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빌립으로부터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말하고 나다니엘은 참 이스라엘 사람이 곧 예수라 말하고 그 속에 간사가 없다 하였다. 빌립은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예수를 보았던 경험을 상기시키고 나다니엘은 예수를 가리켜서 랍비(선생) 이라 칭하고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랑엘의 임금이라 고백한다. 예수께서 빌립을 향하여 네가 나를 무화과 나무 사건 즉 그 나무가 예수의 저주에 말라버린 사건을 보고 놀란 것을 상기시키며 그보다 더 큰일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로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신다.
과연 하늘이 열리는 사건은 무엇이며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은 언제 볼 수 있다는 말씀인가? 이러한 만남이 있은 사흘 후에 갈릴리에 혼인 잔치가 있게 되었고 예수아 제자들도 청함을 받아 참여케 되었다.그런데 그 홍인 잔치의 자리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는 사건이 있게 되고 예수의 어머니가 이 사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고하게 된다.
그런데 예수께서 어머니에 대한 대답잉 이해가 가지 않는 대답을 하신다. 어머니를 여자라고 호칭하며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하신다. 상식적인 측면에서 어머니를 여자라고 한 것은 하대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모자의 인륜적 관계에서 보면 쉽게 이해가 가지 않고 납득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연출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적 환경에서 보면 더욱 그러하다. 물론 영어 성경에서는 존중하는 경어( Dear Woman)를 쓰고 있다. 왜? 그 일을 나와 관련을 시키는 것입니까? 아직 나의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여기서 나의 때라고 말한 나의 때는 언제이며 무엇을 위한 때를 가리키고 있는가?
추측하건데 그것은 가시관을 쓰고 골고다를 향햐여 가며 마침내는 십자가에 매달려 불의한 세력과 악한 세력, 그리고 무지한 민중들의 결탁의 결과로 죽음에 처해지는 때를 미리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중의 책임이 아니라 불의한 악의 세력과 그들에게 아부 아첨하는 세력들의 합의로 예수는 십자가의 처형데에 오르게 된 것이다.
예수의 어머니가 수종드는 사람들에게 너히에게 무슨 말을 하시든디 그대로 하라하시니라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예식을 따라 두세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는지라 유대인의 정결 개념은 율법의 중심을 이룬다. 그들은 외모에 대한 것을 깨끗이 하자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람들은 우선 눈에 보이는 것에 관심을 갖고 그 외적인 것에 가치 평가를 한다.
화려한 집과 교회당, 사람이 소유한 물질의 양과 명예와 권력 그리고 인물의 외모 그가 가진 사회적 위치들이 평가의 거반을 이룬다. 인간의 내면의 세계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세계는 거들떠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가 살아가는 삶의 목적과 목표 궁극적으로 이루고자하는 내면의 가치 추구 등은 아예 관심에서 버려진 채로 살려한다.
정결을 실천하는 것이 악이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러한 전통이나 관습 법과 규칙 등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러한 용도로 쓰이는 여섯 개의 돌 항아리가 시들어 가는 잔치를 위한 기적을 일으키는 도구가 된고 있다.
예수께서 수종드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그들은 그 말에 순종하여 아귀까지 채웠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기적이 일어나는 조건 혹은 준비는 첫째 항아리를 들수 있다. 항아리가 없으면 물을 채울 수가 없다. 우리에게 첫째로 필요한 것은 항아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어떤 항아리가 필요 한가? 믿음의 항이리가 필요하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삼위의 일치를 이루는 성령의 역사를 믿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하고 말씀이 필요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는 우리 전체를 하나님께 던질 수 있는 실천과 행동이 필요하다.
두 번째 필요한 항아리는 순종의 항아리이다. 주님이 말씀을 하시고 명령할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기꺼이 그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절대 순종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종의 항아리가 없이는 결코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정적이고 예라고 하기보다는 불평과 원망을 일삼게 될 때 기적은 그림자도 찾기 어려운 것입니다. 순종은 다른 말로 하면 겸손이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굻는 행동인 것입니다.
세 번째 항아리는 물을 채우는 것입니다. 물을 채우되 아귀까지 채우는 것입니다. 마지 못하여 반만 채우거나 그보다 못할 때 기적은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던 일을 중간에서 포기하거나 멈추기가 일쑤이고 주저하며 머뭇거릴 때가 허더합니다. 어떤 일을 시작했으면 끝까지 가는 끈기와 지속적인 태도가 견지 되어야 합니다 적당히 하는 것, 중도에서 그치는 것, 그것은 시작하지 않음만 못합니다. 시작하였으면 결과를 봐야 합니다.
기적을 보기 전에 항아리가 준비 되었고 그 항아리는 비워진 상태였으며 그리고 그곳에 물을 채우라는 주님의 명령 말슴에 대하여 물을 아귀까지 채우는 순종의 행위 실천이 있었으며 그 후에야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우리의 항아리는 이기적인 것과 탐심과 욕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거짓과 교만 오만과 자만으로 채원져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비워진 항아리도 없고 순종과 겸손 그리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의 항아리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진리를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기려는 구체적인 행동의 용기도 없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을 잔치에 차명한 사람들에게 더서 갖다 주는 나눔의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을 그대로 두고 혼자 즐기고 안일한 태도로 바라보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기적이라고 말 할 수 엇습니다, 기적을 자신혼자 독차지 하고 관조 하며 타자와 나누지 못하는 것은 빈 항아리가 채워지지 않음만 못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악을 끝임 없이 재생산 하는 악취를 풍기게 할 뿐 입니다. 포도주가 항아리에 넘친다 할지라도 그대로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떠다가 잔치에 온 사람들에게 마시게 햿을 대 기적의 효과는 극대화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항아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가정이라는 항아리 학교와 기업이라는 항아리 국가와 정부라는 항아리 그리고 세계와 우주라는 항아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항아리가 썩고 더러워질 오물들로 가득 차 있다면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포도주로 채워야 할 것입니다. 썩고 더럽지 않을 영원한 가치의 재료들로 채워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항아리릉 준비하고 있습니까? 한반도의 항아리 기장이라는 항아리 한국 교회라는 항아리 한 민족이라는 항아리에는 무엇이 들어 차 있습니까? 악독과 탐욕과 거짓으로 넘쳐나고 있습니까? 중세 교회와 교회의 망령이 되살아나서 그것으로 채우고 있습니까?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속이며 함께 멸망할 것들로 넘쳐 납니까? 우리는 이 모든 썩고 더러워질 것들을 말끔히 청소하고 태우고 버려서 그 빈 항아리에 성령의 기름으로 채우고 말씀의 능력으로 채우며 하나님의 대한 믿음과 그르 향한 기도의 힘으로 채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어떤 항아리가 준비 되어 있습니까? 이미 준비된 항아리가 있다면 그 속을 무엇으로 패우고 있습니까? 만일 썩고 더러워지는 것들로 악취를 피우고 있다면 이 모든 것들을 태워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물로 채우고 그 생명의 물. 잔치의 포도주를 연회장에 온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끼쁨이 배가 되도록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한다면 기적은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빈 항아리에 말씀을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우리의 거짓과 썩어질 것들로 채워지기 쉽사입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요. 그 말씀이 채워지면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요,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씀이 곧 살의 기적을 가져옵니다.
또한 빈 항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져야 합니다. 우리를 우하여 하나님의 동등한 자리를 마다하고 낮고 천한 곳에 오셔서 죄악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자신의 생명 모두를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로 빈 항아리를 채우면 기적이 찾아 옵니다. 상처가 아물고 각종 질병이 치유되며, 깨어진 관계가 회복 되고 목적과 목표 삶의 방향이 바로 서게 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이 생기며 삶의 가치와 의미를 바로 설정할 수 있게 됩니다.
다음에 빈 항아리는 성령의 기름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며 하나님의 잃어버린 형상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성령으로 우리의 빈 항아리가 채워지면 마귀와 귀신, 사탄과 어듬의 권세와 공중 권세가 물러가고 비뚫어진 것이 바로 서고 죽음의 세력이 물러 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처형 되시고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처음 하심 말씀이 성령을 받으라 하셨습니다.
요단강 가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후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 하셨습니다. 성령의 이끌림으로 예수님은 광야로 나아가시고 거기서 마귀의 유혹을 받게 되었지만 모든 유혹을 말씀으로 물리치시고 승리 하셨습니다. 권력 명예 물질으이 유혹을 모두 물리치시고 이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전파 하셨습니다.(막 1: 15)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개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우리의 삶이 혁명이 이러납니다. 질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마귀와 사탄이 물러 가고 더러운 귀신이 도망을 갑니다. 우리의 각종 질병이 치유되고 상처가 아물며 부서진 관계가 회복 됩니다. 진정한 자유 진정한 평화 진정한 생명과 진리의 길이 열립니다. 땅과 하늘의 소통 되고 모든 것이 성령 안에서 거듭나고 새롭게 태어 납니다.
다음으로 우리의 빈 항아리는 예수의 피로 채원야 합니다. 예수의 피는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악한 세력에 의해서 흘리신 피 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피는 세속의 탐욕괴 이기적인 욕망과 더러운 욕심으로 더러워 졌습니다. 이 오물 같은 피를 다 비우고 예수의 피로 채워야 합니다.
예수의 피는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흘리신 희생과 봉사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피 입니다. 그것은 이단과 사이비 더러운 거짓 종교가들이 말하는 거짓된 피가 아니라 우리를 살리려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버리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피입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도 없다.(히 9:22) 누군가를 위하여 희생의 피가 없이는 역사는 썩고 멸망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타인의 피를 빼앗아 자신의 부귀영화를 꾀하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그도 망하고 그와 함께하는 자도 망합니다 피는 생명입니다.(렘 11:28) 그러므로 우리 속에 예수의 피가 없으면 우리는 살아았다 하난 죽은자요 다시 살 수 없는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지금의 인간들과 역사는 예수의 피를 수혈해야 할 때 입니다.
우리는 이 빈 항아리를 믿음 소망 사랑으로 채워야 합니다.(고전 13:1-13) 믿음은 하나님 아버지 창조주와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살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소망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소망 입니다. 그 분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희망 하는 것들은 대부분이 다 썩을 것들입니다. 그렇다고 그것들이 필요하지 않응 것은 아닙니다. 그 대부분이 영원한 가치가 없는 순간의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믿을 수도 없고 흔들리고 변질 되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소망 할 수 있는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빈 항아리를 사랑으로 채워야 합니다. 사랑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함 없이 주는 것이요 때로는 주는 것을 받는 것이요 혼자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소중히 여기는 것이 사랑입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이 없고 모든 것을 이겨냅니다.요한 1. 4: 18) 사랑이 있으면 우리는 두려움이 없을 뿐 아니새로운 역사와 생명 그리고 희망을 창조하게 됩니다.
사랑의 기운이 사라지면 생명은 시들해지고 죽게 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은 동력과 생기를 잃게 되며 모든 희망은 없어지고 병들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한 1. 4: 8) 사랑이 곧 하나님이시기에 사랑이 없는 것은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날 이땅과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사랑이 상실된 시대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은 악하고 부패해지며 거짓이 홍수를 이루고 어둠과 공중의 권세가 세력을 떨칩니다. 사랑이 없은 곳에 생명이 존재 할 수 없습니다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빈 항아리를 생명을 살리고 치유하는 하나님이 사랑으로 살려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곳에는 생수도 없고 생명의 음식도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가심이 황폐해 질 뿐 아니라 이 역사 전체가 황폐해 집니다. 아마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충망해질 때 민족의 통일도 이루어질 것입니다.