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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설교문

이준원 (충북노회,우암교회,목사) 2013-11-07 (목) 16:21 10년전 20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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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a Stranger on the Earth ....."
 
"나는 이 땅의 나그네이오니..."
 
http://blog.naver.com/panem/70037613425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3.30-1890.7.30)의 첫 주일 설교문
Van Gogh's First Sunday Sermon: 29 October 1876;  23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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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 때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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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레미 시절

유명한 화가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3.30-1890.7.30)가 젊은 날에 목회를 하고 설교문을 남겼다는 것은 인상적인 일입니다.
사실 고흐의 부친은 목사님이었고 고흐도 역시, 부친과의 불화를 얘기하는 분들도 많지만 사실은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알려진 화가보다는 목회의 길을 가고 싶어했습니다.
성경은 고흐의 평생의 삶의 인도자였고 경건훈련의 교범으로 알려진 고전,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고흐의 애독 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신학 그 자체보다는 사람의 영혼을 사랑했던 그는 탄광촌의 가난한 이들과 살며 목회하고 싶었지만 히브리어를 배워야하고 헬라어를 배워야하는 신학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행동하는 설교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목회의 과정에서의 지나친 열정과 신학을 배워야하는 과정에서 그가 느낀 회의 때문에 그는 결국 짧은 전도사의 경력을 마무리하고 화가로 알려진 그의 길을 가게 됩니다.
같은 네델란드 출신의 헨리 나우웬은 이 고흐의 모든 나그네의 삶을 깊이 살펴보는 몇편의 글을 썼습니다.
이 설교는 고흐가 잠시 영국에서 교회의 전도사로 일할 때 가장 먼저 했던 설교인 것으로 알려져있고  사랑했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도 이 설교문이 실려있습니다.
이 설교는 고흐가 어렸을 때부터 배웠을 구약과 신약의 다양한 성경구절이 풍부하게 인용되어있고 당시에 불렸을 찬송가의 가사가 은혜롭게 삽입되어 있는 위로와 격려의 설교입니다. 고흐의 이 설교에는 영생의 소망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따뜻합니다.
그 뒤의 그의 사상적 변화에 대해 헨리 나우웬은 그것 또한 진실을 추구했던 그의 그림목회가 아니었을까 사려(思慮)하고 있습니다.
밑의 요약글에 헨리 나우웬의 고흐에 대한 在美 최종수 목사님의 번역글을 인용했습니다.
고흐의 설교문을 의역을 섞어 번역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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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I am a stranger on the earth, hide not Thy commandments from me." (Psalm 119 : 19)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들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 시편 119:19 개역개정)

It is an old belief and it is a good belief, that our life is a pilgrim's progress – that we are strangers on the earth, but that though this be so, yet we are not alone for our Father is with us. We are pilgrims, our life is a long walk or journey from earth to Heaven.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옛날부터 내려온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소중한 인생관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삶은 천로역정이라는 것- 즉 우리는 이 세상의 나그네라는 인식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홀로가 아닙니다. 우리는 순례자들이고 우리의 삶은 이 땅으로부터 천국에 이르는 긴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The beginning of this life is this: there is only one who remembereth no more her sorrow and her anguish for joy that a man is horn (*born의 잘못된 타이핑인듯) into the world. She is our Mother.
The end of our pilgrimage is the entering in Our Father's house, where are many mansions, where He has gone before us to prepare a place for us.

우리의 삶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이 땅에서 탄생의 기쁨 때문에 해산의 고통과 수고를 잊을 수 있는 단 한 분은 우리의 육신의 어머니입니다. [*요16:21] 또한 우리의 순례의 삶의 마지막은 우리 하늘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그곳은 거할 곳이 많은 곳,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먼저 가셔서 예비하신 곳입니다. (* 요한복음 14장 1-6절)

The end of this life is what we call death – it is an hour in which words are spoken, things are seen and felt, that are kept in the secret chambers of the hearts of those who stand by, – it is so that all of us have such things in our hearts or forebodings of such things.

우리의 삶의 마지막-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그 때는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의 심령의 비밀의 방에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때요, 모든 것들이 비로소 밝히 느껴지고 보여지는 순간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 순간을 마음에 지니고 또는 예견하며 살아갑니다.

There is sorrow in the hour when a man is born into the world, but also joy, deep and unspeakable, thankfulness so great that it reaches the highest heavens. Yes, the Angels of God, they smile, they hope and they rejoice when a man is born in the world.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날 때는 슬픔이 있지만 깊고도 말할 수 없는 기쁨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 또한 하늘에 상달될만큼 큰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의 천사들은 미소를 지을 것이고 그 사람이 태어난 것으로 인해 소망을 가지고 기뻐할 것입니다.

There is sorrow in the hour of death, but there is also joy unspeakable when it is the hour of death of one who has fought a good fight.
사람이 죽을 때에 슬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싸움을 다 싸운 이들의 마지막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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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먹는 사람들 The Potato Eaters 1885,   81,5×114,5 cm (32" x 45"

There is one who has said: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if any man believe in Me though he were dead, yet shall he live. There was an apostle who heard a voice from heaven saying: Blessed are they that die in the Lord, for they rest from their labour and their works follow them.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분, 누구든지 나를 믿으면 죽어도 살 것'이라고 말씀하신 분이 계십니다. [*요11:25]
'지금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될 것이라'는 음성을 들은 사도도 있습니다. [*계14:13]

There is joy when a man is born in the world, but there is greater joy when a spirit has passed through great tribulation, when an angel is born in Heaven.
한 사람이 태어날 때도 기쁨이 있습니다만 한 영혼이 무서운 환란을 통과하고 천국의 천사로 태어날 때의 기쁨은 더욱 큰 것입니다.

Sorrow is better than joy – and even in mirth the heart is sad – and it is better to go to the house of mourning than to the house of feasts, for by the sadness of the countenance the heart is made better.

슬픔은 기쁨보다 더욱 좋은 것입니다. 즐거워 보이지만 그 속 마음은 슬플 때에도 그렇습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보다 나은 것은 근심하는 안색이 마음에는 오히려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  전도서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전도서7: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전도서7: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Our nature is sorrowful, but for those who have learnt and are learning to look at Jesus Christ there is always reason to rejoice. It is a good word that of St. Paul: as being sorrowful yet always rejoicing. For those who believe in Jesus Christ, there is no death or sorrow that is not mixed with hope – no despair – there is only a constantly being born again, a constantly going from darkness into light. They do not mourn as those who have no hope – Christian Faith makes life to evergreen life.

우리의 본성은 슬픔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을  배워왔고 또 배우고 있는 이들은 언제든지 기뻐할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바 슬퍼하는 자 같으나 기뻐한다는 말은 역시 진리입니다. [*고후6:10] 예수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소망없는 죽음이나 슬픔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살전4:13] 절망도 없습니다. 오직 끊임없는 거듭남이 있고
끊임없이 어둠에서 빛으로 향할 뿐입니다. 그들은 소망없는 자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의 신앙은 삶을 영원히 푸르게 만들어 갑니다.

We are pilgrims on the earth and strangers – we come from afar and we are going far. -The journey of our life goes from the loving breast of our Mother on earth to the arms of our Father in heaven. Everything on earth changes – we have no abiding city here – it is the experience of everybody.

우리들은 이 땅의 순례자들이요 또한 나그네들입니다. 우리는 먼 곳에서 왔고 또 저 먼 곳으로 갈 것입니다. 우리들의 여정은 어머니의 사랑스러운 품에서 시작되어 천국의 아버지의 그 팔에 안기게 되는 여정입니다. 세상 모든 것들은 변화하고 이곳에는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은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깨달음입니다.

That it is God's will that we should part with what is dearest on earth – we ourselves change in many respects, we are not what we once were, we shall not remain what we are now. From infancy we grow up to boys and girls – young men and women – and if God spares us and helps us, to husbands and wives, Fathers and Mothers in our turn, and then, slowly but surely the face that once had the early dew of morning, gets its wrinkles, the eyes that once beamed with youth and gladness speak of a sincere deep and earnest sadness, though they may keep the fire of Faith, Hope and Charity – though they may beam with God's spirit.

그러므로 이 땅에서 귀중히 여기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들은 모든 면에서 늘 변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옛 모습이 아니며 또 지금의 모습으로 머물러 있지도 않을 것입니다. 유아시절로부터 소년 소녀시절, 그리고 청년과 처녀,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아내와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우리의 모습은 바뀌어 가게 될 것입니다. 서서히 그렇지만 분명히 아침 이슬같던 얼굴들에는 주름이 생길 것이요, 한때 젊음의 열정으로 빛나던 눈빛들은 이제 깊고도 무거운 근심의 빛을 띠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여전히 믿음의 불꽃을 소유한다해도, 소망과 사랑을 소유하며 하나님의 영의 빛을 드러낸다해도 그렇게 세월은 가게 될 것입니다.

The hair turns grey or we lose it-ah-indeed we only pass through the earth, we only pass through life, we are strangers and pilgrims on the earth. The world passes and all its glory. Let our later days be nearer to Thee, and therefore better than these.
머리카락은 백발이 되거나 사라질 것입니다. 오! 진실로 우리는 이 세상과 내 삶을 지금 지나가고 있는 것 뿐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순례자요 나그네인 것입니다. 이 세상은 지나가고 그 모든 영광들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남은 생애 동안 점점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감으로서 스쳐 지나가는 것 이상의 삶이 되도록 합시다.

Yet we may not live on casually hour by hour – no we have a strife to strive and a fight to fight. What is it we must do: we must love God with all our strength, with all our might, with all our soul, we must love our neighbours as ourselves. These two commandments we must keep, and if we follow after these, if we are devoted to this, we are not alone, for our Father in Heaven is with us, helps us and guides us, gives us strength day by day, hour by hour, and so we can do all things through Christ who gives us might. We are strangers on the earth, hide not Thy commandments from us. Open Thou our eyes that we may behold wondrous things out of Thy law. Teach us to do Thy will and influence our hearts that the love of Christ may constrain us and that we may be brought to do what we must do to be saved.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덧없이 살아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반목이나 싸움으로만 세월을 보내서도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두 계명을 지켜야할 것입니다. 이 계명을 따르고 바로 지킨다면 우리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돕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날마다 힘을 더해주시고 시간마다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나그네들이지만 하나님은 그 계명을 우리에게 숨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도록 가르치시고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영향력을 끼치실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해야할 일들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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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마리아인(May, 1890) Oil on canvas 73 x 60 cm Otterlo: Kröller-Müller Museum

On the road from earth to Heaven
Do Thou guide us with Thine eye;
We are weak but Thou art mighty,
Hold us with Thy powerful hand.

이 땅에서 천국으로 가는 동안에
하나님은 당신의 눈동자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네
우리들은 약하나 당신은 강하시오니
당신의 강한 손으로 우리를 붙드소서

Our life, we might compare it with a journey, we go from the place where we were born to a far-off haven. Our earlier life might be compared to sailing on a river, but very soon the waves become higher, the wind more violent, we are at sea almost before we are aware of it – and the prayer from the heart ariseth to God: Protect me 0 God, for my bark is so small and Thy sea is so great.

우리의 삶을 우리는 여정으로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난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천국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첫걸음은 강 위의 항해로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곧 파도는 높아지고 바람은 강해지고 우리는 정신없는 사이에 바다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슴 깊은 기도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보호하소서, 내 돛단배는 너무도 작고 바다는 너무도 큽니다.

The heart of man is very much like the sea, it has its storms, its tides and its depths; it has its pearls too. The heart that seeks for God and for a Godly life has more storms than any other.

인간의 마음은 바다와 매우 닮았습니다. 마음 내면에는 폭풍이 있고 그리고 파도와 깊음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진주도 동시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심령이나 경건하게 살려는 사람에게는 폭풍우가 더 몰아닥칩니다.

Let us see how a Psalmist describes a storm at sea. He must have felt the storm in his heart to describe it so. We read in the io7th Psalm: They that go down to the sea in ships that do business in great waters, these see the works of the Lord and His wonders in the deep. For He commandeth and raiseth up a stormy wind, which lifteth up the waves thereof. They mount up to Heaven, they go down again to the depth, their soul melteth in them because of their trouble. Then they cry unto the Lord in their trouble, and he bringeth them out of their distresses. He bringeth them into their desired haven.

시편 기자가 바다풍랑을 묘사한 것을 봅시다.
그는 틀림없이 그 마음 속에 풍랑이 요동하는 것을 느끼며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편 107편을 읽었습니다. (*io7th=시편 107편)

( * 107:23 -선척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영업하는 자는 /107:24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보나니 /107:25- 여호와께서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107:26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107:27 -저희가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 /107:28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107:29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 /107:30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

그들은 배를 타고 깊은 바다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깊은 바다에서 여호와의 행사와 기사를 봅니다. 여호와께서는 광풍을 명하여 바닷 물결을 일으키십니다. 그들은 하늘까지 치솟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갑니다. 그들의 마음은 그 풍랑으로 인하여 녹습니다. 그들은 풍랑 속에서 주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은 고통 가운데서 건지시고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십니다.

Do we not feel this sometimes on the sea of our lives?
우리, 인생의 바다에서 이것을 경험한 적이 없으십니까?
Does not every one of you feel with me the storms of life or their forebodings or their recollections?
저도 그렇지만 여러분들도 이런 인생의 풍랑, 또는 그것이 다가올 조짐이나 다가왔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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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마리아인(May, 1890) Oil on canvas 73 x 60 cm Otterlo: Kröller-Müller Museum

And now let us read a description of another storm at sea in the New Testament, as we find it in the VIth chapter of the Gospel according to St. John in the i7th to the 21st verse. "And the disciples entered into a ship and went over the sea towards Capernaum. And the sea arose by reason of a great wind that blew. So when they had rowed about five-and-twenty or thirty furlongs, they see Jesus walking on the sea and drawing nigh unto the ship and they were afraid. Then they willingly received Him into the ship and immediately the ship was at the land whither they went."
이제 신약의 다른 풍랑에 대한 구절들을 읽어봅시다. 요한복음 6장 17절에서 21절까지의 내용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6: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6: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6: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6:20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6: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You who have experienced the great storms of life, you over whom all the waves and all the billows of the Lord have gone – have you not heard, when your heart failed for fear, the beloved well-known voice with something in its tone that reminded you of the voice that charmed your childhood – the voice of Him whose name is Saviour and Prince of Peace, saying as it were to you personally, mind to you personally: "It is I, be not afraid." Fear not. Let not your heart be troubled.

여러분 중에 그런 인생의 큰 풍랑을 경험한 분이 계시다면 풍랑과 파도는 드높이 치는 데 예수님은 가버리신 것으로 알아 당신의 마음이 두려움으로 떨릴 때 어디선가 들리는 그 목소리.. 구원자요 평화의 왕이신 그 분의 목소리, 어린 시절부터 우리와 함께 하신 그 목소리를 들어보신 적이 없습니까? "나다, 두려워말라..는 그 목소리."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요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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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의 교회 Church at Auvers, The Auvers-sur-Oise 1890, June Oil on canvas, 94 X 74

And we whose lives have been calm up till now, calm in comparison of what others have felt – let us not fear the storms of life, amidst the high waves of the sea and under the grey clouds of the sky we shall see Him approaching, for whom we have so often longed and watched, Him we need so – and we shall hear His voice: It is I, be not afraid.

그리고 우리의 삶이 다른 이들이 느끼는 것과 비교해볼 때 지금까지는 평탄했다다면 인생의 폭풍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우리가 바다의 높은 풍랑과 어두운 구름 아래 있어도 바로 주님께서 다가오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자주 오랫동안 바라고 기다리고 필요로 하던 바로 그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나다, 두려워말라" [* 요 6:20]
 
And if after an hour or season of anguish or distress or great difficulty or pain or sorrow we hear Him ask us: "Dost thou love me?" Then let us say: Lord Thou knowest all things, Thou knowest that I love Thee. And let us keep that heart full of the love of Christ and may from thence issue a life which the love of Christ constraineth, Lord Thou knowest all things, Thou knowest that I love Thee; when we look back on our past we feel sometimes as if we did love Thee, for whatsoever we have loved, we loved in Thy name.
그리고 고뇌와 고통과 극심한 어려움과 힘들고 슬픈 시간과 계절을 지나고 나면 그분은 우리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때 우리는 이렇게 대답합시다. "주님,  당신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줄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주님의 그 가득찬 사랑을 지켜갑시다. 그러면 그때로부터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시는 방향의 삶을 추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주님은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아십니다.  우리의 과거의 삶을 돌아볼 때 우리는 종종 마치 우리가 분명히 주님을 사랑한 것처럼 느끼는데 다른 많은 것을 사랑했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과연 주님의 이름을 사랑했습니다.

Have we not often felt as a widow and an orphan – in joy and prosperity as well and even more than under grief – because of the thought of Thee. Truly our soul waiteth for Thee more than they that watch for the morning, our eyes are up unto Thee, 0 Thou who dwellest in Heaven. In our days too there can be such a thing as seeking the Lord.

행복하고 번영할 때나 또는 탄식 아래 있을 때에도 하나님에 대한 생각 때문에 종종 과부나 고아처럼 느껴지시는 때가 있지 않습니까?
진실로 우리의 영혼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주님을 더 기다리며 우리의 눈은 하늘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시편 130:6) 그리고 이 시대에도 주님을 찾고자하는 갈망은 여전합니다.
 
 
 
What is it we ask of God – is it a great thing? Yes, it is a great thing, peace for the ground of our heart, rest for our soul – give us that one thing and then we want not much more, then we can do without many things, then can we suffer great things for Thy name's sake.
 
우리가 하나님께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주 거창한 것입니까? 예, 그런 것입니다. 바로 그것은 내 마음 깊은 곳에 평화가 넘치고 영혼이 안식하는 것이며 우리가 정도 이상으로 원하지 않는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며 우리가  많은 일을 한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We want to know that we are Thine and that Thou art ours, we want to be Thine – to be Christians – we want a Father, a Father's love and a Father's approval. May the experience of life make our eye single and fix it on Thee. May we grow better as we go on in life. We have spoken of the storms on the journey of life, but now let us speak of the calms and joys of Christian life.
 
우리는 우리가 당신의 것이라는 것과 하나님은 우리의 것이라는 것을 알기 원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것-크리스챤이 되기 원합니다. 우리는 아버지를 원합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께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아마도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점점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여정동안 폭풍의 소리를 듣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앙인의 생활다운 고요하고 즐거운 것만을 말합시다.
 
And yet, my dear friends, let us rather cling to the seasons of difficulty and work and sorrow, for the calms are often treacherous. The heart has its storms, has its seasons of drooping but also its calms and even its times of exaltation. There is a time of sighing and of praying, but there is also a time of answer to prayer. Weeping may endure for a night but joy cometh in the morning.
 
그리고 아직도, 슬픔과 노동과 어려움의 계절들에 부딪힙시다. 평온하다는 것은  오히려 불안할 때가 많습니다. 마음은 폭풍 속에 있고 의기소침의 계절이 있으나 그것은 동시에 평온이기도하며 상승의 때일 수도 있습니다. 탄식하며 기도할 때가 있으나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눈물의 밤을 견뎌내면 아침에는 기쁨이 찾아올 것입니다.

The heart that is fainting
May grow full to overflowing
And they that behold it
Shall wonder and know not
That God at its fountains
Far off has been raining.
 
마음의 혼란은 가득차 넘치지만
그들은 보리라
놀랍고도 알지 못했던 일을
하나님께서는 그 샘들을
이른 비로 가득 채우신다

My peace I leave with you – we saw how there is peace even in the storm.
내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우리는 폭풍 속에서도 어떻게 평안이 있을 수 있는 지 압니다.
Thanks be to God, who has given us to be born and to live in a Christian country.
우리는 하나님께 크리스찬의 나라에서 태어나게 하시고 살게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Has any one of us forgotten the golden hours of our early days at home, and since we left that home – for many of us have had to leave that home and to earn their living and to make their way in the world. Has He not brought us thus far, have we lacked anything, Lord we believe help Thou our unbelief.
우리들 중 고향에 있었던 아름다웠던 시간을 잊으신 분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고향을 떠난 후- 우리 모두는  내 직업을 갖거나 세상 속에서의 내 일을 찾아서 고향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아닙니까? 우리가 지금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주십니다.
 
 I still feel the rapture, the thrill of joy I felt when for the first time I cast a deep look in the lives of my Parents, when I felt by instinct how much they were Christians. And I still feel that feeling of eternal youth and enthusiasm wherewith I went to God, saying: "I will be a Christian too."
 
나는 지금도  내가 우리 부모님들의 삶을 처음으로 눈여겨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진실한 크리스챤인가를 본능적으로 느끼며 기쁨으로 감격했던 그 황홀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때마다 '나도 진정한 크리스챤이 되겠습니다'라고 했던 그때의  영원한 젊음과 열정을 지금도 느낍니다.
 
Are we what we dreamt we should be? No, but still the sorrows of life, the multitude of things of daily life and of daily duties, so much more numerous than we expected, the tossing to and fro in the world, they have covered it over, but it is not dead, it sleepeth. The old eternal faith and love of Christ, it may sleep in us but it is not dead and God can revive it in us. But though to be born again to eternal life, to the life of Faith, Hope and Charity, – and to an evergreen life – to the life of a Christian and a Christian workman, be a gift of God, a work of God – and of God alone, yet let us put the hand to the plough on the field of our heart, let us cast out our net once more – let us try once more.
 
지금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꿈꾸었던 그 모습입니까?
아니, 오히려 삶의 슬픔이 있고 날마다 해야할 수많은 일들과 의무가 있고 우리가 예상한 것 이상의 과제들이 있고 세상에서 이리 저리 시달리며 삽니까? 이 모든 세상의 무거운 짐들이 그 꿈을 덮어도 그러나 그 꿈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잠깐 자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된 영원한 믿음과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 안에서 잠시 잠잘 수 있으나 죽은 것은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그것을 다시 살려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영생을 향해 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생애를 위해 우리가 거듭난다할지라도, 그리고 영원한 푸른 삶을 향한 크리스찬다운 삶과 크리스찬의 모든  사역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께서 홀로 만들어가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밭을 가는 쟁기에 함께 손을 얹어놓읍시다.
우리의 그물을 다시 한번 더 던져봅시다.
우리 한번 더 도전해봅시다.
 
God knows the intention of the spirit. God knows us better than we know ourselves, for He made us and not we ourselves. He knows of what things we have need. He knows what is good for us. May He give us His blessing on the seed of His word, that He has sown in our hearts. God helping us, we shall get through life. With every temptation he will give a way to escape.
 
하나님은 영적인 방향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를 아는 것보다 우리는 더 잘아십니다.
인간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 지 알고 계시고 우리에게 어떤 것이 좋은 것인가를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의 말씀의 씨앗들을 통해서 우리의 가슴에 축복을 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돕고 계시고 우리는 이 세상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시험에도 피할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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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wer 씨뿌리는 사람 Arles,1888, June,  Oil on canvas,64 * 80.5
고흐는 수많은 씨뿌리는 사람의 그림을 그렸는 데 그 중 이 그림이 가장 따뜻한고 화려한 편이다.
  
Father we pray Thee not that Thou shouldest take us out of the world, but we pray Thee to keep us from evil. Give us neither poverty nor riches, feed us with bread convenient for us. And let Thy songs be our delight in the houses of our pilgrimage. God of our Fathers be our God: may their people be our people, their faith our faith. We are strangers on the earth, hide not Thy commandments from us, but may the love of Christ constrain us. Entreat us not to leave Thee or refrain from following after Thee. Thy people shall be our people. Thou shalt be our God.
 
아버지,우리는 당신에게 기도합니다. 이 땅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악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달라고 기도합니다.
부하게도 마시고 가난하게도 마시며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인생의 여정동안 당신의 집에서 찬양하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그 백성이 우리 백성이 되게하시고 그들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이땅의 순례자이오니 계명을 우리에게 숨기지 마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사로잡게 하소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떠나지 않게 하시고 당신의 뒤를 따르는 것을 망설이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의 백성은 바로 우리들이고 당신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Our life is a pilgrim's progress.
우리의 삶은 순례자와 같습니다.
 
I once saw a very beautiful picture: it was a landscape at evening.
나는 언젠가 매우 아름다운 그림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저녁 풍경화였습니다.

In the distance on the right-hand side a row of hills appeared blue in the evening mist. Above those hills the splendour of the sunset, the grey clouds with their linings of silver and gold and purple. The landscape is a plain or heath covered with grass and its yellow leaves, for it was in autumn. Through the landscape a road leads to a high mountain far, far away, on the top of that mountain is a city wherein the setting sun casts a glory. On the road walks a pilgrim, staff in hand. He has been walking for a good long while already and he is very tired. And now he meets a woman, or figure in black, that makes one think of St. Paul's word: As being sorrowful yet always rejoicing. That Angel of God has been placed there to encourage the pilgrims and to answer their questions and the pilgrim asks her: Does the road go uphill then all the way?"

그림의 오른 편에는 멀리 보이는 언덕들이 저녁 안개 속에서 푸른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 언덕들 위로는 황혼의 광채가 빛나고 있었고 회색 구름들은 황금빛과 은빛과 보라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평활한 대지는 풀과 노란 이파리로 덮여 있었습니다. 가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대지를 가로지는 길은 멀고도 먼 산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 산 정상에는 저무는 해가 영광을 비추는 도성이 있었습니다.
그 길 위를 순례자가 손에 지팡이를 잡고 걷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먼 먼 길을 걸어왔기에 매우 지쳐보입니다. 그는 검은 옷을 입은 한 여인-천사를 만납니다. 이 장면은 사도바울의 유명한 구절, 근심하는 자 같으나 기뻐하고하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하나님의 천사는 순례자들을 격려하고 순례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그곳에 있었습니다.
순례자는 묻습니다.
이 길은 저 산꼭대기로 죽 이어져 있나요?

And the answer is: "Yes to the very end."
And he asks again: "And will the journey take all day long?"
And the answer is: "From morn till night my friend."

네, 죽 이어져있습니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이 길을 가야하는 것인가요?
친구여, 그렇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가야합니다.

And the pilgrim goes on sorrowful yet always rejoicing – sorrowful because it is so far off and the road so long. Hopeful as he looks up to the eternal city far away, resplendent in the evening glow and he thinks of two old sayings that he heard long ago – the one is:
순례자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기뻐합니다. 근심하는 이유는 나그네 길이 매우 멀고 길기 때문입니다. 소망을 가지는 이유는 저녁빛에 찬란하게 빛나는 그 영원한 나라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가 오래 전에 들었던 옛 말씀을 생각해냅니다.

"Much strife must be striven
Much suffering must be suffered
Much prayer must be prayed
And then the end will be peace."

당해야할 많은 고통을 당하고
당해야할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드려야할 많은 기도를 드린다면
마지막은 평화가 올 것입니다.

And the other is

그리고 또 다른 말씀은

"The water comes up to the lips
But higher comes it not." 

"내 입술에까지 물이 차오르지만 그러나 더 이상 오르지는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And he says: I shall be more and more tired but also nearer and nearer to Thee. Has not man a strife on earth? But there is a consolation from God in this life. An Angel of God comforting man – that is the Angel of Charity. Let us not forget her. And when each of us goes back to the daily things and daily duties let us not forget that things are not what they seem, that God by the things of daily life teacheth us higher things, that our life is a pilgrim's progress, and that we are strangers on the earth, but that we have a God and father who preserveth strangers, – and that we are all brethren.

Amen.

그리고 그는 말합니다. 나는 점점 더 피곤하겠지만 동시에 점점 더 주님께 가까이 갑니다. 인간이란 어차피 이 땅에서 고통을 당하며 살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땅을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우리를 위로합니다. 그 천사는 자비의 천사입니다. 그 천사를 잊지맙시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삶의 현장으로 되돌아가서 매일의 삶의 의무를 이행할 때 모든 일들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매일의 일상적인 삶을 통해서 더욱 높은 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즉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은 순례자의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 땅의 나그네일 뿐이라는 것을,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보호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산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모두는 형제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아멘.

And now the grace of our Lord Jesus Christ, and the love of God the Father and the fellowship of the Holy Ghost, be with us forever more. Amen.
이제는 우리 주님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Reading: Psalm XCI. 시편 91편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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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Bible Nuenen 1885, April
목회자인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6개월 후에 추모하는 마음으로 그렸다는 그림,
촛불이 꺼진 것은 아버지의 돌아가심을 생각함이고
성경책 옆에 닳은 책은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이라는 책이다.
아버지와 자신의 삶의 단면을 그려넣은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설교원문  http://www.vggallery.com/misc/sermo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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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Gogh, Vincent van, 1853.3.30~1890.7.29] 초기 신앙의 여정
1853.3.30 빈센트 빌렘 반 고흐가 3월 30일 네덜란드 브라반트 지방 북부에 있는 쥔데르트의 목사관에서 태어남. 개혁 교회 목사인 테오도루스 반 고흐(1822~1885)와 헤이그 출신 제본업자의 딸인 안나 코르넬리아(1819~1907)의 6남매 가운데 장남.
그의 이름은 그가 태어나기 1년전, 같은 날에 태어났다가 죽은 형의 이름을 붙인 것임.
 
1857
사람들이 테오라고 불렀던 남동생 테오도루스가 태어남.
 
1861~1864
쥔데르트의 공립학교에 입학.
1864
제벤베르겐 사립학교 등록.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와 데생을 배움.
1866~1868
틸뷔르호 기숙학교 등록.
1868
학교를 중퇴하고 쥔데르트로 돌아옴.
1869
헤이그로 갔다가 삼촌이 설립한 파리 구필 화랑의 지점에서 근무하게 됨.
테르스테흐의 감독 아래 미술품을 팔고, 폭넓은 독서와 미술관 방문 체험을 쌓음.
1871
아버지가 브라반트의 헤르보이트 교구목사로 임명되어 가족이 함께 이주.
1872
보모 곁에서 휴가를 보내고 동생을 만나기 위해 헤이그 방문. 둘 사이에 서신 교환 시작.
 
1873
1월: 구필 화랑 브뤼셀 지점으로 옮김.
5월: 런던 지점으로 옮겨가면서 파리를 여행하고 깊은 인상을 받음. 루브르 박물관 방문.
6월: 런던 지점에서 이후 1년간 근무하게 됨. 거리 산책을 하면서 스케치를 시작했으나 모두 버려서 남아 있지 않음.
하숙집 여주인 딸 우르슬라에게 반했으나 그녀의 거부로 낙담.
11월: 동생 테오가 구필 화랑의 헤이그 지점에서 근무.
 
1874
여름: 부모 곁에서 휴가를 보내며 자신이 의기소침하게 된 이유를 털어놓음.
7월 중순 여동생 안나와 런던으로 돌아감.
혼자 외롭게 지내면서 작품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종교 서적을 중심으로 많은 독서를 함.
10~12월: 환경을 변화시켜 고흐의 상황을 개선하고자 했던 삼촌 덕분에 구필 화랑 본점이  있는 파리로 옮겨감.
 
1875
5월: 확실한 파리 거주 시작. 작품 활동에 점점 소홀해지고 동료와 고객들을 경멸.
매일 성서를 읽고 미술관을 자주 방문.  코로와 17세기 네덜란드 화파의 거장들에게 열광.
10월: 아버지가 에텐으로 옮겨감.
12월: 미리 휴가를 내지도 않고 고향의 부모를 찾아가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냄.
 
1876
4월: 구필 화랑에 사표를 제출.
런던 근처의 램스게이트로 가서 먹고 자는 것만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임시 교사로 일함.
7~12월: 런던 번두리의 노동자들이 사는 아일워스에서 임시 교사로 일함.
후에는 감리교 목사 밑에서 전도를 하면서 보조 교사로도 일함.
11월에 처음 설교를 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음 전파에 헌신하리라고 맹세.
그림에 대한 관심도 지속적이어서 햄프턴 궁의 미술관에 다님.
크리스마스에는 에텐에 있는 부모를 방문했는데, 아들의 상태를 걱정한 부모는 그가 런던으로 돌아가는 것에 반대함.
 
1877
1~4월: 삼촌 추천으로 도르드레흐트 서점의 직원으로 근무.
대단히 고독한 생활속에서 자주 교회를 찾아가고 성서를 여러 나라 말로 번역.
데생을 계속해나감.
5월: 자신의 종교적 소명에 대해 아버지를 설득.
신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감.
시 조선소 책임자인 삼촌과 함께 생활.
라틴어. 그리스어, 수학을 배움. 폭넓은 독서, 미술관 방문, 데생 연습을 계속.
신학교 입학을 위한 공부가 너무 어려워 포기함.
 
1878
7월: 부모에게 돌아간 후 아버지와 브뤼셀로 감.
거기서 전도사가 되기 위해 3개월 과정의 공부를 하려고 함.
8월에 개강하는 수업이라 에텐으로 되돌아감.
8~10월: 브뤼셀 근처 라에켄에 있는 복음주의 학교를 다님.
그러나 전도사가 되기에 부적합하다고 여겨 다시 에텐으로 돌아감.
12월: 자신의 소명을 따르기 위해 프랑스 국경 부근의 탄광촌인 보리나주로 감.
극도로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 아픈 사람들을 방문하고 광부들에게 성서를 읽어줌.
 
1879
1~7월: 보리나주의 와스메스에서 6개월 동안 세속 전도사로 일하기로 계약을 함.
광부들의 열악한 생존 조건을 보고 몹시 충격을 받아 온 힘을 다해 그들을 도우려고 함.
가건물에 살면서 짚단 위에서 잠을 자는 생활을 함.
상관들은 이런 태도가 화나서 그가 설교에 재능이 없다는 핑계로 계약 연장을 거절.
8월: 교구목사 피에테슨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브뤼셀까지 걸어감.
그에게 보리나주의 광부들을 스케치한 것을 보여줌.
탄광 지역인 쿠에스메로 돌아가 소명에 다라 살아가기로 함.
그곳에서 1880년 7월까지 머무는 동안 자신도 극빈자 생활을 하면서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줌.
디킨스, 셰익스피어, 위고 등을 읽고, 드로잉 연습을 반복하면서 점점 더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됨.
이후 그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될 만큼 개인적 위기를 겪은 시기였음.
그의 직업적 소명에 공감하지 않던 동생 테오와 잠시 소식을 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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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의 소명(召命)

    
    
빈센트 반 고흐의 소명(召命)
 
Compassion: Solidarity, Consolation, and Comfort
 
 
긍휼(矜恤): 연대(連帶), 위안(慰安), 위로(慰勞)
 
 
                           
                                                        헨리 나웬 / 최종수 옮김
 

(역자 주: 헨리 나웬 신부는 지금까지 미치광이 화가로만 알려져 있던  빈센트 반 고흐의 기독교 신앙과 영성을 처음으로 다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일깨워준 분입니다. 여기 옮긴 글은 나웬 신부가 남긴 아마 고흐에 대한  유일한 논문입니다. 신부님이 1975년 12월 16일부터 1976년 1월 3일까지 네덜란드에 머무는 동안,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와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쓴 글입니다. 1976년 3월 13일자 America 잡지에 실렸던 “Compassion: Solidarity, Consolation and Comfort" 라는 고흐의 소명에 대한 글입니다. 이 글의 내용이 나웬 신부가 예일 신학교에서 1977년과 79년에 강의한 “The Ministry of Vincent van Gogh”라는 목회학 과목의 중요 골자를 다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웬 신부는 “상처 입은 치유자”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그 관점에서 고흐의 생애와 작품을 통하여 학생들 스스로 진정한 목회자란 어떤 사람인지, 또한 진정한 기독교 목회사역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하였습니다. 이 귀한 자료를 찾아 준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John Kelly 도서관 Henri Nouwen Archives의 책임자 Gabrielle Earnshaw와 출판을 허락해 준 Henri Nouwen Literary Center의 Sue Mosteller 수녀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 번역문은 한국기독교연구소 간, <세계의신학> 2001년도 겨울호에 실린 것을 옮겨 온 것입니다.)
 
 
 긍휼(矜恤 compassion)
 
최근에 제 친구 한 분이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는데 긍휼(矜恤 compassion)이란 무엇을 뜻하는지 지금까지 들어 본 어떤 설명보다도 더 잘 설명해 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말씀드림으로써 오늘 저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인도에 아주 늙은 노인 한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은 날마다 새벽에 갠지스 강둑에 난 커다란 나무 밑에서 명상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노인은 막 명상을 마치고 눈을 뜨자, 전갈 한 마리가 하릴없이 거센 강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떠내려가던 전갈이 나무에 가까이 오게 되자 강물 속으로 뻗어 내린 긴 나무뿌리에 그만 걸려버렸습니다. 전갈은 죽어라 하고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얼기설기 엉켜있는 뿌리에 점점 더 얽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본 노인은 곧 길게 늘여진 뿌리 쪽으로 몸을 굽혀 물에 빠진 전갈을 구하려고 손을 뻗쳤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손이 전갈에 닿자마자, 전갈은 냅다 달려들어 사납게 쏘았습니다. 순간, 노인은 본능적으로 손을 끌어당겼으나, 곧 다시 몸의 균형을 잡고, 죽어라 고투(苦鬪)하는 전갈을 구하기 위하여 뻗어간 뿌리를 따라 몸을 뻗쳤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손이 전갈에 가까이 이를 때마다 전갈은 독(毒)있는 꼬리로 사정없이 쏘아서, 그만 노인의 손이 부어오르고 피를 흘리게 되었고, 노인은 그 아픔을 참느라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바로 그 때 지나가던 사람이 뿌리 위에 몸을 뻗치고 전갈을 구하려고 애쓰는 노인의 모습을 보고 소리쳤습니다. “저런, 어리석은 늙은이 보았나. 정신 나간 것 아니오? 어리석은 바보나 목숨을 걸고 그 추악한 쓸모없는 놈을 구하려 할 것이오. 그 배은망덕한 것 구하려다 당신 죽을 것을 모르신단 말이오?”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조용히 낯선 사람의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여보게, 쏘는 것은 전갈의 천성(天性) 아닌가? 그렇다고 그것을 구해 주고자 하는 내 천성을 포기해야 할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옳습니다. 문제는 그것입니다. 물어뜯고 쏘아대는 세상에서 쏘인다고 하여 긍휼을 베푸는 우리의 천성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인지요? 이 노인과 전갈의 이야기는 서로 싸우는 것이 인간의 발전과정을 지배한다고 믿는 사회에 큰 도전을 해 옵니다. 이 이야기는 서로 얼싸안는 것이 물리치는 것보다, 입 맞추는 것이 물어뜯는 것보다,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미움으로 노려보는 것보다, 서로 친구가 되는 것이 경쟁자가 되는 것보다, 화평하게 하는 것이 전쟁보다 더 사람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줄여 말씀드린다면, 서로 불쌍히 여기는 긍휼히 각축(角逐)보다 더 사람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 타고난 인간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전에 저는 늘 신학자나 정신과 의사, 아니면 심리상담가나 그 밖의 다른 전문가에게 지도(指導)받기를 청하곤 했습니다. 그 분들은 제게 많은 도움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 모든 인간정서의 가장 사람다운 점을 이해하기 위하여 학계(學界)에 의존함으로써 저 자신도 전문가가 되어야했는데, 그렇게 되기 위한 훈련이나 기술을 다 갖출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화가에게 안내를 청하면 어떨까요? 화가들이 긍휼에 대하여 가르침을 줄 수는 없을까요?
 

제가 네덜란드 사람인데다가,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들 가운데 가슴을 찢을 듯 표현된 긍휼을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에, 저는 고흐를 지도자 삼아 그의 그림과 동생 테오(Theo)에게 보낸 편지들을 중요 자료로 써서 긍휼에 대하여 한 번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저는 긍휼--심지어 독살스러운 전갈마저 불쌍히 여기는 긍휼이 인간의 더할 나위 없는 가장 고귀한 천성일 뿐만 아니라, 이 귀중한 천성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일에 반 고흐 같은 화가가 독보적인 안내자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고흐의 편지들을 읽고 또 그의 그림들을 찬찬히 정관(靜觀)해 보면, 긍휼의 세 가지 중요한 면이 드러남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연대(solidarity), 위안(consolation), 그리고 위로(comfort)입니다. 우리가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복되다”고 말할 때, 우리는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고난 받는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눈물을 흘림으로써 인간적 연대를 분명하게 나타내 보여주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함께 삶의 상처를 깊이 아파함으로써 위안을 주고, 인간의 고통 저 너머에 빛나는 힘과 희망에 눈을 돌리게 함으로써 위로해 줍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과 글을 통하여 바로 이 연대와 위안과 위로에 대한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고흐의 생애야말로 전갈을 구하기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늙은 나무뿌리 위로 몸을 뻗치던 노인의 생애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연대(連帶 Solidarity)
 

긍휼은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내 자신이 모든 인류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의식 안에, 또한 온 인류가 하나라는 깨달음 속에, 그리고 모든 사람이 언제 어디에 살고 있든지 같은 인간조건(human condition)으로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아는 지식 안에, 그 자체의 모습을 들어냅니다. 이러한 내적 연대를 통하여 모든 다른 피조물과 맺은 연대관계도 더 깊게 느낄 수 있습니다.
 

언뜻 보아 이 인간의 연대관계는 스스로 분명한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많이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가정 안의 갈등관계나 인종갈등, 나라 안이나 나라 밖의 국제 갈등관계 속에서 이 인간의 연대의식이 뒤로 밀려나고 그 대신 분계선 의식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인간의 에너지는, 다는 아니라 해도, 대부분 개인과 사람모임 사이의 차이를 방어하는 데 사용되고, 서로 거리를 유지하도록 규정된 자신을 지키는 데 쓰고 있습니다. 대체로 자기이해는 우리가 서로 어떻게, 또 어디가 다르냐는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차이점이 바로 우리”라는 식입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보다 더 빠르다, 더 느리다, 더 머리가 좋다, 더 손이 빠르다, 또는 더 친절하다....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자기가 누구냐 하는 것이 남과 다르다는 데 바탕을 두지 않고 오히려 똑같은 존재라는 데 두고 있습니다. 긍휼(compassion)이라는 말은 마치 “동정”(同情 sympathy)이라는 말처럼, “.....와 함께 고난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먼저 고난당하는 같은 인간조건에 참여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사람이고, 자기정체의 닻을 인간의 공통된 경험에 내리고 있음을 기꺼이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토마스 머톤(Thomas Merton)은 이러한 인간의 실존적 연대를 깨달은 다음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람 눈을 속이던 이 차이의식에서 벗어난 해방감은 큰 소리로 웃을 수 있을 만큼 나를 홀가분하게 해주었고 또 기쁨을 주었다. 나는 그 기쁨을 이런 말로 표현할 수 있겠다: ‘하느님,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전 다른 사람과 똑같습니다. 저는 오직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일 뿐입니다.....인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  머톤이 지적한 중요한 점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 똑같다는 것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곧 우리의 가장 깊은 자의식을 들어내 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똑같다는 사실(human sameness) 속에 될 수 있는 대로 완전히, 그리고 아주 깊게 참여하기를 열망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빈센트 반 고흐의 천재적 재능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청년시절 대부분 고흐의 특징적 모습은 그가 목사가 되려고, 그리고 다음에는 화가가 되려고 애썼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목사나 화가가 되려던 소명(召命 vocation) 가운데 그가 분명하게 보여준 것은 가난한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과 짓밟힌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는 길을 찾았다는 사실입니다. 1878년 25살 때 고호는 신학을 공부하려고 암스테르담에 갔습니다. 그러나 라틴어나 희랍어 같은 필수과목에 점점 흥미를 잃은 나머지, 선생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정말 이런 소름끼치는 과목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평안을 가져다주기를 원하고, 그들이 땅위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믿으십니까?” 고흐는 그런 실용성 없는 학과목을 공부하는 일이 꼭 필요한 것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말대로, “위대한 가난대학교의 무료 과목”을 택하고자 하였습니다. 몇 달 뒤 그는 벨지움의 외떨어진 보리나쥬 탄광지대로 가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거기서 동생 테오에게 편지하기를, “우리 인생의 본분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 하느님의 종이 될 것을 간구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형언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쓸쓸함과 외로움, 가난과 비참한 신세, 그리고 모든 일의 종말, 또는 그 극치에 다다른 모습을 보게될 때, 우리 마음가운데 하느님 생각이 일어나는구나. 적어도 지금 나의 형편이 그렇단다....”하고 말했습니다.
 
고흐는 광부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그저 설교하고 가르치고 회개하게 하는 것이나 또는 그들의 삶의 형편을 바꾸어주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보다 광부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가난한 그들과 더욱 깊은 연대를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고흐는 보리나쥬의 생활에 대하여 동생에게 이렇게 편지하였습니다. “내가 이러한 지역에서 언제나 배우며 관찰하면서 한 삼 년 동안만 일할 수 있다면, 참으로 들을만한 값있는 것을 가지고 돌아 올 것이다. 나는 정말 겸손하게, 그러나 자신을 가지고 이 말을 하는 것이다.”
 
보리나쥬 탄광에서 일하는 동안 여러 실망 좌절을 경험한 뒤에, 고흐는 목사가 아니라 화가가 되어야함을 깨닫고, 그의 인생이 극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소명은 여전히 변함없었습니다. “내가 바라고 목표하는 바는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너무 높게 목표를 잡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그림을 그리고 싶다....사람들이 내 작품에 대하여, ‘그는 철저하게 깊이 느끼고 있구나, 민감 다정하게 느끼고 있구나....’ 하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진척(進陟) 숙달(熟達)되고 싶다.....모든 사람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어떤 것일까? 하잘 것 없는 사람, 괴상한 사람, 까다롭고 사귀기 어려운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또 얻을 수도 없는 사람, 한마디로 하층민 가운데 가장 낮은 하층민으로 보이겠지. 다 좋다....그렇다면 내 작품이 이러한 보잘 것 없고 이름 없는 사람의 가슴속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구나. 이것이 바로 그런 모든 소리를 듣는다 해도 분노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바탕을 둔 나의 큰 뜻이자 희망(ambition)이다."
 

민감 다정하게, 분노가 아니라 사랑으로 유발(誘發)된 인간조건에 대한 그의 연대를 표현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자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고흐의 소명이었습니다. 이 연대를 표현하기 위하여 고흐는 자기 목숨을 바치고자 하였습니다. 고흐는 인간적 연대(human solidarity)로 가는 길이 고통스럽고, 길 양옆에 수양버들(weeping willow)이 늘어선 것처럼 눈물의 길임을 알고 있었지만, 한 번 인생의 목표를 정하자 세상의 아무 것도, 결코 아무 것도 고흐를 되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고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감정이나 곤란을 피하려들지도 않는다..... 내가 입은 은혜를 갚아야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세상은 나를 위해 걱정해 주었다. 나는 땅위에서 30년이라는 인생길을 걸어왔다. 그래서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무언가 그림이라는 형식의 기념품을 남기고 싶다. 그림에 대한 어떤 취향(趣向)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그린 그림이 아니라, 진지한 인간 감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린 그림말이다.”
  
“진지한 인간 감정을 표현”하려는 것이 고흐의 소원이었습니다. 전도자로 그렇게 하고 싶어 했을 뿐만 아니라, 화가로서 그렇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 일은 지극히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이고, 한없이 인내하여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고흐는, “그림 그리기란 무엇인가?” 하고 스스로 물은 뒤, “어느 한 사람이 느끼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서있는 보이지 않는 철벽을 뚫고 나아가 일하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 나온 연대를 이루고자 하는 일은 마치 철벽을 뚫고 나가야 할 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연대하는 일은 참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한 번 이루고 보면 활력을 불어넣어 줄만큼 신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림 그리는 일에 열중하던 어느 순간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때때로 무언가 형언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모든 자연이 말하는 것 같다.....누구나 다 그것을 보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내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볼 눈이 있고, 들을 귀가 있고, 파악할 마음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자연이나 하느님은 모든 것을 보고 듣게 하신다.”
 

이제 긍휼이란 첫째로 연대를 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목사나 화가가 다를 것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두 사람은 다 사람들에게 가슴 울리는 감동을 주고자 하고 또 흔히 메우기 어려운 간격(間隔)의 아픔을 느끼고자 합니다. 고호는 어느 날, “어쩌면 우리의 영혼 안에 큰 불길이 치솟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몸을 녹이려고 그 불을 쬐러 오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굴뚝에서 나오는 가느다란 연기뿐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 버린다.....내면의 불을 간수하면서....누군가 그 불 곁에 와서 앉았다가 계속 머무르게 될 때가 오기를 끈질기게 기다려야 할까?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머지않아 오게 될 그 때를 기다리게 하자”고 동생에게 편지하였습니다. 참으로 연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연대관계는 참을성 있게 기다림으로써,  그리고 그 위대한 부르심에 변함없이 충실함으로써, 자라나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위안(Consolation)
 

긍휼의 두 번째 특징은 위안입니다. 우리가 남보다 다르게 보이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고, 모든 인간조건에 긴밀한 연대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위안이 그 모습을 밝히 들어냅니다. 연대는 단지 긍휼을 위한 조건을 표현해 줄뿐입니다. 그러나 위안은 긍휼이 지닌 내적 역동성을 파악하게 합니다. 회복(restoration)이라는 말에 서로 어금지금하게 걸 맞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위안”이라는 말입니다. 위안이라는 말을 들을 때 처음 연상(聯想)하는 것은 소극적인 뜻으로 이해하는 경향입니다. 그래서 위안이란 아픔을 덮어주는 것, 문제를 잘못 다루는 것, 쓰라린 부분을 피하는 것, 바꿀 수 없는 상황에 순복(順服)하도록 돕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한 소극적 이해의 가장 좋은 예가 “애석상”(哀惜賞) 또는 “장려상”(獎勵賞 consolation prize)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내가 실패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덜 언짢게 느끼도록 해주는, 말하자면 싸구려 선물입니다.
 

그러나 긍휼의 뺄 수 없는 한 부분인 위안은 고통을 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고통을 공유(共有)할 수 있게 되기까지 더 깊게 해주는 것입니다. 위안은 우리가 외로운 사람과 함께(cum solo)할 것을 요구합니다. 다른 곳이 아닌, 정확하게 그가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함께 해야 합니다. 고난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울지 마세요. 당신의 인생에 너무나도 좋은 일들이 많이 남아있으니까요” 한다든지,  “괴로움을 잊어버리고 더 행복한 일들을 생각해 보세요” 하는 것은 비록 우리가 진정으로 하는 말일지라도, 사실은 고통당하는 사람이 지금 있는 곳이 아니라 어떤 다른 곳에 있고 싶어 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외로운 사람이 있는 곳에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외로워하는 사람을 우리가 있는 곳에 불러 같이 고통 없는 곳에 가자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그 누가 고통스러운 곳에 있기를 바라겠습니까? 그 누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실존의 상처를 함께 느끼고자 하겠습니까?   그 누가 자기 자신도 실은 해답을 갖고 있지 못하며, 자기 역시 약하고 능력이 없고, 결국 자기 역시 피하지 못할 삶의 붕괴를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움 받고자 하겠습니까?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삶의 역사와 역사적 순간������(Life History and the Historical Moment)라는 책에서 지적하기를, 특히 정신분석가와 같은 노련한 전문 치료사가 환자의 공포와 불안감을 완화시켜 줄 때, 사실은 그가 환자로 하여금 죽을 수밖에 없는 끔찍한 상황조건에 직면하도록 권유(勸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공포와 불안 저 너머에 무시무시한 두려움, 즉 우리가 밑도 끝도 없는 깊은 나락(奈落) 앞에 서있다는 실존적 깨달음이 있습니다. 인간치료에서 볼 수 있는 역설(逆說)은, 우리가 일상생활의 고통과 불안을 제거하는 것은 곧 우리 인간존재의 궁극적 상황조건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 일에 대한 핑계도 제거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문제를 대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신비와 대결할 것을 서로 권유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가진 공포와 불안은 그 강도(强度)와 본성이 서로 다르다 해도, 바로 이러한 차이 때문에 환자와 치료사(治療師)로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우리의 본질이 고독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서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서로를 위한 목회자가 되는 것입니다. 위안이란 우리를 서로 갈라놓는 모든 인간의 공포와 불안을 넘어, 우리가 서로 함께 할 수 있는 저 무시무시하고 불가사의한 곳으로 이동해 가는 것을 뜻합니다. 에릭슨은, “불안과 공포를 넘어서 우리는 실존적 불안을 직면할 수 있는데, 이 불안이 믿음과 친교를 낳는 보편적 자원(universal resources)을 일깨워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위안은 또한 인간의 모든 고난과 고통을 인간의 근본적인 상하고 찢김(brokenness)과, 연약함(vulnerability)과 죽을 수밖에 없음(mortality)을 돕는 조수(助手 acolytes)로 취급하는 것을 뜻합니다. 위안은 고통을 경감해 주는 기술을 요하지 않고, 오히려 고통이란 우리 인간의 공통된 공포 불안에 가득 찬 상황조건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 것이라고 여겨,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되기까지 그 고통을 더 깊게 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빈센트 반 고흐로부터 위안을 주는 가장 감동적인 얼굴 모습(portraits)을 봅니다. 광부들과 함께 살던 보리나쥬를 떠났을 때, 고흐는 귀를 기울여 들을만한 설교가가 아니라, 눈으로 볼만한 화가가 되려고 애쓰는 도중에 있었습니다. 그 뒤 네덜란드에 머무는 동안 수많은 데생과 유화를 그리면서, 줄곧 인간 심령의 깊은 곳에 도달하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 억압받고 짓밟힌 사람들과 맺은 깊은 연대관계를 느꼈습니다. 이 연대관계가 고의의 위안 작업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1881년 4월부터 1885년 11월까지, 고흐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본 대로 삶의 핵심에 도달하려고 미친 듯 애를 썼습니다. 에텐(Etten)애서 그는 씨 뿌리는 사람, 비를 든 소녀, 감자껍질을 벗기는 여인, 지팡이에 의지한 목자와 수많은 어두운 색의 풍경화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병든 농부가 두 손안에 머리를 묻은 채 팔꿈치를 무릎 위에 얹고 화덕 가에 앉아있는 모습을 그렸고, 그가 “기진맥진한 사람”(Worn Out)이라고 제목을 붙인 늙은 남자도 그렸습니다. 고흐가 헤이그(The Hague)로 옮겨갔을 때, 모델로 창녀와 “버림받은"(orphan) 사람을 택하였습니다. 그는 “슬픔”(Sorrow)이라는 그림을 그렸는데, 벌거벗은 여인이 절망 가운데 가슴을 찢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몇 달 뒤 네덜란드 동부에 있는 검은 토탄(土炭)의 시골 드렌테(Drenthe)에서 고흐는 밭가는 농부와 목자들이 그들 주변의 땅과 융화된 회색과 검은색의 여러 풍경에 매혹 당하였습니다. 거기서 다시 부모님이 계시던 남부 네덜란드에 돌아 온 그는 배고픈 사람들의 신랄한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들의 머리와 얼굴 생김새를 끝없이 관찰하고 그려 본 끝에, 저 유명한 “감자먹는 사람들"을 그렸습니다. 그 “감자먹는 사람들" 그림을 동생 테오에게 보내면서 그는 그 그림이 “농부들의 삶의 중심”(heart)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했는데 옳은 말입니다.
 

반 고흐는 참으로 인간의 공포와 불안 저 너머로 가서 그의 그림을 통하여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인간의 깊은 슬픔에 가 닿으려 하였습니다. 고흐에게 그림 그리기란 곧 동료 인간으로부터 우리 인간을 함께 묶어주는 그 무엇을 이끌어내는 것을 뜻합니다.
 

헤이그에서 고흐는 동생에게, “내가 흔히 가장 심한 비참에 빠져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내 안에는 평온과 맑고 깨끗한 화음과 음악이 있다. 가장 비참한 오두막 안에서, 가장 더러운 구석에서 나는 그림들을 본다. 그리고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내 마음은 이 그림들을 향하여 이끌려가고 있다”고 편지하였습니다. 고흐는 인간의 깊고 숨은 슬픔에 가 닿으려 하였고, 우리를 겁주려는 것이 아니라 위안하기 위하여 그것을 볼 수 있도록 표면으로 이끌어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나는 내 작품이 사람들 가슴 안에 있다고 느낀다. 또 땅에 가장 가깝게 머물러야 하고 인생을 그 가장 깊은 곳에서 파악하고, 많은 걱정 근심과 곤란을 통하여 그것을 진전시켜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하였습니다. 고흐는 이러한 그의 소명이 그로부터 무엇을 요구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인생을 그 가장 깊은 깊이에서 파악함으로써 위안을 베풀고자 원하였다면 그는 고통과 고난 가운데 자기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강력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습니다. “항해사(航海士)는 때때로 폭풍으로 배가 파선되는 대신 배를 진항(進航)하기 위하여 폭풍을 최대한 역이용한다. 내가 너에게 다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내 안에서 잠시나마 걱정 없는 삶, 번영을 누리는 삶을 원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때, 나는 그때마다 그저 곤란과 걱정거리, 곤경으로 가득한 삶으로 되돌아 가버리고 마는구나. 그래서 생각했다. 차라리 곤경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우자. 곤경이 나를 타락시키지는 않는다. 이 길이 사람을 멸망시키는 길은 아니라" 고.
  
고흐는 값싼 기쁨을 주려는 유혹, 삶의 표면에 머물고 싶은 유혹, 거짓 즐거움이나 거짓 우울을 보여주고 싶은 유혹에 끊임없이 저항하였습니다. 그에게 기쁨과 슬픔은 완전히 분리시킬 수 없이 불가사의할 정도로 서로 연결된 것이었습니다. 쉐베닝겐(Scheveningen)의 해변 그림과 헤이그 근처 숲을 그린 그림을 동생에게 보내면서, “해변을 스케치한 그림에는 금발 색깔의 온화한 광경을 볼 수 있고, 숲을 그린 그림에는 어둡고 울적한, 엄숙한 색조를 볼 수 있다. 우리 인생에도 이 두 면이 다 있다는 것이 기쁘다”고 편지에 썼습니다. 기쁨과 슬픔, 빛과 어두움, 삶의 기쁨과 죽음의 고통, 이 두 면을 다 표현하고자 한 것이 바로 고흐가 뜻한 위안을 주려는 고된 과업이었던 것입니다. 아무도 그의 작품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때에도, 언젠가 사람들이 위안을 주는 그의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것을 직감하듯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가슴에,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 가 닿으려는 줄기찬 노력 덕분에 고흐는 앞으로 언젠가는 자기 작품에 대한 감응(感應)이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작품에 대한 금전적 가치에 대하여 말한다면, 내 작품이 다른 화가들의 작품처럼 쉽게 팔리지 않는다고 하여 놀랄 것 없다고 솔직히 말하려 한다. 물론 그런 일이 지금 일어날지 뒤에 일어날지 말할 수 없지만,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가장 확실한 길은 신실하게 온몸의 힘을 다하여 자연을 소재로 작업하는 것이다. 자연을 느끼고 자연을 사랑하노라면 머지않아 곧 예술에 진정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감응을 불러 올 것이다.”  참 위안을 주려면 상한 인간의 중심에 다다르기까지 진지한 분투노력이 있어야 하고, 누구나 지닌 공통된 상(傷)한 인간의 깊이에서 긍휼이 표현되는 것인 줄 압니다.
 

위로(Comfort)
 

긍휼의 세 번째 국면(局面)은 위로입니다. 고난에 연대하는 일, 비록 이 일이 진정한 고통 나눔이 이루어지기까지 고통을 더 깊게 한다 해도, 이 일은 값싼 동정(commiseration)이 아니라 “위로”로 인도해 줍니다. 위로란 새로운 “함께 하는 능력”(strength together)입니다. 약함 가운데 서로 감싸 안는 사람들은 복됩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시작을 체험할 것입니다. 그 어떤 위험 부담을 무릅쓰고라도 긍휼히 여기고 함께 고난을 당한다면, 또 우리의 가공(可恐)할 고독에 감히 함께 직면한다면, 그러면 새로운 삶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을 볼 것입니다. 위안을 주는 사랑의 몸짓가운데 외떨어져 겪는 외로움이 극복되고, 그 자리에 두 고독한 사람이 함께 손잡고 환영하는 공간이 생깁니다.
 

고통을 피하려드는 한, 우리는 삶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혼자서도 독립하여 넉넉히 살아갈 수 있다는 망상 착각에 사로잡혀있는 한, 우리는 언제나 광포(狂暴)한 무기가 있어야 합니다. 권력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는 한, 그 대가는 파괴일 뿐입니다. 그러나 연대와 위안은 위로를 낳습니다. 그것이 바로 긍휼의 큰 신비입니다. 땅이 갈아엎어져 부서질 때 새 씨앗을 심을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어루만지는 손이 따뜻한 우정을 보여줍니다. 서로 입 맞추면 사랑이 밝히 들어 납니다. 서로 가슴을 열고 서로 다가가 만나면 긴장 갈등이 사라집니다. 눈물어린 눈을 통하여 웃음이 빛나고 무언가 새로운 것, 영원히 신선한 무엇이 실재함을 감지하게 됩니다. 약한 사람들의 교제에서 진정 생명이 솟아납니다. 남자나 여자나 다 자기들의 모든 연약성 안에서 서로 위안을 주기 위하여 자신을 복종시킴으로써 사랑이 몸을 입고 체현(體現)됩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위로를 나타내 보이는 가장 값진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위로는 공동체를 생성하게 하는 하늘이 준 인간의 위대한 은사(恩賜 gift)입니다. 서로 연약함 가운데 함께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능력으로 한 데 묶여지고, 그 새로운 능력이 함께 한 몸을 이루어줍니다. 연대와 위안은 값싼 동정이나 서로 불평하는 일, 연민으로 마비시키는 일이나, 서로 남의 어깨 위에 흐느껴 울게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우리를 공동체로 인도하며 그 공동체 안에서 서로 우리의 약함을 고백함으로써 서로 힘을 주고 또 고통을 서로 받아줍니다. 인간 고독의 심연(深淵)을 함께 맞대면함으로써 우리는 실망이 아니라 위로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위로도 우리의 고난을 없애주거나 존재의 불안 공포를 덜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또 위로는 인간이면 누구나 천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독을 쫓아내 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위로는 삶의 현실적 상황조건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끊임없는 새로운 이해를 가져다주는 원천(源泉)으로 여겨 함께 대결하도록 힘을 줍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가장 훌륭한 재능가운데 하나는 위로를 줄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가 보리나쥬에서 전도자로 일할 때, 부활이 희망의 큰 원천이라고 아주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어느 말의 생애”(The Life of a Horse)라는 연작 그림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 슬프고 매우 음울한 장면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죽음의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가야만 한다는 것과 우리 또한 눈물과 흰 머리칼을 공유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느끼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찌르는 장면이다. 이러한 일 저 너머에 있는 것은, 하느님만이 아시는 크나 큰 신비이지만, 그러나 말씀을 통하여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일러주셨다.” 이 말은 고흐가 25살 때 쓴 말입니다. 그 뒤 부활에 대하여 다시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은 고흐에게 교회와 교회에서 쓰는 용어들이 낯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말합니다. “부활”이라는 말은 사라졌지만, 영원한 생명에 대한 체험은 점점 더 고호의 내적 생명 가운데 실재로 존재하는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고흐는 의식적으로 영원을 추구하였습니다. “버림받은 사람”(Orphan Man)이라는 첫 번 스케치를 동생 테오에게 보내면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이 그림에서 내가 표현하려고 한 것은....하느님의 존재와 영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마 노인 자신은 모르겠지만, 조용히 화덕 가에 앉아있는 한 작은 노인에 대한 끝없이 감동을 주는 표현 속에 그것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이것은 결코 달콤한 감상(感傷)이나 목사 집안에 머물던 때의 마지막 찌꺼기 같은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이 말은 그의 작품들이 아흐르(Arles)와 오베르(Auvers) 지방의 풍경을 그릴 때 보여준 소용돌이치는 듯한, 또 불타오르는 듯한 붓 길이 점점 더 분명하게 표현된 것같이, 마치 타오르는 불길처럼 확실한 말입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언가 고상한 것, 벌레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가장 가난한 벌목공(伐木工), 화덕 가에 앉아 있는 농부나 광부도 영원한 집에 가까웠다는 느낌이나 영감을 가질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 말이다.”
 

1885년에 고흐는 어두운 네덜란드 시골을 떠나서, 안트베르프(Antwerp)에 잠시 머문 뒤 파리로 갔는데, 거기서 동생 테오와 2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파리에서 도시와 그 주변의 밝고 명랑한 색깔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또 일본 그림에서 정신적 아름다움을 발견하였고, 꽃과 정물을 많이 그리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만난 흥미로운 파리사람 풍의 예술적 기쁨도 맛보기 시작하였습니다.
 

1888년 2월에 남부 프랑스 아흐르(Arles)로 갔을 때, 그의 깊은 영혼 속에 숨어있던 모든 빛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그가 보는 모든 것 위에 비추게 되었습니다. 감격에 넘쳐서 동생에게 이렇게 편지하였습니다. “이건 마치 자연이 불타기 시작하는 것 같다. 모든 것 안에 옛 황금색, 청동색, 구리색....태양이 빛나는구나. 태양은, 더 잘 표현할 말이 없기 때문에, 나는 그저 노란색, 유황색, 담황색, 레몬 노란색, 황금색이라고 불러야겠다. 노란색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곳 사람들에 관해서도, “나는 남자와 여자들 속에 무엇인가 전에는 후광(後光)으로 상징되던, 또 색깔의 광휘(光輝)로 표현하던 영원한 자질을 그려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고흐의 그림을 보러 와서, 놀랄만한 재능을 가진 화가라고 감탄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게 되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동생 테오의 아들인 고흐의 단 하나 밖에 없는 조카(나웬이 이 글 쓸 당시 85세 된 고흐와 같은 이름을 가진 빈센트 반 고흐)가 말하기를 고흐의 그림을 보러 온 사람들이 위로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고흐가 살아있을 때 사람들은 대체로 고흐를 가리켜 어울리기 힘든 불쾌한 사람, 그래서 친구도 없고 물론 이름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그 보다 더해서 고흐는 아주 의심스러운 사람, 심지어 두려운 사람으로 더 유명해진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 고흐가 이제는 그의 그림과 데생과 편지를 통하여 전 세계 모든 나라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목사이자 위로자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설명하면서, 고흐의 조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흐는 말하자면 사람들의 피부 밑으로 기어들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도 심지어 가장 평범한 보통 사람인데, 그 사람들의 영혼 한 복판 중심에서 무언가 그릴 가치가 있는 아름답고 고귀한 존엄성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기를, “사람들이 고흐의 그림을 보러 왔을 때 이런 말들을 합니다. ‘그 이야 말로 진정 이해해 주는 분이었구나.’ 그리고 사람들은 위로를 받았다는 것을 느낍니다.”
 

고흐의 위로하는 목회사역의 중요한 역설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자 하는 운동가(activist)의 그림이라기보다,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려던 묵상가(contemplative)의 그림이었다는 점에서 여실히 보여집니다. 그래서 고호는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물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보다, 사물 자체를 알고 감복하게 하는 것이다.”
 

고흐는 다른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사람의 내적 아름다움과 그들의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그리고 삶의 가장 더러운 구석으로부터 빛의 서광을 그려냄으로써 위로를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볼 눈을 가진 사람들은 이 빛을 보고 곧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빛이 같은 태양으로부터 온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태양, 참으로 태양 말입니다. 어둠침침한 방에 함께 모여 앉아 감자를 먹는 사람들보다도 고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태양이었습니다. 그 태양이 아흐르의 밀밭 위로 이글거리는 빛을 비추고, 그 태양이 씨뿌리는 검은 사람 뒤로 불덩이처럼 솟아오릅니다. 그래서 렘브란트의 “나사로의 부활”을 다시 그리면서 그리스도 대신 태양을 그려 넣었습니다.  고흐는 동생에게 편지하면서, “오! 이 태양을 믿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믿음 없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태양은 곧 어둠 속의 빛, 자연과 사람을 밝게 해주는 빛, 무덤에서 죽은 사람을 불러내는 빛입니다. 고흐의 그림 가운데 태양을 보는 사람은 그가 주는 따뜻한 위로를 느끼고, 고흐가 보여준 연대와 위안이 사람들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숭고한 태양 빛을 보게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람들은 고흐가 긍휼로 가득한 사람이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것은 중요한 소명이지만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긍휼은 고난당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라 하고, 인간실존의 가공할 나락을 함께 대면함으로써 위안을 주고, 우리를 양육해주는 위대한 햇빛의 반사인 처음 빛을 비춤으로써 위로하라 합니다. 저는 이일을 하기 위하여 한 화가의 안내를 구하였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자신은 행복한 삶을 살지는 못했습니다. 마음 속 깊이 그는 자기의 긍휼이 가져올 열매를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분투노력의 결과를 보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삶이 줄 수 없는 것을 이미 알아차린 사람은 인생으로부터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점점 더 분명하게 알기 시작하는 것은 인생이란 단지 씨를 부리는 때요, 그 수확은 아직 여기에 없다는 사실이다.”
 

혹독한 정신적 고통이 빈발(頻發)하여 고흐는 쌩 레미 요양소에 입원하였습니다. 이 요양소에서 한 일 년 간 입원해 있는 동안 가장 훌륭한 작품들을 남기고, 고호는 퇴원하여 잠시 파리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가쉐(Gachet) 의사의 돌봄을 받기 위하여 오베르로 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한지 두 달 만에 고흐는 스스로 배에 총을 쏜 다음 1890년 7월 30일에 숨졌습니다.
  
그가 구해주려고 애쓰던 전갈이 마침내 고흐를 죽인 것입니다. 그의 동생 테오도,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고흐를 이해해 주던 사람이었는데, 형이 죽은 지 육 개월 뒤에 형을 따라갔습니다. 나무뿌리 위로 몸을 뻗치고 있는 고흐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즉 “어리석은 바보나 목숨을 걸고 그 추악한 놈을 구하려 할 것이오” 하고 외치는 우리에게, 고흐는 고개를 돌리고 말합니다. “여보게, 쏘는 것은 전갈의 천성 아닌가? 그렇다고 구해 주고자 하는 내 천성을 포기할 것까지야 없지 않은가?”
 
<아래는 고흐의 신앙의 역정에 대한 다른 이들의 글입니다. 그의 정신분열에 대한 분석이 책으로 나온 것도 있습니다.>

The Practicing Preacher

At the age of 22, in 1875, he had the burning desire to carry the message of God. He trained to become a Methodist preacher but was unsuccessful. Despite it, three years later, aged 25, he served as a preacher for a religious society at the Belgian coal-mining of Borinage for about two years, in daily contact with material and moral wretchedness. At first, he was a resident, and later, he became an itinerant preacher who practiced Christian virtues with great steadfastness and dedication.
Van Gogh is famous for his paintings but not for his sermons in this tumble-down place of Borinage where there was so much poverty and suffering going on. As a young preacher in this coal miners' town, he attempted to bring the people consolation and comfort through religion. He tended the sick, visited homes, and conducted Sunday services. His sermons were as intense and passionate. He used biblical text and compared people's presence on earth as a pilgrimage. He preached to the weary miners that everyone on earth is a stranger passing by, on the way "home" to a better place.
Van Gogh slept on the floor of a derelict hut with the miners, gave away his possessions, and suffered with them. Sadly, they turned away from him and dismissed him. Brokenhearted, Van Gogh struggled to make his way, but he was always rejected and forsaken. He felt lost.

 
At Eternity's Gate: The Spiritual Vision Of Vincent Van Gogh
Kathleen Powers Erickson (공)저
출판사: Wm. B. Eerdmans Publishing, 1998
ISBN 0802849784, 9780802849786
224페이지
 
Most scholars have argued that van Gogh was insane and that his religious life was a product of this madness - and was something he happily abandoned when he left the Christian ministry to pursue a career as an artist. This biography by Kathleen Powers Erickson is the first to demonstrate the falsehood of such assumptions and to argue that van Gogh's spiritual life was essential to the unfolding of his unique artistic vision. Basing her study on solid biographical evidence, van Gogh's personal correspondence, and informed insight into the painter's artistic imagery, Erickson clearly traces van Gogh's pilgrimage of faith, from his early religious training, through his evangelical missionary period, to his struggle with religion and modern thought, and finally to the synthesis of traditional Christian beliefs with the modern world-view that he achieved in both his life and his art. Unique to this study is Erickson's in-depth examination of van Gogh's mental illness, culminating in her convincingargument that van Gogh's "insanity," long assumed - indeed mythologically contrived - to be schizophrenia, was in fact a psychological disorder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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