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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주는 것과 받는 것의 선택입니다

박용래 (대전광역노회,대전장로교회,원로목사) 2013-11-10 (일) 23:51 10년전 3687  
주는 것과 받는 것의 선택입니다
 
20:33-38                                            2012.09.09.
 
스님과 신부의 만남
한 스님이 천주교 신부 집에 가서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외우면서 시주를 부탁했습니다.
신부는 나와 보지도 아니하고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한 시간이 돼도 스님이 가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염불을 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속이 상한 신부도 큰 소리로 주문을 외웠답니다.
 
주나봐라. 주나봐라. 주나봐라. 주나봐라 하고 큰 소리로 주문을 외웠답니다.
그랬더니 스님도 대단한 오기가 있는 분이었습니다. 스님은 두 시간 째 큰 소리로 염불을 외우는데 가나봐라. 가나봐라. 가나봐라하고 몇 시간째 주문을 외웠답니다.
세상이 이쯤 되면 참 살기가 각 팍한 세상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는 중에 에베소에서 떠나 마게도냐로, 그 후 드로아를 거쳐 밀레도에 도착해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고별설교를 하고 있는 말씀입니.
 
바울은 이 설교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35절입니다.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그런데 바울 사도 설교처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라는 말씀은
오늘날 자본주의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대단히 어려운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경제 원리의 기본원칙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장 적게 주고 가장 많이 받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주지 않고, 많이 받으려는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이 현대인들의 생각입니다.
 
현대인 들은 성경말씀과 반대로 주는 것보다 많이 받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주는 데는 인색하고 받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더 많이 받기 위해서 직장을 옮기고, 더 많이 받기 위해서 사람을 속이고, 더 많이 받기 위해서 사람을 해치기도 합니다

 이런 세상을 향하여 바울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주는 것이 복이 된다고 말씀하셨을 까요?

1. 성숙한 성도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는 받으려고만 합니다. 어른이 되면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인 줄 알게 되고 주는 기쁨, 주는 행복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어른이지만 사실은 아이 같은 사람 즉성인 아동들로 꽉 차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리학자들이 말하는유아기 적 고착 증세라는 것입니다. 어른이지만 일종의성인 아이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회가 성인아동들로 채워져 간다면 부끄러운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오래전부터 빼앗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행복은 받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는 데서 참된 행복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2012년 전남 여수에서 열리는 세계박람회의 성공적 개최를 돕기 위해 박람회 자원봉사자를 모집한 결과 선발인원 13000명의 3배수가 넘는 45000여명이 신청해서 3:1의 경쟁을 가져 지원자들이 선발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이런 기사를 찾아 읽고 정말 가슴 뛰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자원봉사자가 많아진다는 것은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연령별로는 20대 미만이 60.1%, 2021.4%, 505.4%, 404.7%, 604.3%, 302.8%, 701.2%, 80대 이상 0.1% 등이었습니다.
특히 20대 이하에서는 내년도 고3 수험생들이 대거 신청했습니다. 직업별로는 학생이 34912(77.7%)으로 압도적이었으며 인기 지원 분야는 관람안내(13751), 행사지원(7236), 교통질서·주차장관리(5427) 순이다. 여성(3만여명)이 남성(15000여명)보다 두 배 많았고, 외국인도 1300여명이 지원했다.
 
여수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자원봉사자들의 흘린 땀과 노력입니다
여수 시민들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잡상인들이 스스로 엑스포 기간 내에 나오지 않기로 다짐하고 실천하였다는 것입니다.
 
서울 강남에 한 부인은 이번 여수 엑스포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면서 자신의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말을 합니다. 이제는 길거리에 무거운 짐을 든 여인들을 바라보면 자신도 모르게 손이 저절로 가서 들어주게 되었고 길거리에 떨어진 휴지가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주어야 마음이 편하게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내가 소유하고 차지하고 받아내는데서 오는 기쁨보다 섬기면서 주는 기쁨과 행복이
백배나 더욱 크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아파트에서 날마다 교회에 나오는 짧은 거리를 보면서 도대채 길거리에 어지럽게 많은 양의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은 누군가?
 
버리는 사람들 중에 대다수의 학생들의 모습을 봅니다. 우유를 먹고 버리고 과자봉지를 버리고 휴지를 버리고 저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부모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학교 선생님들은 수업시간에 단 한마디씩이라도 인성교육을 위해서 교훈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처야 합니다.
저는 우리교회 앞이 짧은 거리이지만 교회에 나오면서 또 교회앞을 지나가면서 떨어진 휴지 들을 주어서 버리고 가지 아니하고 그냥 지나 처가는 신자들은 죄송하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미국에 젊은이들 가운데 부르는 가요 가운데 이런 가사가 있다고 합니다. '행복하고 싶어라. 행복 하고 싶어라. 그러나 그대를 행복하게 해 주지를 못하면 나는 영영 행복할 수 없네.'
 
유행가 가사에도 가끔 진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 주지 않고는 나는 행복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사는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도 부부지간에도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인사: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면 나에게도 행복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오연호라고 하는 기자요 작가가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이상한 제목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이 오연호씨는 대학생 때부터 철저하게 반미주의자 였습니다.
항상 대모 주동자였습니다. 그는 미국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잘못한 거, 그것만 끄집어 내 가지고 발표하는 일이 자기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잘못한 것들 이런 것만 전부 취재해서 책을 4권이나 썼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 그는 좀 더
 
미국을 알아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미국 유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유학중에 그는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소련도 망하고 사회주의도 망하고,
구라파도 엉망이고 일본도 저렇게 시들어 가는데 도대체 미국은 21세기를 끌어가는 힘이 어데서 오느냐 하는 것을 알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연구한 결과로 쓴 책이 바로 '한국이 미국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미국은 발론티어 정신이 있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 발론티어 정신은 바로 자원봉사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미국사람이라면 일주일에 몇 시간, 한 달의 며칠은 자원봉사 해야 되는 줄 압니다. 이것을 못하면 사람 구실을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가면은 거기 큰 게시판이 있고 거기다가 라인업(Line-up)을 합니다. 어디 가서 언제 언 제 봉사할 수 있겠다고. 그래서 거기의 지시를 받아 가지고 바로 정한 시간에 가서, 심지어는 훈련을 받아 가면서도 가서 자원봉사를 합니다.
 
일 년에 4천 만 명이 자원봉사에 나서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미국에 큰 힘입니다.
나이가 많다고 받는 것만 좋아 한다면 그것은 성인 아동들이라는 말입니다.
왜 나를 대접해 주시 아니하느냐 큰 소리를 치는 것은 성인아동들이 하는 짓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나이가 많아져도 성인 아동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여수 박람회 자원봉사자들이 힘은 들었지만 보람있고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강남의 한 변호사의 부인은 삶의 가치관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봉사하는 기쁨을 알게 된 것입니다. 봉사할 때 행복을 찾은 것입니다.

미국에 의과 대학에는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생활기록부에 자원봉사한 기록이 없는 사람은 입학이 안 됩니다. 의과 대학에 들어오기전 에 한번도 남을 위해 헌혈을 해본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남의 생명을 담보로 해서 의사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자원봉사 성적이 없으면 입학이 안 되는 대학도 있습니다.
공부만 잘했다고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자원봉사를 한 훌륭한 성적을 가져야 갈 수 있습니다. 이래서 미국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책의 작가는 미국에서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쓰게 됩니다.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의 길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무리 소유하고 차지해 봐도 영원히 불행할 수밖에 없는것입니다.
공산주의 사회, 사회주의 사회를 돌아보면 절대로 들을 수 없는 말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가 사랑이라는 말이요, 하나가 감사하다는 말입니다. 감사와 사랑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오로지 있는 것은 혁명과 타도! 그것뿐입니다. 거기에는 행복도 없고, 번영도 자유도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갓난 아기처럼 어린아이들은 늘 받는 것만 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주는 것을 좋아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숙이란 과일에 비유하면 잘 익은 과일과 같은 뜻입니다. 잘 익은 과일은 상품가치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므로 비싼 값에 팔려갑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숙한 사람이 이와 같습니다. 성숙한 사람의 조건 중 하나가남에게 나누어 줄 줄 아는 사람.” 이라는 것입니다.
성인 아동으로 말고 성숙한 성도들로 참된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316 절에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우리에게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832절에는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한 시인은 이러한 시를 썼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만드셨다.
줄 수 있도록
그리하여 하늘은 축복을 내린다.
하나님은 태양을 만드셨다.
줄 수 있도록
그리하여 태양은 따사로이 우리를 지킨다.

하나님은 달을 만드셨다.
줄 수 있도록
그래서 달은 우리가 가는 밤길을 은은히 비춰준다.
하나님은 공기를 만드셨다.
줄 수 있도록
그리하여 우리는 이 공기로 호흡한다.

하나님은 땅을 만드셨다.
줄 수 있도록
그리하여 땅은 모든 열매를 제공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셨다.
줄 수 있도록
그러나 인간은...?

시인은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 물음표로 마치었습니다.
사람들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배울 때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하나님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는 것을 배웠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시는 복이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주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나 혼자서 행복 하고 싶다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는 행복을 깨달아야 행복한 자입니다. 주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 행복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 것인데…… 그런데 사람들은 주는 것을 불행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불행이 있다면 여기에 있습니다. 주는 것이 행복한 것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불행이라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이 불행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빼앗긴다는 마음에서 사는 것이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줄 때마다 좋은 마음으로 주지 못하고 꼭 빼앗기는 마음으로 준다는 거예요. 체면 때문에 무엇 때문에 할 수 없이. 마지못해서 억지로 자식에게 주는 것까지도 빼앗긴다는 마음으로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한 평생 빼앗기는 마음으로 살기에 주면서도 불행한 사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헌금을 드리는 것도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릴 때 행복이 있고 축복이 있고 기쁨이 있는데 헌금을 드리면서도 아까운데, 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꼭 빼앗긴다는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고 헌금을 드리는 것이 손해를 본다는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불행한 신자이냐는 말입니다.
 
빼앗긴다는 마음으로 손해 본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가련합니까!
생각만 바꾸면 상대를 기쁘게 하고 자신에게는 기쁨과 행복이 오는데 그것을 모르고 삽니다
사랑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각만 바꾸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을 돌리고 자신에게는 기쁨과 축복이 되는 삶인데 늘 빼앗긴다는 마음에서 살아가는 신자가 있다면 불행한 신자라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설교를 하면서 33-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다 는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탐하지 아니하였고 -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고, 붙들어 주지 않는 원인은 마음에 탐심 때문입니다. 물질에 대한 탐심이 있으면 주는 자가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탐심 때문에 주는 삶을 살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탐 하다는 말은 마음에 물질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 때문에 모든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성범죄도 욕정을 이기지 못해서 일어납니다.
탐하는 사람은 - 절대로 주는 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탐하는 사람은 주기는커녕, 도리어 착취하고, 빼앗고, 강탈하기 위해 사람을 해치기도 합니다. 성도는 탐심을 물리쳐야 합니다.
63:5- 내가 본즉 도와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하게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이사야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들은 약한 자들을 도와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지도 않고, 붙들어 주지도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이사야는 분노하고 있습니다.
22:12- 네 가운데에 피를 흘리려고 뇌물을 받는 자도 있었으며 네가 변돈과 이자를 받았으며 이익을 탐하여 이웃을 속여 빼앗았으며 나를 잊어버렸도다.
왜 약한 사람들은 도와주지 않고 붙들어 주지 못합니까?
왜 주는 것이 복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까?
바로 우리의 마음에 있는 탐심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2:15- 예수님은 -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에베소서 5:3- 사도 바울은 -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우리의 주인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바르게 할 때 탐심을 물리치고 섬김의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더욱 하나님께 복을 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4.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638절에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잠언 1124~25절에도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인도의 왕의 순시
인도의 유명한 시인 타고르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번은 인도의 어느 왕이 지방을 순찰할 때 어떤 거지가 와서 무엇을 좀 도와 달라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때 왕은 그 거지에게네가 먼저 무엇을 내게 주면 나도 네게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거지는 왕에게 아무 것도 줄 것이 없었습니다. 생각다 못해 조금 전에 어떤 집에서 구걸한 옥수수가 조금 있었는데 주머니에서 한주먹을 쥐었다가 아까와서 인색해서 탐심 때문에 손가락 사이로 다 흘려버리고 옥수수 다섯 알을 꺼내 바치면서
저는 이것 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왕은 그것을 받아 자기 손바닥에 올려놓고 뒤에 왕도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옥수수 알 만큼 돈 다서 냥을 내어 이 사람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 거지는 옥수수 대신 돈 다섯냥을 받았으니 마음이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는 돌아가면서 크게 후회를 했습니다. “내가 이 옥수수 주머니 전부를 왕에게 바쳤다면 그 만큼 많은 돈을 받았을 터인데 내가 왜 다섯 알만 바쳤던고?”한숨을 쉬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너무나 큰 은혜와 복을 받았습니다.
국제무대에서 힘을 얻으려면 인구가 일억 정도는 되고 국민소득이 2만 불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민소득이 2만 불이 되는 나라가 세계에 일곱 나라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 일곱 나라가 미국, 일본, 독일, 영국, 이테리, 프랑스, 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우리나라의 국제 원조 액수는 다른 나라에 비해 퍼센트로 볼 때 1/3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체면에 손상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원인은 가난하게 살아온 고정관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세계가 한국을 대단한 나라로 보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까지 스스로 약소국가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제부대에서 발언권을 강화하려면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움켜쥐고만 있으면 따돌림을 당하지만 나누어 줄 때 국가 브랜드가 향상된다는 것입니다. 경제 민주화.
 
저는 이번에 인터넷에서 우리나라의 백대 부자들의 현황을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일위인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재산은 85천억 원이 넘었습니다. 2번째가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이 7조 천 억원 그리고 100번째가 녹십자에 허일성 회장이 26백억원대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대통령에게 그렇게 권면하고 싶었습니다.
 
대통령이 청화 대에 100대 부자들을 초청해서 사정을 하던 설득을 하던 그들의 재산 50%를 헌납할 수 있도록 해서 우리나라 집이 없는 국민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대통령도 살고 100대 부자들도 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눔의 삶을 실천할 때 그 사람이 개인의 가치가 향상되어 존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과 더 큰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지구촌 곳곳에는 우리들의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두 가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첫째는 주는 것이고 둘째는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는 것과 받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복되고 어느 쪽이 행복합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주는 것과 받는 것 어느 쪽을 선택하면서 살아야 합니까?
주님은 마지막 하나님 앞에서 심판은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38절에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는 말씀에 순종하여 섬김과 나눔과 베풀의 정신으로 살아감으로 행복한 성도들이 되어 지고 하나님께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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