당 십'이라고 수긍했다. 그러나 여행에서 이런 스릴과 사건이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추억이 아닐까?
 
마지막 밤이 지났다. 일출이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어제보다 더욱 아름답다. 아침기도회는 계속되었다. 참 좋았는데 인도자의 수양부족으로 상처를 남겼다. 인간적인 관계를 넘어 하나님 말씀을 소흘히 하는 부분에 대한 과잉반응을 했다. 자신이 부끄럽다.
 
오전에는 할라 팍이라는 공원엘 들렀다. 원숭이, 거북이, 악어, 뱀, 새, 기린 등 살아있는 자연사박물관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기린에게 밥주는 시간이 길어지고 길이 막혀 몸바사의 대표적인 관광지 Fort Jesus에서는 시간관계로 증명사진만 찍었다. 1593년 포르투갈인들이 바다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진 요새로 중요한 역사유적이라고 한다.
 
비행기는 금방 나이로비로 돌아왔다. 선교사 가족들은 양고기 파티를 준비해 주었다. 정말 맛이 있었다. 그리고 이항수 선교사의 인도로 수요예배를 드렸다. 케냐에서의 마지막 밤은 금방 흘러갔다. 짐을 정리하고 다른 날 보다 훨씬 늦게 잠을 잤다.
 
17일 오전에 센터 근처 테러로 70명 이상 사망자를 내 굳게 닫혀있는 웨스트게이트 쇼핑몰을 거쳐서 나이로비 국립박물관을 찾았다. 자연, 민속, 역사, 그림전시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잘 전시되어 있다. 독립기념탑과 전망대에서 나이로비를 한 눈에 바라보며 가노라니 금방 공항에 도착한다. 선교사님들과 작별하고 돌아올 때는 아주 순조로왔다. 아비다부에서도 비행기가 바로 이어지고 인천공항에서도 공주행 버스가 바로 있었다. 참으로 많은 추억과 의미를 지닌 여행이었다. 준비와 진행 등 애쓰신 분들에게 감사하며 지면관계로 여행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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