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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표

마지막 만찬(눅22:14-27)

홍성표 (서울북노회,예수제자,목사) 2014-09-27 (토) 14:27 9년전 3445  
누구든지 마지막이라는 말은 비장하다. 그것은 두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전율을 자아내기도 한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나를 안고 주무시던 아버지께서 돌아 누우시더니
그것이 마지막인 줄 몰랐었다.

어머니는 긴 머리를 풀어헤치시고 토방을 손바닥으로 치시며 울부짖으시고
마당에는 사람들이 무엇인가 부지런히 움직이며 시끌벅적 하셨다.
나는 마당과 뒤뜰을 오가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놀이를 즐겼다.

우리 가족과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모두의 미래가 어떤 영향이 있을지를 예측이나 상상도 할 수 없던 철부지 어린시절에 닥친 일 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세월이 쏜살 같이 흐른 뒤에 마지막의 의미를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지금에 와서 다시금 생각해 본다.

태초는 시간과 역사의 시작을 의미한다. 창조의 태초 아르케는 통치와 다스림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세가 구체적으로 시작 되는 처음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모든 삶의 과정에서 시작이 있다. 태어 날때와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뽑을 때가 있으며 지을 때가 있으면 헐 때가 있다.

만날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가 있다. 마지막은 다르 말로하면 이별이고 헤어짐이다. 우리는 이 마지막을 아쉬워하고 안타까이 여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것들에 대한 환상과 착각을 하고 산다. 그리고 그 시간이 언제 올것이지에 대해서는 알수도 없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마지막이 지금 일 수도 있고 곧 바로 찾아 올 수도 있다. 우리는 이 마지막을 수없이 경험하고 산다.부모님과의 마지막, 부부사이의 마지막, 친구와의 마지막, 자식과의 마지막, 그리고 이 세상과이 마지막을 맞을 수 있다. 마지막 이후의 삶을 공자는 알지 못한다 하였으며 알려고 하지 아니했다. 공자는 단지 현세가 도덕적이고 완도적이며 인간의 도리와 살ㅁ의 질서를 나름대로 설파하고 가르치고자 하였다.

성서는 인간의 삶의 시작과 마지막을 심각하게 논하지 않는다. 진전한 시작과 마지막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권한이고 세계이며 주장하실바다. 인간은 단지 하나님의 섭리를 좇아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이러한 하나님의 권한을 가로채서 신의 자리를 넘보는 오만방자하고 어리석은 존재들이 있다. 역사를 사는 것은 인간 들이지만 그것으이 처음과 나중(완성)은 하나님만이 하실 일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마지막을 이렇게 준비하신다. 마지막은 고난으로부터 시작 된다. 제자들과 함께 한다 그리고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이생의 것들과 분명한 마지막을 선포하고 미련을 버린다. 그리고 동시에 제자들과 새언약을 피로서 세운다.

예수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존재들은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제자들과 그리고 예수 자신과 그의 마지막이 되게할 유다가 등장한다. 유다는 예수를 팔고 난후 후회를 하지만 그 때는 돌이킬 수 없는 때가 된다.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을 감사하며 맞이해야 된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일에 대하여 감사하고, 부보님이 존재 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감사하며 나라와 국가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에 대하여 무한한 감사의 기도를 드령야 한다. 특히 하나님을 알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붉은 죄들이 용서 되며 악을 단호히 끊고 살므이 가치와 방향 그리고 목적을 알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한다.

부부가 되고 부모와 자식이 되며 형제 자매가 되고 한 나라와 한 사회 그리고 한 학 친구가 된 것을 감사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감사해야 한다. 나무아 숲 맑은 계곡과 이름 모를 많은 생명 바위 새들 바다와 강, 푸른 하늘과 계절의 친구들엑세도 감사를 드려야 한다.

진정한 감사는 고통과 고난 속에서 드리는 것이고 절망과 죽음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와 삶은 모순덩어리가 맞다. 그렇다고 감사를 포기해서는 아니된다. 우리는 항상 감사해야 한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 때에 감사의 기도를 하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우리는 모든 것을 놓아야 한다. 물질 명예 권력 건강 등 우리가 가지고자 했던 모든 것을 놓아야 한다. 우리는 이 마지막이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이런 자가 지혜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의 마지막, 고난과 죽음을 앞에 두고 제자들이 다투고 논쟁을 하고 있다.

"누가 크냐" 인간들은 죽을 때까지 철부지이다. 큰자가 되고자 한다. 소위 큰자가 되려고 싸우고 죽이고 미워하고 다투며 거짓 말을 밥 먹듯이 하고 중상모략을 일 삼고 권모술수를 쓰고 더럽고 추하며 갖은 악을 다 행한다. 신도 예수도 상품으로 이용하고 썩을 것을 위하여 은혜를 저버리는 배은망덕의 삶을 산다. 큰 자가 되려는 탐욕과 욕망에 사로잡혀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럽고 추한 모든 것들을 짜낸다.

오늘도 역사는 큰자가 되려는 싸움으로 인간 되기를 포기하고 있다. 개만도 못하고 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지기를 꺼리지 않는다. 예수는 이런 인간들의 죄악으로부터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지금도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일하고 계신다.

예수그리스도의 큰자가 되는 길은 간단하다. 너희 중에 섬기는 자가 킨자가 될 것이다. 자본과 권력으로 큰자가 되는 것은 허상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큰자가 되려 하는 것은 물거품이 된다. 그가 마지막이 되면 "개관사정" 이라 모든 것은 잊혀지고 만다.

큰자가 되려고 한다면 모든 자를 주깨 대하듯 하고 그를 진심으로 섬기는 자가 도이어야 한다. 예수는  마지막이 된 역사와 인간을 죽기까지 섬기는 자로 살기 위하여 죽고 부활 하신 우리의 주님이시;고 구원자 이시다. 예수가 말씀 하신다.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셔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리라.

우리에게 시작이 있었다. 그리고 반드시 마지막이 온다. 그 마지막을 준비하는 자가 슬기롭고 지혜로운 자다. 지금 만나는 사람들이 당신의 최고의 사람이다. 지금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최고의 시간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보증 할 수 없는 허상이다.

마지막을 준비하고 사는 삶이 위대한 삶이다.
시작과 마지막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삶은 진정한 자유인의 삶이다.
 매 순간을 마지막처럼 살라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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