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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박용래 (대전광역노회,대전장로교회,원로목사) 2014-06-05 (목) 07:08 9년전 3396  
 
나는 이제 목회하면서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적어가고 있다.
그중에 한편을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목회를 마무리 하면서 이 책을 꼭 하나 출판하여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봉황에서 만난 k 원로 장로님
봉황은 충북 청원군과 보은군의 경계선에 위치한 아주 경치가 아름다운 마을이다. 청주에서 보은 가는 국도 옆에 큰 냇가가 있고 냇가 앞에 국도에는 아주 바위 절벽이 있어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교회에서 바라보면 냇가와 절벽의 경치가 절경이었다.
 
이 마을 언덕에 위에는 커다란 느티나무와 둥구나무가 양쪽에 세워져있다.
바로 k (김교동) 장로님께서 40년 전에 심어 놓으신 나무라고 한다.
그 언덕위에 나무 가운데에 자그마한 봉황교회 예배당이 세워져 있다.
이 교회와 이 마을은 k 원로 장로님의 정신적인 영향을 많이 받아서 앞서 가는 교회와 마을이 되고 있었다.
 
여기에 k 장로님은 연세가 70이 넘으셨다. 아들도 장로님이셨고, 조카도 장로님이셨고, 그리고 아들들이 충성스러운 교회에 기둥 같은 집사님들이셨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 교회는 k 장로님 가족과 집안을 중심으로 해서 모여지는 시골 교회였다.
그런데 73년도에 그 교회 전도사로 부임하였을 때 아직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인데 교회에서는 발전기를 가지고 예배당 안에서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일에 앞서가는 교회이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아들 장로님께서 새벽기도를 마치면 아버지 장로님 방에 들어가서 문안 인사를 올리고,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말씀드리고, 부자간에 대화를 매일 나누시는 모습이 정말 소중한 일로 기억되고 있다.
 
k 원로 장로님께서 노인이시면서도 지게를 지고 약 4km 되는 야산 언덕위에 밭을 개간하시고 날마다 거기에 씨앗을 심고 가꾸시고 사과나무를 심고 가꾸시는 어른이셨다. 이 노인 장로님께서 토요일에 제가 한신대학교에 복학하여 토요일에 귀가 할 때면 냇가 옆에 나와 기다리시다가 제가 버스에서 내리면 제 가방을 받으시고 냇물을 건널 때 제 신발을 들어 주셨던 노인 장로님이셨다.
 
물고기로 부모를 섬기시는 아들 집사님.
교회 앞에 흐르고 있는 시냇물은 비교적 깨끗한 물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큰 시냇물이 흐르는데 보를 막아 놓아서 조금은 깊은 곳이 있었고 여기에는 각종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원로 장로님을 모시고 사는 아들 김정익 집사님(현재는 장로님)은 밤중에 그물을 처 놓고 새벽예배가 마친 후, 그물을 건지면 물고기가 많이 잡히어 아버지 원로장로님을 공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때로는 신기하게도 물속에 사는 자라가 잡히면 저에게도 주시어 요리를 하면 꼭 소고기처럼 느껴지고 맛있게 먹었던 기억도 잊을 수 없다. 장마가 지면 물고기가 너무나 많이 올라와서 물을 막아놓은 보 밑에 어항을 놓으면 금 새 싱싱한 물고기를 많이 잡아 반찬 걱정이 없었다.
 
언제 가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옆에 냇가에서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들어 놓은 보에서 작은 메기 떼가 몰려들어서 마을에 어떤 분이 박게스로 하나 가득히 잡기도 했고 구경을 하던 저에게도 세수 대야에 메기를 가득 잡아 주기도 했다.
 
신혼 부부였던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집사람에게 물고기를 끓이도록 했는데, 메기 요리를 해본 적이 없던 우리는 미꾸라지처럼 소금을 조금 넣어 더러운 것을 토해 내도록 하고 그리고 붕어찜처럼 요리를 해서 식탁에 올렸다. 물고기를 좋아 하던 나는 수저가 메기 요리에 자주 갔는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씁쓰름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배를 가르고 쓸개와 내장을 빼내야 하는데 통째로 끓여서 써서 먹지 못하고 버려야 만 했던 기억도 잊을 수 없다.
 
난생 처음에 먹게 된 생선회.
언젠가는 주일 낮 예배를 마친 후 k 원로 장로님께서 손자 같은 어린 전도사에게 냇가로 나가자고 말씀하셨다.
원로 장로님께서 투망과 초고추장을 만들어 가지고 앞장을 서셨다. 깨끗한 냇가에서 투망을 던지시어 물고기를 잡아서 배를 따고 물에 흔들어 씻은 뒤에 초 고 추장을 찍으시어 맛있게 잡수시면서 이렇게 먹어도 장수하니 걱정 말고 잡수라고 나에게도 주셨다.
 
노인 장로님께서 손수 물고기를 잡아서 나에게도 먹으라고 주시는 것을 나는 거절 할 용기가 없었다. 생전 처음에 민물고기를 회로 먹는 나는 그것도 냇가에서 비늘을 벗기고 배를 따고 물에 흔들어 고추장을 붉게 붙여먹는 것은 징그럽기도 했고 정말 못 먹을 것만 같았다.
 
바다가 없는 충북에서 자란 나는 바다 생선도 싱싱한 것을 먹고 자란 기억이 없다. 냉동시설이 없는 옛적에는 썩은 꽁치와 고등어가 가장 좋은 생선으로 먹고 자랐다. 눈동자가 돌아가고 머리고 썩은 생선들이 바다가 없는 충북으로 들어와서 사먹게 된 것이다. 그런 나에게 물고기를 잡아 냇물에 흔들어 회로 먹는 일은 끔찍한 일이었다. 그러나 원로 장로님께서 손수 잡아 주시는 물고기를 거절할 수 없어 눈을 감고 죽는 심정으로 입에 넣고 눈을 질끈 감고 날고기를 먹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눈을 감고 먹었던 물고기가 입안에서는 고스하고 정말 맛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바다 회보다도 민물회가 더욱 고스하고 맛있다는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부터 나는 생선회를 잘 먹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바다 회를 즐겨 먹는 것만 같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리 깨끗한 시냇물이라 하지만 민물 회를 먹는 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지금도 건강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어 주셨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지금도 생선회를 먹을 때마다 나에게 난생 처음 민물고기를 회로 먹을 수 있도록 손수 잡아 주셨던 정말 따뜻한 그 k 원로 장로님을 기억하면서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
 
k 원로장로님! 죄송합니다.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천국에 계실 k 원로 장로님께 지금도 머리 숙여 장로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사과드립니다. 하고 인사를 올리고 싶어진다.
손자 같은 20대 새파란 전도사가 원로 장로님을 벌을 주었던 실수를 지금은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진다.
 
봉황교회는 젊은 전도사가 열심히 섬기면서 30 여명 교인이 70여명 모이는 교회로 성장을 했다. 그런데 예배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지각하는 교인들이 있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나는 단 위에서 어느 주일 예배시간에 오늘 밤 예배부터 예배시간을 지각하시는 성도들은 일어서서 예배를 드리셔야 할 것입니다.’ 라고 단호하게 선포를 했다.
 
그런데 그 주일날 밤 예배시간에 늦으신 분은 바로 k 원로 장로님이셨다. 나는 예배를 인도하다가 원로 장로님 예배시간에 지각하셨으니, 뒤에서 일어서셔서 예배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아들 장로 조카장로 아들 집사 며느리 권사 집사들이 가득하고 가깝고 먼 집안 교인들로 구성된 교회 예배시간에 한 시간 내내 원로 장로님을 세워 놓고 예배를 드렸다.
 
목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준비 없이 첫 목회지로 나갔던 교회에서 정말 따뜻하게 사랑하여 주시는 원로 장로님을 자식들 앞에서 한 시간 내내 세워서 예배를 드렸던 일은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 거리고 붉어지고 너무 죄스러운 일이다.
 
장로님 오늘 늦으셨는데 다음부터는 예배시간에 서서 예배드리셔야 합니다.’하고 넘어 가던지, 아니면 모른척하고 넘어 갔어도 될 일을 원로 장로님이라도 예배시간을 어기셨으니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만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 옹졸한 생각이었다.
 
예배시간 내내 원로 장로님은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시고 아프셨을까? 앉아서 예배를 드리시는 아들 장로님, 조카 장로님, 집사 권사였던 아들 딸 자손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불편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셨을까지금 같으면 아마도 새파란 젊은 전도사에게 그런 수모를 당하시면서 예배에 끝까지 참석하실 원로장로님이 계실까?
 
그의 아들 자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서 전도사 추방운동이 벌어졌을 터인데 그런데 원로 장로님께서는 예배를 마치신후 교회 앞에 장로로서 예배에 본을 보여야 하는데 교회 앞에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셨다. 그리고 모든 자손들도 신앙적으로 그 일을 받아 들이셨다.
 
그 다음부터는 교인들이 예배시간을 지각하는 일을 볼 수 없었다.
아마도 그 때에 목회하면서 내가 상처를 받았다면 난 목회를 포기하였을 것이다. 처음부터 목회를 떠 밀리다 시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족한 나를 목회자로 삼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인도해 주심을 생각할때 마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목회를 하면서 계속해서 철없는 첫 목회에서 존경하는 k원로 장로님께 저질렀던 실수가 평생 부끄럽게 만 생각되고 있다. 지금도 천국에 계시는 장로님께 사과를 드리고 싶다.
철없는 손자 같은 전도사의 말에 순종하셔서 한 시간 내내 서서 예배를 드리신 k 장로님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 

이상호 2014-07-15 (화) 08:37 9년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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