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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ㅡ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

이준원 (충북노회,우암교회,목사) 2013-11-07 (목) 19:43 10년전 24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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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조금 신경쓰는 일 중의 하나가 유명한 '누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하고 설교에 인용하는 일입니다.
수많은 격언과 명언과 일화와 예화들이 누가 그랬다고 하더라하는 식으로 전달되어버립니다.
예를들면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이아가라 폭포-또는 알프스에서 물을 마셨다. 그리고 나서 옆을 보니 "POISON"(독약이라는 뜻)이라고 써 있는 팻말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 'X'표시가 되어있었다.  갑자기 그는 배가 아프기 시작하여 병원으로 달렸다. 이제 곧 창자가 녹아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의사는 진단을 마치고 또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껄껄 웃으며 "POISON"은 영어로는 독약이지만 불어로는 낚시금지라는 말이라고 했다. 독약이 그를 아프게 하였다가, 치료가 그를 안 아프게 한 것이 아니고, 그를 아프게 하였던 것도, 안 아프게 하였던 것도 모두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할 일이 별로 없던 제가 ㅠ 과연 불어로 POISON포이즌이 낚시금지인가를 찾아본 데 있습니다. 그러나 불어로도 POISON '쁘와종'은 같은 스펠링에 같은 뜻으로 독(毒)이었습니다. 일단! Poison은 불어로 낚시금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예화를 좀 더 정확히 쓰자면 이렇게 설명을 붙여야합니다. 사실은 그 사람이 본 영어는 Poison이 아니고 'S'자가 하나 더 붙은 프랑스어 Poisson인데 이것은 생선(Fish)이라는 뜻의 불어로서 그 옆의 X자는 낚시를 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라고 해석을 더 붙여야했을 것입니다.  
 
많은 일화들이 구전 전승과정을 겪으면서 그냥 믿고 싶은대로 믿어버리기 때문에 정확한 근거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습니다. 루터에 관한 수많은 일화들도 과장되거나 잘못된 예화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제가 조금 학문의 흉내를 내면서 한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인용의 정확성과 진실성이었습니다. 모호한 것은 안됩니다. 근거가 없는 것도 안됩니다. 그래서 좀 내부적으로는 까다로운 시각을 좀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 오랫동안 들어왔던 이야기, 어거스틴이 말한 '신앙의 기본은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라는'  말은 의심없이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고 별 궁금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실제로 어거스틴이 한 말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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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글을 써보는 이유는 어거스틴이 이 유명한 말을 하기 전에 인용했다고 하는 웅변에 관한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어거스틴이 그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을 말하면서 비유하기를 "웅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발음, 둘째도 발음 셋째도 발음이듯이!" 신앙에서도 첫째는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발음'이라고 해석한 분이 있었습니다.
웅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발음?
그래서 어거스틴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그런 말을 했는 지 알고 싶어서 다시 찾아본 것입니다.
 
이 말은 어거스틴이 410년경에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디오스코루스(Dioscorus)에게 쓴 편지에 나타나는 말입니다. 아래 더 보기에 본문 링크를 올려놓았습니다. 어거스틴은 평생 수많은 이들에게 편지를 썼고 그 편지에는 신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신학적 논쟁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훗날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디오스코루스Dioscorus(d. 454)는 교황이 되었는데  바로 이 편지에서 어거스틴은 유명한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을 강조하며 겸손의 중요성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간단히 해석해보았습니다.
(음.. 그런데 뭐, 쉽지 않은데요 ㅠ 영어문법책 어디 갔지?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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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To Him, my Dioscorus, I desire you to submit yourself with unreserved piety, and I wish you to prepare for yourself no other way of seizing and holding the truth than that which has been prepared by Him who, as God, saw the weakness of our goings. 
나의 디오스코루스여, 나는 그대가 온전한 경건함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나는 그대가 그대 자신을 위하여  우리 행위의 약함을 보고 계시는 바로 그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  진리만을 붙잡는 사람으로 자신을 준비할 것을 기대합니다.
 
In that way the first part is humility; the second, humility; the third, humility: and this I would continue to repeat as often as you might ask direction, not that there are no other instructions which may be given, but because, unless humility precede, accompany, and follow every good action which we perform, being at once the object which we keep before our eyes, the support to which we cling, and the monitor by which we are restrained, pride wrests wholly from our hand any good work on which we are congratulating ourselves.
그 길의 첫번째 부분은 겸손입니다. 둘째도 겸손입니다. 셋째도 겸손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그대가 신앙의 방향을 물어볼 때마다 다시 반복하여 강조하려고 생각합니다. 다른 교훈을 줄 것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선한 일, 동시에 우리가 생각을 따라 지켜나가려하는 목적들,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노력들, 우리 스스로 모니터하면서 조심하는 것들도,  겸손이 앞서가며 동행하고 또 따라오지 않고는  그 모든 선한 행위들을 스스로 치하하고 싶어하는 교만이 모든 것을 우리의 손에서 빼앗아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All other vices are to be apprehended when we are doing wrong; but pride is to be feared even when we do right actions, lest those things which are done in a praiseworthy manner be spoiled by the desire for praise itself.
우리가 잘못을 저지를 때  그에 따르는 모든 다른 악덕들은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령 우리가 옳은 일을 할 때에도 특히 교만을 더욱 두려워해야하는 이유는 그 일을 칭찬받을만큼 잘해냈다해도 그것에게 갈채를 보내려는 욕망 때문에 변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Wherefore, as that most illustrious orator, on being asked what seemed to him the first thing to be observed in the art of eloquence, is said to have replied, Delivery; and when he was asked what was the second thing, replied again, Delivery; and when asked what was the third thing, still gave no other reply than this, Delivery; so if you were to ask me, however often you might repeat the question, what are the instructions of the Christian religion, I would be disposed to answer always and only, “Humility,” although, perchance, necessity might constrain me to speak also of other things.
그런 의미에서 많은 유명한 웅변가들이 유창한 웅변을 하려면  반드시 첫번째로 지켜야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게 될 때 대답하는 것과 같습니다. 첫째는 잘 전달하는 것(Delivery)입니다. 그렇다면 두번째로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고 질문받을 때에도 그들은  잘 전달하는 것(Delivery), 셋째도 잘 전달하라는 것(Delivery)이라고 대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기독교의 교훈이 무엇이냐고 되풀이 해서 물어볼 때마다 나는 어쩌면 다른 것들도 말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언제나 오직 '겸손' 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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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로 딜리버리 Delivery는 배달한다, 전달한다는 뜻과 함께 '연설'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결국 누가 누구에게 말한다는 것은 내 뜻과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의미에서  딜리버리 Delivery가 연설이라는 의미로 변화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발음'이라고만 고정한다면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확한 발음도 물론 잘 전달하기 위하여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만한 한 도구가 될 수 있겠죠. 발음이 정확치 않아서 듣기가 힘든 경우가 외외로 많습니다. 정말.. 그런데 그것보다는 '전달의 기술'이 딜리버리 Delivery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설교나 웅변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그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발음을 포함하여  표현이나 내용전개 등 전달방법이 효과적이고 정확해야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딜리버리 Delivery의 라틴어 원 단어를 찾고 싶은데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만 딜리버리 Delivery라는 말 자체에 정확한 의도가 담겨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문제는... 그 정확한 전달이 얼마나 힘드는 가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전달하는 자는 평생 자신의 전달의 미숙함을 생각하며 전달할 것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인식의 결여와 지혜의 부족을 생각하며 더 겸손해야 할 듯 합니다. 그래서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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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egorian - Nothing else matters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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