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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라. 하나님 앞에서!

이준원 (충북노회,우암교회,목사) 2013-11-07 (목) 11:23 10년전 9538  
 

Before God,
and with God,
we live without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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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를 오래 하다보니 신학적 사유(思惟)의 힘이 좀 약해지는 것, 아니 좀 둔해져가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젊은 날의 치열했던 신학적 토론과 고민과 논쟁이 목회의 현장에서는 조금 사치같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는 뜻입니다. 목회의 핵심은 돌봄이니까요. 그래도 아쉬울 때도 있습니다. 좀 그 쪽으로는 타고난 것 같아서 좀 개발하면 대단한 신학자가 되었을텐데. ^^   
 
그런데 오늘의 목회를 돌이켜보면 그래도 그 젊은 날의 신학적 영향이 내면에 남아있어 나를 만들어가고 내 목회스타일을 만들어갔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수많은 변화와 여러 번의 개종(!)을 거치긴 했지만 남아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디트리히 본 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훼퍼)목사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아니 선언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겠네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라!'
'하나님이 없는 것 처럼 살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서만 진실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라! 하나님 없이 살라! 처음 들었을 때 너무도 인상깊었던 말!  
24시간 동안 하나님의 은혜만 생각하고 살아도 부족할 것 같은데 하나님 없는 것 처럼 살라니요!
그러나 왠지 꼭 집어 설명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갔던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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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44년 7월 6일 베를린의 테겔(Tegel) 감옥에서 그의 친구 베트게(Eberhard Bethge)에게 쓴 편지의 부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칫하면 '신 죽음의 신학'(die Theologie des Todes Gotte)이나 '기독교적 무신론'(christlicher Atheismus)으로 오해될 수도 있는 발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본 회퍼목사님의 이 발언은 결코 가벼운 세속주의적 신앙사유의 결론이 아니라 절실한 신학적 사유와 숙고 끝에 토로된 고백적 신학이었습니다. 그는 히틀러를 암살하기 위한 조직에 참여했고 그리고 체포되어 지금 사형집행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신학고백은 더욱 치열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본 회퍼는 희생과 순교의 각오가 없는 '싸구려 은혜'를 질색하고 진정한 제자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각오하는 순교적 자세임을 누누히 강조했고 또 그렇게 살았던(!) 분이기에 이 말은 오해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발언은 현실에서 생겨나는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께 핑계대지 말고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셨다 탓하지 말고, 하나님께 칭얼거리는 유아적 신앙에서 벗어나 성숙한 자세로 내가 해야할 것을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내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할 것처럼) 그렇게 치열하게 성취해나가는 제자의 길, 믿음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라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어두웠던 시대, 때로는 지금 이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스런 상황에 더 이상 직접 관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피난처와 도피처라고, 약속을 따라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던 하나님은 그런 기대를 다 무너뜨리고 마치 존재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인간들을 고난과 죽음 가운데 버려 두시는 것으로 보이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지금도 진행형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이럴 수가 있습니까라고만 외치지 않고 요행을 더이상 바라지 않고 내가 일어나서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로서 하나님의 도구로서 일하고 뛰고 악의 세력에 대항하여 정치적으로든지 집단적으로든지 싸우고 투쟁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내게 원하시는 것이라고 본 회퍼는 믿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값비싸게 갚아나가는 성숙한 신앙의 길이라고 그는 믿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함께 죽는 길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 고백은 사실은 처절한 신앙의 고백인 것입니다. 
 
히틀러가 600만 유대인을 살해하고 있는 이 때, 나는 목사이기 때문에 정치에 참여해서는 안되고  보고만 있거나 또는 기도만 하고 있어야 맞는 것인가? 아마 수많은 신학적 질문이 그에게 오고갔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왜 하나님은 히틀러에게 침묵하고 계시는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의 도구로서 내 결단과 판단으로 일해야하는 것 아닌가? 아니 이것이 내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일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지 않고 거부하고 스스로 일해나갑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도움 자체를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그 절대적 섭리를 성숙한 신앙으로 받아들이며 내가 해야할 일을 찾아내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하나님 앞에서의 성숙하고 자율적인 신앙인의 행동고백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 회퍼 목사님의 '하나님 없는것처럼 살라, 하나님 앞에서!'라는 고백은 무신론적 세속적 고백이 아니라 대단히 깊고도 진지한 성찰 끝에 이루어진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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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젊은 날 저에게 '하나님 없는 것 처럼 살라!'는 말은 본 회퍼 목사님의 원뜻과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저를 해방한 구절이 되었습니다.
 
모든 신앙인들이 그렇듯이 신학교를 다니던 그 당시의 저의 '하나님 의식- 하나님 인식-하나님 이해'는 심판하시는 하나님, 무서운 하나님, 그리고 24시간 우리를 사사건건 바라보시고 간섭하시고 지적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보니 무슨 일을 하든지 하다 못해 밥을 먹을 때도 심리적으로 자유롭지 못했고 심지어는 화장실에 갈 때에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 무슨 일을 하든지 이것이 죄가 되는지 아닌지 생각을 먼저하게 되는데 물론 당연한 것이지만 이것이 사실은 그렇게 살지도 못하면서 생각만은 늘 억눌려 있는 결벽증, 강박관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은 신앙생활이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신앙생활이 어떤 의미에서는 눌림이었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만들어놓으신 아름다운 자연과 예술과 문화와 음악과 모든 소통의 법들이 있었음에도 그것들이 참 아름답고 멋있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런 것들을 누리는 것이 늘 죄악인 양 생각되었고 눈치만 보는 눌린 영의 세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없는 것 처럼 살라'는 이 독특한 말씀은 이 모든 형벌적 신앙, 엄격한 신앙, 형식적 신앙-그로 인한 자기모순의 내적인 굴레로부터 해방시켜준 말씀이 되었던 것입니다. 본 회퍼 목사님이 해방시켜준 것이 아니라 본 회퍼 목사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놓아주신 것으로 생각되었고 새로운 눈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이렇게 저에게 이해되었습니다.
우리가 24시간 공기를 호흡하지만 그 공기를 의식하고 살기보다는 그 공기를 통해서 일을 하는 것처럼!
그 공기가 사라질까 걱정하지도 않고 그 공기가 변질될까봐 걱정하지도 않고 그 공기를 통해 일하는 것처럼!
그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라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와 비슷한 각도에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는 말씀도 새겨졌었습니다.
진정한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 너무 좋아서 제 아이디로 삼았었습니다.
요한복음 8:32절을... 그리고 조금 편안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
 
그런데 이런 경지까지에 이르려면 당연히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없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입니다.
그것이 분명해지고나서! 하나님 없는 것처럼 산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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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집단 수용소에서 본훼퍼의 그의 처형순간을 지켜본 형의(刑醫)의 증언>
'‥가병사(假兵舍) 속에 있는 내 방의 반쯤 열린 문을 통해서 나는 본훼퍼 목사가 죄수복을 벗기에 앞서 그의 주 하나님께 내면으로 기도 드리는 것을 보았다. 이 유달리 동정이 가는 사람의 헌신적이고 확신에 찬 기도의 태도는 나를 깊이 감동시켰다. 처형대에 있어서도 그는 짧은 기도를 드리고 용감하게 교수대의 계단을 올라섰다. 몇 초 후에 죽음은 왔다. 거의 50여 평생 동안 나의 의사의 활동 가운데서 그처럼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면서 죽어가는 사람을 결코 보지 못했다.'
 
영국의 비행사요 마지막 형무소 생활의 시기에 본훼퍼의 감방 동료였던 페인 베스트(Payne Best)는 본훼퍼가 플로센부르크로 이송될 때 그에게 한 말을 전해 준다.
'이제는 끝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삶의 시작이다.'
 
처형당하는 날 본훼퍼는 그의 동료 죄수들에게 성서를 강해했다.
'그가 다치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사 53, 5). '그의 크신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살아 있는 소망으로 거듭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벧전 1, 3) 4) 4) H. Ott, 'Dietrich Bonhoeffer', p. 367, in Theologen des Protestantismus im 19. und 20. Jahrhundert , hrsg. von M. Greschat,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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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작품 > 이혜신 목사님의 블로그 "지금 감사 해피 엔딩"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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