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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사도바울의 3번째 변론입니다.

박용래 (대전광역노회,대전장로교회,원로목사) 2014-05-29 (목) 08:10 9년전 6486  

                    사도 바울의 세 번째 변론입니다.

24:10-21                                             2012.11.11. 박용래 목사 

어느 집사님의 기도

어느 농촌교회에 오랜 동안 묵묵히 신앙생활을 잘하시는 집사님이 한분 계셨습니다.

주일성수신앙이나 십일조신앙이나 감사신앙이나 무엇하나 흠잡을 것이 없는 집사님은, 딱 한 가지 흠이 있었는데, 그것은 회중기도 기피증 신자였던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기도를 시켜면, 30분이 지나던 침묵의 기도로 일관하여, 담임 목사님은 그 집사님 기도 시키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시골교회 장로로 세우기를 원하는데 기도를 못하는데 장로로 세울 수 있어야조

 

어느 날 심방 길에서 목사님은 천신만고 끝에 집사님의 기도 허락을 받아냈답니다.

이 소문은 금방 전 교인에게 알려졌습니다. 돌아오는 주일은 목사님의 설교보다, 그 집사님의 기도가 모든 성도들의 더욱 큰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예배시간이 되어 집사님의 기도순서가 되었습니다. 모든 교인들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집사님의 첫 번째로 기도의 말문이 열렸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의 감동하시는 은혜가 여기에 모인 모든 회중들 머리위에 충만 충만하시기를 간 절 하게 간절하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숨을 죽이고 있던 성도들은 완전히 교회가 폭소 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른 기도생활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바른 신앙생활이 중요한 것입니다.

 

신자가 되었지만 바른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하지만 바른 신앙생활이 필요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보면 유대인들도 사도 바울처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율법도 믿었습니다.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도 믿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을 법정에 고소하면서 바울을 죽이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바울은 법정에서 3번씩이나 자신에 무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변론은 처음 예루살렘 성전에서 결례 중에 붙잡혀 끌려 나온 후 천부장의 개입으로 말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때였습니다. "부형들아 들으라!" 하면서 변명을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 변명은 천부장에 의해서 공회가 소집되었을 때 바울이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말하면서 변론을 시작했습니다.

 

세 번째 변명에서 오늘 말씀은 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쓴다고 고백하고 있는 바울을 만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벨릭스 총독에게 재판을 받으면서 3차 변론을 하고 있습니다.

24: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 하니라.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이 변호사 대둘로를 내세워 바울을 총독 앞에서 고발한 것은 3가지 죄목이었습니다. (24:5-6)

 

1)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이다.

24: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바울이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다 소요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유대인들의 고소에 대하여 바울은 이렇게 변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24: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24: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24:12-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24:13- 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제가 예루살렘에 올라온 지 열 이틀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유대인들을 소요케 했다는 아무런 증거나 증인도 없습니다. 이것은 모함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더둘로가 고소한 내용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아주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한 일도 없고 누가 보았다는 사람도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고소한 것처럼 회당에서도 소요를 일으킨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고소한 사람들이 내놓는 증거도 없습니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유대인을 소요하게 만들었다는 고소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변론하고 있습니다.

 

둘째, 성전을 더럽게 하려 했다는 자이다.

 

24:6-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6하반-8상반 없음)유대인들은 바울이 성전을 더럽게 하려고 해서 잡아왔다고 고발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성전을 더럽힌 일이 없다고 변론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 해 만에 내 민족 이스라엘을 구제할 아시아 유럽 교회의 성도들의 헌금을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구제헌금을 전달하고 다른 모임을 갖지도 않았고 소동을 일으킨 적도 없습니다. 바울을 고소하는 사람들도 성전을 더럽힌 일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거짓으로 고소하여 사도 바울을 억울하게 재판을 받게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마음의 성전이 더렵혀진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억울한 누명을 쒸우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을 고소하는 유대인들의 마음에 성전이 더러워져 있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전을 더럽혔다는 죄목은 바울을 모함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바울이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바울을 모함하고 고소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성전이 더럽혀 져있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는 일에 왜 그렇게 진노하셨을까?

문제는 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바울을 정죄하는 유대인들의 마음에 성전이 더럽혀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성전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들의 마음에 성전을 청결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이단의 우두머리라는 것입니다.

24: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이단의 우두머리, 이단의 괴수라는 주장에 대하여 바울은 변론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고발하는 유대인들과 같이 자기들의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고발하는 유대인들과 같이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도 다 믿었습니다.

바울은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는다.” 말한 것은, “나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다 믿습니다.” 하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사도 바울을 고소하는 유대인들이나 고소를 당하는 사도 바울이나 같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있으며 율법과 선지자,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믿고 있으며 성경을 통하여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소망 가운데 살고 있으며 부활을 믿으며,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같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같은 성경책을 믿으면서, 같은 약속을 기다리면서, 은 소망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 편에서는 바울을죽여야 한다. 살려 둘 자가 아니다.” 주장하며 고소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그런 고발 때문에 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본문말씀을 통하여 무엇이 바른 믿음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살후 2:13 우리가 너희에 관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10:39 우리는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1:15-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오직 복음을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복음은 무엇입니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복음은 하나님께서 메시야로 보내 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복음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의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내가 받아야 하는 저주와 형벌과 죽음을 죽으셨지만,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메시야 그리스도 구원자를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셨는데, 약속하신 메시야 그리스도 구원자가 예수님이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 Good News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좋은 소식, Good News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믿음입니다.

 

둘째는 다른 복음으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1:9-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사도 바울도 유대인들도 복음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다른 복음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도 믿었습니다.

구약에 선지자들께서 예언해 주신 약속과 계명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아들을 메시야로 보내주신 것도 믿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는 다고 믿으면서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기에 믿기는 믿지만 다른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 다고 믿었으나 유대인들은 거기에는 할례를 행해야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이것은 다른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도 유대인들도 자신들의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었고 하나님이 주신 율법도 믿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을 행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다른 복음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를 못하고 세상에 성현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말하면 다른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성만 믿고 신성을 믿지 아니하면 다른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으면 그럿은 다른 복음입니다.

 

오직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을만한 다른 방법이나 다른 이름을 세상에 주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구세주가 되시고 오직 구원의 길은 예수밖에 없다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가 되시지만 예수 외에도 다른 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 라는 주장을 하면 그 사람은 다른 복음을 믿는 자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성육신 하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다시 세상에 오시는 주님의 재림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은 가지고 있지만 올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다른 복음을 믿는 신자들이 점점 많아 진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바울을 고소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어야 하지만 할례를 받아야 구원함을 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은 다른 복음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다. 선행으로 구원을 받는다. 고행으로 구원을 받는다.” 주장하는 유대인들은 모두가 다른 복음을 믿는 자들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복음을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을 믿어서는 결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 주신 돌과 나무와 자연과 동물을 섬기고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해마다 정월 초하루면 사람들은 동해바다로 산으로 올라가서 새해 첫 번째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절을 하면서 가족의 건강과 소원을 빌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진지하고 경건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주간 수능시험을 앞두고 대구 팔공산 갓 바위에 수험생 엄마들이 올라와서 일천 번씩 절을 하면서 수능시험을 보는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정성은 대단했습니다.

 

TV 뉴스보도 시간에 산에 올라와서 바위에다가 일천 배 절을 하는 불자들의 모습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보다 더욱 진지하고 경건하고 정성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아무리 정성을 드린다 해도 아무리 일천 번 절을 하면서 기원을 한다 해도 기도의 응답을 줄 수 없는 바위에다 정성을 바치고 기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자기가 위안을 받는 것은 모르지만 기도의 응답은 없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경건하고, 진지한 것만으로 기도의 응답이나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라고 해서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믿음의 대상을 바로 정하지 못한 세상 모든 사람들의 믿음과 정성과 간절한 기도는 다 허공을 치는 것과 같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종교가 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경건하고 정성된 믿음을 가지고 기도생활을 하는지 모릅니다.

아프리카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미신을 섬기는 믿음과 정성은 따라가기 힘듭니다.

그러나 아무리 경건한 믿음으로 진지하고 헌신적인 기도를 드린다 해도 잘못된 믿음 안에는 응답이 없고 축복이 없고 구원이 없습니다.

다른 복음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다른 복음에는 축복이 없습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오직 믿음의 대상, 기도의 대상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뿐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경건은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경건이어야 합니다. 역사의 주인이 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오늘도 성령님의 은총과 능력을 힘입어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깨어 있는 성도들의 믿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가이사랴 총독부 재판장에서 사도 바울은 변론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믿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만

바울을 고소하는 유대인들은 다른 복음을 믿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9-11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셨지만 예수를 그리스도 메시야 구원자로 보내주셨지만 알지 못하고, 영접하지 못하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은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신 메시야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부활을 믿지만,

복음을 믿지 않습니다. 다른 복음을 믿고 있기에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것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것을 지키셨는데, 아직도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를 보내주셨는데, 아직도 메시야가 오지 않았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데, 복음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게 하셨는데, 생명의 길을 걷지 않고, 참 진리를 외면한 채 엉뚱한 곳에서 진리를 찾고 있으며, 생명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오늘도 유대인들처럼 하나님도 믿고, 성경도 믿고, 십자가와 부활도 믿는데 예수님은 성인 중에 한사람처럼 믿고 따르고 있는 잘못 된 믿음입니다. 다른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빌라도 법정에선 바울의 변호가운데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가를 말합니다.

6- 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쓴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이 가졌던 믿음은 늘 담대하고 당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사도 바울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양심에 거리낌 없는 진실한 믿음으로 어떤 경우에도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소망의 삶! 믿음의 삶! 진실한 삶!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바른 믿음, 구원에 이르는 믿음,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믿음 바른 신앙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의 참된 소망이시며 구원자가 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바른 믿음, 구원에 이르는 믿음,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믿음 , 주님의 제자로 상급과 면류관을 바라보는 주님의 제자로 바른 신앙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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