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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특집 대담 장공김재준기념사업회 김경재 이사장

김주한 (광주노회,한신대학교,목사) 2014-10-01 (수) 15:54 9년전 3245  
특집 좌담
기장 회보는 우리 교단의 비전과 정신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기 위한 좌담을 연재합니다. 한신대학교에서 교회사를 담담하는 김주한 교수와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교단의 나아갈 지표를 찾아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한신의 새 출발을 바라본다(545)-이장식 박사
WCC 무엇을 남겼는가(549)-박종화 목사, 장상 목사, 강용규 목사, 박경서 박사, 배태진 목사
 
 
*본 대담은 2014년 5월 회보(554호)에 실렸다.
 
 
온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좌담: 김경재 목사(장공김재준기념사업회 신임이사장·한신대학교 명예교수)
김주한 교수(목사, 한신대학교 교회사·교목실장)
정리·사진 이수찬 목사(기장 회보)
 
 
지난 127() 장공 김재준 목사 27주기 추모예배 후 개회한 정기총회에서 김경재 목사가 신임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장공 김재준 목사 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 이사장 김경재 교수를 만나 기념사업회의 비전과 함께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신학과 목회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김주한: 존경하는 김경재 교수님을 모시고 장공 김재준 목사님과 한신, 그리고 기장교회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먼저 장공기념사업회 이사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김재준 목사님과 교수님과의 인연을 말씀해 주시지요.
 
김경재: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단 한번 사는 인생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말하자면 인생이란 존재 자체에 대한 실존적인 물음을 하였던 거지요. 그런 물음을 안고 집 근처 무등산을 오르내렸습니다. 그때 나는 신학이 무엇인지조차 몰랐습니다. 어느 날 무등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전남도청이 보였습니다. 당시 도청건물은 꽤 큰 건물이었는데 내 눈에는 성냥갑처럼 작게 보였습니다. 그 때 나에게 조그마한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저 성냥갑 같은 세상을 위해 내 인생을 소비하고 싶지 않다라고요. 그래서 교회당 문을 두드렸습니다. 내가 출석한 교회는 백영흠 목사님이 시무하고 계셨습니다. 백 목사님께 나의 고민을 말씀드렸더니 장공 김재준 목사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장공을 찾아 19592월 한국신학대학 문을 두드렸습니다. 당시 수유리 신학교는 캐나다연합교회의 고마운 지원으로 1958년 새 교사가 들어서 막 완성된 직후였습니다. 그렇게 건물은 세워졌지만 전기, 수도 같은 기반시설 작업이 마무리 되지 않아 캠퍼스가 매우 번잡스러웠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기숙사도 냉난방이 안 되어 추위와 더위에 고생했던 기억도 이젠 아련한 추억으로 남습니다. 내가 입학했을 당시 장공 선생님은 학교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장공은 이듬해 그러니까 내가 2학년이 되던 때 학교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장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 정책에 따라 조기 은퇴를 강요당하여 결국 한신을 통해 당신의 이상과 뜻을 펼쳐보려 했던 계획이 온전히 실현되지 못했던 점이 저 개인적으론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김주한: 교수님께는 백영흠 목사님이 또 다른 은인이셨군요. 백 목사님과 장공 선생님의 관계를 좀 더 말씀해 주시지요.
 
김경재: 백영흠 목사님은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큰 어른이셨습니다. 장공과 백 목사님은 평소 친분을 유지하고 계셨고 두 분 모두 거룩한 것을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계셨습니다. 두 분 모두 근본주의 사상에 물든 교권주의나 신학지상주의를 우상으로 간주하였고 비신앙화하려고 했습니다. 그분들은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방해하는 일체의 우상들을 타파하려는 신앙 노선을 주장하였습니다. 특히 장공 선생은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만남을 중시하였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기장도 교단 자체를 하나의 교권주의의 보루나 우상으로 만들려는 일체의 시도를 경계해야 합니다.
 
김주한: 장공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취임하신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시지요.
 
김경재: 여러 훌륭한 분들이 계시는데도 부족한 나를 지명하여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결 같이 장공에게 늘 빚진 마음을 고백하더군요. 내 자신을 돌이켜보면 그동안 구체적으로 장공 선생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물어보면 별로 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빚을 갚는 마음으로 금번 이사장 직책을 수락했습니다. 더 이상 거절하다가는 선생님께 더 큰 빚을 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우선 세 가지 일을 하고 싶습니다. 우선 장공의 생애와 사상을 제대로 알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장공의 사상은 3일의 생활신학 혹은 신앙으로 함축해 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한국사회 일각에서는 장공을 신식학자, 인본주의 신학자로 규정하며 오해하고 있습니다. 기념사업회는 장공 사상의 본 모습이 무엇인지, 그가 이해한 그리스도교는 어떤 것이었는지를 다방면으로 연구하여 후세에 알리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우선 올해 안으로 장공의 생애와 사상을 주제로 하여 약 일천 페이지 분량의 책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1부는 생애 부분이 될 것이고 제2부는 장공 사상과 관련한 논문 20편정도, 3부는 장공 사상의 해설 및 신학논문 등으로 구성될 것입니다.
둘째는 장공 사상의 청년화로 요약됩니다. 그동안은 장공에 관한 관심들은 주로 회고적 연구들에 머문 경향이 짙었습니다. 장공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목요강좌를 보면 참석자가 평균 15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 현실이 너무도 부끄럽습니다. 장공 사상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어떤 신학과 견주어도 부족함 없는 것이라 판단되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에게 장공의 정신과 사상을 심는 일을 사명으로 삼고 싶습니다.
셋째는 재정 확충입니다. 기념사업회의 연간 사업 규모를 보면 약 8천 여 만원 정도 입니다. 한신과 기장에 대한 장공의 비중을 생각하면 너무도 미약한 수준입니다. 장공기념사업회가 앞으로 기장교회 현장과 한신을 위해 더욱 의미있고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개 교회와 개인들이 후원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달에 일만 혹은 이 만원 정도의 후원을 하는 후원자들이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김주한: 현장 목회자들 중에는 장공 선생의 신학이나 목회관이 목회현장에 접목하기가 여간 힘들고 어렵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들은 한신 신학이 목회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까지 말합니다. 학문의 현장에서 만나는 장공과 목회의 현장에서 만나는 장공의 모습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듯싶습니다. 이런 현장의 목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 또 학문과 목회현장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시지요.
 
김경재: 장공이 이해하는 그리스도교와 교회의 존재에 관한 신학적 이해를 우선 설명해야겠습니다. 저는 장공 사상의 핵심 어휘를 세 가지로 봅니다. 그것은 성육신적 영성’, ‘개혁신앙의 특징인 역사 참여와 현실 변혁의 복음’, 그리고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문제는 그 의미를 신학자들과 목회 현장에서 일하는 목회자, 신도들이 올바로 이해하고 있느냐 입니다. 가령 목회 현장에서 매주 설교를 통해 장공 사상을 알릴 필요는 없지만 그것이 설교와 목회 사역 속에 내면화되어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노력이 없다면 외형적인 성장이 있다고 한들 공허한 성장에 그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성경과 예수를 바라볼 때 각자의 안경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장공의 안경은 오늘 우리 현실에서 예수와 성경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탁월한 도구입니다. 저는 요즘 다시 장공 전집을 보고 있는데 오늘 장공이 우리에게 말씀을 한다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미래의 꿈과 열정을 잃어버리지 않았느냐?”라고 꾸중 하실 것 같습니다. 오늘의 현실이란 무엇입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대 기업처럼 성장하는 것이 곧 성공이요 진리인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현실을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그럴수록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인간과 사회 혁명의 표식으로 알고 그 본질을 아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장공의 외침은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가르침입니다.
 
김주한: 장공의 교회관과 목회관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김경재: 장공은 늘 교회와 함께하며 교회 개척에 온 힘을 기울였던 분입니다. 교회와 관련하여 제가 장공으로부터 받은 인상 깊은 가르침은 이겁니다. “교회는 땅에 속한 기구이지만 땅의 것과는 다른 신성한 기관이다, 한편 교회는 종교 왕국에 칩거하여 타락의 가능성이 있다. 교회에는 위대함과 마성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 장공은 교회는 하늘의 거룩한 뜻을 땅에 심는 기관이지만 깨어지기 쉬운 연약함을 지니고 있음을 잊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상의 교회를 소홀히 하거나 비판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장공은 지금까지 지상의 사역자들 중 목회의 일인자는 사도 바울일 것인데 바울이 목회한 교회는 천국이 아니라 모두 분쟁이 난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연약한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은 웅대하게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공은 누구보다 목회를 중시했던 분입니다. 그는 목회 강단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고 교회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가 남긴 많은 일화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장공을 조금이라도 아는 분들은 자기만 장공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확신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장공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정성 있게 관심하고 사랑했다는 말입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저 시골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에게까지 손수 편지나 카드로 격려하고 관심과 사랑을 표현했던 분이 바로 장공입니다. 저는 그런 자료들을 볼 때마다 자칫 무시하고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는 작은 자들에게까지 장공은 세심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셨구나 생각하며 반성할 때가 많습니다. 장공은 사랑을 나누고 전하는 진짜 목회를 한 분이었습니다.
장공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신학이 아니라 예수의 심장을 느끼게 하라였습니다. 그는 정말로 살아있는 예수의 심장을 가르쳤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요즘처럼 교회가 위기인 시대에 기장과 한신, 장공의 목회신학이 통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기장교회가 장공의 목회신학을 제대로 실천만 한다면 교회 부흥과 성장은 자연히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많은 이들에게 장공은 70, 80년대의 역사참여적인 모습으로만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장공이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예수의 마음을 품고 교회와 사회 속에서 실천하려 했던 모습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장공에 관한 연구도 한쪽 면으로만 치우치지 않도록 그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서 장공만이 줄 수 있는 깊은 종교적 영성을 밝히 알려야겠습니다.
 
김주한: 그렇다면 장공 선생이 목회현장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들에게 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김경재: 장공은 묵묵히 예수의 뒤를 따라 걸어간 사람입니다. 범용기(장공선생 자서전)에서 장공은 일생동안 주님이라 불렀던 예수가 자기와 동행했다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저는 그 체험을 물려받는 것이 장공의 진정한 신앙적, 목회적 유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장공의 역사참여 신학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장공의 삶과 신앙이 신학의 울타리에 그치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장공은 마지막까지 신학 교육의 마지막 목표는 교회 현장의 사역자를 만들려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결코 아카데미즘에 갇힌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서 저는 장공의 목회 현장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기려 앞으로 기념사업회 재원이 마련된다면 현재 시행하고 있는 장공김재준 장학금과 더불어 장공 목회자상을 새로 만들고 싶습니다. 목회 현장에서 땀 흘려 사역하는 목회자들 중 일 년에 한 두 분씩이라도 선정하여 격려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목회현장에서도 장공의 사상과 뜻을 계속 성찰하고 실천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김주한: 장공의 사상과 관련하여 한국 신학계의 평가는 엇갈려 있습니다. 진보신학계에서는 위대한 종교개혁자’, ‘대승적 기독교의 선구자라는 평가가 있고 보수신학계에서는 신신학자’, ‘자유주의 신학자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요?
 
김경재: 성서에서 만나는 참 예언자는 동시대의 사람들로부터 반대와 비평이 더 많았다는 사실을 떠올려 봅니다. 제가 장공에서 배운 진리는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데 이 세상성이라는 것은 빌라도와 제사장의 손을 빌려 예수를 죽인 세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내가 장공 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대승적 기독교 사상인데 장공을 그것을 생애 말년에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라는 감성적 어휘로 표현했습니다. 그가 말한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란 하나님 나라의 또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고 할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진보적인 기독교계와 보수적인 기독교계의 견해 차이가 상당히 큽니다. 보수계는 하나님의 나라를 철저하게 이원론적 구조로 보았습니다. 하늘과 땅의 유기적인 통일성을 부정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것이고 기독교 복음은 영생을 위한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이와 정반대되는 견해는 종교를 신화적인 사고로 간주하는 물질적 환원주의자들의 입장입니다. 그들은 땅에서의 삶이 종교, 정치, 경제의 전부라고 말하는 극단적 현세주의적 입장을 취합니다.
장공은 양자를 모두 부정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한 하나님의 경륜 속에 있는 생명 세계입니다. 그것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전되어 있습니다. 해방 직후 장공이 40대 발표한 기독교의 건국이념이란 글에 이러한 사상이 들어있는데 저는 이 글이야말로 장공의 사상을 핵심적으로 함축하고 있다고 봅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이란하나님 안에서 하나라는 것입니다. 장공은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의 관점에서 양쪽의 오류를 바로잡으려 했습니다.
 
김주한: 그렇다면 장공이 주장한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개념은 오늘의 신학 현장이나 목회현장에 어떤 의미를 준다고 보십니까?
 
김경재: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개념은 두 가지 점에서 유효하다고 봅니다. 우선 정통보수 교리주의와 싸움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교리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한국 사회가 고도산업사회가 되면서 교회가 양적 성장을 표방하는 교회주의시대가 되었습니다. 길과 진리, 생명의 복음이 교회라는 동굴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교회주의시대는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정통교리주의나 교회주의는 기독교라는 종교, 하나의 기구로서의 교회를 지키고 극대화하는 것이 예수의 뜻이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장공은 복음은 기독교라는 종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장공의 메시지는 교회나 교리 중심의 신학자, 목회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와 신학의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를 장공은 제시하고 있다고 봅니다. 현재 지성을 잃어버리고 민중을 잃어버린 한국 신학과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장공 사상은 여전히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교회와 세상 양쪽 모두에 침잠되어 살게 된다면 세상을 외면한 채 교회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가 큰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을 포기한 채 동굴 속에 갇혀 있습니다. 장공이 강조한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라는 것은 온 우주 전체를 경륜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신학입니다. 한 때 나 자신도 세상의 거대한 자본과 권력 앞에 위축이 되어 장공의 신학을 무기력하게 보고 회의에 빠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힘과 힘의 대결에서는 질 수 있겠지만 장공의 생각은 가루 서 말 속의 누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공의 사상은 세상의 누룩으로서 그리스도인은 사회의 부드러운 혁명을 일구는 사람으로 규정합니다.
내가 보기엔 지금 한국 기독교는 마니교적인 기독교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니교적 기독교란 무엇입니까? 세상의 모든 잘못은 악한 사탄의 책임으로 전가하고 그리스도인의 책임은 없다는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다보니 그리스도인은 그 사탄에 맞서 승리하자는 논리에 빠져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거스틴이 그토록 빠져나오고자 했던 마니교의 모습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비난받는 대형교회도 이와 같은 잘못된 논리에 빠져있습니다.
 
김주한: 우리에게 이토록 소중한 장공의 사상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 장공 전집입니다. 장공전집은 교수님께서 책임을 맡아 출간하였습니다. 전집을 발간했을 당시 상황을 말씀해 주시지요.
 
김경재: 장공 전집을 발행하면서 부딪친 어려움들이 많았지만 무엇보다 방대한 자료들을 찾아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기존에 출간되었던 책과 논문들, 자택에 있던 자료들과 청계천 중고서점에서 찾아낸 간행물들, 그리고 제3일과 기장 회보에 실렸던 자료들을 수집하였습니다. 수집된 자료들을 통해 어느 정도 장공 사상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130여 년의 한국개신교 사상사에서 대표적인 두 사상가를 꼽으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장공 김재준과 함석헌 선생을 말하겠습니다. 두 분 다 동양 고전 사상을 섭렵하였고 이 땅에 그리스도교를 창조적으로 접목한 큰 업적을 남기신 분들입니다. 이 두 분의 사상도 결국 그분들이 남긴 글을 통해 전해집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귀한 유산이 되는 장공의 사상을 다시 정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지금 출간되어 있는 장공 전집도 1983년 장공이 귀국한 이후 자료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부분도 모두 취합하여 재 발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긴 시간 귀한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아쉽지만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신대학 기성회 조직이 39년에 되었고, 학생을 받기 시작한 것인 1940년으로 저의 생일과 같습니다. 학교 졸업기수가 곧 내 나이이기도 할 만큼 나와 한신은 운명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여긴다. 그 운명의 만남으로 이끈 한 사람이 장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장공의 사상과 정신을 연구하고 알리는 데 노력하겠습니다. 이 일을 통해 온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가 우리 안에서 시작되기 바랍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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