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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괜찮습니다!

이준원 (충북노회,우암교회,목사) 2013-11-06 (수) 08:23 10년전 6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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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괜찮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의 생애들을 기록한 믿음장입니다.
그런데 이 장엄한 대서사시의 결론 부분에서 히브리서는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다”(11:39)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수많은 물질축복, 명예 권세, 자녀의 축복! 믿음의 영웅들이라면 당연히 그 대가를 받아야할 텐데 뜻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남들의 시선이 불편해서라도 그 고민의 시간, 마음고생이 길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지켜준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은 증거’, 즉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보이는 이 땅을 살아가는 나와 오랜 관계 속에서 영으로 굳건히 연결된 교감이요, 전적 신뢰였습니다. 하나님의 속마음과 그 안타까움을 이해하는 사람의 내면적 사랑의 확신이었습니다. 그들은 역설적이지만 하나님을, 하나님의 입장을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공의''사랑'의 모순적 은혜를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의 현실'을 이해해드렸습니다!
하나님의 현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거대담론(巨大談論 Meta Narrative)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 구원의 큰 틀, 큰 계획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영웅들은 약속을 못받아도 괜찮았습니다. 안받아도 상관없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대가를 기대도 안했습니다. 보상을 바라고 믿음을 지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이 땅의 축복목록에 혹()해서 따라간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는 일꾼으로 사용되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고 감사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사랑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나는 희생되어도 괜찮았습니다!
우리도 오늘 진행 중인 하나님의 큰 구원계획 속에서 제각기 맡은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 섬김의 길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기대했던 하나님의 기적적 구원이 나타나지 않아 답답하고 외로워도! 그 역할을 감당할 뿐!입니다. 우리를 다 알고 이해하시고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그 따뜻한 눈빛 때문에 우리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시선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히브리서 1140절은 오늘 우리가 그 믿음의 영웅들이 남긴 사명을 현재적으로 이어감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에서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과 '현재형'으로 연결됩니다. 그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은 우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과 '지금',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계획 속에서 '우리'는 믿음의 선열들의 바통을 이어 받아 지금 뛰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조금 서운하게도 그들이 '온전함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서운할 것 없습니다. 그들 뿐 아니라 우리도 평생 온전함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오직 내 모습 이대로전진하는 것뿐입니다. 내 한계를 알되 실망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함이 기쁨일 뿐입니다.
다만 우리 아버지께서 지치지 않고 계속 뛸만한 힘은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탁받아 거룩한 믿음의 순례자로 살아가는 세월, 서운한 마음도 이기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정말 필요하실 때는 기적과 사랑으로 우리를 크게 웃게 하실 줄도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며 절대 신뢰로 내면의 기쁨과 힘과 웃음을 지켜가기 원합니다.
 
하나님!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다시 힘을 내어 뛰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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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장, 그 마지막 두절의 신비!
 
 
 
 
[히11: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히11: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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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영어로 타이핑하면 to go가 되는군요^^
새해에도 열심히 전진, 전진 to go, to go하셔서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유명한 히브리서 11장 '믿음장'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의 생애들! 그 장엄한 대서사시의 결론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영웅 파노라마의 결론은 비극일까요, 희극일까요?
이 결론 부분은 냉정하게 말한다면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해피엔딩은 아닙니다. 차라리 비극에 가까운 숙연해지는 결말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9절은 말합니다.
[히11: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약속을 받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지 않은 것일까요? 아니면 그들이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요?
 
자녀축복과 명예와 물질축복의 '약속'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의 용장들은 그 약속을 받지 못했습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습니다'.
 
분명히 약속이 있었습니다. 상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상주심을 바라보았습니다.
[히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히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상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기에 믿었습니다. 상주심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합니다. 약속을 받지 못했다고!
 
그런데....
그들은 '증거'를 받았습니다.
[히11: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증거는 누가 뭐래도 빼앗아갈 수 없는 내면의 확신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의 경험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의 말씀을 몸으로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증거를 그들의 영혼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증거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자, 하나님의 속 마음과 그 안타까움을 이해하는 사람의 내면적 사랑의 확신입니다.
그들은..
 
역설적이지만 하나님을, 하나님의 입장을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역설적이지만 '공의'와 '사랑'의 모순적 은혜를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의 현실'을 이해해드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약속을 못받아도 괜찮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약속같은 것 기대도 안했습니다. 이 땅의 재물의 약속에 혹(惑)해서 나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는 사명자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습니다.! 
괜찮았습니다. 안받아도 상관없었습니다. 보상과 댓가를 바라고 믿음을 지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영.웅.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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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절은 히브리서 11장의 마지막 부분인데 좀 깊이 생각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하셨다고 말합니다.
[히11: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에서 '우리', 2013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미 몇천년 전에 죽은 '그들'-  아브라함과 '현재형'으로 연결되고 다윗과 '현재형'으로 연결되고 예언자들과 '현재형'으로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의 역사 계획 속에서 '우리'는 예언자들과 믿음의 선열들의 바통(baton)을 이어잡고 오늘 지금 뛰고 있는 것입니다. 신비한 구절입니다.
 
성경은 조금 서운하게도 그들이 '온전함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서운할 것 없습니다.
'그들' 뿐 아니라 '우리'도 평생 온전함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오직 내게 주어진 모습 이대로 전진하는 것 뿐입니다.
 
이 구절은 나아가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들- 오늘을 다양한 형편 속에서 살아가다가 다시 함께 모인 우리들이 낯선 이가 아니라 사명을 맡은 동지임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낯선 타자나 경쟁자로 만나는 것이 아니요 같은 뜻을 사명으로 삼고 있는 동지로 만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함을 이루어내고자 하는 거룩한 동지로서 만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길고도 웅장한 구원 섭리 아래 과거와 현재가 하나되고  제각기 다른 형편을 사는 우리가 믿음 안에서 동지적 사명으로 하나됨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구원계획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거대담론(巨大談論  Meta Narrative)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 구원의 큰 틀, 큰 계획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진행 중인 하나님의 큰 구원계획 속에서 우리는 제각기 맡은 역활을 감당합니다. 감당할 뿐!입니다. 역할론이요 도구론입니다.  때로는 고난과 환란을 당하고, 기대했던 하나님의 간섭을 경험하지 못하여 섭섭하고 쓸쓸하고 서운하고 외로워도! 그 역할을 감당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나는 희생되어도 괜찮습니다.
 
그들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 '그들'은 우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과 '지금',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 속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내기 위하여!
역사를 섭리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서!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우선 순위로 외치며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우리 교단은 그렇게 거대담론을 외치며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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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1장을 처음부터 읽어보면 이 믿음의 영웅들도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위대해 보이는 그들의 영웅적 삶에도 사실은 미시적 현실이 고민이 많았었습니다. 그들도 힘들었고 그들도 고민했고 그들도 가정과 현실 속에서 갈등하던 사람들었습니다. 성경본문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삶의 자리( Sitz im Leben = Setting in life)에서 고민한 흔적들을 만납니다.
거대담론을 붙잡고 있었던 그들도 실제로는 미시담론(微視談論)의 삶을 끌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이 미시담론적 삶의 지혜입니다.
거대담론은 이 미시담론의 충실함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망원경과 함께 현미경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우리 안에 이 거대담론의 책임과 그리고 미시담론적 내 개인의 인격과 영성이 조화를 이루면 좋겠습니다. 미시담론적 인격돌봄이 없는 거대담론은 춥고 냉정합니다. 구호가 커질수록 위선도 커지기 쉽습니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칼 메닝거(Karl Menninger 1893~ 1990)의 유명한 말을 기억합니다.
 “태도가 사실보다 중요하다” (Attitudes are more important than facts)
이 태도라는 것은 거대담론적 시각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이요 하찮게 보일수 있는것인데 의외로 세상일이나 교회일이나 가정에서 생기는 문제는 큰 문제, 큰 주제가 아니라 사소한 태도, 미시적 감정과 기분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음을 경험합니다. 그것을 다스릴만한 인격적, 정서적 안정성이 없으면 우리의 거대담론은 허사가 됩니다. 허울이 됩니다.
 
작은 태도에서 우리의 따뜻함이 드러나기 바랍니다.
말투나 자세나 태도나 표정이나 눈빛이 따뜻해지고 품위있고 예의바르고 편안하기를 바랍니다.
표정의 복음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안도현의 두줄 시가 있습니다.
나와 너라는 제목입니다.
" 밤하늘에 별이 있다면 / 방바닥에는 걸레가 있다."
별을 보는 나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방바닥을 닦아내는 걸레의 역할일수도 있습니다.
 
 
 
이 시대가 각박해졌습니다.
교회 안에도 세상의 물량주의적 비교주의가 있어 마음을 상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저는 바랍니다. 미시적인 섬세함과 다정함을 구합니다.
교회마다, 목사님을 모셨으면 혹시 목사님이 몸이 아프거나 약점이 보이고 단점이 있어도 그 목회적 진실을 더 귀하게 여기며 은퇴하실 때까지 마음 압박하지말고 잘 모셔드리면 좋겠습니다. 목회자나 성도나 모두가 서로 외로운 길을 걸어가는 순례의 길, 그 긴 세월, 서로 용기를 주며 함께 갔으면 좋겠습니다. 만날 때마다 반갑고 감사했으면 좋겠고 교회라는 울타리 속에서 함께 웃고 울었던 그 세월을 소중히 여기면 좋겠습니다.
교인이 줄어든다고, 재정이 어렵다고 목회자에게 스트레스 주지말고 내가 더 헌금하고 내가 전도에 앞장 선다면 그 미시적 따뜻함이 목회자를 살리고 나를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노회를 살릴 것입니다.
목회자의 나이가 구박덩어리가 되는 서글픈 시대를 살아갑니다. 텔레비전의 스타목사들과 비교되는 씁쓸한 경험들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목회자마다 가진 소중한 경험과 경륜이 단순 물량비교의 세태에 따라 무시되고 존중받지 못하는 천박한 풍조가 쓸쓸합니다. 경륜을 무시하고 남보다 더, 남의 교회보다 더!를 외치며 초조해하며 불안해하며 그것으로 자기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세상의 천박한 풍조에 물들어  가장 소중한 원칙을 저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비교 경쟁 물량주의의 풍조를 과감히 버리고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원칙을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개정 성경의 이 번역이 마음에 듭니다. '품위'라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4:40절]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있게하라!
 
목회가 불안하지 않고 늘 행복하고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용기를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마다 따뜻하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키고 싶은 '핵심가치'입니다. 그것이 품위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탁받아 거룩한 믿음의 순례자로 살아가는 세월,
그 독특한 제자의식의 자부심을 지닌 우리 교단, 우리 노회, 우리 교회들이 세상과 타협치않고 세상에 물들지 않는 거룩한 자존심을 지켜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미시적 따뜻함과 섬세함이 거대한 꿈을 이루는 진정한 기초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2013년 1월 15일(화) 오후 2시 서울노회 임시노회 효동교회당 개회설교)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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